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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56화 (156/575)

[156] 디 임팩트 7권 6화

“오늘 위험에 처한 부성주를 도와준 사람이니, 사제님 말이라면 흘려듣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부성주님께서는 저희 사제를 그렇게 좋게 보시지만은 않고 있습니다.”

리드만이 조용히 나서서 말했다. 괜히 그곳에 도현이 혼자 도착해서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그렇지 않아요. 내게는 사제님들 얘기를 좋게 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리드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긴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리샤.”

소식을 가지고 온 어린 시녀가 고개를 숙였다.

“네, 디엘르 님.”

“사제님을 모시고 그곳으로 숨이 멈추도록 달려라.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면, 그 책임은 모두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알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겁에 질린 어린 시녀가 쪼르르 달려와 도현을 응시했다.

“사제님, 얼른 가시죠.”

눈이 큰 리샤는 전에 팔을 베이기도 한 소녀였다.

도현은 잠시 겁에 질린 리샤를 쳐다보다가 옆에 서 있는 딘과 리드만을 돌아보았다.

분위기상 그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동료들과 눈빛을 주고받은 도현은 여전히 가슴 통증에 괴로워하는 디엘르 앞에 섰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빨리 가 보세요. 부성주가 그곳을 지키는 성주의 친위대와 싸우지 않도록 말이에요.”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인 도현은 뒤돌아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리샤에게 다가갔다.

“절 따라오세요, 사제님.”

리샤는 생명이 걸려 있다는 무시무시한 부담감에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복도를 있는 힘껏 뛰기 시작했다.

대저택은 방만 수백 개였고 그 넓이도 대단해서 뛰어가도 나담이 있는 곳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며 미로 같은 복도를 몇 개 지나친 리샤는 뛰면서 뒤를 힐끔 돌아봤다.

도현이 말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사제님, 지난번에는 고마웠습니다.”

“뭘 말이냐?”

“절 치료해 주신 거요. 흉터도 그리 크게 남지 않았어요.”

뛰면서 말을 하느라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돼 있었다.

“내가 아닌 리드만 사제님이 치료해 주셨는데.”

“알고 있어요.”

“그런데?”

“리드만 사제님과 직접 얘기할 기회가 영영 생기지 않을지도 몰라서요. 나중에 잊지 않으시면, 그날 정말 너무 감사했다고 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날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제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것도.”

리샤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며 도현에게 목에 깊숙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떼어 내어 내밀었다.

“이건?”

“맞아요. 그날 디엘르 님이 주신 황금 목걸이입니다.”

커다란 보석이 박힌 황금 목걸이를 손에 쥔 도현은 의아한 눈빛으로 리샤를 응시했다.

“네 것을 왜 주는 것이지?”

“리드만 사제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원래 제가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고요.”

밝게 한번 웃어 보인 리샤는 복도를 돌아 죽은 몬스터들의 뼈가 장식된 기괴한 복도에 접어들자 약간 위축된 눈빛으로 앞만 보고 뛰었다.

“여기는 지날 때마다 무섭습니다.”

“웬 몬스터 뼈지?”

“30년 전, 이 성에서 죽은 몬스터들의 뼈예요. 성주님이 죽은 병사들을 기리며 그 뼈 중 일부를 이렇게 복도 벽에 장식해 놓았죠.”

도현은 뼈로 가득한 복도를 통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런데 이름이 리샤라고 했지?”

“예, 사제님.”

“이것 다시 받아라.”

도현이 리샤의 손에 황금 목걸이를 쥐여 줬다.

“리드만 사제님은 이걸 받지 않아도 네 마음을 기쁘게 받아 주실 거다.”

“하지만 받은 은혜가…….”

“난 생명을 구함 받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끝낸 적도 있다. 리드만 사제님은 그런 선물을 반기는 분이 아니셔. 그러니까 그 목걸이는 네 목에 걸리는 게 더 맞겠다. 아주 잘 어울릴 거야.”

“그렇습니까?”

잠시 망설이던 리샤는 달리면서 목걸이를 목에 찼다.

“어떻습니까? 어울리나요?”

“음, 생각보다는 별론데.”

“네에?”

리샤가 눈을 크게 뜨자 도현은 피식 웃었다.

“농담이다. 아주 잘 어울려. 시녀가 아니라 어느 왕국의 공주님 같다.”

“정말요? 감히 저 같은 게 어떻게.”

쑥스러운지 리샤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리샤, 지금 가고 있는 곳 말이다. 성주님이 계시는 지하 입구라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곳이지?”

“대저택 지하에 성주님이 수련하시는 곳이 있어요. 그 입구가 있는 복도가 있는데요, 그곳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 그곳은 원래 있던 곳인가?”

“모르겠어요, 저도. 헤헤.”

리샤는 공주 같다는 말에 없는 힘이 생겼는지 숨을 헐떡이면서도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지하 유적이 아니라 수련장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도현은 총총거리며 뛰어가는 리샤의 뒷모습을 보며 턱을 한번 매만졌다.

‘일단 가 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평상시 대저택 경비는 부성주 나담의 지시를 받는 병사들과 그의 친위대들이 맡았다.

하지만 대저택 1층, 북동쪽 긴 복도 구역만큼은 예외였다.

복도 양 끝은 스므차의 친위대들이 직접 경비를 섰고, 그 출입도 엄격히 통제해서 부성주 나담이라 해도 마음대로 복도 구역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물러나라 했다!”

나담이 칼을 뽑아 위협을 가했지만 철갑으로 온몸을 뒤덮고 두 눈만 내보이고 서 있는 스므차의 친위대 병사는 미동도 안 했다.

“내가 누구냐?”

나담이 칼을 들어 복도 앞에서 그의 출입을 가로막은 스므차의 친위대 병사 목에 가져다 댔다.

“부성주님이십니다.”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다. 내가 누구냐?”

성문 전투에서 아끼고 아끼던 300명의 친위대들을 잃고 온 나담의 두 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생각 없이 정예 병사들을 움직여 전력을 낭비했다는 질책 섞인 강한 꾸지람을 호드리오스에게 듣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전쟁이 났다는 소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아버지 대신에 그가 움직인 것뿐이다.

적의 강함을 예상치 못한 것이 그의 잘못이라면 잘못일 뿐, 그는 아버지 대신 성을 이끌어 왔던 책임자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부성주님입니다. 그리고 스므차 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 말 잘했다. 부성주가 아닌 아들로서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거다. 그러니까 비켜!”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성주님의 엄명입니다.”

나담의 앞을 가로막은 친위대들은 들고 있는 창을 두 발 사이에 힘 있게 내려놓으며 결사적으로 막을 태세를 유지했다.

“들어야겠다. 이 눈으로 직접 아버지를 보고 말해야겠다. 성이 공격당하고 적들이 코앞까지 밀고 왔는데, 이리도 무심하게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말이다.”

감정이 북받친 나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그의 손에 들린 검 끝은 심하게 흔들렸다.

“저희는 성주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쿠웅!

네 명의 친위대들이 동시에 창을 바닥에 내려치자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긴 복도에 닫혀 있던 여러 방문들이 동시에 열리며 안에서 창을 든 친위대 20여 명이 더 등장했다.

“난 아버지를 만나야겠다. 무엇이 아버지를 그곳에 잡아 두는지 알아야겠어!”

“물러서십시오!”

날카로운 기세가 친위대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막을 테면 막아 봐. 난 지금 아버지를 만나야겠으니까.”

나담을 지탱해 주던 마르탠과 300인의 수하들이 사라진 지금, 그에게 남은 건 원망 섞인 눈빛뿐이었다.

섬뜩한 그 눈빛에 복도 경비를 책임지는 스므차의 친위대 병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투구를 벗었다.

40년 전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광대뼈가 함몰된, 주름진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스므차의 친위대는 보충되지 않고 수십 년 전 그 인물들 그대로였다.

“부성주님, 전쟁의 위급함을 저희들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하여 성주님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습니다. 설사 성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저희는 이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돌아가십시오!”

긴 복도에 가득한 수십여 명의 친위대들이 한목소리로 외치자 나담이 창백하게 변한 얼굴로 휘청거렸다.

“괴물들이군. 너희들은 다 괴물들이야! 아버지밖에 모르는!”

광대뼈가 함몰된 노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투구를 썼고, 전신에서 스므차의 친위대다운 강한 패기가 흘러나왔다.

“여기를 통과하시려면 친위대장이신 호드리오스 님의 허락을 받아 오십시오. 그 길밖에는 없습니다.”

“아들이 보러 간다 하지 않느냐!”

나담이 일그러진 얼굴로 검 끝을 전면에 겨눴다. 말은 끝났고 행동으로 보여 줄 거라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이미 저희들은 스므차 님을 위해 죽기로 맹세한 몸! 다가오는 자는 그가 누구든 죽을 것입니다!”

복도를 매운 30여 명의 친위대들이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외치며 검신처럼 길쭉한 창날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예리한 기세가 한 점이 되어 나담의 이마에 도달했고, 그 순간 나담은 이마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명백한 살기였다.

“그럼 정해졌군. 아버지에게 잘 포장해서 가져다주어라. 이 나담의 목을 말이야!”

검을 힘 있게 잡은 나담이 창의 숲을 이루는 복도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그의 검이 친위대의 창과 격돌하려는 찰나, 뒤에서 바람처럼 달려온 도현이 나담의 몸을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쉬쉬쉬쉭.

쓰러진 그들 몸 위로 친위대의 긴 창날이 무서운 기세로 공기를 찢어발기며 사라져 갔다.

그 자리에 나담이 서 있었다면 팔다리에 창 구멍이 한두 개 정도는 났을 매서운 공격이었다.

‘인정사정없군.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이 모시는 사람의 아들인데.’

도현은 엎드린 상태로 고개를 살짝 들어 제자리에 서 있는 친위대들을 봤다. 그들은 창을 거두고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일어난 도현은 나담을 응시했다.

그는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쓰러트린 도현의 행동에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로이 사제, 또 당신인가?”

“무례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도현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친위대와 직접 손을 섞지 않고 나담을 위기에서 구할 길은 방금 전 그 방법밖에 없었다.

“왜인가? 왜 또 여기에 나타났나?”

나담이 검을 들고 바닥에서 느릿하게 일어났다.

“디엘르 님께서 가 보라 하셨습니다.”

“어머님이?”

미간을 찌푸린 그는 도현의 등 뒤에 서 있는 리샤를 힐끔 쳐다봤다.

“네가 어머니에게 알렸느냐?”

“죄, 죄송합니다, 부성주님.”

그녀는 디엘르의 지시를 받고 나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보고를 한 것이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군.”

나담은 석상처럼 도열해 있는 친위대들을 노려보며 검을 다시 힘주어 잡았다.

“그래도 날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성주님, 이성적으로 행동하십시오.”

도현은 친위대들이 지키고 있는 이 복도 구역이 부성주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임을 리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입 닥치게, 로이 사제. 자네가 뭘 안다고 나서는가?”

싸늘한 나담의 시선에 도현은 양팔을 활짝 펴며 그럼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부에서 시끄러운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와 딘이 대저택을 조사하는 데 그만큼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그와 얘기를 주고받으며 달려온 어린 시녀 리샤는 디엘르가 반드시 손을 써 그 책임을 지우려 할 것이다.

“맞습니다. 제가 아는 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알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마르탠과 300명의 친위대들은 부성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희생했습니다.”

나담의 눈빛이 요동쳤다.

“부디 그 점을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도현은 그 말을 끝으로 리샤 옆에 섰다. 그가 물리적으로 행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나담의 판단에 맡겨야만 했다.

시간이 흘렀고, 나담은 결심한 듯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내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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