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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60화 (160/575)

[160] 디 임팩트 7권 10화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자 도현은 기뻐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촛대로 비밀 장치가 작동되다니.”

감탄을 한 딘이 바닥에 꽂아 둔 검을 뽑아 다시 허리에 찼다.

“촛대를 왜 의심한 건가?”

“처음에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니, 촛대와 연결된 천장의 쇠사슬이 너무 어울리지 않더군요. ‘청동 촛대와 그 지지대가 얼마나 무겁기에 굵은 쇠사슬로 고정을 해 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썰미가 아주 예리하군. 잘했네.”

“별말씀을요.”

그들은 벽면 뒤로 보이는 지하 통로 앞에 섰다. 완만하게 경사가 진 지하 통로는 사람 몇이 동시에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천장도 높았다.

“입구만 봐도 알겠군. 이건 절대 30년 전에 만들어진 통로가 아니야. 지하 유적의 흔적이야.”

“맞습니다, 영주님. 여기 이 글 좀 보십시오. 고대어입니다.”

리드만이 지하 통로 내부 석벽에 쓰여 있는 고대어를 발견하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뭐라고 쓰여 있나?”

딘은 고대어에 해박한 리드만을 응시했다.

“음, 그게 말입니다. 잘 안 보입니다. 제대로 읽어 보려면 불이 있어야 하겠는데요?”

방 안의 촛불들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겨우 지하 통로 입구 주변 일부였다.

“저거면 되겠군요.”

도현은 지하 통로 입구 한쪽에 놓인 목함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스므차가 오가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횃불용 나무가 여러 개 보관되어 있었다.

도현은 그중 세 개를 꺼내 촛불로 불을 붙였다. 금세 세 개의 횃불이 완성됐다.

리드만이 고대어가 쓰인 석벽을 횃불로 비춰 해석하는 동안 도현과 딘은 지하 통로 내부를 자세히 살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하 통로는 사각형 모양으로, 모난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평하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리고 지하로 통하는 길은 저 어둠 속으로 길게 이어진 모습이었다.

지하에 뭐가 있는지는 안으로 계속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딘이 해석을 하고 있는 리드만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옛날 생각이라니요?”

도현이 딘의 옆에서 물었다.

“내가 혼돈의 마나 수련법을 어떻게 배우게 됐는지 아는가? 고대 지하 유적 때문이라네.”

“지하 유적요?”

“그렇다네.”

딘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까 말했지? 내가 영지전에서 패하고 목숨만 간신히 건져서 탈출했다고. 부랑자처럼 떠돌다가 해안가 절벽에 다다랐네. 아, 내가 물려받은 아버지의 영지는 남부 대륙에서 바다와 인접한 곳이라네. 아무튼 터벅터벅 해안가 절벽을 따라 걷는데, 땅이 흔들리더군.”

“지진이군요.”

“그렇지. 넋 놓고 절벽가를 걷다가 밑으로 주르륵 떨어지고 말았네. 결국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구나 싶었지, 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절벽 중간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는 거야. 지진으로 감춰진 동굴이 나타난 거지. 안으로 들어갔는데, 지금처럼 딱 이런 지하 석굴이 나타난 걸세.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고대 지하 유적이구나 싶었네. 기쁜 마음에 머리가 찢어져 흐르던 피도 닦지 않고 계속 안으로 들어갔지.”

길게 말을 하던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며 리드만을 재촉했다.

“이보게 리드만, 왜 이리 해석을 못 하나. 더 늦을 것 같으면 안으로 그만 들어가지. 입구에서 시간을 다 낭비할 수 없잖은가?”

“영주님, 고대어라고 해서 다 같은 고대어가 아닙니다. 다크캐슬의 고대어는 아주 상급의 난이도입니다. 그리고 이 고대어를 해석해야 이 지하 유적이 어떤 성격의 유적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걸리겠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거의 다 됐습니다.”

리드만이 손가락으로 벽에 쓰인 고대어를 한 자 한 자 짚으며 대꾸했다.

“서두르게.”

딘은 다시 도현을 돌아본 뒤 하던 말을 이어서 했다.

“그렇게 지하 석굴을 따라 들어갔는데 말이야. 특별한 보물 같은 건 없고, 낡고 빛이 바랜 양피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더군.”

“양피지에 혼돈의 마나 수련법이 기록되어 있었군요.”

“맞아. 하지만 그땐 난 그걸 몰랐지. 고대 지하 유적에서 발견한 마나 수련법이니, 필시 굉장한 수련법일 거라고만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양피지의 한쪽은 알아볼 수 없었는데 말이야, 아마도 그 부분에 혼돈의 마나라는 설명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그랬군요. 만약에 아셨다면 익히지 않으셨겠습니다.”

“글쎄, 과연 안 익혔을까? 익히지 않았다면 여전히 나약한 영주 딘으로 남았겠지. 혼돈의 마나는 내게 강한 힘을 줬네. 대신 견디기 힘든 시련도 줬지.”

또 다른 사연이 있어 보이는 딘의 어두운 표정에 도현은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았다. 아마도 폭주와 관련된 것 같았다.

“자네는 어쩌다 혼돈의 마나를 익혔는가? 이 세상에 이 혼돈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와 자네가 유일할지도 모를 만큼 이 혼돈의 마나 수련법은 세상과 단절된 지 오래인데 말일세.”

도현에게 개인적인 질문은 거의 하지 않았던 딘이 모처럼 그의 배경을 물었다.

“저는…….”

“영주님, 다 됐습니다!”

사실대로 말을 할 수 없어서 도현이 말끝을 흐릴 때 리드만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말하기 난처하면 안 해도 되네.”

“죄송합니다, 영주님.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땐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정색하며 장담하지 말게. 앞일은 나도 모르고, 자네도 모르지 않는가?”

도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 딘은 리드만에게 다가갔다.

“그래, 무슨 내용이던가?”

“고대 영웅들을 찬양하는 노래가 적혀 있었고, 뒤에는 이 성을 축성하고 지하 유적을 건설한 가문의 내력이 길게 적혀 있었습니다.”

“오, 아주 자부심이 강한 가문이었나 보군. 입구에 이렇게 자신들이 이룬 걸 기록해 놓은 걸 보면 말이야.”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여기 보면 아시겠지만, 고대어가 기록된 석벽의 글씨가 어떤 건 더 오래되어 보이고 어떤 건 석벽에 그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기록된 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말씀이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도현이 말했다.

“그렇다네. 수십 개의 이름들이 서로 다르게 표시된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석벽에 기록된 글은 성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 이름이 하나씩 추가된 것 같아. 아마도 여기 마지막에 기록된 ‘마토라 히 디아’라는 사람이 다크캐슬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모양이야.”

고대 다크캐슬의 주인들의 이름이 기록된 석벽을 보던 도현은 장대한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 지하 유적이 어떤 용도로 건설된 것인지도 설명되어 있던가?”

“그런 내용은 없지만, 이 성을 지배하던 자들의 이름이 길게 나열된 것으로 보아서는 이 성의 주인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이 보관된 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크캐슬을 지배했던 가문의 유산들이 긴 세월 동안 모인 비고일 수도 있다.

“좋아, 그만 들어가세. 안에서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지. 스므차가 얼마나 손을 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들은 횃불로 지하 통로를 밝히며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비스듬히 경사가 진 지하 통로를 한동안 걸어가던 그들은 걸음을 멈췄다.

중간에 지하 바닥이 밑으로 푹 꺼져 있었는데, 그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빠지면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았다.

“함정은 아닌 것 같고, 긴 세월이 흐르며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이군.”

딘이 먼저 훌쩍 지하 공간을 뛰어넘었다. 폭이 그렇게 넓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뛰기를 하면 웬만해서는 다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뛰어넘어 온 리드만이 중심을 못 잡으며 뒤로 기우뚱했다.

“어어!”

뒤로 빠지려는 리드만의 팔을 도현과 딘이 번개처럼 붙잡아서 앞으로 끌어당겼다.

하마터면 푹 꺼진 지하 공간으로 빠질 뻔했다.

“그것도 제대로 못 뛰나? 죽을 뻔했잖은가.”

영주의 핀잔에 리드만이 숨을 헐떡이며 답했다.

“순간적으로 몸이 무거웠습니다. 아무래도 밤새 전쟁을 겪느라 체력이 다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딘이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말했다.

“힘이 들면 말을 하게, 내가 도와줄 테니까. 바보처럼 위험을 자초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영주님.”

다시 횃불을 앞세우며 지하 깊숙이 내려가던 그들은 경사로가 끝나는 지점에 탁 펼쳐진 거대한 지하 구조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 손으로 하늘을 떠받드는 역동적인 형상을 한,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 인간 석상이 좌우 양쪽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수백 명이 모일 수 있는, 다듬어진 원형의 지하 광장이 존재했다.

또 그 지하 광장 둘레를 휘감아 도는 지하 수로도 있어서 그 안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청량감 있게 도현의 귓가에 다가올 정도였다.

스므차가 불을 밝혀 놓은 것인지 사람 몸통만 한 화로 수십여 개가 지하 구조물 곳곳을 밝히고 있어서 도현과 일행은 지하 구조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었다.

‘굉장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

고오오오.

수십여 미터 높이의 거대 인간 석상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다가오는 도현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동안 석상의 웅장함에 시선을 떼지 못하던 도현은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개울물처럼 얕은 지하 수로가 감싸고 도는 넓은 원형의 지하 광장 뒤편으로 단층의 건축물 하나가 보였다.

“대체 이곳은 뭐 하던 곳일까요? 성의 주인들이 만든 신전일까요?”

“신전은 아닐세. 난 느낄 수가 있어. 인간의 오만함이 느껴지는 장소야.”

리드만은 진지한 눈빛으로 좌우에 서 있는 거대 인간 석상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 보지.”

딘은 도현이 보고 있는 단층의 건축물로 향했다.

그들은 지하 광장을 감싸는 지하수 위로 만들어진 구름다리를 지나 천장이 높은 단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세 개의 석실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한 곳은 고대 문헌들이 가득했고, 다른 한 곳은 먼지 쌓인 갑옷과 무기류 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석실에는 수십여 개의 석관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쿠웅.

딘이 석관들 중 하나의 뚜껑을 열었다.

“이런, 미안해서 어쩌나.”

석관 안에는 어떻게 보존을 했는지 몰라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중년인이 누워 있었는데, 공기가 들어가자 피부가 급속도로 쪼그라들며 아주 보기 흉하게 변해 버렸다.

“미안하오. 편히 잠드시오.”

딘은 무거운 석관을 얼른 닫아 버렸다.

돌아선 그는 도현을 보며 말했다.

“결론이 났군. 도현,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아까 궁금해 했지?”

“예. 그런데 건물 안을 둘러보니 알 수 있겠네요. 이곳은 고대 다크캐슬을 다스리던 가문의 주인들이 잠든 무덤입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이곳은 그들의 지하 무덤이야.”

손으로 석관을 탁탁 친 딘은 석관에 새겨진 고대어를 해석하고 있는 리드만을 쳐다봤다.

“우리들 말이 맞지?”

“예, 맞습니다. 여기 석관에 보면 고대 다크캐슬 성주들의 활약상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리드만은 허리를 펴며 쭉 늘어서 있는 석관들을 둘러봤다.

“관 안에 있는 시신들은 모두 고대 성주들입니다.”

“됐군. 그럼 더 이상 확인해 볼 것도 없으니, 저기 다른 석실에 있는 고대 문헌들을 다 챙겨서 나가자고. 우리가 찾고자 하는, 폭주 현상의 해결책이 문헌 안에 기록되어 있을지 모르니까.”

딘은 그러며 사제복 안에 감춰 놓은 커다란 자루를 몇 개 꺼냈다.

“도현, 자네도 가지고 왔지?”

“예.”

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품에서 두 개의 자루를 꺼냈다. 지하 유적 안에서 시간을 길게 보낼 수 없을 거라 판단한 그들은 물건을 챙겨 갈 자루를 준비해 왔다.

석관이 있는 석실을 나와 고대 문헌이 보관된 서고에 들어간 그들은 청동 상자에 보관 중이던 양피지와 종이 묶음 들을 꺼내 튼튼한 자루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고대인들의 문명은 지금보다 더 발달됐으면 발달됐지 전혀 뒤처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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