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151화 (151/575)

[151] 디 임팩트 7권 1화

성문

북서쪽 성벽 일부가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대저택을 출발한 부성주 나담은 이끌던 1,000여 명의 병력을 둘로 나누었다.

“조이너, 빼앗긴 성벽을 반드시 되찾으시오!”

“예, 맡겨 주십시오! 모조리 목을 잘라 성 밖으로 내던지겠습니다!”

눈빛이 차가운 중년의 검사 조이너가 나담의 친위대 300명을 제외한 700명 가까운 정예 병력을 이끌고 불타는 성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넓은 거리를 가득 메운 말 울음소리와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는 불타오르는 북서쪽 성벽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커져 갔다.

거리에는 각종 무기를 들고 싸우기 위해 뛰쳐나온 성 주민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파도처럼 좌우로 갈라졌고, 그 사이를 조이너와 수백 명의 정예 병력이 빠르게 돌파했다.

성주와 부성주를 호위하는 친위대들을 제외한 실질적인 최고의 정예 병사들이 바로 조이너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몬스터가 출몰하는 북쪽 내륙 지역에 위치한 광산과 목장, 농장 등을 안전지대로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몬스터를 토벌하는 병사들이었다.

용맹하고, 두려움을 모르고, 몬스터와 싸우면서 실전을 거듭해 온 병사들.

칼라치와 100인의 전사들에게 전멸당한 철갑 창병들이 실력이 쌓이면 옮겨 가는 곳이 바로 조이너의 몬스터 토벌대였으니, 이들 병력이 가지는 강력함은 대단하다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담이 믿고 북서쪽 성벽 수복을 명한 것이다.

약간 경사진 성벽 주변으로 수백 필의 말이 미친 듯이 질주해 올라갔다.

“투창 준비!”

단창을 말 허리에 몇 자루씩 준비하고 다니던 그들은 조이너의 지시에 일제히 날카로운 창을 손에 들었다.

빼앗긴 성벽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눈빛은 맹수처럼 이글거렸다.

“투창!”

쉬쉬쉬쉭!

수백 개의 창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북서쪽 성벽 일대를 가득 덮었다.

고오오오.

하늘 높이 올라가던 단창들이 어느 순간 포물선을 그리며 밑으로 빠르게 낙하했다.

“빌어먹을!”

사다리를 통해 부하들과 함께 막 북서쪽 성벽에 발을 디디던 헬구스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방패 뒤로 몸을 최대한 숨겨!”

그는 소리치며 죽은 스므차의 철갑 창병이 남긴 강철 방패로 몸을 급히 가렸다.

후두두두둑.

소나기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도끼로 나무를 패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퍼버버버벅! 파지직!

“으아악!”

“내 다리!”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화살이었다면 나무 방패로 충분히 막을 수 있겠지만, 창은 달랐다. 나무 방패를 뚫고 들어와 아래에 몸을 숨긴 헬구스 부하들의 몸까지 꿰뚫어 버린 것이다.

관자놀이에 창이 박혀 즉사한 부하를 보며 헬구스는 천천히 머리 위를 가린 방패를 내렸다.

죽은 철갑 창병이 남긴 강철 방패가 아니었다면, 그도 위험에 빠질 뻔했다.

“이 개자식들이!”

이를 간 그는 급히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백 필의 말이 성벽을 따라 길게 이동하며 북서쪽 성벽 위에 죽음의 창을 계속 퍼붓고 있었다.

성벽 밑에도 구역의 사내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조이너의 부대가 말을 몰고 가며 그대로 휩쓸어 버리고 있었다.

“쉽지 않겠군.”

옆으로 다가온 매부리코 노인 보타로가 이마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내며 말했다. 그는 수개월 전 도현을 쫓던 구역장 중 한 명으로, 작은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 출신이다.

“있는 창을 다 사용하면 그때 성벽 위로 올라오겠지?”

헬구스의 말에 보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럼 준비해야겠군.”

헬구스는 차갑게 웃으며 허리에 찬 칼을 뽑았다.

“싸우기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왜 이렇게 적극적인가?”

“이미 시작한 싸움, 이겨야 하니까. 살기 위해서라도.”

“살기 위해서라.”

주름이 많은 보타로가 낮게 웃으며 조이너의 병사들이 던진 단창을 손에 쥐었다.

“저기 녀석들이 돌아오는군. 돌려줘 볼까?”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성벽 아래로 창을 집어 던졌다.

쉐에에엑.

공기를 가르고 날아간 창은 말에서 막 내리던 병사의 안면을 뚫고 들어가 말 엉덩이까지 깊숙이 박혔다.

수백 필의 말이 질주하다 모퉁이가 나오자 속도를 약간 줄이며 돌았다.

나담과 친위대 300명의 몸이 옆으로 쓰러질듯 쏠렸지만 이내 중심을 바로잡으며 말의 속도를 다시 높였다.

“히아!”

북서쪽 성벽을 탈환하라고 명령을 내린 나담은 쉬지 않고 곧장 성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모퉁이를 돈 그들 앞에 탁 트인 넓은 길이 보였다.

말 20여 마리가 나란히 서서 달릴 만큼 넓은 길은 성의 중심 길이었고, 그 끝엔 성문이 존재했다.

두두두두.

수백 필의 말발굽이 내는 소리가 천지를 삼킬 듯했지만, 그 소리마저 압도하는 전투 소리가 성의 중심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터져 나왔다.

‘벌써 성문이 깨졌나?’

나담은 길을 가득 메운 인파와 고함 소리, 비명과 무기 부딪치는 소리에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손을 흔들며 말의 속도를 늦추자 친위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말의 고삐를 당기며 길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나담은 즉시 말에서 몸을 날려 인근 높은 건물 지붕으로 올라갔다. 눈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전방의 상황을 살피던 그의 푸른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성문으로 통하는 넓은 길 위에 붉은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거한들 수십여 명이 거리를 가득 메운 성의 주민들과 병사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었는데,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고 있었다.

“부성주님, 아무래도 그자들인 것 같습니다. 성 내부로 침투해 북서쪽 성벽을 장악하고, 철갑 창병들을 죽인 자들 말입니다.”

지붕 위로 따라 올라온 친위대장 마르탠이 말했다.

“그래, 그런 것 같군. 이번엔 성문을 노리고 있어. 괘씸한 놈들 같으니.”

나담의 시선이 휘날리는 눈바람을 뚫고 더 먼 곳으로 향했다.

성문으로 향하는 지원군을 막고 있는 붉은 갑옷의 거한들 뒤로 같은 갑옷 차림의 또 다른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지원군을 막는 사이 성문을 열려는 것 같은데, 다행히 그들과 성문 사이에는 집채만 한 커다란 불길이 이글거리며 타올라 성문 접근을 막고 있었다.

성내의 마법사 중 화염 마법에 정통한 인물이 한 명 있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이 성문 지휘관과 함께 저들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마르탠, 말에서 내려 전투준비를 하게.”

“예!”

앞에선 거리를 가득 메우며 혼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말을 타고 갈 수가 없었다.

‘끝을 내 주마.’

붉은 갑옷의 전사들을 노려보며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던 나담이 아래로 재빨리 뛰어내렸다.

성문 앞을 빙 둘러싼 거대한 불길이 마법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그 지속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마법사가 힘이 다하기 전에 성문을 위협하는 저들을 깡그리 쓸어버려야 한다.

잠깐 사이에 은색 빛깔의 갑옷을 입은 300명의 친위대들이 말에서 내려 도열했다.

전신을 감싼 무거운 갑옷으로 인해 그들의 체구는 더욱 커 보였다.

나담이 그들에게 지시를 하려는 찰나, 도현과 리드만이 나타났다.

말을 급히 몰아온 그들은 디엘르가 보낸 호위 병사들과 함께 말에서 내려 선두에 서 있는 부성주 앞에 섰다.

“어머니와 함께 있어야 할 당신들이 여긴 왜 왔지?”

나담이 의아한 눈빛으로 리드만과 도현을 둘러보며 물었다.

“디엘르 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곁에 있으며 필요할 때 부성주님을 도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리드만의 대답에 표정이 약간 굳어진 나담이 장갑 낀 손을 내려다봤다.

장갑 안에는 화상을 입어 붙어 버린 손이 감추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그를 위해 치료의 능력이 있는 사제를 보냈지만, 그 밑바탕에는 그를 여전히 한 손이 불편한 아들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몹시 불쾌했다.

인정을 못 받는 것처럼 그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 없었다.

‘이번에 증명해 주겠어.’

고개를 든 그는 리드만과 도현을 둘러보며 빠르게 말했다.

“좋아. 당신들은 내 곁에 꼭 붙어 있어야 해, 나중에 돌아가서 어머님께 전투 과정을 상세히 전해야 하니까 말이야. 알겠나?”

그는 눈짓을 줬고, 친위대장 마르탠이 공간을 만들어 리드만과 도현이 나담의 바로 뒤에 위치하도록 했다.

적당히 뒤에서 지켜볼 생각이었던 리드만은 당황하며 말했다.

“부성주님, 굳이 저희들이 이렇게 앞에 있을 이유는…….”

“리드만 사제.”

“예.”

“겁나시오?”

“겁이라니요. 그것보다는 싸우시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로이 사제.”

문득 나담이 고개를 돌려 도현을 응시했다.

“예, 부성주님.”

“전에 용병이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사제복 뒤에 매달린 모자를 눌러쓴 도현이 차분히 대답했다.

“그럼 검을 사용할 줄 알겠군. 마르탠, 검을 한 자루 주게.”

마르탠이 여분의 검을 한 자루 풀어서 도현에게 건넸다.

“들리시오, 전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현은 무슨 의도로 그가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주는 검을 마다하지는 않았다.

“저 싸우는 소리가 곧 아주 가깝게 들릴 거요. 옆에 있는 리드만 사제를 잘 지키시오. 일곱 신이 지켜 준다면 당신의 검 아래 리드만 사제는 무사하겠지.”

도현은 손에 들린 검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대답했다.

“일곱 신은 저희를 지켜 주실 겁니다.”

“하하하! 과연 그럴까?”

호탕하게 한 번 웃은 나담은 검을 뽑으며 선두에서 외쳤다.

“앞에 철갑 창병들을 전멸시킨 녀석들이 아군과 주민들을 학살하고 있다! 아군을 막고 성문을 열기 위함이다!”

나담의 말에 친위대의 투기가 급상승했다.

“수비는 없다! 오로지 죽이며 간다! 저놈들뿐만 아니라 성문 밖으로 나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적들을 쓸어버린다! 당한 것의 백 배로 되돌려준다!”

나담이 화상당한 손에 끼울 수 있게 특수 제작된 방패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결의를 내보이자, 친위대 전체가 똑같이 강철 방패를 내팽개쳤다.

쿠우웅!

수백 개의 방패가 평평한 돌이 깔린 길 위에 떨어지자, 그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도현의 심장도 크게 한 번 뛰었다.

‘싸움 한복판에 떨어졌군.’

제일 선두에 서 있는 나담의 뒤에 위치한 까닭에 도현은 원치 않아도 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가자!”

처음에는 걷는 듯했다. 하지만 서서히 속도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두꺼운 갑옷을 입은 나담과 수백 명의 친위대가 무기를 들고 뛰어오자 앞의 인파들이 빠르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부성주님이시다!”

“와아아아!”

싸움에 집중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뒤늦게 부성주와 친위대의 등장을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원체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서 그들을 뚫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전방으로 가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온 짙은 혈향이 도현의 코를 자극했다. 사람들 머리 위로 화광이 충천했고, 비명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리드만 사제님,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친위대들과 보폭을 맞추며 뛰는 도현의 작은 목소리에 리드만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대꾸했다.

“알겠네. 그리고 여차하면 알지?”

“네.”

위급하면 도망가자는 리드만의 눈짓에 도현은 턱을 작게 위아래로 끄덕이며 앞을 봤다.

드디어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 도착했다.

‘참혹하군.’

팔다리가 없는 시체와 몸에서 나온 내장, 내리는 눈을 모조리 녹여 버리는 냇물 같은 피가 넓은 길 전체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시신이 얼마나 많은지 시체를 밟지 않고는 길을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질퍽한 시신을 밟으며 붉은 갑옷의 전사들은 악귀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성문으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저들을 물리게.”

나담의 가라앉은 지시에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고, 전면에서 싸우던 일반 병사들과 무장한 주민들이 일제히 뒤로 빠졌다.

“진짜가 오셨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