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167화 (167/575)

[167] 디 임팩트 7권 17화

대사제가 제단 곁에 세워진 일곱 신의 조각상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부성주님의 위기를 넘겨줄 거라는, 그 먼 미래를 보는 예지력이 더해진 숭고한 지혜가 발동되지 않았다면, 부성주님이 어찌 살아 계셨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디엘르 님의 지혜가 그렇게 시킨 것이니까요.”

“민망합니다. 그만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디엘르는 그의 말에 기분이 많이 좋아 졌다. 아들이 산 이유가 그녀가 제때에 리드만과 도현을 보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사제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상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들이 이곳에 들어오게 제게 청을 했으니까요.”

“무슨 미친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건가?”

성소의 문이 벌컥 열리며 스므차가 등장했다.

“성주님!”

대사제 휴고스는 얼른 자리에서 엎드렸다.

“오셨습니까.”

디엘르가 기품 있는 동작으로 남편을 맞이했다.

“도둑놈들을 불러들였으면 벌을 받아야지 당치도 않게 상이라니. 안 그런가, 대사제?”

“죽여 주십시오, 성주님!”

대사제가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리며 외쳤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었다.

“성주께서는 대사제가 지난 수십 년간 다크캐슬에 얼마나 헌신해 왔는지 그 공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걸 감안했으니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오.”

서늘한 그의 말에 디엘르는 감히 더는 나서지 못했다. 스므차가 한번 말을 뱉으면 더는 용납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사제.”

“예, 성주님.”

떨리는 목소리로 대사제가 공손히 대답했다.

“신전의 바닥이 다 파헤쳐져 있었다는데, 그건 누구 짓인가?”

며칠 전 끝난 전쟁에 대한 피해를 집산한 보고서에서 스므차는 신전에 대한 것도 읽은 상태였다.

“그놈들 짓일 겁니다!”

대사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그대가 불러온 자들이 벌인 짓이로군. 안 그런가?”

“…….”

“말을 하라!”

“아, 아닙니다, 성주님. 생각해 보니 그들이 신전 바닥을 파괴했다는 건 누구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벌인 게 아니다, 이 말인가?”

“예!”

리드만 일행의 죄로 몰아가면 또 자신의 죄가 그만큼 늘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사제는 얼른 말을 바꾸고 있었다.

“일어나라, 대사제.”

“예.”

대사제는 감히 성주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길을 아래로 향했다.

“신전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건 신전의 사제들이 그 시간에 그곳에 한 명도 없었다는 말 아닌가?”

“서, 성주님, 전 대저택의 성소에 와서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듣기만 해.”

“죄송합니다, 성주님.”

“성내 주민들은 이번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어린아이까지 나서서 흙과 돌을 나르고 있다. 너희 사제들도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라. 파괴된 신전 바닥을 너희 사제들의 힘만으로 다 복구해 놔.”

“예? 저희들만으로 말입니까?”

대사제 휴고스의 눈이 커졌다.

“왜, 못하겠나?”

“아닙니다. 분부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두 달을 주겠다. 그 안에 끝내지 못하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야. 알겠나?”

“예, 성주님!”

“가 보게.”

성주의 명에도 대사제는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눈치를 봤다.

“외람되지만, 도둑들 사건에 따른 제 책임은 그럼 어떻게…….”

“두 달 뒤 신전의 상태를 보고 결정하겠다.”

대사제의 눈가에 실망감이 어렸다.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끝까지 안심하지 못하게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성주님.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대저택을 나온 대사제는 신전으로 가기 전 지하 감옥에 들렀다.

“오셨습니까, 대사제님?”

일곱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중년의 간수가 허리를 굽혔다.

“수고하는군.”

“여긴 무슨 일로?”

“나를 감쪽같이 속이고 사제로 들어온 녀석들이 있어. 감히 대저택에 들어가 도둑질을 하려다 성주님께 잡힌 자들이지.”

“아, 그놈들 말씀이군요.”

“그놈들은 어찌 지내는가?”

“감방 안에서 얌전히 지내고 있습니다. 주는 음식 꼬박꼬박 남기지 않고 먹구요.”

“흠, 그래?”

대사제는 턱을 매만지며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편하게 지내는데. 간수장은 그놈들에게 관심이 없으신가?”

“평상시라면 매질을 실컷 하셨겠지만, 며칠 전 전쟁 때 잡아 온 녀석들이 적지 않아서요. 간수장 어른은 그놈들을 집중적으로 상대하고 계십니다.”

“안타깝군, 신을 모욕한 녀석들의 죄도 엄벌에 처해야 하는데 말이야. 간수장이 관심을 조금 가져 줬으면 좋겠어.”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고맙군. 온 김에 잠깐 아래로 내려가서 그놈들 얼굴이나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험, 고맙네.”

중년의 간수를 따라 지하 감옥으로 내려간 그는 감방 안에 갇혀 있는 죄수들이 하나같이 피투성이 상태로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진저리를 쳤다. 간수장 빌이 감방들을 돌아다니며 고문을 가한 게 분명했다.

“크아아아악!”

깊숙이 들어가자 어디선가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말을 해! 칼라치는 어디에 숨어 있나!”

“모, 몰라. 으아악!”

피와 오물 냄새에 코를 막은 대사제가 비명이 터져 나오는 감방 안을 힐끔 쳐다봤다.

철창 사이로 간수장 빌과 그의 수하 간수 세 명이 뚱뚱한 중년인을 고문하고 있었다.

“몰라? 모른다고? 왜 몰라!”

빌이 화로에 달궈진 쇠를 헬구스의 허벅지에 가져다 댔다.

치이익.

살이 타는 역겨운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 난 대저택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 칼라치와는 성에서 마주치지도 않았다고.”

“거짓말 마. 넌 알아. 그렇지?”

빌이 화로에서 아주 가느다란 바늘을 집게로 집어 꺼냈다. 너무 달궈져서 쇳물이 되어 버릴 것 같은 그 바늘을 천천히 헬구스의 눈 쪽으로 가져갔다.

“모른다고 했잖아, 이 자식아!”

“상관없어. 감히 겁도 없이 성을 공격하다니. 그 이유만으로도 너는 고통을 받아야 돼.”

“죽이려면 단번에 죽여, 이 개자식들아! 난 왕족이란 말이야!”

헬구스가 몸부림을 쳤지만 십자형 나무틀에 전신이 고정돼서 크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으으으.”

새빨갛게 달궈진 바늘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자 속눈썹이 타올랐고, 눈동자의 물기가 순간적으로 증발을 해 버렸다.

“죽어서도 이 빌어먹을 다크캐슬을 저주하겠다.”

“마음껏 저주해라. 그따위 저주는 얼마든지 받아 줄 테니까.”

빌이 씨익 웃으며 달궈진 바늘을 찔렀다.

“크아아악!”

바늘은 눈동자가 아닌 눈썹 위의 살을 파고 들어가 뼈까지 뚫어 버렸다.

잠시 서서 고문 장면을 지켜보던 대사제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손짓을 했다.

“가세.”

중년의 간수를 따라 지하 감옥의 제일 깊숙한 곳에 도착한 그는 코 고는 소리가 들리자 어이가 없었다.

한쪽에서는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데, 이곳은 아주 평화로웠다.

자세히 살펴보니 코를 골며 자는 사람은 딘과 리드만이었고, 도현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잠시 시간을 주게.”

“예, 대사제님.”

중년의 간수가 물러가자 그는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 이 망할 것들아!”

가부좌를 한 상태로 조용히 내면의 모습을 관조하고 있던 도현이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밝은 광채가 번뜩이다 사라졌다.

하지만 대사제는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고 있는 딘과 리드만을 집중해서 보고 있어서 그 장면을 놓쳤다.

“대사제 아니시오?”

딘이 나른한 음성으로 알은척을 했다.

“어떻게 너희들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

“뭘 말이오?”

“이 도둑놈의 새끼들이 끝까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대사제가 철창을 잡고 안을 노려봤다.

“리드만, 말을 해 보게! 난 그래도 자네를 믿었는데, 어떻게 내 뒤통수를 치고 스므차 성주님의 지하 수련장을 침범했나!”

리드만이 눈곱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미안합니다, 휴고스. 그럴 사정이 있었습니다.”

“나의 편안한 노후가 자네 때문에 망가졌네. 수십 년 전 자네와 맺은 인연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정말 실망스럽네!”

휴고스가 눈물까지 글썽이자 리드만이 당황하며 손짓을 했다.

“울지 마시오. 왜 우는 겁니까? 나와 당신은 솔직히 그리 친하지도 않았는데.”

“적도 늙어서 만나면 반가운 법이야. 난 그래도 자네에 대한 정이 있었는데, 자네는 아예 나를 이용만 하려고 했어.”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대사제의 행동에 리드만은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숙연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휴고스, 돈만 밝히는 줄 알았던 당신이 나를 그리 깊게 생각하는 줄 몰랐습니다.”

“누군가?”

“예?”

“누가 내 머리를 쳤냐 이 말이야!”

휴고스가 주름진 손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짚으며 철창에 가까이 댔다.

“보게.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지금도 붓기가 가라앉지 않았고 두통도 심해. 자네는 아닐 테고, 저 두 녀석들 중 한 명이겠지?”

“저어, 그게 말입니다.”

리드만이 난감한 얼굴로 도현과 딘을 둘러봤다. 자신을 진짜 믿었다며 섭섭함에 눈물까지 흘리는 그에게 성소에서 촛대를 휘두른 게 차마 자신이라고 말하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누군가!”

휴고스가 재촉을 하자 리드만은 눈을 질끈 감고서 딘을 가리켰다.

“나?”

딘이 어이가 없어서 눈을 멀뚱멀뚱 뜨며 리드만을 쳐다봤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생긴 게 아주 뻔뻔한 게 처음 만날 때부터 별로였어. 네 이노옴! 감히 성소에서 신의 종에게 폭력을 행사해!”

“난 아니오.”

딘이 급히 부정을 했다.

“닥쳐라! 너만은 내가 용서치 않겠다.”

휴고스는 후다닥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잠시 후 중년의 간수를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다.

“보시게. 저 인간이 성소에서 내 머리를 친 자이네. 디엘르 님도 심히 노여워하시며 단단히 혼을 내 주라 말씀하셨지.”

“그렇습니까?”

일곱 신의 충실한 신자인 중년 간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정신이 번쩍 들게 손을 봐 주게.”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대사제 님.”

철창문을 연 그는 허리에 매단 길쭉하고 단단한 몽둥이를 빼 들었다.

“어허! 난 아니래두!”

딘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뭐가 아니야, 이 자식아! 이 도둑놈의 새끼!”

휘익 날아간 몽둥이가 딘의 정강이를 가격했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딘이 주저앉았고, 그 위로 간수의 몽둥이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딘이 매를 맞으며 리드만을 노려봤다.

“리드만!”

“조용히 해, 이 자식아!”

간수는 한참을 때린 뒤 고개를 꺾으며 뒤로 물러났다. 죽도록 매를 맞은 딘이 바닥에서 엎드려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수고했네.”

휴고스는 속이 다 시원하다는 얼굴로 간수를 칭찬했다.

“별말씀을요.”

“신전이 부서져서 복구를 해야 하는데, 시간 나면 언제든 들러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 주게. 일곱 신께서는 그 손길에 감동하실 거네.”

“그러지요.”

“곧 따라갈 테니 먼저 가겠나?”

“아, 예.”

중년의 간수를 먼저 보낸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얻어맞은 딘을 내려다보고 있는 리드만에게 물었다.

“그런데 신전은 누가 부순 건가?”

“영주님, 화를 푸십시오.”

“됐네. 자넨 앞으로 나를 따라다니지 마. 감옥에서 나가면 우린 각자 길을 가는 거야.”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든 딘이 바닥에 누워서 대꾸했다.

“보셨잖습니까. 휴고스가 눈물을 흘리는데 제가 그랬다고 나서기가 어려웠습니다.”

“핑계 대지 말게. 자네는 찾아온 기회를 이용한 것뿐이야. 나를 한번 손봐 주고 싶은 그 음험한 욕망이 가슴속에 꿈틀거렸던 거지.”

“신은 아십니다, 저의 진심을요.”

“좋아,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세.”

딘은 느릿하게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있는 도현을 가리켰다.

“그럼 왜 난가? 엄밀히 말하면 자네가 먼저 치고 뒤에 도현이 때렸으니까, 자네라고 말하기 어려우면 도현을 지목했어야지.”

딘의 논리 정연한 지적에 호심공을 수련하고 있던 도현은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그렇군요. 그 생각은 미처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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