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디 임팩트 7권 24화
“이거 이러다 석상이 내려앉는 건 아니겠지?”
“저도 약간 불안하긴 하군요.”
도현은 검을 허리에 차며 언제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홀의 진동은 점차 줄어들었고, 망토 사내는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곧 석상을 나가 세상을 돌아다니려 했는데…… 네놈이…… 날 이렇게 만들다니.
허공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점 미약해지는가 싶더니, 사악한 존재가 폭발을 일으키며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그 순간 도현은 막대한 기운이 타투를 통해 흡수되는 게 느껴졌다.
‘이건 뭐지. 엄청난 기운이야!’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막대한 양의 기운이 타투를 통해 흡수됐고, 도현은 저도 모르게 등을 활처럼 만들며 사자후를 터트렸다.
“크아아아!”
“아니 도현, 자네 왜 그러나!”
깜짝 놀란 딘이 도현에게 다가갔다.
“어디 아픈 건가?”
도현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딘에게 손짓을 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정말 이상 없는 거야?”
“네, 정말 괜찮습니다.”
“흠, 난 또 자네 몸에 그놈이 스며들어 갔나 했지. 정말 도현이 자네 맞지? 응?”
딘이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보자, 도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아니니까 걱정 마십시오.”
“다행이군.”
딘이 의심을 풀며 도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 마지막에 날린 자네의 검이 아주 환상적이더군. 그 검은 나도 피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 하하하!”
사악한 존재를 성공적으로 제거했다는 기쁨에 영주 딘은 마음껏 웃었다.
사악한 존재가 소멸한 허공을 바라보는 도현의 눈빛은 놀람과 기쁨이 혼재했다.
‘내공이 엄청나게 늘었어. 거의 3분지 1은 늘어난 것 같아.’
한 번에 워낙 많은 내공이 늘어서인지 단전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대체 어떻게 그 녀석의 힘을 내가 흡수한 거지? 혼돈의 마나에서 생성된 존재라서 그런 것인가?’
몬스터는 혼돈의 마나를 흡수하며 산다. 그리고 도현은 그런 몬스터를 죽여서 그 혼돈의 마나를 흡수하고, 그것이 내공으로 변한다. 그런데 사악한 존재가 마치 몬스터처럼 그에게 기운을 넘겨준 것이다.
‘스므차에게 저 사악한 존재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야겠어.’
도현은 상념에서 깨어나 딘을 돌아봤다.
그는 홀을 조사하고 있었다.
“스므차가 이유 없이 이 녀석을 잡아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네. 물론, 이런 사악한 존재가 석상 밖으로 탈출하면 성과 도시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에 없애려 한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또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거든.”
“그럴 수도 있겠군요.”
“바로 내려가지 말고, 석상 내부를 꼼꼼히 조사한 뒤 내려가세.”
“알겠습니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조사하다가 홀 한쪽에 놓인 작은 상자와 그 안에 들어 있는 수정 구슬을 발견했다.
“이게 그 사악한 존재를 봉인시켜 놨다던 수정 구슬인가 보군.”
금이 가 부서진 수정 구슬은 그리 크지 않았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였다.
“이 안에서 그런 존재가 나왔다는 게 신기하군요.”
도현은 그 수정 구슬을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스므차가 설명해 준다고 했으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 있다가 들어 보자고.”
수정 구슬을 작은 상자 안에 넣은 그들은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석상 윗부분은 어떤지 조사하기 위해 홀 끝에 있는 계단을 이용해 위로 올라갔다.
나선형 계단은 석상의 머리 꼭대기와 연결되어 있었다.
“흠, 아무것도 없는데.”
“실망하시는 것 같습니다?”
도현이 웃으며 물었다.
“조금은 그래. 자아, 그만 내려가지.”
“네.”
도현은 내려가기 전 석상의 머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화로 옆에 서 있는 스므차가 아주 작게 보였다.
수정
도현과 딘이 사악한 존재를 없애고 내려오자 스므차는 바람처럼 석상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작은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내려왔다. 그들이 홀에 놔두고 내려온 수정 구슬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어떻습니까, 잘 해결하고 온 것 같습니까?”
딘이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폈다.
지하 유적을 털다가 들켜서 감옥에 갇힌 건 그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성공했으면 모를까, 얻은 거 하나 없이 도둑이라고 무시하는 스므차와 간수장 빌 때문에 속이 얼마나 편치 않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스므차가 못한 일을 도현과 함께 해결하고 나니, 은근히 스므차를 이긴 것 같아 마음이 즐거웠다.
도현은 그런 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나서지 않고 그가 말하는 동안 조용히 뒤에 서서 가볍게 미소만 짓고 있었다.
사실 그도 뜻하지 않게 내공이 크게 늘어서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다.
“수고했다. 실패도 예상했는데 한 번에 끝을 내다니.”
“별말씀을.”
딘은 투구를 옆구리에 끼고 껄껄 웃었다.
“너희들이 임무를 완수했으니, 나 또한 약속을 지켜야겠지.”
도현과 딘이 살짝 긴장을 하며 스므차의 입을 주시했다. 그토록 원하던 폭주 현상의 해결책이 마침내 공개되려는 순간이었다.
스므차는 지하 광장에 시선을 두며 천천히 입을 뗐다.
“고대인들이라고 해서 혼돈의 마나를 아무나 수련한 건 아니다. 의지와 정신력이 아주 강한 자들만이 극소수로 익혔지. 그러나 혼돈의 마나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어두움은 의지와 정신력만으로 제어를 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고대인들은 안전장치를 마련했지.”
잠시 말을 멈추고 도현과 딘을 둘러본 그는 바닥에 내려놓은 상자 안에서 수정 구슬을 꺼냈다.
“그 안전장치가 바로 이것이다.”
“수정?”
“이 수정은 혼돈의 마나에 포함된 본질적인 어두움을 빨아들여 정화시키는 힘이 존재한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 수정을 통해 폭주 현상을 해결해 왔다.”
도현과 딘이 모두 놀라며 손상된 수정을 응시했다.
“그럼 우리가 상대했던 사악한 존재라는 게?”
“혼돈의 마나를 수련한 고대인들 중 누군가의 몸에서 나온 어두움의 일부겠지. 원래는 수정 안에서 정화가 됐어야 하지만, 수정에 이상이 생겼는지 그 긴 세월 동안에도 정화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지난 30년간 석상에 머물며 세상의 혼돈의 마나를 먹이 삼아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을 그냥 방치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이 강해져 종국엔 이 도시를 파멸로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너희들이 한 일은 대단한 것이다.”
스므차가 칭찬을 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그는 도현과 딘이 반드시 임무를 성공해 주기를 바란 것 같았다.
“놀라운 이야기군요. 수정이 폭주의 해결책이었다니. 그럼 그 수정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도현이 궁금해하는 걸 딘이 물었다.
“이 수정은…… 우리들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들 세상에서 구할 수 없다니?”
“이계의 물건이다. 평범한 수정 같지만, 이 투명한 수정은 고대 시대에만 잠시 문이 열렸던 이계에서 흘러나온 물건이다.”
“뭐라고!”
놀란 딘이 눈을 크게 떴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이계에서 나온 수정은 개수가 몇 개 안 됐다. 세월이 흘러 그 수정의 수도 극감해, 최후에는 혼돈의 마나를 익히는 자들이 아예 사라졌다고 한다. 아마 이 손상된 수정이 최후의 수정이었을 거다.”
딘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리드만과 함께 폭주를 해결하기 위해 긴 여행을 해 왔다. 그토록 고생한 끝에 이제 겨우 스므차의 입을 통해 해결책을 알게 됐는데, 전혀 쓸모없는 방법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계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딘의 은빛 투구가 땅으로 떨어졌다.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도현도 사실 충격을 받았지만 딘이 창백하게 변한 얼굴로 휘청이자 그를 얼른 부축했다.
“성주는 지금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딘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다그치듯 물었다.
“고대 문헌에 쓰인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한 거다. 바로 너희들이 훔치려던 책 내용이야.”
“고대에 잠시 문이 열렸다는 이계에서 나온 수정을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딘이 분노하며 발을 굴렀다.
“나를 탓하는 거냐?”
스므차가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이치가 그렇잖습니까! 구할 수 없는 수정으로 인해 폭주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저기 저 석상에 갇혀 있는 그 괴물을 없애기 위해 우리를 이용한 게 아니오!”
“난 그 방법을 알려 준다고 했을 뿐이다. 이계의 수정이든 지옥의 수정이든 구하는 건 너희들의 몫이다.”
“뭐요?”
딘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눈빛이 타올랐다.
“영주님.”
도현이 옆에서 급히 만류했다.
“도현, 자네도 듣지 않았나. 이 얼마나 황당한 결말인가.”
“저도 속상하지만, 이래서 해결되는 건 없잖습니까. 진정하십시오, 영주님.”
“리드만이 들으면 얼마나 가슴 아파 하겠나. 그 전에는 희망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희망도 꺾어 버리는 말을 돌아가서 내가 해야 하다니.”
도현도 표정이 어두웠다. 이 문제는 비단 딘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므차를 쳐다봤다.
“성주님, 어떤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 수정을 찾을 방법이요.”
“대륙에서 다크캐슬로 오기 전까지 난 이계의 수정이란 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책에서도 본 적이 없지. 고대 문헌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도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계의 수정은 이미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보는 게 맞다.”
다소 냉정한 그의 대답에 도현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말한 건 수정을 이용한 방법이고, 이제부터 다른 방법을 얘기해 주겠다.”
“예? 다른 방법이 또 있습니까?”
도현이 놀라며 급히 물었고, 딘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다시 스므차의 입을 주시했다.
“그건 말할 수 없이, 아주 강해지는 것이다.”
스므차가 단호한 어투로 말을 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수정을 먼지처럼 부숴 버렸다.
“고대 문헌에 적힌 두 번째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극강의 경지에 오르면, 흡수되는 모든 마나들은 서로의 속성이 사라지고 합쳐진다. 혼돈의 마나가 가진 본질적인 어두움의 속성도 그때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 폭주의 위험도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극강의 경지라면, 대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도현이 물었다.
“그건 내가 말해 줄 수 없다. 내가 그 경지에 올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대 문헌에는 전설적인 고대 영웅 중 두 명 정도가 그런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데, 쉽지는 않겠지.”
“이계의 수정을 구해야 한다는 것과 차이가 없을 만큼 현실성이 없는 얘기로군.”
딘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해 줄 말은 다 했다. 그만 나가도록 하지.”
스므차가 몸을 돌리자 딘이 외쳤다.
“성주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이런 기분으로 더 이상 감옥에서 남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스므차는 딘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큰일을 했으니, 석방시켜 주겠다.”
도현과 딘이 지하 감옥에 나타나자 간수장 빌은 수하들을 시켜 다시 수갑과 족쇄를 채우려 했다.
“어허, 물러나라!”
딘이 호통을 치며 간수들을 뒤로 밀쳐 냈다.
“죽고 싶나!”
간수장 빌이 눈썹을 위로 올리며 몽둥이를 들었다.
“간수장, 이걸 잘 보시오, 뭐라고 쓰여 있는지.”
딘이 스므차의 문장이 찍힌 석방 명령서를 빌의 눈앞에 흔들었다.
빌은 딘의 손에서 종이를 낚아채 자세히 읽어 봤다.
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오늘 즉시 석방하라는 성주의 친필 명령서였다.
“어서 리드만을 데리고 오시오. 해 지기 전에 성에서 나가고 싶으니까.”
“빌어먹을!”
빌이 발로 의자를 걷어찼다. 죄수들이 없어 오늘부터 도둑들을 실컷 괴롭히려고 했는데, 석방 명령이 떨어졌다.
“네놈들, 다음에 들어오면 그땐 거꾸로 매달아서 매질을 할 것이다. 앞으로 도둑질하지 말고 똑바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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