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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77화 (177/575)

[177] 디 임팩트 8권 2화

그들 사이에 대화가 잠시 사라졌다. 모두들 제각기 생각에 잠긴 표정이라서 도현은 조용히 그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 대장, 우리끼리 그냥 갑시다. 도현은 우리와는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그러지.”

술을 비운 어베인은 옆을 봤다. 로나가 어두운 얼굴로 술잔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왜, 할 말 있나?”

“아니요. 할 말은요. 도현이 여기 머물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요. 이유도 분명한데요.”

로나는 술잔에 술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 아파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야, 밖에 추워! 찬 바람이 쌩쌩이야!”

짐브리오가 소리쳤지만, 그녀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저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네요.”

“당연하지. 로나는 너랑 헤어진 후, 네 이야기를 하루가 멀다 하고 했으니까. 너는 보통 도둑과 달리 꽤 멋있는 도둑놈이었거든.”

도현도 숙맥은 아니어서 짐브리오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그럴 리가요.”

“대장에게 물어봐. 대장, 아닙니까?”

어베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낡은 집 천장을 올려다봤다.

“로나는 낭만을 아는 도둑이지.”

로나는 뒤에서 도현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지만 모른 척했다.

“날씨가 추워요.”

“추우면 들어가요.”

똑 부러진 그녀의 대답에 도현은 무안해져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이거 입어요.”

도현은 손에 들고 온 그녀의 겉옷을 뒤늦게 생각해 내고서는 그녀의 어깨에 걸쳐 줬다.

추위에 떨던 로나의 몸이 바로 섰다.

“평생 몬스터만 잡고 살 건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죠.”

“그럼 같이 가요.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잖아요. 그래도 좋아요?”

로나는 고개를 돌려 도현을 똑바로 응시했다. 바람에 긴 금발이 휘날리며 그녀의 얼굴 반을 가렸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별빛처럼 빛났다.

“로나.”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당신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아요.”

도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다른 말 하지 말고, 그냥 함께 간다고 말해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즐거운 모험을 해요, 네?”

점점 뜨거워지는 그녀의 눈빛에 잠시 흔들리던 도현의 눈동자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스르릉.

도현은 칼을 뽑아 땅에 꽂았다.

“로나, 난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기로 맹세를 했어요. 이 검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원수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와줄게요. 함정을 파서라도 당신 아버지를 죽인 자를 반드시 내가…….”

“아니요. 검과 검으로 겨룰 겁니다. 힘과 힘으로 말이에요. 그것이 돌아가신 부친의 명예를 되찾는 진정한 복수니까요. 오직 내 손안의 검만이 그 일을 온전히 이룰 수가 있어요.”

단호한 그의 대답에는 어떤 틈도 보이지 않았다.

“강한 몬스터가 존재하는 다크캐슬은 그래서 내게 꼭 필요한 장소예요.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가 없어요. 로나, 미안해요.”

“좋아요. 그럼 여기 얼마나 오래 있을 거예요? 1년, 2년? 아니면 10년?”

로나는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도현이 검을 꽂아 둔 옆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옆에서 지켜볼 수는 있겠죠?”

“로나.”

“돌아올게요. 세상을 돌아다니며 전설의 씨드라도 찾아서 오겠어요. 복수는 직접 해요. 난 돕기만 할 테니까.”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차가울 정도로 매섭게 빛이 났다.

그녀의 대단한 기세에 도현은 일순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먼저 들어갈게요.”

돌아서는 그녀를 도현이 급하게 붙잡았다.

“잠시만요. 난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어디에 있는데요?”

“그게 저 멀리…….”

“기대할게요, 어떤 사람인지. 그래도 난 물러나지 않아요.”

도현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자신의 칼과 그녀의 단검이 나란히 땅바닥에 꽂혀 있었다.

“좋겠네. 로나의 고백을 받아서 말이야.”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짐브리오가 스윽 나타났다. 도현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의 행동은 은밀했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만난 시간이 그렇게 짧았는데.”

“말했잖아. 너는 꽤 멋진 도둑놈이라고. 내가 얼굴만 받쳐 줬다면 인생이 좀 더 즐거웠을 텐데.”

입맛을 다신 짐브리오는 로나가 꽂아 둔 단검을 빼서 품 안에 넣었다.

“사실 로나는 오래 못 살아.”

“예?”

도현이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야. 그녀 집안은 대대로 단명을 했어. 그녀 어머니도 지금 로나 나이보다 한두 살 많았을 때 죽었을걸. 원인도 없이 말이야.”

“직접 봤습니까?”

“아니, 나도 대장에게 들은 얘기야.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고. 정 로나가 싫으면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녀는 알아서 자네 곁에서 멀어질 테니까.”

냉정한 말을 남겨 둔 짐브리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갔고, 도현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때, 다시 로나가 밖으로 나왔다.

“짐브리오가 혹시 내 얘기를 했어요?”

“로나.”

“후우, 맞아요. 그의 말대로 난 일찍 죽을 운명이에요. 길어야 1년?”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지금이라도 같이 가겠다고 말해 준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1년만 같이 다녀요. 내 소원은 그것뿐이에요.”

절실한 그녀의 눈빛에 도현은 저도 모르게 분위기에 취해 그렇겠다고 말을 할 뻔했다.

하지만 그 순간 홍영의 얼굴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로나와 홍영에 대한 두 감정이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충돌 했고, 도현은 맨손으로 바닥에 꽂아 둔 칼날을 움켜쥐었다.

“도현, 무슨 짓이에요!”

깜짝 놀란 로나가 도현의 손을 재빨리 칼날에서 떼어 냈다.

철판처럼 단단하게 맺힌 손바닥 굳은살이 약간 갈라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칼날을 피로 물들였다.

“로나, 미안합니다. 설사 당신이 그런 운명에 처해 있다 해도 나는 당신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속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움직이지 않을 거대한 바위산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알았어요. 당신 마음대로 해요. 조금 전 말들은 거짓말들이니까요.”

“예?”

“짐브리오, 어서 안 나와요?”

또 언제 나왔는지 어둠 속에서 숨어 있던 짐브리오가 투덜대며 걸어 나왔다.

“자식이 보통 고집이 아니네. 로나가 죽는다는데도 끝까지 거부를 하다니.”

도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두 사람이 날 속인 겁니까?”

“험, 미안해. 아까 네가 여기에 머물겠다고 할 때부터 우리 둘이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대충 계획을 짰지. 그런데 로나가 이렇게 연기를 잘할 줄 몰랐네. 난 중간에 네가 알아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흐흐흐.”

“미안해요, 도현. 당신과 함께 다니고 싶어서 그랬어요. 장난이 좀 심했죠?”

로나는 자신의 옷을 찢어 그 천 조각으로 도현의 손바닥을 감싸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화를 내고 싶은데, 화를 낼 수가 없겠네요.”

“왜요?”

“로나가 일찍 죽는다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거든요.”

“…….”

“그런데 거짓말이라니 차라리 다행이다 싶어서요.”

도현의 미소는 어둠 속에서도 환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에 로나나 짐브리오는 얼굴이 붉어졌다.

“먼저 들어갈게요.”

도현이 칼을 회수해 집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 남은 짐브리오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 자식, 둔한 거야, 아니면 진짜 우리가 그렇게 연기를 잘한 거야?”

“그만해요. 왜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 사람 난처하게 만들어요?”

서슬 퍼런 로나의 눈빛에 짐브리오가 말없이 품 안에서 그녀의 단검을 꺼내 내밀었다.

“남은 시간이나마 즐겁게 살자. 괜히 네게 관심도 없는 저놈에게 마음 주지 말고.”

“상관 말아요.”

로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들어가자, 홀로 남은 짐브리오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오, 둔한 자식.”

새벽에 일어나 방에서 나온 어베인은 벽난로 앞에 서 있는 도현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다가갔다.

“잠을 안 잤나?”

“아니요. 조금 전에 일어났습니다.”

“짐브리오가 잠버릇이 고약해서 함께 방을 쓰기 힘들지?”

어베인은 의자를 끌어와 벽난로 앞에 앉았다.

“이 집은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도현이 보기에 오랫동안 사람이 산 흔적이 집 안 곳곳에 남겨져 있었다.

“빈집이더군. 지난번 전쟁 중에 죽은 어느 사람의 집인 모양이야.”

“이러다 집주인이 들어오면요?”

“잘 썼다고 돈 좀 쥐여 주고 나가면 되지.”

여유로운 태도로 대답을 한 어베인은 고개를 돌려 도현을 응시했다.

“우리가 가면 이 집에서 머물게. 특별히 지낼 곳이 없다면 말이야.”

도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왜? 스므차 성주가 제공한다는 집에서 머물 건가?”

“도시 밖 북쪽에서 머물 겁니다.”

“몬스터와 살겠다는 건가?”

어베인이 피식 웃으며 벽난로에 시선을 돌렸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말해 보게.”

“로나는 정말 오래 못 사는 겁니까?”

어젯밤에는 로나와 짐브리오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는 척했지만, 사실 그는 어떤 말이 진실인지 감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로나와 짐브리오는 자네를 잘 속였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게 아니었군.”

어베인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녀의 모친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네. 그녀의 할머니와 그 위 선조들 역시. 아무래도 핏속에 여자에 대한 저주가 걸려 있는 모양이야. 불운한 일이지.”

담담히 말을 한 어베인은 미소를 짓는 것인지 아니면 인상을 찡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얼굴 표정으로 벽난로의 불길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렇군요.”

도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신경 쓰지 말게. 비록 그녀의 정해진 생명이 짧다고 하나, 그 전에 나나 자네가 먼저 죽을 수도 있지 않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운명이니까, 그렇게 따지고 보면 로나는 아직 모르는 거야. 그녀들 선조가 그랬다 해서 그녀 역시 반드시 그러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오래 살 겁니다.”

“맞아, 그래야지.”

어베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크캐슬을 떠나는 건 며칠 후가 될 테니까, 그동안이라도 이 집에서 머물게. 로나에게 마음이 없더라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도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짐브리오.”

도현은 아침도 안 먹고 늦잠을 자는 짐브리오의 어깨를 흔들었다.

“뭐냐?”

한쪽 눈만 뜬 채 흐릿한 눈빛으로 짐브리오가 도현을 올려다봤다.

“몬스터 사냥 안 가실래요?”

“미친놈. 너나 잡아, 몬스터. 난 그놈들 잡아도 마나가 안 생기니까.”

짐브리오는 눈을 도로 감았다.

“큰돈이 되는데요.”

“얼마나?”

“수백 금화는 벌수 있어요.”

“몬스터 재료를 팔려고 하는 것 같은데, 눈 쌓인 곳에서 몬스터 잡기가 그렇게 쉽겠냐? 그리고 난 추위가 싫어.”

“잡는 건 내가 잡을 테니까, 짐브리오는 재료가 담길 가방들만 들고 따라와요.”

“이 자식이! 내가 짐꾼이냐!”

짐브리오는 상체를 벌떡 세우며 버럭 고함을 쳤다.

“조용 좀 해요. 귀 아프게 정말.”

곁에 서 있던 로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한 소리 했다.

“뭐야 너! 너도 몬스터 사냥하는 데 따라가는 거야?”

“혼자 나가기에 어딜 가느냐고 물어봤더니, 몬스터 잡는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죠.”

“잘됐네, 그럼. 둘이 다녀와. 난 안 가.”

“돈도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돈 벌어야죠.”

“훔치면 돼.”

“우린 좀도둑이 아니거든요! 얼른 안 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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