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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62화 (162/575)

[162] 디 임팩트 7권 12화

도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거대한 지하 광장이 통째로 100여 미터 아래로 내려왔고, 이 안을 물이 다 채우려면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물들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게 유적을 설계한 고대인들이 의도한 거라고?’

도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모든 것들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당장 뼛가루를 이용해 죽은 자를 복원하는 소환술사의 존재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므차는요? 그는 멀쩡하지 않습니까?”

리드만이 말을 했다.

“이 함정을 미리 알고 피했거나, 아니면…….”

딘은 어느새 발 밑창까지 차오른 물을 보며 짙은 두 눈썹을 꿈틀댔다.

“이 위기 정도는 극복했겠지.”

딘은 어깨에 메고 있던 자루를 바닥에 툭 내려놨다.

“도현, 아무래도 이 깊은 곳에서 수장되지 않으려면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해야 할 것 같네.”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대 기록이 가득 담긴 커다란 자루를 바닥에 내려놨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 빠른 속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난 리드만을 책임지겠네. 자네는 우릴 상관 말고 끝까지 버티며 살아남게.”

“살아도 같이 삽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도현은 망설임 없이 가죽으로 만들어진 질긴 자루를 검으로 잘라 버렸다.

안에 담긴 고대 문헌들이 차오르는 물속에 내동댕이쳐졌다.

자루를 잘라 길게 펼친 도현은 딘과 리드만을 응시했다.

“물이 곧 허리까지 차오를 겁니다. 밖은 추운 겨울이고 물은 얼음처럼 차갑습니다. 제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 정신력이 따라 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마나가 많고 체력이 강해도 장시간 뼛속까지 얼리는 차가운 물속에서 버티지 못합니다. 다리가 마비되고 팔이 얼고, 손가락은 통증이 느껴지다가 감각이 점차 사라집니다. 그러다 서서히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게 되는 거죠.”

도현은 양탄자처럼 펼쳐진 자루의 끝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 자루의 끝을 우리가 함께 잡고 버티면 살 수 있습니다. 몸이 얼어도 우리의 믿음이 그렇게 만들어 줄 겁니다.”

도현은 말을 마치고는 자루의 한쪽 끝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잡으십시오.”

“고맙군. 진심이 묻어나는 말이야. 하지만 이럴 필요 없네. 난 자네가 능력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 우리 때문에 스스로 위험을 자초할 필요 없으니, 자넨 그 능력을 이용해 살게.”

딘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영주님 말씀 들었겠지? 도현, 따르게.”

리드만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혼자 이 차가운 물속에서 장시간 버틸 자신이 없습니다. 두 분이 계시다면 모를까요.”

펼쳐진 자루를 잡지 않으면 그들은 물속에서 점점 거리를 두며 멀어질 것이다.

리드만이 들고 있는 횃불은 곧 차오르는 물속에 사라질 테고, 그 암흑 속에서 그들이 헤어지지 않을 방법은 무엇이 됐든 하나로 연결되는 것밖에 없었다.

“자루는 작지만, 우리를 연결해 줄 겁니다. 그러니까,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살아서 술 한잔 같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영주 체면이 말이 아니로군.”

딘은 결국 펼쳐진 자루의 한쪽 끝을 잡았다.

“리드만, 저쪽 끝을 잡게. 횃불은 버리고.”

“알겠습니다, 영주님.”

리드만은 횃불을 버리기 전에 도현을 잠시 바라보았다.

“자네 얼굴을 밝은 곳에서 다시 보고 싶군.”

“꼭 그렇게 될 겁니다.”

도현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치이이익.

리드만이 횃불을 내려놓자, 정강이까지 차오른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횃불을 집어삼켰고, 주변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칼라치는 피투성이로 도망쳤고, 3인의 소환술사들은 두 명이 죽고 남은 한 명은 스므차에게 사로잡혔다.

그리고 붉은 갑옷 전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스므차와 친위대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친위대들을 이끌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성내 주거지역에 도착한 스므차는 귀신처럼 돌아다니며 구역장들의 수급을 잘라 내고 수백 명의 적들을 단숨에 죽여 버렸다.

그는 홀로 능히 성을 지킬 만한 존재였던 것이다.

도망치는 자들을 그냥 보내 준 스므차는 성내의 주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말을 몰아 다시 대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늘이 밝아 올 무렵 아침 햇살을 받으며 숲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한 그는 말에서 내려 숲 앞을 흐르는 냇가에 몸을 숙였다.

얼음을 깨고 그 밑에 흐르는 물에 피에 절은 얼굴과 수염을 닦아 내던 그는 숲 앞을 흐르는 냇물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광경에 살짝 표정이 바뀌었다.

“왜 그러십니까?”

죽은 친위대장의 뒤를 이어 친위대를 이끄는 부대장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몸을 세운 그는 말에 올라타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두 손이 결박당한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윌벤슨이 보였다.

“가자.”

그가 말을 몰고 가자 뒤에 늘어서 있던 친위대들의 말도 같이 움직였다.

“크아아아악!”

말과 밧줄로 연결된 윌벤슨이 질질 끌려가며 비명을 내질렀다. 손목이 끊어질 듯 아팠고, 눈과 땅에 마찰된 몸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만들어 냈다.

으저적.

앞서 가는 말이 튕겨 낸 작은 돌 하나가 날아와 비명을 지르는 그의 입을 강타했다. 이가 부러진 그는 피를 흘리며 미친 듯이 외쳤다.

“스므차! 이노옴!”

황금 검

쏴아아아. 콸콸콸.

시간이 갈수록 지하 수로를 통해 흘러들어 온 차가운 물의 양이 더욱 늘어 갔다.

땅 깊숙이 꺼진 지하 광장에 떨어지는 물은 큰 낙차로 인해 마치 나이아가라폭포처럼 쏟아졌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물안개도 만들어 냈다.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벽 쪽으로 밀려난 도현과 딘, 리드만의 머리 위로 그 물안개가 휘감겼다.

전신을 물에 담근 채 헤엄치고 있던 그들은 물안개에 얼굴이 휘감기자 숨을 쉬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제가 잡아당기는 쪽으로 따라오십시오!”

도현이 외치며 출렁이는 물살을 헤치고 지하 광장 중심 쪽으로 이동하자, 리드만과 딘이 자루를 놓지 않고서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그를 따라갔다.

“도현, 창피하지만 난 사실 수영을 못한다네!”

딘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바다에 인접한 영지라면서요!”

“내 영지가 그렇다는 것뿐이지, 난 물을 어려서부터 싫어해서 물장구도 쳐 본 적이 없어!”

“그럼 이참에 물과 친해져 보십시오!”

“고맙군! 좋은 격려야!”

“농담이었습니다. 걱정 마시고 물속에 두 다리만 멈추지 마십시오.”

“알겠네!”

“으으으, 나도 수영을 잘 못 하네!”

리드만이 추위로 이를 부딪치며 외쳤다.

“괜찮습니다! 지금처럼 물속에서 떠 있기만 하시면 되는 겁니다!”

도현은 입으로 들어오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뱉어 내며 간신히 딘과 리드만을 이끌어 벽에서 제법 떨어진 지점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물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흐름이 있어서, 지하 광장의 물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그들을 물속으로 잡아끌려 했다.

‘마치 물귀신이 나타나 내 두 다리를 옭아매는 것 같아.’

그 힘에 버티며 물속에 떠 있으려니 체력 소모도 적지 않았다.

“이대로 버팁니다! 영주님, 리드만 사제님, 아시겠습니까!”

도현은 일부러 그들에게 말을 시켰다.

“안 되겠네. 벌써부터 다리가 말을 안 들어.”

리드만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만 내놓은 그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운 물의 추위로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정신 차리게, 리드만!”

옆에 있는 딘이 호통을 쳤다.

“이대로 자네가 물속에 가라앉는다면 우리 모두를 죽이는 거야!”

“반대 아닙니까? 제가 없는 편이…….”

“이런 형편없는 사제 같으니라고! 자네 없이 내가 어떻게 편히 살겠나? 수발은 누가 들고!”

“영주님.”

“나약한 소리 말고 일곱 신께 기도하며 부지런히 다리를 놀려! 알겠나!”

“알겠습니다, 영주님!”

리드만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즐거울 때는 긴 시간도 매우 짧게 느껴지는 법이고, 고통의 시간은 짧아도 하염없이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1분이 1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는 차가운 물속에서 도현과 딘, 리드만은 얼굴만 물 밖으로 내놓은 채 차오르는 지하 광장의 물과 함께 조금씩 위로 상승하고 있었다.

“졸립니다, 영주님.”

리드만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졸리는군.”

딘이 푸르스름하게 변한 입술로 조용히 대꾸했다.

“그럼 같이 자죠. 영주님, 저기 일곱 신께서 제게 손짓을 하고 계십니다.”

“신전을 부순 날 혼내실까?”

“아마 그러시겠지요.”

“안 가겠네. 난 다른 신을 찾아가겠어.”

“그냥 저와 함께 가시지요. 아, 근데 너무 졸려서 이제 말하기도 귀찮아지는군요.”

“나도 그렇다네. 리드만, 그동안 수고했네.”

“네. 주무십시오, 영주님. 저도 그만 자겠습니다.”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도현이 스르륵 다가가 주먹으로 그들의 얼굴을 한 대씩 후려쳤다.

정신이 번쩍 든 그들은 멈췄던 두 다리를 허겁지겁 다시 움직이며 헤엄을 쳤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힘을 내십시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기가 스며들어 와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도현은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 굳건한 음성에 자극을 받은 딘과 리드만이 어둠 속에서 눈을 빛냈다.

도현은 위를 올려다봤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여전히 물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 소리가 현저하게 작아진 상태였다.

컵 속에 물이 다 찬 것처럼, 땅 밑으로 가라앉은 지하 광장 내부에 물이 거의 다 채워졌다는 뜻이다.

‘거의 다 왔어!’

사실 그의 몸도 얼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는 차원 이동 게이트를 사용해 위기를 벗어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받기도 했다.

“정말 이제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딘과 리드만을 응원하며 외치던 도현은 마침내 화로에 비치는 거대 인간 석상의 발이 보이기 시작하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차오르는 지하 광장의 물을 이용해 밖으로 나오는 데 거의 성공한 것이다.

잠시 후, 지하 광장으로 더는 물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하 수로와 지하 광장에 채워진 물 높이가 같아진 까닭이다.

서둘러 헤엄쳐서 물이 없는 거대 인간 석상의 발 근처에 도착한 그들은 땅으로 기어 나와 그대로 쓰러졌다.

“하아, 하아. 땅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딘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도현을 바라봤다.

“수고했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와 리드만은 저 물속에서 꼼짝없이 죽을 뻔했어.”

“고맙네, 도현.”

리드만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두 분이 함께 힘을 내주셨기에 저도 포기하지 않고 저 차가운 물속에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도현은 환한 얼굴로 답했다.

“저기로 가서 몸을 녹이세.”

딘은 덜덜 떠는 리드만을 부축해 거대 인간 석상 발 옆에 위치한 화로로 갔다.

화로를 가운데 두고 그들은 옷을 하나씩 벗어 물기를 짜고 얼었던 몸을 녹였다.

“그나저나 아쉽게 됐어, 고대 문헌들이 저 물속에 몽땅 잠겨 버렸으니 말이야.”

“어쩔 수 없지요.”

도현은 호수처럼 변한 지하 광장이 있던 부분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물기를 짜낸 차가운 옷을 입었다.

“그만 나가시죠. 함정 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된 것 같습니다.”

“그러세. 이봐 리드만, 일어나. 그사이에 잠을 자나?”

화로에 언 몸을 녹이며 꾸벅꾸벅 졸던 리드만이 침을 닦으며 얼른 눈을 떴다.

“벌써 나가게요?”

“아까는 스므차가 올지 모른다면서 서두르자고 했잖은가?”

“그랬죠. 하지만 지금 이 열기가 너무 따뜻하고 좋습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추위 속에 죽다 살아난 리드만은 화로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안 움직이면 저 물로 차 버리겠네.”

물속에서 벗어난 딘은 예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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