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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65화 (165/575)

[165] 디 임팩트 7권 15화

그들이 걸을 때마다 발목에 연결된 굵은 쇠사슬이 철렁거리며 소리를 냈다.

“영주님, 배가 고픕니다.”

“나도 배가 고프네. 이보시오 간수, 식사는 언제 주는 거요?”

“입 닥치고 따라와.”

우락부락한 백발의 간수 빌이 몽둥이로 딘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딱 소리와 함께 딘의 머리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난 감옥에 온 것이지 맞으려고 온 게 아닌데?”

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한마디만 더 하면 그 입을 박살 내 주겠다.”

광기 가득한 백발의 간수 빌의 눈빛에 딘은 미간을 좁혔다. 정말 말을 했다가는 몽둥이가 또 날아올 것 같았다.

“참으십시오, 영주님.”

도현이 옆에서 딘에게 말했다. 그 순간, 이번에는 도현의 어깨로 몽둥이가 날아왔다.

“너도 조용히 해! 나서지 말고!”

도현은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는 표시를 했고, 빌은 다리를 절뚝이며 냉기가 올라오는 음산한 지하 감옥의 복도를 다시 걸었다.

빌은 30년간 이곳을 책임진 자로, 전직 스므차의 친위대 중 한 명이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절뚝이는 통에 그는 친위대의 임무에서 벗어나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이는 감옥의 책임자가 됐다.

성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범죄자들은 모두 이곳으로 끌려와 그의 혹독한 매질 속에서 몇 년씩 보내다 나갔기 때문에, 그는 아주 악명이 높았다.

젊은 나이에 스므차의 친위대가 될 만큼 실력이 뛰어났지만 30년 전 다크캐슬을 두고 몬스터와 싸우는 과정에서 다친 다리는 그의 마음을 삐뚤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삐뚤어진 마음은 지하 감옥에 갇힌 재소자들에게 그대로 표현됐다.

“너희들이 누구든 상관없어! 여기에서는 내가 왕이니까!”

몽둥이로 철창을 두드리며 그가 외쳤다.

“알겠나!”

“…….”

그들이 대답이 없자 빌이 뒤돌아섰다.

“알겠냐고 물었다.”

“알겠소.”

도현과 딘, 리드만은 앞에 있는 백발의 간수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바로 대답을 했다. 미친 사람에게 대항해 봤자 손해만 커질 뿐이다.

백발의 간수 빌을 따라 복도를 걷던 도현은 좌우에 있는 감옥을 힐끔 쳐다봤다.

손목 두께의 굵은 쇠창살에 가로막혀 있는 좁은 공간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그들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보였다.

‘이번 전쟁에서 사로잡혀 온 사람들 같은데.’

현장에서 죽지 않고 잡혀 온 것이 저들에게 복인지 아니면 고통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렇게 철창에 갇힌 사람들을 쳐다보던 도현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또 다른 감옥에 갇혀 있는 헬구스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도현은 걸음을 늦추며 철창으로 다가갔다.

“살아 있었군요.”

“여기서 보다니, 별로 반갑지 않군.”

헬구스가 피투성이인 몸을 이끌고 철창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과 발에도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어떻게 된 겁니까?”

“스므차의 친위대에 사로잡혔네. 나중에 공개적으로 사형을 시키려는 거겠지.”

“앞으로 가!”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편의를 봐준 중년의 간수가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눈빛으로 도현의 등을 강하게 밀쳤다.

“바보같이 왜 잡혔나 자네는! 실력도 뛰어나면서!”

“조용히 해!”

중년의 간수가 몽둥이로 철창을 잡은 헬구스의 손가락을 강하게 후려쳤다.

“으아악!”

뒤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도현은 굳어진 얼굴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헬구스입니다.”

“저자였군.”

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쇠사슬을 질질 끌며 빌을 따라 걷던 그들은 모퉁이를 돌아 한동안 더 걷다가 적막감이 흐르는 복도 끝 방에 도착했다.

철창의 문을 연 빌은 히죽 웃으며 손짓을 했다.

“들어가.”

도현은 순순히 먼저 들어갔고, 굼뜬 동작을 보이는 딘과 리드만은 빌의 수하들에게 한 대씩 몽둥이로 얻어맞았다.

철커덕.

철창이 닫히며 잠겼다.

“사제를 사칭하고 대저택으로 도둑질을 하러 들어온 죄면 사형인데, 왜 성주님이 한 달이라는 경미한 벌을 주셨는지 알 수가 없구나.”

“내게는 한 달이 큰 벌이오.”

딘이 대꾸하며 철창 앞으로 다가갔다.

“저어, 그런데 화를 돋우려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한 게 있소.”

“뭐냐?”

빌이 호기심이 생겼는지 물었다.

“배가 정말 고파서 그러는데, 식사는 언제 나오는 거요?”

눈썹이 꿈틀거린 빌이 허리에서 몽둥이가 아닌 검을 뽑았다.

그리고 철창 사이로 보이는 딘의 목에 겨눴다.

“도둑놈아, 때 되면 준다. 얌전히 반성이나 하고 있어. 한 번만 더 이따위 말로 날 놀리면 죽여 버리겠다.”

“아, 아, 진정하시오.”

딘은 뒤로 한 발 물러나며 수갑이 채워진 양손을 어깨높이로 들어올렸다.

“놀리려고 물은 게 아니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성주님도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관여 안 하시니까 말이야.”

빌과 그의 수하들이 철창 앞에서 사라지자, 딘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정말 진지하게 물어봤는데, 놀리는 거라 생각했나 보군.”

“누가 감옥에 와서 식사를 언제 주냐고 물어보겠습니까. 영주님이 잘못하신 겁니다.”

“자네 때문에 나온 얘기 아닌가!”

딘이 언성을 높이자 리드만이 찔끔하며 딴청을 부렸다.

“도현, 저 미친 간수와 한 달을 같이 보내야 하다니, 차라리 그곳에서 결판을 낼 걸 그랬네.”

“이미 늦었지 않습니까?”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구석진 곳에 있는 냄새나는 긴 천을 바닥에 깔았다.

바닥에서 한기가 그대로 올라와 그냥 잠을 잤다가는 입이 돌아갈 것 같았다.

“자네는 이곳이 마음에 드나?”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주와 약속을 맺었으니 싫든 좋든 그대로 따르려는 것뿐이죠.”

“다른 의도도 있지?”

딘이 도현이 깔아 놓은 천 위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가 찾는 것에 대해 그가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그는 긴 세월 동안 그곳의 것들을 많이 읽어 봤을 테니까요. 한 달간의 약속을 지키고, 그때는 물어보려고요.”

“그가 순순히 알고 있는 걸 얘기해 줄까?”

“하늘에 맡겨 봐야죠. 그러니 영주님과 사제님께서도 다소 불편하고 힘드시더라도 감옥 생활을 잘 견뎌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넨 참 속이 깊어.”

딘이 도현을 칭찬한 후 뒤를 돌아봤다.

리드만이 피곤한 얼굴로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보게 리드만, 고생했네. 우리야 단련된 몸이지만, 자네는 오늘 하루가 참 고단했을 거야. 이따가 음식이 나오면 내 것까지 다 먹게.”

“정말입니까?”

“그럼. 난 자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네, 하하하.”

“마음에도 없는 말씀 하시지 마십시오. 전에 빵 하나 있는 것도 먼저 드셨잖습니까.”

리드만은 말을 하며 딘에게 다가왔다.

“뭐 하는 건가?”

“머리에서 피가 나잖습니까? 제가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됐네. 피곤할 텐데 힘을 아껴.”

“아닙니다, 영주님. 이 정도 상처는 큰 힘이 들지 않습니다.”

리드만이 허공에 신의 별자리를 그리며 치료의 힘을 끌어 모았다.

“어? 이럴 리가?”

리드만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러나?”

“치료의 힘이 모이지 않습니다.”

도현과 딘이 깜짝 놀라며 리드만을 쳐다봤다.

그는 연신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며 신의 별자리를 그리고 있지만 평상시 보았던 밝은 빛은 생성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리드만의 낯빛이 창백하게 변해 갔다.

“잘 해 보게. 신께 기도를 계속 올려 보고!”

“안 됩니다. 마나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치료의 힘인 신성력도 일정한 마나 없이는 발휘할 수가 없었다.

“뭐야? 마나가?”

딘은 혹시나 해서 체내의 마나를 움직여 보았다. 그 역시 마나가 미동도 안 했다.

당황한 딘은 도현을 봤다.

“자네도 어서 마나를 움직여 보게. 나도 리드만처럼 마나가 전혀 움직이질 않아!”

도현은 단전의 내공을 움직여 보았다. 그런데 평상시와 다름없이 그의 의도에 따라 내공이 전신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내공과 마나가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그런 건가?’

딘과 리드만은 마나를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는 내공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저는…….”

“마법진이야!”

도현이 말을 하려던 순간, 복도 건너편 감옥에서 노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마법진의 영향으로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마법진? 그게 정말이오?”

딘이 묻자 건너편 감옥의 노인이 답했다.

“그렇다. 우리들이 앉아 있는 이 감옥 방 안엔 고대인이 만든 마나 봉쇄진이 펼쳐져 있어. 스므차가 그 감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 놀라운 마법진이야. 현재로서는 재현할 수가 없는 것이고.”

노인의 음성에는 고대 마법진에 대한 감탄이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이곳을 나가면 다시 마나를 움직일 수가 있는 거요?”

“마법진은 감옥 방 안에서만 발휘되는 것이니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감옥을 나가고 한동안 시간을 보내면 마나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 갈 것이야.”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소?”

“난 이미 30년 전에 이곳을 한번 경험해 봤지.”

그의 대답에 깜짝 놀란 딘이 급히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

딘이 묻자 구석진 곳에 앉아 있던 노인이 쇠사슬을 끌며 복도와 접해 있는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복도에 놓인 화로의 강한 불빛이 그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

‘저 사람은!’

도현은 어쩐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설마 하며 바라보다가 실제로 예상한 그가 나타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를 응시했다.

“나는 윌벤슨이다.”

“윌벤슨!”

딘과 리드만이 동시에 놀라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도현, 그림으로 보다가 실물로 보게 되니 정말 반갑군.”

윌벤슨은 철창 가까이 붙은 도현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는 복도를 지나치는 옆모습을 보며 혹시나 해서 건너편 감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도현이라는 이름이 들리자, 이디언의 부탁을 받고 죽이려다 되레 큰 희생만 초래한 몇 달 전 사건의 주인공이 맞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다시 본 그의 얼굴은 그림의 인물과 동일했다.

“이것도 인연인가? 내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홀로 수백 명을 상대할 만큼 무력이 뛰어나고, 게다가 몬스터를 이용하는 뛰어난 머리를 갖춘 자네가 어떤 인물인지 정말 궁금했어. 실물로 한번 꼭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이렇게 보게 되는군. 장소가 영 아니지만 말이야.”

기침을 몇 차례 한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디언과 관련된 일은 유감이었어.”

“…….”

“난 그녀가 필요해서 그녀를 도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니까.”

도현은 그에게 특별히 할 말이 없어서 그저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한데 놀랍군, 인간 도살자라는 악명을 얻은 자네가 도둑으로 여기에 갇히다니. 대체 뭘 훔치려다가 스므차에게 잡혀왔나? 응?”

“그건 당신이 알 거 없소.”

딘이 도현 대신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간수 빌이 했던 말과 너희들이 나누던 대화 소리는 너무 커서 듣지 않으려고 해도 이 귀에 잘 들어오더군.”

찢어진 손가락으로 윌벤슨은 피딱지가 붙어 있는 귀를 가리켰다.

“사실대로 말해 보게. 사제로 위장해서 뭘 어떻게 했다는 건가? 대저택에서 뭘 훔치려고 했지?”

“왜 그렇게 궁금해하는 겁니까?”

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아는 것과 관련이 있나 해서야.”

“그게 뭡니까?”

“고대 지하 유적.”

“상상력이 풍부한 노인이군.”

딘이 너스레를 떨며 아닌 척했다.

“내 눈은 속이지 못해. 거기 늙은 사제, 내 말이 맞지 않은가?”

윌벤슨의 집요한 시선에 리드만이 멀뚱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아니요. 잘못 짚었소.”

“맞군. 역시 그래서였어.”

“아니라고 했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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