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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44화 (144/575)

[144] 디 임팩트 6권 19화

물끄러미 도현의 두 눈을 들여다보던 나담은 시선을 내려 그가 서 있는 자세와 사제복 밖으로 드러난 두 손을 살폈다.

“로이 사제라고 했나?”

“예.”

도현이 공손히 대답했다.

“견습 사제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나?”

“……용병이었습니다.”

“용병이 사제가 되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

“리드만 사제가 화살에 맞아 죽어 가는 저를 구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신에 대해 알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도현은 차분히 대답했다.

“적절한 사연이군.”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시선으로 도현을 응시하던 나담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가 보시오.”

“도현.”

리드만은 4층 집무실을 나오며 도현에게 속삭였다.

“부성주를 조심해야 할 것 같네. 우릴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야.”

“의외이긴 하네요. 어머니인 디엘르가 일곱 신을 믿고 스므차 성주가 신전을 세웠는데, 그들의 유일한 아들인 그가 저렇게 신에 대해 부정적인 게요.”

도현은 나담의 차가운 시선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화상을 입고, 신을 원망했을 수도 있네. 아버지인 스므차 성주는 30년 전 여기에 정착을 하기 전에 벌써 대륙에 이름을 떨친 강자인데, 그를 보라고. 비록 오른손은 멀쩡하지만 왼손은 무기를 잡을 수 없는 신세가 아닌가? 아무래도 커 오면서 자신감에 큰 상처를 받았을 거야.”

“그렇긴 합니다만, 그는 아주 강한 사람 같았습니다.”

“스므차의 아들이니 당연히 강하겠지. 하지만 마음이란 게 어디 그런가?”

둘은 작게 대화를 나누며 거대한 4층 대저택 내부를 천천히 구경하고 다녔다.

이미 대저택에 사제들이 머문다는 소식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없었다.

“리드만 사제님.”

“왜 그러는가?”

“오후에는 성 밖으로 나갔다 와야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 일이 언제 시작되는지 하루빨리 파악해야 하니까.”

사제복에 달린 모자로 얼굴의 반을 가린 도현은 고개를 약간 들어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성내로 들어오고 있는 10여 대의 수레를 봤다.

몬스터 지역에 있는 금광에서 캐낸 금광석을 성내의 제련 시설로 옮기는 행렬이었다.

그 뒤로 석재와 목재를 가득 실은 수레들도 연이어 등장했다.

‘도시 주민들의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해서 성은 필요한 걸 모두 얻고 있군.’

도현은 루드의 아내인 앤을 떠올렸다.

도끼질을 잘하는 덩치 큰 그녀는 벌목장에서 일을 한다. 그 벌목장은 성의 소유였고, 그녀는 일한 대가로 하루마다 얼마간의 임금을 받는다.

별다른 일거리가 없는 도시라 상당수의 도망자들은 생계를 위해 성의 소유지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성문을 통과한 도현은 전에 묵었던 노스리어의 여관방을 하나 잡아 사제복 대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라면 윌벤슨의 이번 계획을 알고 있을지 몰라.’

눈이 또 오려는지 흐려진 하늘을 보며 도현은 헬구스가 관리하는 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닭고기를 먹던 뚱뚱한 헬구스는 갑자기 입맛이 떨어졌는지 손에 든 닭 다리를 식탁 위에 집어 던지고 벌떡 일어났다.

음식을 두고 이렇게 일어난 적은 없었다.

긴 식탁 위에서 정신없이 음식을 집어 먹던 그의 부하 수십여 명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나 신경 쓰지 마. 즐겁게 먹으라고.”

회의실 겸 부하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만찬실을 나온 그는 2층 서재로 돌아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유리병에 든 술을 통째로 들이켠 헬구스는 닭 기름기가 묻은 손으로 입가를 쓱 닦았다.

“빌어먹을. 조용히 지내려고 했더니, 그것도 안 되는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헬구스는 급히 앞으로 몸을 굴리며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

조금 전까지 빈 공간이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한 사내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자네였군.”

도현을 알아본 헬구스는 칼을 거두었다.

“걱정이 많은 얼굴이군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일은 무슨.”

말을 아낀 헬구스는 도현에게 의자를 권했다.

“앉게.”

의자에 앉는 도현을 보며 헬구스는 자신이 마시던 술병을 놓아두고 새로 술병을 가지고 왔다.

은잔에 술을 가득 담은 그는 도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오늘은 갑옷도 안 입고, 검도 없군.”

“얘기할 게 있어서 온 겁니다.”

“그때도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뜻대로 안 해 주면 날 구역장에서 밀어내겠다고 위협을 했잖은가?”

“위협이 아니라 진짜 그럴 마음이었습니다.”

“허험.”

헬구스는 헛기침을 하며 의자에 앉았다.

“난 자네 편이야. 날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고.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얘기할 게 있어서 왔는가?”

“윌벤슨과 당신은 가까운 편이죠?”

도현이 술을 한 모금하며 부드럽게 물었다.

“숲에서 얘기했잖은가. 윌벤슨은 무시하기 어려운 늙은 마법사라고.”

입맛을 다시던 헬구스가 술병에 입을 댔다.

“한데, 갑자기 윌벤슨 얘기는 왜 꺼내나?”

“그가 요즘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서요. 스므차의 성과 관련해서.”

도현의 대답에 술을 마시던 헬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탐색하듯 도현의 표정을 살펴보던 그는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윌벤슨이 스므차의 성과 관련해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고? 그게 뭔데?”

“들어 본 적이 없습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군.”

“아, 그래요.”

도현은 술잔을 한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다행이군요.”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제가 보고 들은 게 있는데, 그걸 스므차 쪽에 알려 주면 윌벤슨은 곤란한 상황에 빠질 거거든요.”

“뭐라고?”

헬구스가 당황했다.

“당신이 무관하다면 당신은 피해 보는 게 없겠죠. 그래서 다행이라는 말입니다.”

“대체 윌벤슨이 무슨 일을 꾸미기에 그러지?”

“모르는 게 좋습니다. 아무튼 술 잘 마셨습니다. 당신이 이번 일을 전혀 모른다고 하니, 안심하고 성에 가서 이번 일을 알려야겠어요.”

도현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뒤돌아서자 헬구스가 의자에서 황급히 일어나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이렇게 알쏭달쏭한 말로 내 호기심만 자극하고 가 버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헬구스 구역장님.”

도현이 차갑고 깊은 시선으로 헬구스를 응시했다.

“날 진짜 당신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윌벤슨이 언제 어떤 식으로 성을 공격하려고 계획 중인지, 제게 말씀해 주세요.”

“허억!”

헬구스의 뚱뚱한 몸이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늘어진 턱살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그는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지직.

나무 의자가 부서지며 헬구스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아, 하아. 심장이 조여 와. 숨을 쉴 수가 없어. 자, 자네 미안하지만 뒤에 보이는 서랍에 약 좀 꺼내 주겠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헬구스를 잠시 내려다보던 도현은 등을 보이며 서랍을 향해 걸어갔다.

“어느 서랍입니까?”

“두 번째 서랍에…….”

헬구스는 말을 하며 살며시 품에서 작은 비도를 꺼내 들었다.

“안 보이는데요.”

도현이 말을 하는 순간, 헬구스는 등을 보이며 서랍을 뒤적거리는 도현의 뒤통수를 향해 손바닥만 한 비도를 날렸다.

칼날만 있는 비도는 아주 얇아서 날아갈 때 소리도 적었고, 그 빠르기는 화살과 같았다.

날아가는 파리도 비도를 날려 맞힐 실력자인 헬구스는 완벽한 기회에 날린 자신의 비도가 빗나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강해도 뒤통수에 비도가 꽂히면 즉사를 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 또 하나의 비수를 연거푸 날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감상할 수 없었다.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도현의 몸이 흐릿해진다고 느낀 순간 어느새 도현이 비도를 피해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얍삽한 수작을 부리는군.”

퍼억!

도현의 발길질에 고개가 홱 돌아간 헬구스는 바닥을 데구루루 구르며 벽에 처박혔다.

피할 사이도 없이 얼굴을 얻어맞은 헬구스는 정신을 급히 차리며 허리의 칼을 뽑으려 했다.

“어!”

그는 손에 잡히지 않는 칼 손잡이에 놀라며 도현을 응시했다.

그의 칼은 도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언제 내 칼까지?”

식은땀을 흘리던 헬구스는 고함을 질러 부하들을 부르려다 조용히 포기했다. 집 안에 있는 수십여 명의 부하들이 저 괴물 같은 녀석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몇 달 전 그는 이미 도시에서 전설로 회자될 만한 수백 대 일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이 됐다.

무슨 배짱으로 비도를 날렸는지.

뒤늦은 후회감이 밀려든 그는 도현이 칼을 들고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저벅저벅 걸어오자, 왕의 서자라는 핏줄의 자부심이고 뭐고 모두 던져 버리고 두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게!”

도현은 대답 없이 다가와 그대로 헬구스의 명치끝을 발로 가격했다.

“크윽.”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헬구스는 앞으로 쓰러졌다.

“때, 때려도 좋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게.”

그의 소원대로 도현은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분명히 내 편이 되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갑자기 비도를 날리니 그도 약간 화가 난 상태였다.

“헬구스 님, 안에 무슨 일입니까!”

밖에서 부하 몇이 문을 두드리자 헬구스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외쳤다.

“드, 들어오지 마!”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 다들 물러가!”

부하들을 보낸 헬구스는 퉁퉁 부은 얼굴로 바닥에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도현이 어찌나 잘 때리는지 뼛속까지 아픔이 전해져 와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일어나세요.”

그러나 도현의 한마디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

말없이 코피를 흘리고 있는 헬구스를 응시하던 도현은 가까이 다가와 헬구스의 칼집에 들고 있는 그의 칼을 넣어 주었다.

“대체 왜 그런 겁니까? 내가 말했죠, 같은 편이 될 기회라고.”

“…….”

헬구스는 고개를 푹 숙이며 도현의 시선을 피했다.

“앉으십시오.”

부서지지 않은 의자를 가리키며 도현이 말하자 그는 절뚝이며 의자에 앉았다.

“윌벤슨이 성을 공격할 거라는 걸 알고 계시죠?”

“……그렇다네.”

“언제입니까?”

“이보게 도현, 제발 부탁이니 모른 척해 줄 수 없나? 내가 비밀을 말했다는 걸 저들이 알면 난 죽은 목숨이야.”

“당신이 발설했다는 걸 저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가 말하지 않는 한요.”

“스므차에게 가서 사실을 말한다면서?”

“흥분하시지 말고 내 얘기를 들어 보세요.”

도현은 탁자 위에 술병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 건넸다.

“스므차에게는 말을 하지 않을 겁니다.”

“잘 생각했네.”

헬구스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니까 윌벤슨이 언제 성을 치려고 하는지 얘기해 보세요.”

“스므차에게 정보를 제공할 것도 아닌데, 굳이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스므차와 윌벤슨이 싸울 때 성안에 들어가서 조사를 할 겁니다.”

“무엇을 조사한단 말인가?”

“당신이 지난번에 알려 준 고대 지하 유적 말입니다.”

“아!”

헬구스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했다.

“하지만 어디인 줄 알고 그 틈에 넓은 성을 조사한단 말인가?”

“그건 그때 일이겠죠. 어떻습니까, 이제 내게 윌벤슨의 계획을 설명해 줘도 괜찮겠지요?”

“음.”

헬구스는 도현의 눈치를 보며 술병의 술을 몇 차례 마셨다.

“성을 공격하는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네. 다만, 윌벤슨이 각 구역장들에게 언제든 부하들을 동원할 만반의 준비를 계속 갖추고 있으라는 주문을 한 걸 보면, 싸움이 머지않은 것은 틀림없어.”

헬구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전쟁이 임박한 건 사실인데, 그게 내일일지 열흘 뒤일지 보름 뒤일지 알 수 없다는 말이었다.

“당신은 그의 부하입니까?”

“부하라니? 난 엄연히 한 구역의 구역장이라고. 어떻게 하다 보니 이번 전쟁에 휩쓸린 것일 뿐.”

헬구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공격 시점을 같이 결정해야지, 왜 이렇게 어정쩡한 대기 상태에 있는 겁니까? 마치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따르는 것처럼요.”

“구역장이 좀 많아야지. 저마다 말도 많고. 그래서 모두가 윌벤슨의 결정을 그냥 따르기로 내부적으로 약속이 된 상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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