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디 임팩트 6권 25화
처음 성을 공격하던 자들은 구역장들과 그 부하들이었지만, 멀리서 다가오는 자들은 도시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이었다. 그 수는 지금 공격하는 자들보다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저들까지 합세해 성을 공격한다면, 시체의 산을 밟고 성을 오를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지휘관님, 큰일 났습니다! 적들이 성안으로 침입했습니다!”
“뭐야!”
“북서쪽 성벽입니다.”
부하의 보고에 거한 지휘관은 비호처럼 몸을 날려 성벽보다 높은 위치의 첨탑 꼭대기에 섰다.
멀리 북서쪽 성벽 위로 수십여 명의 붉은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나타나 그의 부하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폭풍과 같아서 성벽을 방어하던 병사들이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고 있었다.
저대로 놔두면 성문이 부서지지 않더라도 저 성벽을 이용해 대규모 적들이 난입할 수가 있었다. 저지해야 했다.
“창병들을 투입시켜!”
“예!”
성문이 부서질 것을 대비해 수백 명의 중무장한 철갑 창병들이 대기 중이었다. 하나같이 보통 병사들보다 체구도 발달했고 힘도 좋은 뛰어난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성문 지휘관의 지시를 받고 계단을 통해 성벽으로 빠르게 이동을 했다.
폭이 넓은 성벽에 7열로 선 수백 명의 철갑 창병들은 대오를 맞추며 철컥거리는 갑옷 소리를 내고 북서쪽 성벽 쪽으로 뛰듯 이동을 했다. 그러고 얼마 뒤 칼라치가 이끄는 100명의 전사들과 조우했다.
피를 잔뜩 뒤집어쓴 칼라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땅굴로 침투했다가 땅굴 일부가 허물어지는 어이없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제때에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전장에 합류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성 밖에서 공격하는 순간 배후를 급습해 성벽의 일부분을 장악했어야 한다. 그곳을 통해 구역장들과 부하들이 넘어오기 시작한다면, 쉽게 전투를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너무 늦게 땅굴에서 나오는 바람에 스므차의 병사들이 방어를 공고히 할 여유를 주고 말았다. 성벽 아래에는 아군의 시체가 수두룩했다.
“저놈들을 다 씹어 먹고 성문까지 돌파한다!”
칼라치의 고함 소리에 100명의 전사들이 진득한 살기를 풍기며 수백 명의 철갑 창병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눈을 맞으며 천여 명 가까운 기마 병력이 모였다. 스므차 성주를 호위하는 친위대 200명을 뺀 대저택의 전 병력이었다.
대저택에 딸린 광장에 도열해 있는 천여 명 중에는 부성주 나담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이 공격당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전 병력을 모아 성문으로 지원 갈 차비를 맞췄지만, 아직 아버지인 스므차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버지 대신 성의 대소사를 결정하고는 있다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부성주. 지금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야만 한다.
“어머니,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가 봐야 합니다.”
갑옷을 입은 나담이 말 위에서 디엘르에게 말했다.
“소식을 다시 전했으니 곧 나오실 겁니다. 기다리세요.”
“성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어머니. 그런데도 아직 그곳에서 나오시지 않고 있는 아버지를 제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나담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부성주는 성주가 아니에요! 아버지를 기다리세요!”
단호한 디엘르의 말에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를 악물었다. 중년의 나이지만 아직 어머니는 그를 어린 아들로만 보고 있었다.
디엘르의 뒤에서 리드만과 함께 조용히 사태를 관망 중인 도현은 고개를 돌려 대저택을 응시했다.
신체 중 두 눈만 보일 뿐 나머지는 모두 철갑으로 가린 200명의 스므차 친위대가 청룡언월도와 흡사한 창을 들고 대저택 주위를 철통같이 지키고 서 있었다.
평소에는 경비를 서지 않다가 성이 공격받는다는 얘기에 무장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30년 전 이 성을 몬스터로부터 탈환할 때 스므차 옆에서 힘을 쏟은 친위대들은 지금은 나이가 들어 늙었지만, 무장을 한 그 어디에도 나이 든 모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도열한 천여 명의 병력들을 압도하는 당당함과 강인함이 몸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현은 나담 뒤에 말을 타고 도열해 있는 300명 가까운 나담의 친위대들을 둘러봤다.
숲에서 상반신을 드러내고 맨주먹으로 싸우던 늑대의 기질을 뿜어내던 사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들과 스므차의 친위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부성주와 성주 사이가 안 좋은 건가?’
도현은 디엘르와 나담의 신경전을 보며 차분히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영주님은 신전에서 뭐라도 발견했을까?’
혹시 신전에 지하 유적의 입구라도 있다면 그것이 제일 좋은 상황이었다. 리드만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숨죽이며 이곳의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
‘스므차는 어떤 인물일까?’
그를 볼 기회가 없었던 도현은 나름 머릿속으로 그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다가 조금 전 나담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잠깐만. 아버지가 그곳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었지.’
도현은 눈과 찬 바람을 맞으며 말 위에 앉아 있는 나담을 응시했다.
‘그곳이 어디일까? 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그곳이…… 혹시?’
그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대저택을 다시 응시했다.
‘지하 유적은 아닐까?’
“왜 그러나?”
리드만이 귓속말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현은 작게 대답하며 몇 미터 앞에 시녀들을 대동하고 아들과 대치하듯이 서 있는 디엘르를 봤다.
“괜히 눈에 띄어서 같이 다니는군.”
리드만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들리자 대저택 밖으로 나와 분위기를 파악하다가 디엘르의 눈에 띄어 지금 같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디엘르는 아무래도 신의 사제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우리는 성소에서 기도를 드려 보겠다고요.”
“그럴까?”
그들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피투성이 전령이 말을 타고 급박하게 달려왔다.
‘사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
입을 다문 도현은 광장으로 달려와 나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우렁차게 말하는 전령을 응시했다.
“부성주님, 북서쪽 성벽 일부가 적에게 장악됐습니다!”
“뭐야!”
나담의 눈썹이 하늘로 올라갔다.
“어째서!”
“성벽 뒤로 땅굴을 만들어 침투한 적들이 있었습니다. 대략 100여 명 정도인데, 그들이 아군의 배후를 쳐서 생긴 결과입니다.”
“이런 대담한 놈들을 봤나! 성 내부에 굴까지!”
분노한 나담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그런데 땅굴을 통해 침투한 자들이 하나같이 강해서 계속 성벽들이 적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성내에 머물고 있는 여러 마법사들이 합류해 그들을 저지하고는 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철갑 창병들로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나?”
“용감히 싸웠지만 전멸했습니다!”
전령은 고개를 푹 숙이며 외쳤다.
성문을 지키는 병력 중 최고의 무력을 갖춘 그들이 전멸했다는 말에 광장의 분위기는 깊숙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들을 더 놀라게 만드는 말들이 연이어 전령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도시의 거주민들이 점점 불어나며 성벽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제가 떠나올 때까지는 아직 전투에 참여하고 있지 않았지만,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령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나담이 옆에 말을 타고 있는 행정관에게 급히 지시를 내렸다.
“이유 불문하고 성내의 전 주민들은 무장하고 전쟁에 참여하라고 전파하게. 전쟁이 끝나고 몸에 상처가 없는 자들은, 내가 찾아내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말도 함께하고. 알겠나?”
“예, 부성주님!”
행정관은 병사 수십여 명을 대동하고 광장을 떠났다.
“마르탠!”
“예!”
친위대장이 목소리 높여 대답했다.
“성문으로 간다. 준비해.”
“예!”
마르탠이 말을 몰아 옆에 있는 친위대 한 명에게 신호를 보내자 친위대원이 긴 뿔을 불었다.
길게 세 번 이어지는 신호에 광장에서 대기 중이던 천여 명의 병력들이 말 머리를 돌려 숲을 나갈 준비를 했다.
그 모습에 디엘르가 나섰다.
“부성주, 이런 때일수록 성주를 기다리세요!”
“어머니, 지금 듣지 않으셨습니까?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더는 아버지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부성주!”
“아버지도 절 이해해 주실 겁니다. 날이 추우니 어머니께서는 그만 들어가십시오.”
단호하게 말을 한 나담은 말을 움직여 제일 선두에 섰다. 그리고 병사들을 둘러보며 크게 외쳤다.
“누구 덕에 다크캐슬에 사는지, 저놈들에게 따끔하게 알려 주자! 진군!”
나담을 비롯한 친위대와 정예 병력들이 광장을 벗어나 숲으로 난 넓은 길을 맹렬히 달려가자, 지축이 흔들리며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점점 멀어지는 아들의 모습에 디엘르는 멍하니 서 있다가 뒤를 돌아봤다. 시녀들과 그녀의 호위 병사 10여 명, 사제들이 서 있었다.
그녀는 리드만과 도현 앞에 섰다.
“리드만 사제님.”
“예.”
“말을 타세요.”
“예?”
“말을 타고 저들을 뒤쫓아 가서, 부성주 곁을 따라다니세요. 다치면 바로 치료를 해 주시고요.”
그녀의 요구에 당황한 리드만이 도현을 쳐다봤다.
“디엘르 님, 이럴 때는 한 개인이 아니라 성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저와 로이 사제는 지금부터 성소에 들어가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말을 타세요.”
지그시 노려보며 말을 하는 디엘르의 눈빛은 너무 차가웠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손도 불편하고요. 옆에서 다치는 즉시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 힘을 써 주세요. 하실 수 있겠지요?”
리드만은 여기서 거부하면 왠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도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다만, 여기 로이 사제는 성소에 남아 기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사제님. 저는 아직 힘이 미약해 성소에서 홀로 일곱 신께 이 전쟁에 관한 기도를 드리기에는 벅찹니다. 저도 사제님과 함께 부성주님에게 가겠습니다.”
딘은 도현에게 리드만을 부탁했다. 전장 한복판에 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아직 스므차가 대저택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주변은 그의 친위대들이 지키고 있어서 홀로 여기에 남는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리드만과 함께 전장으로 가서 그쪽 형편이 어떤지 눈으로 보고, 향후 흐름을 파악해 대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도현의 눈짓에 리드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디엘르 님, 로이 사제도 함께 가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디엘르는 그녀의 호위 병사들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너희들도 사제님을 모시고 부성주에게 같이 가라.”
“예!”
도현은 말에 올라 디엘르의 호위 병사들을 둘러봤다.
‘우리가 부성주에게 가지 않고 중도에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하는 건가?’
그는 디엘르가 호위 병사들을 붙인 이유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대저택을 바라봤다.
‘대체 스므차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텐데도 반응이 없는 그를 도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령 지하 유적에 있었어도 나와서 지시를 내릴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야.’
턱을 한번 매만진 도현은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다가 호위 병사들과 함께 앞서 출발한 부성주의 병력을 쫓아갔다.
‘칼라치와 100인의 전사들이 얼마나 전장을 뒤흔드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겠군.’
도현은 전령이 보고한 강한 사내들이 누구인지 쉽게 짐작하고 있었다.
숲을 통과해 건물이 밀집한 거주 지역과 상업지역을 지난 도현은 점점 가까워지는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서서히 가슴이 뛰었다.
저 멀리 성벽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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