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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41화 (141/575)

[141] 디 임팩트 6권 16화

도현이 느낀 그들은 발톱 대신 검을 든 늑대 전사들이었다.

얼마 뒤, 그들은 열병식이 가능할 정도로 길고 규모가 있는 타원형의 광장에 도착했다. 그 광장을 옆으로 끼고 돌아 조금 더 말을 몰아간 뒤, 마침내 숲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에 당도했다.

‘ㅁ’ 자 형태의 정사각형 대저택은 방의 수만 해도 수백 개가 넘는 성안에 성, 스므차 성주의 대저택이었다.

“탐나는 집이군.”

말에서 내린 딘이 도현에게 말했다.

“굉장하네요.”

도현은 고개를 들어 웅장한 대저택을 올려다봤다. 4층 높이의 저택은 성벽을 두르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로 난공불락의 요새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규모도 대단해서 층수 낮은 아파트 여러 채를 붙여 놓은 것 같았다.

도현은 대저택의 좌우를 봤다.

대저택보다 규모는 작지만 서너 채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숲 안의 전사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사제관에서부터 그들을 안내한 은빛 갑옷의 우두머리 병사는 긴 복도를 지나 어느 방 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디엘르 님께서 사람을 보내실 겁니다.”

그의 임무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수고하시었소.”

리드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딘과 도현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별다른 장식물 없이 의자 몇 개와 테이블이 전부였다.

의자에 앉은 그들은 눈빛을 교환하며 의자에 앉아 있을 뿐 침묵을 유지했다.

다크캐슬의 지배자가 사는 곳에 온 이상,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

어쩌면 벽 뒤에 누군가가 귀를 대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듣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킬 만큼, 대저택은 그들에게 은근한 긴장감을 심어 주었다.

기다림이 살짝 지루해질 즘,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절 따라오세요.”

그녀의 뒤를 따라 대저택 3층으로 올라간 도현은 황금색 카펫이 깔린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 입구 양편엔 검을 찬 병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저 사람이 디엘르?’

우아하게 꾸며진 넓은 방 안엔 주름살 많은 노파가 3층 창가로 스며드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홀로 앉아 있었다.

원피스를 입고 목걸이를 한 그녀는 눈빛이 부드러웠고,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도현은 그녀와 눈이 우연히 마주치자 급히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리드만처럼 허리를 정중히 숙이고 예를 표했다.

“수행 사제 리드만,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견습 사제 딘입니다.”

“견습 사제 로이입니다.”

그들의 인사를 받은 디엘르는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중앙에 서 있는 리드만에게 다가갔다.

“대사제님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일곱 신의 뜻에 따라 성까지 찾아왔다고요?”

“그렇습니다.”

“신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가면 해야 할 일이 뭔지 알 것이다.’라는 계시만 들었을 뿐입니다.”

두루뭉술한 그의 대답에 디엘르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신조차 걱정이 많으신가 보군요.”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럴 일이 좀 있답니다.”

그녀는 대답을 회피하며 시녀에게 손짓을 했다.

“가까이 오너라.”

열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시녀가 고개를 숙이며 다가오자 그녀는 호위 병사를 불렀다.

“이 아이의 팔을 베어라.”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리드만과 디엘르의 대화를 귀담아듣고 있던 도현은 그녀의 잔인한 지시에 깜짝 놀라며 병사와 시녀를 쳐다봤다.

‘왜 저런 명령을?’

리드만 역시 그녀의 지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믿음이 깊은 일곱 신의 신자인 그녀와의 만남을 그는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목적이 있어서 성에 들어오긴 했지만, 사제인 그는 신전까지 세운 그녀의 깊은 신앙을 높이 평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부드러운 눈빛으로 어린 시녀의 팔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라는 말을 하다니.

“디엘르 님, 감히 제가 여쭙겠습니다. 저 시녀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확인할 게 있습니다. 뭐 하느냐, 팔을 베지 않고.”

위엄 가득한 그녀의 지시에 호위 병사는 검을 뽑아 떨고 있는 어린 시녀의 팔을 빠르게 베어 버렸다.

“아아!”

비명을 지른 귀엽게 생긴 시녀가 쩍 벌어진 팔의 상처를 보며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었다.

팔에서는 붉은 피가 쉼 없이 쏟아지고 있어서 빨리 지혈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황금색 카펫이 붉게 물드는 장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디엘르는 고개를 돌렸다.

“대사제님보다 치료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치료해 보세요.”

그녀의 의도를 알게 된 도현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상처의 치유 능력을 알기 위해서라면, 이미 다친 사람을 데려와서 확인을 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 죄 없는 멀쩡한 사람을 칼로 베었다. 그것도 자신을 가까이서 모시는 어린 시녀를.

‘독한 여자다. 잔인하고.’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갈라진 팔의 상처에서 샘솟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아 보려 애를 쓰던 어린 시녀는 숨을 헐떡이며 디엘르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사, 살려 주세요.”

“내가 아니라 사제님에게 부탁해라.”

디엘르의 차가운 말에 어린 시녀는 무릎으로 기어서 리드만에게 다가갔다.

“살려 주세요, 사제님. 저, 저는 일곱 신을 믿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시녀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던 리드만은 굳은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을 치우시게.”

“피, 피가 나와요.”

“금방 끝날 거야.”

따뜻한 그의 음성에 시녀는 피투성이 손을 상처에서 떼어 냈다.

리드만은 허공에 신의 별자리를 그려 눈부신 빛을 손에 담은 다음,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갈라진 시녀의 팔 위에 가져다 댔다.

피가 멈추고 상처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고통에 신음을 흘리던 시녀는 잠시 후 고통이 사그라지자 감았던 눈을 떴다.

뼈가 보이던 상처가 어느새 아물어 약간의 칼자국만 보일정도로 치료가 되어 있었다.

눈을 크게 뜬 그녀는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리드만에게 크게 소리쳤다.

“고맙습니다, 사제님! 정말 고맙습니다.”

“흉터는 남을 거야.”

리드만은 일어서다 뒤로 휘청거렸고, 옆에 있던 도현이 급히 그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네. 걱정 말게.”

피곤한 얼굴로 도현을 안심시킨 리드만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상처 치유 과정을 바라보던 디엘르에게 말했다.

“신은 사제를 시험하는 걸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불쾌했다면 사과를 하죠.”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 어린 시녀에게 던져 주었다.

“가지고 가라. 네 것이다.”

“제, 제가 감히 어떻게 이걸.”

“물러가.”

그녀가 손짓을 하자 어린 시녀는 보석이 박힌 황금 목걸이를 떨리는 손으로 집은 다음 황급히 방을 나갔다.

“이만하면 신도 노여움을 거두시겠지요?”

리드만은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디엘르와 입씨름을 할 수는 없었다.

“대사제님 말대로 대단한 능력을 갖고 계시군요.”

“신이 허락하신 작은 능력일 뿐입니다.”

“작은 능력은 아니지요. 사람을 죽이는 건 쉬워도, 살리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부드럽게 말을 한 그녀는 창가에 있는 화려한 의자에 다시 앉았다.

“신전에 딸린 건물에서 지내고 있죠?”

“네.”

“불편하진 않나요?”

리드만은 불편하지 않다고 대답하려다 옆에 서 있는 딘이 손가락으로 쿡 찌르자 헛기침을 하며 말을 바꿨다.

“대사제께서 신경을 많이 써 주셔서 저는 괜찮습니다만, 제가 데리고 다니는 여기 두 사제들이 조금…….”

“어디서 지내고 있는데요?”

“다른 사제들과 사제관에서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수행 사제께서 지내는 집에 같이 머물면 되지 않나요?”

“저는 그러고 싶은데, 대사제께서 견습 사제가 신전의 다른 사제들보다 좋은 공간에서 머물면 말이 안 된다면서 극구 반대하십니다.”

디엘르는 팔걸이에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더니 입을 뗐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군요. 위계질서는 병사들만이 아니라 신전 안에서도 분명해야 하니까요.”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신전이 아니라면 상관없겠죠.”

“예?”

“이곳에 사제님들의 자리를 마련할 테니, 내일부터는 이곳에서 머무르세요.”

“이곳이라면?”

“여기 말이에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성주님의 대저택 말입니까?”

리드만이 놀라며 좌우에 서 있는 딘과 도현을 한 번씩 쳐다봤다.

“집 안에 내가 개인적으로 기도를 올리는 성소가 있어요. 그곳을 관리해 주며 머물도록 하세요.”

“하지만 대사제는 제게 시키실 일이 있다고…….”

“내가 따로 사람을 보내겠어요.”

“생각할 시간을 좀…….”

“성으로 가라는 신의 계시는 결국, 성을 통치하는 이곳에 가라는 의미도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왔다.

“사제께서는 여기에 머무시며, 내게 신의 말씀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차가움도 동시에 담겨 있었다.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에 리드만은 별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디엘르 님.”

디엘르가 제공해 준 말을 타고 다시 신전으로 향하던 도현은 뒤를 돌아봤다. 숲에 있는 스므차의 대저택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디엘르. 조심해야 될 여자야.’

주름진 노파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행동은 기품이 있으면서도 단호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기품 뒤에는 사람의 목숨을 경시하는 그런 잔인한 차가움이 도사렸다.

‘과연 저곳으로 들어가는 게 득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어.’

접근하기 어려운 스므차 성주의 대저택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점은 분명 긍정적이었지만, 호랑이 굴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호랑이에게 먹힐 수가 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신전에 도착한 그들은 리드만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딘은 의자에 앉으며 근심 짙은 눈빛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또 얼마나 많은 녀석들에게 허리를 굽실거려야 할지 모르겠군. 스므차의 집이라니, 기가 막히는군.”

딘은 내일 스므차의 집으로 들어가는 게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기에 왜 제게 신호를 보내셨습니까? 그냥 불편한 게 없다고 말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요.”

리드만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슴없이 시녀의 팔을 희생시키는 디엘르의 행동에 호감이 뚝 떨어진 상태였다.

“설마 그녀가 대저택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할 줄은 몰랐지.”

딘은 헛기침을 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도현을 응시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스므차 일가와 같이 생활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부담은 되지만, 기회를 잘 살려 봐야죠. 언제가 됐든 스므차의 대저택을 조사하긴 해야 하니까요. 앞으로 행동을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결국 자네는 내일 스므차의 집으로 들어가겠다는 뜻이군.”

“영주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럼 영주님은 내일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리드만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난 여기 남아서 신전과 그 주변을 좀 더 조사해 보겠네. 시간이 남으면 성내도 돌아다녀 보고. 굳이 스므차의 대저택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다는 걸세. 지하 유적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는 거니까.”

듣고 있던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제 생각에도 세 명 다 안에 들어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조사할 곳은 많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범위는 넓을수록 좋으니까요.”

“말이 통하는군.”

가만히 영주의 말을 듣던 리드만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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