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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49화 (149/575)

[149] 디 임팩트 6권 24화

헬구스는 완전무장을 한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투구와 갑옷, 상반신을 가릴 수 있는 타원형 방패, 창과 도끼, 검, 철퇴. 그리고 단궁과 불화살용 화살들.

긴 사다리도 여러 개였다.

부하들의 무장 상태를 둘러보던 헬구스는 의자에 앉으며 낮게 말했다.

“너희들 중 상당수는 스므차를 공격한다는 말에 놀랐을 거다. 나도 놀랐으니까.”

“하하하!”

긴장을 하고 있던 그의 부하들이 크게 웃었다.

“본토에서 어쩌다 보니 여기로 흘러 들어왔는데, 너희들을 부하로 둔 덕에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아서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도 좋았습니다, 대장!”

부하들이 기분 좋게 말을 받아 주자, 헬구스는 손에 들고 있는 투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조금 있으면 전쟁이 시작된다. 승부는 예측하기 어렵고,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참여하지 않아도 스므차는 구역의 사람들을 가려내서 살려 두지 않으려 할 테니까.”

헬구스는 말을 잠시 멈추고 옆에 부하가 들고 있는 모래시계를 응시했다. 아래로 떨어지는 모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 조만간 끝이 난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투구를 머리에 쓰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겨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알았나!”

“예!”

도현에게는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낮은 자세를 취했지만, 헬구스는 부하들 앞에서는 정말 왕처럼 행동했다.

“문 열어!”

헬구스가 검을 뽑으며 소리치자 양쪽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각종 무기와 긴 사다리를 든 200여 명의 부하들이 뜨거운 콧바람과 입김을 뿜어내며 언제든 성을 향해 돌진할 준비를 하고 전의를 다졌다.

그리고 같은 시각 수십여 명의 다른 구역장들 역시 헬구스처럼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모래시계가 마지막 모래 알갱이를 떨어뜨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스리어에 위치한 몬스터 전용 독액을 파는 상점 지하에는 성벽 넘어 안쪽까지 연결된 땅굴이 존재했다.

땅굴은 여러 명이 동시에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폭이 넓고 높이도 상당했다.

비버가 사용한 땅굴은 작은 규모여서 겨우 한 사람이 왔다 갔다 할 정도였지만, 전쟁이 시작되는 지금 사용하려는 이 땅굴은 윌벤슨이 10년간 준비한, 병력 투입용이었다.

“드디어 10년의 기다림이 끝이 날 순간이 왔군.”

윌벤슨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앞을 응시했다.

성벽 지하로 연결된 굴을 통해 성내로 투입될 100명의 전사들은 붉은빛이 도는 철판 갑옷과 투구를 착용했다. 그리고 손에는 가시가 달린 장갑, 허리와 등에는 무기와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체구들이 장대해서 그들을 지휘할 적발 거한 칼라치와 엇비슷할 정도였다.

이 전사들은 다크캐슬이 아닌 본토에서 훈련시키고 최근에 조금씩 나눠 도시로 데리고 왔다.

모두 마나의 힘을 사용할 줄 알고 질긴 체력과 폭발적인 힘을 소유한, 일당백을 뛰어넘는 강력한 싸움꾼들이었다.

거기에다 이제 이디언이 발휘할 강화 마법을 시전받는다면, 오늘 밤만큼은 그들의 세상이 된다.

“이디언, 시간이 다 됐네. 부탁하네.”

“네.”

이디언은 몇 달 사이 마법의 경지가 두 단계나 상승했다. 모두 윌벤슨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그로 인해 낙타나 말에게 적용시켰던 강화 마법을 드디어 인간들에게도 적용시킬 수가 있게 됐다.

이디언은 쌍둥이 폭포 지역에서 출몰하는 샤닐의 뿔 수십여 개를 100명의 전사와 칼라치 주변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며 마법진을 그려 갔다.

샤닐의 뿔은 마나의 힘이 결집된 귀한 것으로, 가격도 고가일뿐더러 많은 수량을 구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윌벤슨은 쌍둥이 폭포에서 간혹 가다 나오는 샤닐의 뿔을 10년에 걸쳐 하나씩 사들여 지금의 숫자를 맞췄다.

강화 마법진을 완성한 그녀는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마법진 사이사이에 배치된 마나의 힘이 결집된 샤닐의 뿔이 진동하며 허공으로 조금씩 떠올랐고, 잠시 후 뿔에서 영롱한 푸른 빛이 줄기줄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아름답군.”

지켜보던 윌벤슨이 눈부신 빛줄기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수십여 개의 샤닐의 뿔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줄기들은 지하 공간을 온통 뒤덮으며 회오리치더니 어느 순간 마법진 안에 있는 100명의 전사들과 칼라치의 몸을 휘감았다.

“으으으으.”

“크아아아아.”

마법진 안에서 전사들의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디언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마지막 주문과 함께 들고 있던 지팡이로 강하게 땅을 내려찍었다.

큰 소리와 함께 푸른 빛을 뿜어내던 샤닐의 뿔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고, 전사들과 칼라치를 휘감았던 빛들은 그들의 몸속으로 모조리 흡수됐다.

100명의 전사들은 전신에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저마다 몸을 들썩였고, 눈빛은 야수와 같았다.

“힘이 느껴지는가!”

칼라치가 그들 앞에 서서 외쳤다.

“그렇습니다!”

“빨리 싸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성안을 피바다로 만들자!”

강화 마법으로 평소 낼 수 있는 힘의 한계치를 뛰어넘은 그들은 감정까지 격해졌다.

“좋다! 들어가서 놈들을 철저히 부수고, 스므차를 잡아 뼈를 추려내자!”

칼라치의 강한 외침에 전사들의 투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윌벤슨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쳐 있는 이디언에게 다가갔다.

그가 이디언을 그토록 필요로 했던 까닭은 바로 그녀가 그녀의 스승으로부터 이 강화 마법을 전수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고했네.”

“하아, 하아.”

온 힘을 다해 마법을 시전한 이디언은 땀에 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스므차가 저들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닐 거예요.”

“그럼. 스므차는 이미 죽은 목숨이야.”

윌벤슨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옆에서 조용히 강화 마법을 지켜본 세 명의 해골 같은 마법사들을 응시했다.

“어떤가? 좋은 구경이지?”

“흥미롭군. 하지만 스므차의 목숨을 끊는 건 우리들이 될 거야, 크크크.”

“기대해 보겠네.”

“우리와 한 약속 잊지 말게, 윌벤슨. 알겠지? 함께 나누는 거야.”

그들의 말에 윌벤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지. 비버, 모래시계를 다오.”

“예, 주인님. 여기 있습니다.”

모래시계를 받은 윌벤슨은 칼라치에게 다가갔다.

“칼라치, 강화 마법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해진 자네가 난 존경스럽네.”

“감사합니다. 당신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 고통의 수련을 버틸 인재는 이 세상에 오직 자네밖에 없을 거야.”

빙그레 미소를 지은 그는 칼라치에게 모래시계를 건넸다.

“다시 보세, 스므차의 대저택에서.”

“예.”

칼라치는 힘이 다한 이디언을 힐끔 한번 본 후, 몸을 돌려 100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지하 굴로 들어갔다.

해골처럼 깡마른 세 명의 노마법사들도 제일 후미에서 따라갔다.

넓은 지하 공간에 남은 사람은 이제 윌벤슨과 비버, 그리고 이디언뿐이었다.

“우리는 이제 위로 올라가 볼까?”

윌벤슨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술을 따라 놓고 모래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딘은 모래가 거의 내려오자 술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그는 죽은 듯 고요한 사제관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밟으며 웅장한 신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끼이이익.

평소 닫지 않고 열어 두었던 신전 출입문을 그는 힘주어 닫았다.

쿠웅.

성문처럼 커다란 좌우 두 개의 출입문이 닫히며 낮은 울림을 냈다.

돌아선 그는 꺼지지 않도록 유지되는 신전 내부의 촛불에 의지해, 대리석이 깔린 바닥을 둘러보며 제단 앞으로 걸어갔다.

모래시계를 제단 위에 올려놓은 그는 검을 뽑아 신전 한 가운데에 섰다.

“용서하소서, 일곱 신이시여.”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말아 쥔 그는 검을 힘껏 내리꽂았다.

검이 꽂힌 곳을 중심으로 바닥에 깔린 얇은 대리석들이 사방으로 균열을 일으켰다.

“이얏!”

딘은 활화산 같은 막대한 혼돈의 마나를 검에 더욱 주입하며 재차 검을 내리꽂았다.

쩌어억. 쿠쿠쿵.

대리석이 깨지고 갈라지며 허공으로 솟구쳤고, 그 밑에 평평하게 다져진 흙바닥이 드러났다.

딘이 예리한 눈빛으로 속살을 드러낸 바닥을 조사하는 순간, 제단 위의 모래시계는 마지막 모래 알갱이를 밑으로 떨어트렸다.

헬구스는 모래시계를 바닥에 던져 깨 버리며 외쳤다.

“가자!”

“와아아아!”

헬구스와 그 부하들은 건물을 나와 대로를 누비며 성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성을 빼앗자!”

다른 구역장들이 무리를 이끌고 여기저기서 합류하며 세를 불려 갔고, 성에 도달할 때쯤에는 거의 만 명에 가까운 대인원이 성을 포위하며 공격을 개시했다.

“사다리를 올려라!”

“성벽의 화살을 조심해라! 방패로 막아!”

도시 주민 전체가 성을 향해 달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적의 숫자에 놀란 성벽 위의 병사들은 앞다투어 종을 때렸다.

“적이다, 적의 공격이다!”

성벽 위에 설치된 위급 상황을 알리는 수십 개의 종들이 거의 동시에 전 성벽에 걸쳐 울려 퍼졌고, 평화롭게 눈을 맞으며 잠들어 있던 성 내부 사람들이 깨어나며 집의 불들이 하나둘씩 빠르게 켜졌다.

피우우우우웅!

가장 위급할 때만 사용하도록 허락된 폭죽도 연이어 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구쳤다.

적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신호 폭죽이 눈이 내리는 어두운 하늘을 붉게 수놓았다. 성 중심부에 있는 스므차의 대저택에 보내는 신호였다.

“빨리빨리 움직여!”

잠을 자던 병사들이 급히 무기를 챙기며 성벽으로 뛰어 올라가는데, 수백 발의 불화살이 높은 성벽을 넘어 성내로 우수수 떨어졌다.

성벽 가까이는 병사들의 숙소가 대부분이었고, 그 일부가 불타오르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성과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숨어 있던 적들이 일시에 치고 들어와서 성벽 위의 병사들은 공세적으로 곧장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자 천여 명이 넘는 지원군이 전 성벽에 걸쳐 배치되었고, 그들이 쏴 대는 화살은 처음 기세 좋게 성을 공격하던 저들의 기세를 한풀 꺾어 놓기 충분할 정도로 매서웠다.

“쏴아!”

성벽에 늘어선 수백 명의 스므차의 궁수들이 성을 포위 공격하는 적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화살을 쏴 대자, 성벽 밑에서 기어오르던 수많은 사내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나 이미 목숨을 걸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35개의 구역장들과 그 부하들은 전열을 재차 가다듬으며 조직적으로 성벽 위의 궁수들에게 방패와 화살로 대응했다.

그렇게 그들은 성벽을 넘어가기 위해 전력투구를 다했다.

“으샤!”

쿠웅!

“으샤!”

쿠쿵쿠웅!

성벽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육중한 성문을 뚫으려고 집결한 2,000명의 구역 사내들이 성문 주변에서 쏟아지는 화살 비를 방패로 막아 내며 끝이 뾰족한 거대 나무 기둥으로 성문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기름병을 투척해라!”

2미터가 넘는 거한인 지휘관이 성벽 위에서 지시하자, 병사들이 수많은 기름병을 성문 주위로 몰려든 적들을 향해 투하했다.

거한의 지휘관이 불화살을 직접 쐈고, 성문 주변은 불길이 수십여 미터나 치솟는 무서운 장면이 연출됐다.

성문 주위에 모여 있던 100여 명 가까운 사내들이 불바다 안에서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댔고, 성문을 공격하던 사내들은 우르르 뒤로 밀려났다.

“네놈들을 모조리 다 죽여 주마!”

성문을 책임지는 거한 지휘관이 성벽 위에서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퍼졌고, 성 아래로 퍼붓는 화살 비는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성문 주위로 다시 사내들이 새까맣게 모여들며 성문을 두고 벌이는 전투는 더욱 치열해져 갔다.

“음, 저들까지.”

성문을 책임지는 지휘관은 멀리서 횃불과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또 다른 거대한 인파의 모습에 굵은 눈썹을 꿈틀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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