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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76화 (176/575)

[176] 디 임팩트 8권 1화

재회

“아직 감옥에 있을 것 같은데.”

귀마개를 한 짐브리오는 추위에 몸을 웅크리며 어두운 골목길을 걸었다.

빈둥거리며 벽난로 앞에서 졸고 있던 그를 로나가 깨워서는 술집에서 도현을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한 달을 채우려면 아직 멀었을 텐데, 뭐 그리 급하게 벌써부터 술집에서 기다리란 건지. 에잇, 귀찮아.”

어제도 새벽까지 기다리다가 돌아왔었다.

“안 되겠어. 내일은 대장이나 로나보고 가라고 해야지.”

술집에서 대화 상대 없이 홀로 앉아 있는 것은 그에게 지루하고도 힘든 일이었다.

“여자가 있는 술집에서 만나자고 할 걸 그랬어. 그랬다면 매일 좋았을 텐데, 흐흐흐.”

야릇한 상상을 하며 골목길을 빠져나온 그는 시원하게 뚫린 넓은 길을 한동안 걷다가 노스리어 구역에 도착했다.

얼마 전 전쟁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하긴 그놈들이 죽든 말든 자신들 일이 아니니까.”

‘흰 뿔 사슴’ 술집은 노스리어 구역에서도 제일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전설적인 해적의 일원이 다크캐슬에 정착해 세운 술집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그들을 동경하는 악당들이 제법 많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나같이 얼굴이 흉악스러운 놈들이 가득 보였다.

‘내 얼굴은 저 녀석들에 비하면 아주 잘생긴 편이지. 선하게 생겼고.’

짐브리오는 1층을 거쳐 2층으로 올라갔다.

혹시나 하고 살펴봤지만, 도현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1층으로 다시 내려가 작은 탁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술을 시키고 꾸벅꾸벅 졸던 그의 앞에 그림자가 졌다.

슬며시 눈을 뜬 짐브리오가 고개를 들어 앞을 응시했다.

허리 양쪽으로 칼을 한 자루씩 찬 도현이 가죽 갑옷 차림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짐브리오.”

“이 자식, 왔구나, 크하하하!”

무엇이 그리 좋은지 짐브리오는 술집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으며 도현을 반겼다.

“어떻게 된 거냐. 예상보다 빠르게 나온 것 같은데.”

“그렇게 됐습니다.”

도현은 의자를 빼서 앉으려 했다.

“야, 일어나. 나가자.”

“예?”

“어제도 너 기다리면서 새벽까지 여기에 엉덩이 붙이고 있었더니 엉덩이가 아주 납작해졌어.”

술집을 나온 짐브리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도현과 함께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큰일 났네. 로나가 너 보면 또 잘난 척할 텐데.”

“잘난 척요?”

“너 감옥에서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내가 그랬거든. 술집에서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말이야. 그런데 지금 너랑 같이 가면 로나가 그것 보라면서 날 얼마나 괄시하겠냐?”

“그럼 며칠 뒤에 다시 올까요?”

“그럴래?”

진지한 표정으로 짐브리오가 대답을 하자 당황한 건 오히려 도현이었다. 농담 삼아 한 말을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전 그래도 상관없지만, 짐브리오는 다시 며칠 동안 저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잖아요. 그래도 괜찮습니까?”

“흠, 그건 곤란하지.”

잠시 고민을 한 짐브리오는 걸음을 옮겼다.

“할 수 없다. 그냥 가자.”

미소를 지은 도현은 짐브리오를 따라가며 조용히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말도 마라. 너하고 헤어지고 커딜과 이안이 보낸 녀석들이 어찌나 집요하게 쫓아오는지 아주 짜증 났다.”

“그들을 피해서 다크캐슬로 온 거군요.”

“귀찮아서 말이지. 아참, 네 뒤를 추적하는 마법사 녀석도 있었는데, 혹시 만나 봤냐?”

도현은 땅을 반죽처럼 만들어 그의 두 다리를 꼼짝 못하게 했던 중년의 마법사를 떠올렸다. 그로 인해 숲에서 폭주 현상을 겪었기 때문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만났어요.”

“그래? 어떻게 했냐? 로나는 마법사 때문에 네가 곤경에 빠졌을 것 같다고 걱정을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는데.”

“그게 말이죠. 제 손에…… 죽었습니다.”

약간 앞서 가던 짐브리오가 뜻밖이라는 얼굴로 걸음을 다시 멈췄다.

“죽였어? 그 마법사를? 피한 게 아니라?”

“예.”

“놀라운데. 널 쫓아간 마법사는 땅을 주무르는 능력이 있어서 보통 까다로운 녀석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말이야. 게다가 활을 잘 사용하는 부하들도 있고. 네가 상대한 게 그놈들 맞지?”

재삼 확인하는 그에게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둑이 싸움까지 잘하면 아주 좋은 법이지. 잘했어.”

짐브리오는 도현의 어깨를 툭 치고는 다시 앞서 걸어갔다.

“언제고 기회를 봐서 그 빌어먹을 영주 두 놈의 보물 창고를 탈탈 털어 먹자고. 제 놈들 한 짓은 생각 않고 우리를 애 먹이는 놈들의 눈물을 쏙 빼 놔야지. 근데, 넌 거기 왜 갇혀있던 거야? 다크캐슬은 왜 온 거고? 마법사도 죽였으면 쫓겨 온 건 아닐 텐데.”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모두 모였을 때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럼. 어차피 가면 대장이고 로나고 궁금해서 또 물어볼 테니까.”

도현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는 짐브리오의 어깨는 춤이라도 추듯 매우 흥겨워 보였다.

“짐브리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누구?”

“헬구스요. 제가 감옥에서 빼내 달란 사람요.”

“아, 그 인간. 성 밖까지 무사히 데려다 줬지. 어찌나 무겁고 뚱뚱하던지 내가 고생 좀 했어.”

“고맙습니다.”

“고맙긴, 에이취!”

콧물을 닦은 짐브리오는 서둘러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 일이 있었군.”

도현이 혼돈의 마나 때문에 다크캐슬에 오고, 전쟁이 난 사이에 스므차의 대저택 지하에 있는 고대 유적지를 조사했다는 사실에 탁자에 둘러앉은 어베인과 로나, 짐브리오는 모두 놀라워했다.

“그런 자네를 스므차가 고이 보내 준 이유가 뭔가?”

어베인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바라던 게 있더군요.”

도현은 목숨을 걸고 자신을 탈옥시키려고 한 의리 있는 이들에게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스므차로서는 밑지지 않은 장사였네요. 그가 처리하기 어려운 괴물을 별다른 수고로움 없이 도현의 힘을 빌려 없앴으니까요.”

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가 됐다는 듯 말했다.

“나오면서 별다른 보상은 못 받았고?”

“성내에 머물고 싶으면 머물라고 했습니다. 집도 제공해 준다고 했고요.”

“에이, 그건 보상이 아니지. 상자에 금화와 보석을 가득 채워 주면 몰라도.”

짐브리오가 입맛을 다셨다.

“고대 지하 유적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도현을 살려 준 것만으로도 스므차로서는 최대한의 보상을 한 셈이라고 볼 수 있겠지.”

어베인의 차분한 말투에 짐브리오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대장. 도현이 없으면 그 괴물을 누가 처치했겠습니까? 내가 보기엔 스므차가 아주 큰 이득을 본 셈이니, 그걸 어느 정도는 도현에게 나눠 줬어야죠. 목숨은 목숨이고, 일은 일이니까.”

“가서 말해요, 돈 달라고. 아마 스므차가 당신의 목을 단번에 잘라 버릴 거예요.”

로나가 목이 베여 죽는 시늉을 하며 도현의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어깨에 기댄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서 내려다보던 도현은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살짝 튕겼다.

그 충격에 어깨에 기대 빤히 도현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로나의 얼굴이 스르륵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잘린 목이 다시 돌아왔네.”

로나의 말에 어베인과 짐브리오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혼돈의 마나를 해결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 참 안됐네.”

“그건 그래요. 이계의 수정이라니. 어디서 그걸 구하겠어요?”

로나가 약간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너 갑자기 미치는 건 아니겠지?”

짐브리오가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도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면요.”

“대장, 이 녀석 당장 내보냅시다. 잠자다가 이 녀석이 미쳐 날뛰면 누가 감당하겠어요? 마나도 높고 수준 높은 검술까지 겸비한 녀석인데.”

“그 말을 들으니까 감정이 끓어오르는데요?”

“아, 알았어. 진정하고 마음 가라앉혀.”

“받으세요.”

도현은 짐브리오에 이어 로나와 어베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빈 술잔에 술을 일일이 따라 주었다.

“다들 고맙습니다. 솔직히 그날 감옥에 여러분들이 왔을 때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놀랍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로나가 어찌나 널 구하자고 성화던지.”

“나만 그랬나? 같이 의견이 모인 거지.”

도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탁자 주변의 그들을 둘러봤다. 도둑이지만 정이 가는 이들이었다.

“다시 모이니 좋군. 건배.”

젊었을 적 한 인물 했을 것 같은 주름진 어베인이 단숨에 술을 들이켰고, 뒤따라 도현과 짐브리오, 로나도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대장, 이제 기다리던 도현도 왔으니까, 내일이라도 추운 이 도시를 떠납시다.”

도현을 기다리며 추위를 견딜 만큼 견딘 짐브리오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함께 갈 거지?”

어베인이 맞은편 도현을 응시했다.

폭주와 관련돼서 얻을 정보는 다 얻은 이상, 도현이 다크캐슬에 계속 머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은 도현이 당연히 함께 이 도시를 나가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전 당분간 다크캐슬에 더 머물러야 합니다.”

“아니, 왜요? 이유가 있어요?”

로나가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건…….”

도현이 말끝을 흐리자, 짐브리오가 주먹을 들어 보였다. 덩치만큼 주먹도 커다랬다.

“사람 속 터지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 봐. 여기서 볼일 다 본 것 같은데, 왜 같이 안 나간다는 거야? 우린 널 기다리면서 본토에 돌아가서 할 일도 미리 짜 놓았는데.”

짐브리오는 도현과 같이 다니고 싶었다. 그래야 그의 어깨가 가벼워지며 무거운 짐과 귀찮은 일들을 도현에게 떠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현이 과묵하고 도둑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야비한 습성이 보이지 않아서 무척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했다.

로나의 섭섭한 눈빛과 짐브리오의 분노한 듯한 눈빛에 도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 몬스터가 좋습니다.”

“이런 미친놈!”

짐브리오가 주먹으로 탁자를 세게 쳤다.

“그놈의 몬스터 타령을 또 하네. 대체 이유가 뭐냐? 지난번에도 몬스터를 잡으면서 검 수련을 한다고 하더니, 또냐?”

“짐브리오, 그만해. 사정이 있겠지.”

어베인은 파란 눈을 빛내며 도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도현은 그 눈빛이 매의 눈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좀 물어봐도 되나? 난 괜찮은데, 모두들 자네를 좋아해서 헤어지기 싫어하는 것 같아. 대체 몬스터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건가?”

도현은 턱을 한번 쓸어내리면서 천천히 말했다. 혼돈의 마나 얘기까지 나온 이상, 굳이 이들에게 말 못 할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제가 마나를 키우는 방식은, 바로 몬스터를 죽여 그들의 힘을 흡수하는 겁니다.”

“뭐라고요?”

“말도 안 돼!”

로나와 짐브리오의 눈이 커졌다.

“정말인가?”

“예, 그렇기 때문에 몬스터를 사냥하며 검을 수련하는 건 제게 중요하고 멀리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자네는 호뮬리스 산에서 몬스터를 처음 접한 게 아니었나?”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몬스터를 잡으면 마나가 상승하는 것을.”

“음.”

어베인은 술잔을 손안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몬스터를 잡아서 그 기운을 흡수한다는 얘기는 세상일에 경험 많은 그로서도 처음 들었다.

그렇다고 눈앞의 도현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어떻게 그런 것인가?”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정중한 그의 대답에 어베인은 더는 묻지 않고 주위를 둘러 봤다.

“들었지? 그렇다는군. 그러니 더는 다크캐슬을 떠나 본토로 함께 가자고 강제하지 마. 도현에게는 다크캐슬의 몬스터가 필요한 모양이니까.”

“쳇, 도둑놈이 아니라 사기꾼이군. 몬스터 잡아서 마나를 키운다니. 에라이, 사기꾼아! 내가 일 부려 먹을까 봐 그래서 멀리하려는 거지?”

중년의 짐브리오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는 거 알잖습니까. 저는 이 다크캐슬에 있는 몬스터가 정말 필요합니다.”

도현은 짐브리오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혼돈의 마나는 그 때문에 생긴 거예요?”

로나의 물음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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