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148화 (148/575)

[148] 디 임팩트 6권 23화

“블리잭!”

도현이 손짓을 하자 저쪽에서 숨어 있던 블리잭이 헛기침을 하며 빠르게 달려왔다. 도현에게 집에서 맞은 상처가 욱신거리고 아팠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고생했네. 살아 있을 줄 알았어.”

블리잭은 루드와 나이 차이가 상당히 났지만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고맙네, 블리잭. 근데 어떻게 내가 저 집에 있는 걸 알고?”

“말을 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네. 일단 집으로 가서 몸 먼저 추스르고 나서 차차 얘기하세.”

“블리잭, 좋은 친구 사이로 영원히 지내기 바랍니다. 그렇게 믿어도 되겠지요?”

도현의 의미심장한 말에 블리잭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오.”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소?”

어리둥절한 루드가 도현을 쳐다봤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이제 전 그만 가 봐야겠습니다.”

“함께 우리 집으로 갑시다. 날 구해 줬는데, 그냥 보내면 너무 미안해서.”

“괜찮습니다. 오늘 일,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도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 조금씩 내리는 흐린 하늘에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으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밤이 돼서야 성문을 통과할지도 모른다.

도현은 루드를 따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

“오늘…… 도시에서 큰일이 벌어질 겁니다.”

“큰일? 무슨 일 말이오?”

“그건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집에 가시면 예기치 못한 일에 휩쓸려 같이 움직이는 그런 행동은 안 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몸이 정상도 아니어서 그럴 힘도 없겠지만요.”

도현은 성과 도시 사이에 전쟁이 나면 윌벤슨이 도시 거주민들을 선동해 성을 공략하는 데 이용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이오. 엉뚱한 일로 칼을 들 일은 없을 거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 서서 자신의 눈치를 보는 블리잭을 잠시 바라보더니, 지체 않고 노스리어의 여관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뒤, 그는 도시의 분위기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며 사제복을 입고 성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재료들은 싱싱하겠지?”

“헤헤, 그렇습니다.”

비버는 자신의 주인인 윌벤슨의 친구들을 보며 답했다. 걸어 다니는 해골처럼 깡마른 세 명의 노인들은 칼라치를 도와 스므차를 잡을 사람들로, 최근에 도시에 도착한 마법사들이었다.

전신을 검은 옷으로 가린 세 명의 마법사들은 대머리에 눈 밑이 어둡고 입술은 회색빛이었다.

“세 분을 위해 제가 며칠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마음껏 드시고 우리 주인님을 위해 힘을 내 성을 공격해 주십시오.”

“네가 부탁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흐흐.”

작은 체구의 비버는 주머니에서 마른 고기를 꺼내 씹으며 모퉁이를 돌다가 집 앞에 쓰러져 있는 사내들을 발견했다.

“어?”

그는 입에 씹던 고기를 내뱉으며 부리나케 사람들을 가둬 놨던 집으로 달려갔다.

부하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비버는 후다닥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안에도 부하들만 죽어 있고, 수십 명이나 되는 싱싱한 재료들이 싹 사라졌다.

“아, 안 돼! 큰일이다! 큰일이야!”

머리를 쥐어뜯으며 돌아서던 비버 앞에 세 명의 마법사들이 음침한 눈빛을 흘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버, 재료들은?”

“저 그게…….”

“없는 건가?”

“아무래도 도망간 것 같습니다.”

“이런 준비성으로 어떻게 스므차를 잡겠다고…….”

마법사들을 혀를 차며 뒤돌아섰다. 그들은 전투를 벌이기 전 의식을 벌이고자 했다. 피와 죽음의 의식은 그들이 익힌 마법을 더욱 강하게 해 준다.

“별수 없지, 전쟁 중에 의식을 벌일 수밖에.”

실망한 그들이 집 밖으로 나가자, 비버가 허둥대며 쫓아왔다.

“제가 지금이라도 사람들을 다시 잡아 오겠습니다.”

“됐네.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다른 일에 집중하게. 의식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지만 주인님이 아시면 절 혼내십니다.”

“우리가 잘 말해 두지.”

마법사들의 말에 비버가 히죽 웃었다.

“흐흐, 고맙습니다.”

개전

사제관에 딸린 식당에서 여러 사제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던 딘은 도현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깜짝 놀라며 입에 넣으려던 나무 수저를 멈췄다.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도현이 여러 사제들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히 사과한 후 딘에게 다가갔다.

“딘 사제, 식사 다 하셨습니까?”

딘은 식탁 위에 먹음직스러운 수프와 고기를 봤다. 이제 막 수프를 한 입 떠서 입에 넣던 참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겠나? 내가 점심을 건너뛰어서.”

하지만 그는 도현이 눈짓을 주자 할 수 없다는 듯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딘이 도현에게 말했다.

“야박하군. 수프 향이 너무 좋던데. 한 입도 못 먹었어.”

“오늘 전쟁이 시작됩니다.”

“뭐야?”

“들어가시죠.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도현은 리드만이 머물다 딘에게 넘어간 넓은 집으로 앞서 갔다.

집 안으로 들어간 도현은 빠르게 오늘 보고 들은 것들을 설명해 줬다.

“음.”

딘은 무거운 얼굴로 도현이 내민 모래시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예상보다 너무 빠르군. 비버란 자의 살인은 결국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이었어.”

“영주님, 제 느낌으로는 치열한 싸움이 예상됩니다.”

“그렇겠지. 도시의 거의 모든 구역장들과 그 부하들, 거기에다 선동을 당해 성을 향해 돌진할지 모르는 수많은 도시민들을 생각해 보면, 일방적으로 끝나기는 어려운 전쟁이야. 스므차를 상대하겠다고 공언한 걸 보면 충분한 준비도 되어 있는 것 같고. 10년이나 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 마법사라니, 지독한 자군.”

딘은 의자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거실을 거닐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도현을 보며 물었다.

“도현, 자네는 성내에 지하 유적이 있다고 보나?”

“지금은 있다는 가정하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성에 있을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렇겠지.”

뒷짐을 풀고 딘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지하 유적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니 도박을 할 수 밖에. 도현, 자넨 어디가 제일 의심되나?”

“저는 사실 성에 들어올 때부터 두 가지를 고려했었습니다. 제일 경비가 삼엄한 곳이거나 아니면 전혀 의심을 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 그 두 곳 중 한 곳에 지하 유적이 있다고 말입니다.”

“결론은?”

도현은 턱을 한 번 만진 후 맞은편에 앉아 있는 딘을 응시했다.

“전 쉽게 결정하겠습니다. 스므차 성주의 대저택. 그곳에 있다고 봅니다.”

“흐음.”

“이 성 자체가 고대인들이 건설한 곳입니다. 숲과 그 안에 대저택도 마찬가지고요. 뛰어난 설계 능력이 있는 고대인들이 굳이 일반적인 곳에 지하 유적을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30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지하 유적이 발견됐다면 스므차가 유적지 입구를 폐쇄했다고 하더라도 훨씬 더 구체적인 소문이 떠돌아다녔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결국 애초에 통제가 얼마든지 가능한 곳에서 지하 유적지가 발견된 것이죠.”

도현은 나름 생각해 온 긴 얘기를 마쳤다.

물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 임박했으니, 어디를 탐색할 거냐고 묻는다면 자신의 직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영주님은 어디를?”

“난 신전으로 하지. 자네 말을 들으니 나도 대저택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긴 하지만 확인은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빙긋 웃으며 대꾸한 영주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쳤다.

“이렇게 하세, 오늘 밤 모든 걸 끝내는 거야. 전쟁 후 다시 여기를 수색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말일세.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넨 대저택으로 돌아가서 리드만과 함께 있으며 안에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을 하게. 아마 처음엔 대저택의 정예 병력들은 스므차를 보호하며 꼼짝하지 않으려 하겠지. 하지만 일단 적들이 성을 넘어오면 전황은 혼돈 그 자체로 접어들게 될 거야. 그 주 무대는 바로 스므차의 대저택!”

손바닥으로 탁자를 힘 있게 내려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절대 강자 스므차가 대저택을 나와 윌벤슨의 병력과 마주치는 그 순간, 도현이 자네는 대저택의 지하를 조사해 보게. 만약 대저택에 지하 유적의 입구가 있다면, 스므차가 자리를 비운 그때가 우리가 들어갈 유일한 기회일 거야.”

“알겠습니다.”

도현은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전을 확인 후, 나도 대저택으로 가겠네. 그동안 리드만을 신경 써 주게.”

“네. 그리고 이건 영주님이 가지고 계십시오.”

도현이 탁자 위의 모래시계를 딘이 있는 방향으로 밀었다. 성벽과 멀지 않은 신전이라서 전쟁이 시작되면 곧바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사제들이 놀라서 뛰어나오거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신전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그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으려면 그 전에 신전 바닥을 파헤치며 조사해야 한다.

이 모래시계는 사제들이 언제 신전으로 뛰어 들어올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장치나 다름없었다.

“로이 사제가 안 보이네요.”

대저택 1층에 있는 성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마친 디엘르가 돌아서며 물었다.

“성 밖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리드만이 정중히 대답했다.

“성 밖은 왜 간 거죠?”

디엘르가 성소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일곱 신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갔습니다.”

“그들에게 신의 이름을 전할 필요는 없어요. 돌아오면 주의를 주세요.”

“하지만 디엘르 님, 도시 사람들도 신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도현이 성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구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리드만은 디엘르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답했다.

“내가 사제님들을 이곳에 머물게 한 건 이 성소를 지키며 우리 스므차 일가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의미였어요. 성 밖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내 말 이해하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디엘르 님. 로이 사제가 오면 주의를 주겠습니다.”

“좋아요.”

의자에서 일어난 그녀는 시녀를 데리고 성소를 나갔다.

홀로 남은 리드만은 작게 꾸며진 성소를 둘러보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루도 안 지났는데 여긴 너무 답답해. 빨리 여길 벗어나야지.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늦는 거지?”

해가 지고 달이 떴는데도 오지 않는다. 걱정으로 풍성한 흰 수염을 만지던 그는 도현이 성소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서자 의자에서 일어나 반겼다.

“아니, 왜 이리 늦었나?”

도현은 성소를 한번 빙 둘러본 후 다가와 오늘 있었던 일을 조용히 설명했다.

리드만은 여러 번 놀랐지만 감정을 자제하며 큰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일곱 신께서 오늘 슬퍼하시겠군.”

리드만은 신의 별자리를 손으로 그리며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깊은 기도를 올렸다.

말없이 뒤에서 지켜보던 도현은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스므차 일가는 과연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려 하고 있었다.

오후부터 조금씩 내리던 흰 눈은 밤이 깊어 가자 함박눈으로 변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고 있었고, 달빛은 눈구름에 가려 그 빛을 다 토해 내지 못했다.

흰 눈이 내리는 어두운 밤 노스리어는 불야성을 이루며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찼고,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은 추위와 싸우며 성벽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멀리서 성벽의 병사들을 바라보던 헬구스는 몸을 돌려 한동안 걷다가 어느 커다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삼삼오오 짝을 이룬 200명 가까운 그의 부하들이 숨을 죽이며 긴장된 얼굴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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