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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68화 (168/575)

[168] 디 임팩트 7권 18화

리드만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얼굴로 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그때는 저도 당황해서 영주님이라면 저를 이해해 주실 거라 믿고 그랬던 겁니다.”

딘은 길게 숨을 토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좋아, 믿어 주지. 계속 말하는 건 영주 체면에도 못할 짓이니까.”

“고맙습니다, 영주님.”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리드만은 도현과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 보였다.

“감옥이 편한가 보지?”

도현은 옆을 봤다.

부성주 나담이 디엘르의 시녀인 리샤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부성주님.”

도현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철창으로 다가갔다. 딘과 리드만도 자리에서 일어나 도현의 곁에 섰다.

며칠간 전쟁의 뒷수습을 하느라 바빴던 나담은 얼굴에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자네들이 그곳을 노리고 들어온 자들이었다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군.”

나담은 아버지로부터 이들이 고대 지하 유적을 노리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직접 들었다.

“로이 사제, 아니 도현이라고 해야겠지?”

“편할 대로 부르십시오.”

“조사해 보니 수백 명의 희생이 났던, 몇 달 전 도시에서 있었던 큰 싸움의 주인공이 자네더군. 맞는가?”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접니다.”

“도시 거주민들은 그때 사건을 두고 자네를 인간 도살자라고 부른다던데,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인간 도살자 도현, 한 가지만 묻지.”

나담이 철창 사이로 보이는 도현의 두 눈을 들여다봤다.

“내 친위대장이 될 생각은 없나?”

도현은 뜻밖의 제안에 눈이 살짝 커졌다.

“싫은가?”

“왜 제게 그런 제안을 하십니까?”

“도둑질하기 위해 들어왔지만, 난 자네가 그리 싫지가 않아. 강하기도 강한 것 같고. 자네만 허락해 준다면 최대한의 예우를 하지. 어떤가, 내 친위대장이 되어 주겠나?”

도현은 좌우에 서 있는 리드만과 딘을 한 차례씩 본 후,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곳은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성주님.”

“예상대로군.”

피식 웃은 나담은 별다른 뒷말 없이 옆에 서 있는 시녀 리샤에게 손짓을 했다.

“가지고 온 것을 넣어 줘라.”

“예, 부성주님.”

리샤는 철창 밑에 네모나게 난 작은 구멍으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감옥에서는 맛볼 수 없는 고기와 술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리샤는 도현의 진실된 신분을 알게 되었지만, 대저택에서 맺은 짧은 인연이 가슴에 오래 남았는지 반가운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도현에게 전해 들어서 알고 있단다. 내게 고맙다 했다면서.”

리드만이 부드럽게 말하자 리샤는 부성주의 눈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간수장에게는 내가 말해 뒀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먹고 마시게.”

“고맙습니다.”

도현이 대표로 인사를 했다.

“나담, 내 것은 없느냐?”

뒤에서 들리는 갈라진 노인의 음성에 부성주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윌벤슨이 철창에 머리를 비스듬히 대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도 고기와 술을 먹고 싶은데.”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윌벤슨의 앞으로 나담이 걸어갔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윌벤슨과 마주 선 나담은 허리에서 검을 뽑아 윌벤슨의 목에 가져다 댔다.

“아버지의 지시만 없었다면, 넌 벌써 내 손에 죽었다.”

“아버지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있나? 그냥 그 손을 가볍게 움직여서 내 목을 자르게. 얼마나 통쾌하겠는가?”

나담의 검이 윌벤슨의 목을 살짝 베고 다시 검집으로 들어갔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나담이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고기와 술을 달라고? 네가 공개 처형이 되는 날, 네 대신 내가 고기를 먹고 술을 마셔 주겠다.”

돌아선 그가 걸음을 옮길 때 윌벤슨이 말했다.

“왼손은 어떤가? 그때 고통스러웠지? 소년이었던 자네의 손이 활활 불타오를 때 내 가슴도 무척이나 아팠다네. 자네와 난 친한 사이였으니까.”

나담이 번개처럼 뒤돌아서서 철창 사이로 보이는 윌벤슨의 얼굴을 손날로 가격했다.

우당탕탕.

뒤로 쓰러진 윌벤슨이 큰 소리로 웃으며 외쳤다.

“넌 네 아비 때문에 평생 불구로 사는 것이다!”

“닥쳐!”

“크하하하!”

한껏 웃고 있는 윌벤슨을 분노한 눈빛으로 노려보던 나담은 휙 돌아섰다.

“리샤, 가자.”

“예, 부성주님.”

어린 시녀 리샤는 숨 막히는 분위기에 가슴을 졸이며 서둘러 앞서 가는 부성주를 따라갔다.

도현은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윌벤슨에게 물었다.

“부성주 손이 당신 때문에 저렇게 된 겁니까?”

“그렇다. 30년 전, 다크캐슬에서 도망치며 내 손을 자른 스므차에게 그 보답을 확실하게 해 줬지. 나담은 울면서 자신에게 왜 그러냐고 심하게 괴로워하더군.”

“윌벤슨, 좀 심했어.”

부성주가 가지고 온 술을 한 모금 한 딘이 비난하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 소년의 손을 불에 태우다니.”

“스승을 죽이고 내 손까지 자른 스므차에게 그 정도 복수도 못 한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원한 가득한 그의 목소리에 도현은 아무 말 없이 딘이 건네주는 술을 입에 댔다.

감방 안의 추위가 단번에 가실 정도로 술은 독하고 강했다.

모닥불

시장이 펼쳐진 광장에서 콩과 고기를 산 중년 여성은 흘러내리는 목도리를 눈 밑까지 올렸다.

며칠 전 벌어진 전쟁으로 도시의 분위기는 어수선했지만, 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시장을 재빨리 벗어나 골목길에 접어든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걷다가 앞서 오는 사내를 보지 못해 어깨를 살짝 부딪쳤다.

“똑바로 보고 다녀.”

“미안해요.”

“잠깐만.”

스쳐 지나가는 그녀를 사내가 불러 세웠다.

“거기 얼굴 좀 잠깐 볼까?”

“얼굴은 왜요?”

“현상금이 붙은 여자가 있어서. 의심받기 싫으면 얼굴 좀 보이시지?”

사내의 동료들로 보이는 남자 몇이 좁은 골목 안에서 그녀를 포위했다.

그들의 손에는 성에서 뿌린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부상당한 채 도주한 칼라치와 여자 마법사 이디언, 작은 키의 못난이 비버의 얼굴이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자가 얼굴을 가린 목도리에 손을 대며 시간을 끌자 사내가 칼을 겨누며 위협을 했다.

“허튼짓하지 말고, 목도리를 치워 봐. 어서!”

여자는 잠시 더 시간을 끌다가 얼굴을 가린 목도리를 천천히 밑으로 내렸다.

“응? 이 여자 아닌데?”

사내의 동료들이 그림 속 여자와 얼굴을 비교하며 실망을 했다. 그림 속 미모의 여자와 달리 앞에 여자는 코도 크고 턱도 주걱턱이었다.

“가도 되죠?”

여자의 말에 사내들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흐흐흐, 그럴 순 없지. 잠시 우리랑 함께 가 줘야겠어.”

그들이 몸 가까이 다가오자 여자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짙은 갈색의 풍성한 겉옷 속에 감춰진 그녀의 손에서 작은 지팡이가 들려 나왔다.

쩌어억.

둥근 지팡이 머리에 콧잔등을 얻어맞은 사내가 코피를 흘리며 주저앉았고, 옆에서 달려들던 대머리 사내는 그녀가 손짓을 하자 달려들던 그 모습 그대로 몸이 마비되어 땅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마법사다!”

놀란 사내들이 재빨리 도끼와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는 시장에서 산 큼지막한 고기로 도끼를 막아 내는 한편, 뒤로 허리를 꺾어 날카로운 칼도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사내들의 합공에서 벗어난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지팡이를 위로 올렸다.

번쩍하는 빛이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와 사내들의 몸을 저 멀리 튕겨 냈다.

꿈틀거리던 그들은 이내 잠잠해졌다.

“사, 살려 주시오.”

콧잔등이 내려앉은 사내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몸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던 사내도 마비가 풀리자 황급히 일어나 도망가려 했다.

“날 알아봤으니 살려 둘 수 없다.”

이디언이 주문을 외우려는 순간, 지붕 위에서 한 사람이 번개처럼 뛰어내려 사내들의 목을 검으로 베어 버렸다.

목이 반쯤 잘린 사내들이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디언은 자신 대신 손을 쓴 정체불명의 사내를 노려봤다.

“당신은?”

“이디언 님, 무사하셨군요.”

비버가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마법사이기도 하지만 그는 검도 아주 잘 다뤘다.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그녀를 비버는 가벼운 발동작으로 쫓아갔다.

비버와 함께 허름한 집에 들어간 이디언은 침상에 누워 있는 칼라치에게 다가갔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안색은 내일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핏기 없이 창백했다.

“엇, 칼라치가 아닙니까?”

비버가 깜짝 놀라며 품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이 겁쟁이 배신자, 칼라치!”

비버가 화가 난 얼굴로 칼라치의 침상으로 접근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이디언이 호통을 치며 비버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놈을 죽일 겁니다.”

“뭐라고요?”

이디언은 황당한 눈빛으로 작달막한 비버를 내려다봤다.

“이유를 말해 봐요.”

“칼라치는 스므차와 싸우다 도망쳤습니다.”

“불리하면 도망칠 수도 있는 게 싸움이에요.”

“말도 안 됩니다! 그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비버가 펄쩍 뛰었다.

“주인님은 그를 위해 구하기 어려운 엘바까지 주셨습니다. 그걸 먹고 강해졌으면,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칼라치는 나쁜 놈입니다!”

“몸이 저렇게 될 정도로 열심히 싸운 사람에게 그건 할 소리가 아니에요.”

이디언이 돌봐 주지 않았다면 칼라치는 벌써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을 만큼 부상이 심한 상태였다. 그 부상을 이디언이 간신히 치료하며 그를 살려 낸 것이다.

“만약에 그를 죽이려 한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지팡이를 꺼낸 이디언이 매서운 눈빛으로 비버를 노려봤다.

“이디언 님은 저를 이기지 못합니다. 저를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비버의 얼굴이 차가워지자 이디언은 긴장하며 언제든 주문을 외울 준비를 했다.

“비키십시오.”

“못 비켜요.”

“왜 그를 두둔하시는 겁니까? 그가 스므차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인님이 잡혀가신 겁니다.”

“우리들 예상보다 스므차가 너무 강했던 것뿐이에요. 그걸 칼라치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건 올바르지 않아요.”

둘은 팽팽한 기 싸움을 하며 대치를 계속했다.

“한 가지 묻죠. 당신은 그럼 왜 여기 있나요? 윌벤슨이 잡혔을 때 당신은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비버는 당황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

“그, 그때 난, 스므차를 보고 흥분한 주인님이 갑자기 공격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스므차가 윌벤슨의 마법을 단번에 깨 버리고 사로잡은 뒤였다.

그는 도망가라는 윌벤슨의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스므차를 피해 도망을 쳤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요. 나는 강화 마법을 썼고, 칼라치는 몸이 부서질 만큼 싸웠고, 당신 역시 주인을 위해 충실히 움직였죠. 이미 말했지만, 스므차가 너무 강했을 뿐이에요.”

“…….”

고개를 푹 숙인 비버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체구가 작아 마치 아이가 우는 것처럼 보였다.

단검을 품에 넣은 비버를 보며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비버, 미안하다.”

언제 깼는지 칼라치가 힘없는 음성으로 사과를 했다.

“엘바를 통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 본 스므차는 내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미안하다, 그를 꺾지 못했다.”

“내게 사과할 필요 없어.”

퉁명스럽게 대꾸한 비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누워 있는 칼라치와 그 곁에 서 있는 이디언을 쳐다봤다.

“지하 감옥에 있는 주인님을 구해야 돼.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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