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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64화 (164/575)

[164] 디 임팩트 7권 14화

화로에서 몸을 녹이는 영주를 힐끔 째려보며 리드만이 도현을 스쳐 지나갔다.

수백 개의 양피지와 책자 등이 넓게 펴져 있는 땅을 스므차 눈치를 보며 돌아다니던 리드만은, 어쩌다 보니 스므차의 앞을 가로막고 말았다.

“뭐 하는 거냐.”

묵직한 스므차의 물음에 리드만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여기 겹쳐진 게 있어서요.”

그는 조금 붙어 있는 두 권의 책자를 옆으로 벌려 놨다.

“잘 보이시죠?”

“나가.”

“예.”

찍소리도 못하고 고대 문헌들이 놓여 있는 곳에서 나가는 리드만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스므차는 조금 전 리드만이 손을 댄 두 권의 책자 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물에 훼손되지 않은 정상적인 책이었다.

그리고 그가 찾는 고대 문헌 중 일부이기도 했다. 그는 책자를 손에 쥐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조금 떨어져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도현이 말했다.

“아무래도 스므차 성주는 따로 찾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뭘 찾는 건지 몰라도 그가 소중히 여길 만한 것이라면 대단하다는 건데.”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리드만이 식은땀을 흘리며 다가왔다.

“보십시오. 괜히 갔다가 스므차를 자극만 하고 왔잖습니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어.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

“가까이서 커다란 눈으로 내려다보는데,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거대한 체구의 스므차는 눈빛부터가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가 옵니다.”

도현의 목소리에 딘과 리드만이 대화를 멈추고 앞을 봤다. 한 손엔 횃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엔 물에 젖은 양피지 한 개와 종이로 된 책자 두 권을 들고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선 스므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싸움이 벌어진 틈을 타 쥐새끼처럼 스며든 너희 도둑놈들을 용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혼돈의 마나 때문이었다고는 하나, 그것 역시 너희들 사정일 뿐 고대 문헌을 저따위로 만들어 놓은 죄는 피해 갈 수가 없다.”

도현과 딘, 리드만은 서로 쳐다보며 헛기침을 한 번씩 할 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스므차도 자기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너희들의 두 다리를 잘라 평생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썩히고 싶지만, 내 아들을 치료하고 무사히 데리고 온 게 너희들이라고 들었다.”

“하하하!”

딘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디엘르 님에게 들으셨나 보군요. 맞습니다. 저희들이 부성주를 구했지요.”

“웃지 마라. 너희들을 살려 줘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이니까.”

차가운 그의 눈빛에 딘은 미소를 거뒀고, 스므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불편한 침묵과 긴장감이 길게 유지되자 리드만이 참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도현의 깊은 눈매를 지그시 응시하던 스므차는 마침내 고민을 끝냈는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살려 주겠다. 하지만 아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지하 감옥에서 한 달간 수감이다.”

“감옥에서 죄수로 있으란 말이오?”

딘이 눈썹을 찡그렸다.

“따르지 않으면 너희들은 여기서 죽는다.”

딘은 도현, 리드만과 시선을 교환했다.

“어쩌겠나? 감옥에 갈 텐가?”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스므차와 원 없이 검을 섞고 싶었지만, 세 명 모두 무사히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순리대로 따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싸움은 영주님과 사제님 없이 나 혼자 있을 때, 조용히 스므차를 찾아가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감옥에 있다고 해서 시간 낭비를 하는 건 아니었다. 조용히 묵상하며 심상 수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른 받아들이십시오, 영주님. 한 달이면 우리가 벌인 일에 비하면 가벼운 대가가 아닙니까?”

리드만의 재촉에 딘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알겠으니까, 자넨 가만히 좀 있게. 영주가 감옥에 갇히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란 말일세.”

“영주님!”

“아, 알았대도 그러네.”

딘은 스므차를 보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영주 딘, 스므차 성주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 제안 받아들이지요.”

“옆에 있는 사내에게 감사해라. 내 검을 막아 내는 기백을 보여 주지 못했다면, 아무리 아들을 구해 주고 내가 찾는 이 고대 문헌들이 무사했다 하더라도 너희들은 죽었을 테니까 말이야.”

스므차가 한 손에 들고 있는 양피지와 책자를 흔들었다.

“아무렴요.”

딘이 피식 웃으며 도현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 안았다.

“자네, 오늘 여러모로 활약을 많이 했어.”

딘은 함정에 빠져 고대 문헌을 잃고 감옥에 수감될 형편이었지만 여유를 잃지 않았고, 그 모습에 도현도 검 손잡이를 놓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계획은 실패했지만 기분이 그렇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유독 추위에 약한 짐브리오가 숲 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로나의 털목도리를 빼앗으려고 했다.

“이거 못 놔요?”

“좀 빌려 줘. 해가 하늘에 높게 떴는데도 눈 덮인 이 숲 속은 추위가 사라지지 않아.”

짐브리오가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로나는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양심이 있어요? 대장이 자기 목도리를 줬잖아요! 두 개나 하고 있으면서 내 것까지 달라고요?”

“추운 걸 어떡해?”

“덩치는 커서 정말.”

로나가 털목도리를 빼서 울상을 짓고 있는 짐브리오게 건넸다.

“자요. 대신 앞으로 서열은 내가 두 번째예요. 알았죠?”

“마음대로 해. 내가 막내 할게.”

짐브리오는 로나가 준 털목도리를 황급히 목에 감았다.

“조용히들 하게.”

대저택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어베인이 곁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둘에게 한 소리했다.

조용해지자 어베인은 다시 대저택과 인근을 자세히 살폈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며 싸움이 벌어졌던 대저택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깊게 가라앉아서 그 무거움이 여기까지 밀려올 정도였다.

“대저택을 조사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저기 보이는 늙은 병사들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서 꺼려지는군.”

“저들이 스므차의 친위대죠?”

로나가 물었다.

“아마 그럴 거야. 웬만한 영지의 실력자들보다 저들 개개인의 실력이 더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지.”

그들은 전쟁이 벌어진 성내를 바삐 돌아다니며 조사하느라 스므차와 수십여 명의 친위대들이 성내에 들어온 수많은 구역장들과 그 부하들, 그리고 생각 없이 분위기에 편승해서 성안으로 밀고 들어온 도시 주민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싸우는 소리가 어느 순간 딱 멈췄을 때 그들은 전쟁이 종식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베인의 예상대로 스므차가 적을 몰아낸 것이다.

“대장, 저자들 눈빛을 보면 살기가 등등한데, 잘못 걸렸다가는 낭패당하기 십상이겠습니다. 그냥 물러가죠.”

전쟁이 나자 조사하기 좋은 기회라며 웃던 짐브리오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몸을 떨며 추위에서 벗어날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제 생각도 그래요.”

로나가 모처럼 짐브리오의 의견에 동조를 했다.

“전쟁이 막 끝나서 보통 예민해져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고대 유적도 중요하지만 목숨도 중요하잖아요. 짐브리오가 이렇게 손발이 얼어서는 숨어 들어가기도 곤란하구요.”

어베인은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나가지.”

“잘 생각했소, 대장. 그리고 이 빌어먹을 다크캐슬을 내일이라도 아예 떠납시다. 추워서 못 견디겠습니다. 커딜이나 이안이 보낸 녀석들이 찾아오면 내가 한밤중에 몰래 다가가서 목을 다 따 버릴 테니까 말이오.”

짐브리오가 콧물을 훌쩍이며 말했다.

“정말 그러고 싶은가? 추위가 그렇게 견디기 힘들어?”

“내 실력의 반은 깎인 상태라니까요. 농담 아니니까 내일 이라도 나갈 수 있으면 다크캐슬을 떠나 본토로 돌아갑시다.”

“로나, 자네 생각은?”

“짐브리오가 이렇게 힘들어한다면 굳이 여기 오래 있을 필요가 없죠. 고대 지하 유적은 포기하고 본토로 돌아가요.”

“로나, 고맙다!”

짐브리오가 감격한 표정으로 로나를 번쩍 안아서 허공으로 높게 띄웠다.

당황한 얼굴로 몇 미터 높이의 허공에서 떨어지던 그녀는 혹시 자신을 본 사람이 없는지 순간적으로 대저택 방향을 쳐다봤다.

손에 수갑을 차고 양 발목에도 굵은 족쇄가 채워진 몇 사람들이 병사들 손에 이끌려 대저택을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아주 눈에 익었다.

땅에 착지한 그녀는 짐브리오에게 화도 내지 않고 재빨리 눈 덮인 수풀을 제치며 앞으로 뛰어갔다.

“어? 로나! 뭐 하는 거야!”

“그 사람이에요!”

“누구!”

“도현요!”

“뭐라고?”

깜짝 놀란 짐브리오와 어베인이 로나 옆에 몸을 엎드리며 전방을 응시했다.

그녀 말대로 쇠사슬로 손발이 구속된 도현이 대저택을 나와 옆에 있는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저 자식 저기서 뭐 하는 거야? 몬스터 잡아서 검술을 익히겠다고 간 놈이 여기는 왜?”

짐브리오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커딜과 이안이 보낸 추적자들을 피해 우리들처럼 여기에 온 것일 수도 있어요.”

로나가 걱정 가득한 눈길로 도현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럼 몸 낮추고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지, 왜 스므차의 집에서 나오는 거냐고? 그것도 죄인처럼 묶여서 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벌컥 화를 내는 로나를 본 짐브리오가 움찔했다.

“로나, 진정해. 나도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미안해요.”

사과를 한 그녀는 도현이 등을 보이며 들어간 건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대장, 어떡합니까?”

짐브리오가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일단 뒤로 가지.”

어베인은 차분히 말하며 대저택과 거리를 두었다.

“도현이 들어간 건물은 내가 보기에 감옥으로 쓰이는 장소 같아. 우리가 여기에 막 도착했을 때도 마차에 실려 온 몇몇 사내들이 채찍을 맞으며 마차에서 끌려 내렸다가 저기로 들어갔잖은가.”

“그랬죠.”

짐브리오는 그들이 성을 공격한 자들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럼 도현이 전쟁을 일으킨 자들과 연관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럴 가능성이 높아.”

“정신 나간 놈. 도둑놈이 왜 남의 전쟁이 끼어들어!”

“그는 자신이 도둑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로나가 힘없이 말했다.

“아니긴, 우리와 함께 움직였으면 도둑이지 뭐, 흐흐흐.”

“지금 웃음이 나와요?”

로나가 짐브리오를 흘겨보다가 어베인을 돌아봤다.

“대장, 난 저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잠시지만 우린 동료였잖아요.”

“위험해도?”

어베인이 확인하듯 묻자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짐브리오 자네는?”

“난 대장 뜻을 따르겠소. 어차피 나와 로나 둘이서는 힘든 일일 테니까.”

“음.”

팔짱을 낀 어베인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 잡혔다. 그의 생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일찍 죽이려고 했으면 시체가 되어서 실려 나왔겠지. 아마 당장은 무사할 거야. 서두르지 말고 도현을 구할 방법을 짜 보세.”

어베인의 말에 로나의 얼굴이 밝아졌고, 짐브리오는 눈밭을 발로 걷어차며 투덜댔다.

“하아, 참나. 추워서 일찍 떠나려고 했더니만, 결국 저놈 때문에 발목이 잡혔네.”

감옥

대저택 옆의 건물은 지상은 병사들의 숙소였고, 아래 지하층은 감옥이었다.

이 지하 감옥은 고대인들이 만들어서 사용하던 장소로, 감옥의 각 방마다 바닥에 기이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어서 들어오는 자들의 마나를 봉쇄했다.

그래서 마나를 사용하는 마법사나 검사 들을 구속하는 데 있어서는 그 어떤 감옥보다 뛰어난 힘을 발휘한다.

30년 전 몬스터를 몰아내고 이 성을 차지한 스므차는 이 장소를 발견한 뒤 약간 손만 봐서 그대로 지하 감옥으로 재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긴 세월이 흘러 고대인의 마법진이 약해졌다고 하나 그 구속력은 여전했다.

그 지하 감옥으로 도현과, 딘, 리드만이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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