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디 임팩트 7권 21화
대사제 휴고스의 칭찬에 지하 감옥에서 일하는 중년의 간수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닙니다, 대사제님. 얼른 신전이 다시 예전 모습을 찾아야 전쟁으로 피해를 본 성의 주민들이 위로를 받지요.”
“허허, 고마운 소리군.”
“그럼 저는 다시 가서 일을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게.”
휴고스는 주위를 한번 살핀 후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그자 말일세.”
“누구 말씀입니까?”
“성소에서 나를 때린 녀석.”
“아, 그놈요.”
“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의 매질로는 부족한 것 같아. 기회를 봐서 다시 한 번 손을 봐 주게. 할 수 있겠나?”
“걱정 마십시오. 감옥을 나갈 때까지 혼을 내주겠습니다.”
휴고스는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보이며 껄껄 웃었다.
“고맙네. 같이 가세.”
휴고스는 간수와 함께 복구가 한창인 신전으로 향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숨어 있던 어베인 일행은 빠른 걸음으로 신전을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여러 겹의 옷을 입은 짐브리오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대장,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오늘 밤 탈옥시키죠?”
“그래요, 대장. 며칠 뒤면 도시 광장에서 공개 처형을 하잖아요.”
전쟁과 관련해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은 4일 뒤, 도망자들이 사는 도시 광장에서 모두 목이 잘리는 처벌이 예고된 상태였다.
본보기이자 성의 힘에 도전하는 자들을 향한 경고의 의미이기도 했다.
도현이 전쟁과 연관돼 잡혀 있는 줄 오해하고 있는 그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어베인은 숲을 달리며 곰곰이 생각을 했다.
성벽 경비가 취약한 곳도 파악했고, 도시에 몸을 숨길 곳도 준비해 놨다. 가방 안에는 감옥의 경비들을 무력화시킬 다양한 물건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대저택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하 감옥 건물에서 큰 소란이 벌어진다면, 스므차나 그 친위대가 움직일 수도 있다.
은밀히 빼내 오지 못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들의 목숨도 위험하고.
숲을 달리던 어베인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의견이 그렇다면 오늘 밤 끝을 내지. 그를 구하세.”
“야호!”
짐브리오가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 그 녀석을 구하고 내일은 이 추운 도시를 떠나자고. 배가 없으면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말이야.”
그들은 눈이 녹지 않은 숲을 부지런히 통과해, 어느덧 달빛을 받으며 고고하게 서 있는 대저택이 멀리 보이는 곳까지 도착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그들은 일절 잡담을 금하고 야수가 산짐승을 잡으려는 것처럼 소리 없이 숲 속을 이동해 갔다.
지하 감옥 건물이 잘 보이는 숲의 한편으로 이동하던 짐브리오와 로나는 어베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즉시 멈춰 섰다.
“대장, 왜 그러십니까?”
“앞에 누군가 있네.”
“예?”
“모두 나무로 올라가.”
어베인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짐브리오와 로나가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어베인은 반대편 나무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비버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났다.
“이상하네. 뭔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고, 한참 뒤 나무 위에 몸을 숨겼던 어베인과 짐브리오, 로나가 차례로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살금살금 앞으로 가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을 한동안 감시하다가 뒤로 빠졌다.
“저놈들은 누구지?”
짐브리오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들이 몸을 숨기려는 장소에 먼저 온 자들이 있었다.
“분명한건 스므차의 사람은 아니라는 거예요. 몰래 지하 감옥 쪽을 살피는 모습이, 마치 우리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럼 저 녀석들도 우리처럼 지하 감옥에 있는 사람을 탈옥시키려고 하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죠, 대장?”
두건을 턱 아래로 내려 눈을 씹어 먹던 어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더군.”
“저놈들이 어설프게 손을 썼다가 경계가 강화되면 큰일이잖습니까. 내가 가서 저놈들을 몽땅 잠재워 버릴까요?”
짐브리오가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였다.
“아니, 그냥 놔둬.”
어베인은 빙그레 웃으며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걸 보게.”
“어? 이자들은 조금 전 저기 숨어 있던 자들이 아닙니까?”
짐브리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디 봐요.”
로나도 종이에 그려져 있는 몇몇 사람의 초상화를 들여다봤다. 그녀가 보기에도 수풀 속에 은신해 있는 자들의 얼굴과 흡사한 면이 있었다.
“이들은 이번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주요 인물들이라고 하더군.”
어베인은 시장에서 정보를 얻은 상태였다.
“이들이라면 믿고 지켜볼 만하지 않겠나?”
“이 상황을 이용하자는 말이군요.”
어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손을 쓰면 우리는 편안하게 감옥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로나가 말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지.”
어베인이 입가에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
사악한 존재
잠을 자던 도현은 눈을 떴다.
‘무슨 일이지?’
지하 감옥이 소란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는 철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죄수들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비명이 섞인 소리는 아니고, 누군가에게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말하는 절실한 소리였다.
“모처럼 고문과 비명 소리 없는 밤을 보내나 했더니, 이건 또 뭔 소린가?”
딘과 리드만이 잠에서 깨어나 도현처럼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감옥에 외부인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도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누가 이곳에?”
밖이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침입자가 이쪽으로 오는가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의 예상대로 잠시 후, 복도에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주인님! 어디에 계십니까!”
복도를 타고 흐르는 비버의 목소리에 윌벤슨이 쇠창살을 손으로 치며 대답했다.
“비버! 나는 여기 있다!”
턱뼈 일부가 부서져 입을 벌리는 것조차도 고통스러웠지만, 윌벤슨은 기뻐하며 크게 소리쳤다.
“주인님!”
비버가 갇혀 있는 주인을 발견하고는 뛸 듯이 좋아했다.
“제가 구해 드리겠습니다.”
간수를 위협해 빼앗은 열쇠로 서둘러 문을 연 비버는 윌벤슨을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윌벤슨은 비버의 어깨에 손을 올려 중심을 잡았다.
복도에는 이디언과 칼라치가 그를 보며 서 있었다.
“자네들도 왔군.”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고맙군.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니.”
윌벤슨의 시선이 칼라치에게로 향했다.
“살아 있었군. 부상이 심해 죽었을 거라 예상했는데 말이야.”
칼라치는 묵묵히 등을 보였다. 업히라는 그의 시늉에 윌벤슨은 두말 않고 그의 등에 업혔다.
몸이 정상이 아니지만 윌벤슨을 구하기 위해 무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칼라치의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윌벤슨을 업고 일어서던 그는 맞은편 감방을 쳐다봤다.
너무 조용해서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세 명이나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다른 죄수들과 달리 구해 달라고 소리도 치지 않고 벽을 보며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이 신선했다.
어떤 자들인지 얼굴이 궁금했지만, 지하 감옥에서 긴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어서 나가요!”
이디언이 초조한 음성으로 재촉하자 칼라치는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죄수들에게서 시선을 떼며 몸을 돌렸다.
“잠깐 기다리게.”
칼라치의 등에 업혀 있던 윌벤슨은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도현의 모습에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결국 또 싸우게 되는 건가?’
벽을 보고 앉아 있던 도현이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내려다봤다.
그는 비버와 칼라치, 이디언이 나타나자 재빨리 감방 안 깊숙한 곳에 앉아 벽을 봤다.
저들이 두려운 건 아니었지만, 굳이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조용히 저들이 사라지면 그도 가만히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윌벤슨이 그의 정체를 밝히려고 하는 것 같았다.
“주인님, 왜 그러십니까?”
비버의 물음에 윌벤슨은 잠시 도현의 등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답했다.
“내가 갇혀 있는 동안 내가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를 해 주던 자들이다.”
“꺼내 줄까요?”
비버가 열쇠 뭉치를 뒤적였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윌벤슨은 도현의 등에서 시선을 뗐다.
“칼라치, 그만 가세.”
“예.”
그들이 사라진 후 딘과 리드만은 긴장감이 풀려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도현이 칼라치와 어떤 악연이 있는지 들어서 잘 알고 있던 그들은 칼라치가 도현을 알아볼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영주님, 윌벤슨이 그래도 우리와 정이 들었나 봅니다. 칼라치에게 도현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숨긴 걸 보면요.”
리드만이 숨을 돌리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도현과 우리를 상대하려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모른 척했겠지. 아무튼 다행이야, 조용히 지나가서. 안 그런가, 도현?”
조금 전까지 칼라치가 서 있던 복도를 보며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굳이 누가 진짜 위기였는지는 딘이나 리드만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담한 자들이야. 꼬리를 말고 숨어 있어야 할 자들이 지하 감옥에 들어와 윌벤슨을 탈옥시키다니. 스므차가 알면 상당히 분노하겠어.”
“간수장 빌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습니다.”
리드만이 딘의 말을 받아서 말했다.
“벌써 죽었는지도 모르지, 칼라치 손에.”
그때 지하 감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들은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가 복도에 울리는가 싶더니,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세 명이 화로가 만든 불빛에 큰 그림자를 만들며 도현 일행의 감방 앞에 섰다.
“어이, 얼굴을 내밀어 봐.”
혹시 몰라 아까처럼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딘과 리드만의 몸이 움찔했다.
“내 말 안 들려? 칼 집어 던진다!”
짐브리오의 위협적인 목소리에 딘과 리드만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들의 얼굴을 힐끔 살펴본 짐브리오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도현에게 소리쳤다.
“야, 인마! 넌 왜 안 돌아봐.”
짐브리오가 언성을 높이자 그때서야 도현이 뒤로 돌아앉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놀람과 반가움, 그리고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짐브리오임을 벌써 눈치챈 것이다.
“어? 여기 있네.”
도현을 찾아낸 짐브리오는 기쁜 얼굴로 서둘러 감방 문을 열었다.
“하필 제일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사람을 고생시키나. 도현, 어서 나와.”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섰다. 두건을 했지만 체형과 눈빛 들을 보니 누군지 다 알 수 있었다.
짐브리오와 로나, 그리고 눈가에 주름이 많은 어베인이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우리가 누구인 줄 알겠어요?”
로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모를 리가 있겠어요, 로나.”
“기억하고 있네요.”
로나가 두건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걸을 수 있겠는가?”
어베인이 조용히 물었다. 오면서 감옥 안을 살폈는데, 안에 죄수들은 대부분 다 만신창이가 되도록 고문을 받은 상태였다. 도현도 그런 게 아닌지 걱정한 것이다.
“대장, 얼굴 보면 모르겠습니까, 아주 건강해 보이는데요 뭘. 자네 뭐 하나, 어서 나오지 않고.”
짐브리오가 손짓을 했다.
“도현, 이 사람들 아는 사인가?”
딘과 리드만이 놀라며 도현을 쳐다봤다.
“예전에 제 동료들입니다.”
“그럼 이들이 용병이란 말인가?”
딘이 두건을 쓴 여자 한 명과 남자로 보이는 두 명을 둘러보며 말했다.
“용병은 무슨 용병. 우린 도둑이다!”
짐브리오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뭐라고 도둑?”
깜짝 놀라는 그들에게 짐브리오가 말했다.
“도현과 아는 사이 같은데, 특별히 같이 풀어 주지. 너희들도 빨랑 나와. 대신 너희는 따로 도망친다.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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