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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73화 (173/575)

[173] 디 임팩트 7권 23화

투구를 벗은 딘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단정히 했다.

“오랜만에 투구를 착용하니 답답하군. 자, 이제 몸도 가볍게 풀었으니 그만 가 볼까?”

“네.”

방을 나선 그들은 친위대가 지키고 있는 복도를 통과해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므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따라 지하 유적으로 내려간 그들은 하늘을 떠받치는 손동작을 하고 있는 거대한 인간 석상 앞에 섰다.

“성주께서는 봉인된 수정에서 사악한 존재가 나왔다고 하셨는데, 그 수정의 기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딘이 투구를 옆에 끼고 물었다.

“그건 너희들이 그놈을 없애고 내려오면 말해 주겠다.”

“난 여기 도현과 달리, 속이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닙니다. 혹시 우리를 버리는 병사처럼 이용하려고 한다면, 뒤끝이 뭔지 제대로 경험하실 겁니다.”

딘이 차가운 눈빛으로 스므차를 응시했다.

“말이 많구나.”

스므차는 거대 석상의 발뒤꿈치 쪽으로 걸어갔다.

석상의 발 하나의 크기가 집 한 채보다 커서 앞에 선 사람이 왜소하게 보일 정도였다.

스므차가 석상의 발뒤꿈치 중간에 튀어나온 주먹만 한 돌을 손바닥으로 때리자, 안으로 쑥 밀려들어 갔다.

그는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석상의 발뒤꿈치를 힘입게 잡아당겼다.

쿠쿠쿠쿵우웅.

발뒤꿈치의 한쪽 면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왔다.

뒤에서 지켜보던 도현이 감탄을 했다.

스므차가 떼어 낸 발뒤꿈치의 석상 부분은 얇은 두께의 석벽이어서 떼어 냈다가 다시 끼워 맞출 수 있는 구조였다.

스므차는 떼어 낸 석상의 일부를 바닥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안에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다 보면, 석상의 허리 부근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 녀석이 있다. 혼돈의 마나를 가진 너희들은 녀석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아 정신적으로 이상은 없겠지만, 그래도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차라리 같이 들어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딘이 투구를 머리에 쓰며 제안했다.

“내가 미치면 너희들은 다 죽는다.”

“우리끼리 가지요. 도현, 들어가세.”

도현은 고개를 젖혀 거대 석상의 허리 부근을 잠시 바라보다가 횃불을 들고 앞서 가는 딘을 따라 석상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어두웠는데, 지하 감옥보다 훨씬 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음산하군.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감시하는 것 같아.”

횃불로 어둠을 쫓으며 좁은 계단을 오르던 딘이 말했다.

“기분 탓이겠지?”

“꼭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석상 내부로 들어오면서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그 사악한 존재는 허리 부근에 있다고 했는데, 설마 밑으로 내려온 건 아니겠지?”

딘이 횃불을 크게 한번 휘두르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도현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나선형 계단을 밟았다.

‘마치 귀신을 상대하러 가는 기분이야. 몬스터도 아니고, 사람의 형상을 했지만 사람도 아니고. 혼돈의 마나에서 생성된 존재라니.’

“아니, 이건 뭐야?”

딘이 횃불로 나선형 계단 벽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가리켰다.

도현이 보니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생생한 모습으로 벽에 그려져 있었는데, 그 눈에서 피가 흘러내려 계단 밑에 고여 있었다.

기괴하고 섬뜩한 장면이었다.

‘이게 실제의 모습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도현은 사악한 존재가 마법을 부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그는 눈에서 피를 흘리는 여신의 벽화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 순간 여신이 벽화에서 튀어나와 도현을 감싸고 나선형 계단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도현이 여신의 목을 비틀어 벽에 집어 던졌다.

캬아아아아!

긴 비명 소리와 함께 여신이 벽화 속으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로, 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네,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도현은 벽화를 다시 살폈다. 피를 흘리는 여신은 사라지고 색이 바랜 오래된 여신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딘은 깊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벽화를 보며 말했다.

“사악한 존재가 마법까지 사용하나 보군. 쉽지 않은 싸움이겠어. 한데 스므차는 왜 이런 말을 해 주지 않았지?”

“그도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정도 마법은 영주님과 제가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얼마 뒤 계단이 끝나며 넓은 홀처럼 생긴 공간에 도착했다.

화르르르르.

횃불로 입구에 있는 화로에 불을 붙이자, 그 불길이 홀 전체로 퍼져 가 내부가 환해졌다.

횃불을 내려놓은 딘은 장검을 뽑았고, 도현도 두 자루 검 중 하나를 뽑아 손에 쥐었다.

홀 좌우 벽면 곳곳에 전쟁을 묘사한 벽화가 있었고 가장 안쪽 끝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망토를 한 사내가 턱을 괴고 앉아 홀 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저놈인가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쳐다보는 꼴이 스므차 이상으로 오만하군.”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홀 내부로 진입했다. 그때 망토를 한 사내의 몸 주변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온 검은 안개가 바닥을 타고 와 순식간에 그들의 주변을 휘감았다.

도현이 눈부신 속도로 칼을 휘두르자, 검은 기운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혼돈의 마나를 가진 자들이로구나, 나를 보고도 멀쩡한 걸 보니.

우울한 음성이 홀 내부에 메아리쳤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가 말을 한 것 같았지만, 그는 입을 벌려 말하지 않았다. 공중에서 만들어진 목소리가 홀 전체로 퍼져 메아리를 만든 다음, 도현과 딘의 귀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같은 말이 여러 번 반복돼서 들렸다.

“특별히 의뢰를 받고 왔다. 얌전히 네놈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 아니면 우리 손에 비참하게 혼나다 없어질 테니까.”

딘이 검을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감히 나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도현, 해치우세.”

“예.”

딘과 도현은 홀 끝에 있는 그를 잡기 위해 주의하며 접근했다.

우우우우우.

심상치 않은 소리에 도현과 딘은 옆을 봤다.

홀을 둘러싼 전쟁 벽화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길게 그려진 벽화 속 인물들이 몸부림을 치며 한 명 한 명 현실 속으로 빠져나오려 했다.

“영주님, 서둘러야겠습니다.”

신법을 발휘해 달려가던 도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의자에 앉아 있던 망토를 걸친 사내가 둥둥 떠서 전쟁 벽화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망토 사내는 벽화 속에 서서 도현을 보고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크캬캬캬캬.

쿠웅. 쿵쿵.

작은 크기로 그려져 있던 벽화 속 인물들은 현실로 나오자 그 크기가 실물같이 변해서 홀 내부를 가득 메워 갔다.

심지어 전투마를 탄 기마병이 창을 들고 붉은 눈빛으로 도현을 노려보기까지 했다.

“포위됐네.”

홀을 둘러싸고 있는 전쟁 벽화에서 나온 수많은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하지만 이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도현의 호기로운 대답에 딘이 미소를 지으며 투구에 걸린 안면 보호대를 밑으로 내렸다.

“그럼 쓸어버리세. 이얏!”

은색 철판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딘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마주 오던 병사의 검을 통째로 잘라 버리고, 그 몸까지 베어 버렸다.

죽은 병사가 검은 안개로 변해 사라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도현은 고개를 옆으로 꺾어 창을 피했다.

서늘한 느낌이 얼굴을 지나쳤다.

‘실력이 뛰어난 병사들이다. 실제 고대의 병사들을 모델로 한 것 같아.’

도현은 들고 있던 검을 한 바퀴 돌려 창으로 공격한 병사의 허리를 베었다.

푸시시시.

병사는 자신의 무기와 함께 검은 안개로 변해 순식간에 흩어졌다.

히이이잉!

전투마가 울부짖으며 도현을 앞발로 깔아뭉개려 했다.

콰아앙.

도현의 주먹이 전투마의 머리에 적중하자, 큰 소리와 함께 말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꽈직. 우저저적.

말은 즉사하고, 기마병은 목이 꺾였다.

‘길게 시간 끌수록 또 어떤 게 나올지 몰라. 속전속결이다.’

스르릉.

한 자루 검을 마저 뽑은 도현은 두 자루 검을 들고 홀 내부를 가득 메운 병사들 속으로 난입해 빠르게 적들을 죽여 나갔다.

병사들은 강했지만 마치 천적을 만난 것처럼 도현의 검 속에 검은 안개로 변해 사라져 갔다.

만약 병사들이 피를 흘렸다면 홀 내부는 피로 채워졌을 정도로 도현이 상대한 병사들의 수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곤란한데. 적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도현은 화살을 쏘는 병사의 가슴에 검을 꽂고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전쟁 벽화에서 그와 딘이 죽인 만큼 다른 병사들이 쏟아져서 여전히 병사들 수는 비슷한 상태다.

‘이대로 간다면 끝이 없어.’

휘리리릭.

단번에 병사 서너 명을 베어 버린 도현은 딘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영주님!”

“그래, 무슨 말 할지 알아. 죽여도 죽여도 녀석들의 수가 줄지 않지?”

딘은 도끼를 장검으로 쳐 낸 뒤 뾰족한 강철 장화로 상대의 턱을 찍었다. 목과 턱 사이에 구멍이 난 병사가 퍼엉 소리를 내며 검은 안개로 변해 흩어졌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우리가 먼저 지치겠습니다!”

도현이 몸을 던져서 덮쳐 오는 병사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며 외쳤다.

“좋은 생각 있나?”

“이들을 조종하는 사악한 존재를 제거하면 자연히 이들은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그림 속에 들어간 놈을 어떻게 잡겠나?”

딘이 이마로 병사의 얼굴을 찍으며 물었다.

그는 충격으로 뒤로 주춤 물러나는 병사의 목을 장검으로 가볍게 날려 버렸다.

“벽을 파괴해 버릴 생각입니다.”

“벽을?”

딘의 눈이 은색 투구 속에서 반짝였다.

“모든 건 근원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벽과 함께 사라지기 싫다면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겠지요.”

“좋은 생각이야. 앞장서게. 뒤는 내가 받치겠네.”

“예!”

둘은 사악한 존재가 스며들어 간 벽화를 향해 일직선으로 뚫고 들어갔다.

병사들이 발악을 하며 막으려 했지만, 도현의 저돌적인 돌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나오지 않으면 넌 벽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도현이 양손에 쥔 두 자루 검에 내공을 가득 주입해 단호한 모습으로 벽화가 그려진 벽을 훑고 지나갔다.

콰콰콰쾅쾅.

그냥 지나친 것 같지만, 도현은 그 짧은 순간에 무려 서른 네 번의 검을 휘둘러 벽화와 벽을 동시에 파괴했다.

“나도 있다, 이놈아!”

뒤따라오던 영주 딘이 큰 호통과 함께 장검을 양손으로 잡고 크게 한 번 횡으로 그었다.

쿠쿠쿵쿵.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그의 마나가 벽 속에서 폭발을 일으키자, 도현의 검에 헐렁해진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지독한 놈들!

벽화에서 아슬아슬하게 도망쳐 나온 망토 사내가 홀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한 번 들어가 보아라. 그 벽도 부숴 버릴 테니까!”

딘이 돌진해 오자 망토 사내가 허공으로 부유하며 재빨리 반대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그곳엔 도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은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을 유지하며 오른손 검을 부드럽게 위로 휘둘렀다.

번쩍이는 검광이 땅에서 하늘로 솟았다.

강렬하고 눈부신 검광이 허공에 부유 중인 망토 사내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고, 그 순간 거대한 비명 소리와 함께 홀이 지진이라도 난 듯 진동했다.

-캬아아아아, 감히 네놈이! 네놈이, 나를!

망토 사내의 몸은 허공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붉은 빛을 사방으로 토해 냈고, 그 빛에 노출된 병사들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딘과 도현은 허공에서 소멸돼 가는 망토 사내를 응시했다.

우우우우웅.

홀의 진동은 사악한 존재가 사라지며 몸부림치는 기운 때문인지 더욱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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