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179화 (179/575)

[179] 디 임팩트 8권 4화

얼마 전 석상 안에서 죽인 사악한 존재의 힘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흡수되는 기운의 양이 엄청났다.

도현은 전신을 관통하는 커다란 희열감에 몸을 활처럼 꺾으며 기분 좋은 고함을 내질렀다.

“크아아아!”

그 고함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로나와 짐브리오는 귀가 다 먹먹했고, 공터에 자리 잡은 독 안개들이 훅 하고 멀어지며 흩어져 갔다.

멀리서 지켜보던 로나와 짐브리오는 도현의 행동에 가슴이 철렁했다.

“저, 저 자식, 폭주하는 거 아니야?”

“짐브리오, 가서 말려 봐요. 몬스터는 이미 죽었잖아요.”

로나가 짐브리오의 등을 떠밀었다.

“난 못 가. 네가 가.”

“함께 가요 그럼. 폭주하기 전에 말려야죠.”

짐브리오와 로나는 서둘러 도현에게 달려갔다.

도현은 두 눈을 감고 양손을 가슴에 합장한 채 고요한 얼굴로 서 있었다.

우려와 달리 평안한 얼굴 모습에 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폭주는 아니었나 봐요.”

“조금 전은 왜 그런 거지 그럼?”

짐브리오는 여전히 눈을 감고 서 있는 도현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죽은 초대형 우스트랄에게 돌렸다.

“저놈 마나를 흡수해서 그런 건가?”

“그럴지도 몰라요.”

도현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에 정신을 차리며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가슴 앞에 한 합장을 풀지 않고 그는 밑을 내려다봤다.

장갑은 조각나 그의 발밑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합장을 한 이유는 본능적이었다. 그의 단전 속 기운은 고여 있는 듯하지만 항상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그 원을 몸 전체로 확장해 보면 어떨까라는 순간적인 물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고, 그는 자연스럽게 두 손을 합장해 왼쪽과 오른쪽이 이어지는 하나의 원을 생성한 것이다.

도현은 그를 앞에 두고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로나와 짐브리오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뒤돌아섰다.

그리고 합장한 손을 전면을 향해 내뿜었다.

손바닥 사이에 생성된 기의 덩어리가 총알처럼 튀어 나가 아름드리나무에 적중했고, 나무가 크게 한 번 흔들렸다.

‘장풍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겠지?’

도현은 양손을 모아 기의 덩어리를 만드는 법을 스스로 깨치고는 그 기쁨에 절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너 괜찮은 거냐?”

짐브리오가 도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예, 아주 좋습니다.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저 괴물을 죽이고 그 기운을 흡수한 거죠?”

로나가 옆에서 물었다.

“네. 두 사람이 저 녀석을 이 공터로 데리고 온 덕분에 오늘 아주 귀한 경험을 했어요.”

도현은 몸을 돌려 죽은 초대형 우스트랄에게 다가갔다.

상하지 않았다면 최고급 등가죽으로 평가받을 만한 가죽을 가졌지만, 그 자신이 뿜어낸 독에 가죽은 물론 살과 뼈까지 상해 있었다.

‘예전에 이 녀석을 잡으려고 했다면 그땐 내가 당했을지도 몰라. 이렇게 강한 독을 품고 있었다니.’

도현은 숲을 길게 둘러봤다.

초대형 우스트랄이 또 있는지 샅샅이 찾아봐야 할 듯했다.

몬스터 사냥을 끝내고 밤늦게 다크캐슬로 돌아온 도현은 일행과 함께 말론의 상점으로 향했다.

“우스트랄 등가죽 열여덟 장입니다.”

말론은 도현이 내민 우스트랄의 등가죽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현에게 애원하다시피 하며 겨울 몬스터 사냥을 의뢰했지만, 며칠 안 돼 이렇게 많은 등가죽을 한번에 가지고 올 줄은 예상을 못 했다.

손상된 곳은 없는지 상점 점원과 자세히 살폈지만, 흠집 없는 완전한 상급 우스트랄 등가죽이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도현에게 온갖 칭찬을 늘어놓은 그는 남은 재료들도 잘 좀 부탁한다면서 열여덟 장에 대한 계산을 했다.

“개당 금화 스물두 개로 쳐서 모두 합해 396금화입니다. 보석으로 드릴까요, 아니면 금화로?”

“잠깐.”

상점에 들어와 무게를 잡고 도현의 등 뒤에 서 있던 짐브리오가 우스트랄 등가죽 위에 손을 얹었다.

“지금 개당 금화 스물두 개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너무 적어.”

“네?”

말론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원래는 금화 스무 개입니다. 스물두 개면 값을 후하게 쳐 드리는 건데요?”

“겨울이잖아요. 오늘 우리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줄 아세요?”

로나가 긴 금발을 뒤로 넘기며 새침하게 말했다.

“아니, 그걸 감안해서 드리는 게 금화 스물두 개입니다.”

“옆에 상점에 가도 금화 스무 개는 받을 텐데, 겨우 금화 두 개를 더 주며 겨울 사냥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가? 섭섭하군.”

짐브리오는 가죽을 다시 가방에 넣으려 했다.

“왜 이러십니까.”

말론과 상점 점원이 달려들어 가죽 한쪽을 잡아당겼다.

“이거 못 놔?”

짐브리오가 언성을 높였다.

“당신들이 내 동료에게 먼저 겨울 사냥을 부탁한 거잖아.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 왔으면 성의를 제대로 보여야지. 차라리 몬스터 한 마리 더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말지, 금화 두 개 더 받고는 못 팔겠어.”

짐브리오가 휙 잡아당기자 말론과 점원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도현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짐브리오가 계산은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해서 조용히 있었는데, 이러다 싸움이라도 날 것 같았다.

“추위도 참고 잡아 왔더니 말이야. 직접 사냥해!”

짐브리오가 가방을 메고 돌아섰다.

“다른 상점으로 가지.”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말론이 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

“금화 한 개를 더 드리죠. 가죽 한 장당 금화 스물세 개! 더는 남는 게 없습니다.”

“영지전이 많아서 불에 강한 이 우스트랄 등가죽이 꽤 고가로 거래된다던데 말이야. 가공해서 갑옷에 부착하면 가치가 껑충 뛴다지?”

“그 일은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내게 물건을 사간 상인들이 하는 일입니다.”

“겨울 사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달라는 말이야. 평소보다 훨씬 큰 위험을 감수했으니까.”

“대체 얼마를 원하는 겁니까?”

“금화 스물일곱 개.”

“예? 아니,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싫으면 관두고. 당신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한 게 이것만이 아니라 몇 가지들이 더 있다지? 그것들은 어떻게 구할지 잘 생각해 보라고. 험, 그만 나가지.”

말론이 땀을 흘리며 고민을 할 때 도현이 중간에 나서 타협점을 제시했다.

“금화 스물다섯 개로 하시죠.”

“내게는 그 가격도 무리입니다. 전쟁으로 손해 본 물건들 대신 구입하는 거라 자금 사정도 넉넉지 않고요. 앞으로 다른 것도 사야 되는데,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당신들이 내게 가격을 높여 달라고 하면 난 버틸 수가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금화 스물네 개로 하죠. 동료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니, 나도 더 이상은 가격을 낮춰 팔 수가 없습니다.”

말론은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갈 기세인 짐브리오를 힐끔 쳐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격으로 하지요.”

쌍둥이 폭포

몬스터 사냥을 하며 빠르게 며칠이 지났고, 어느새 어베인 일행과도 이별을 할 때가 왔다.

“브링틱으로 떠나는 상선이 한 척 있더군. 상당한 돈을 주고 승선을 허락받았지. 자네가 벌어다 준 돈이 꽤나 유용했어.”

어베인은 이별주를 따르며 도현에게 말했다.

다크캐슬에는 단 하나의 선착장이 존재했다. 스므차가 관리하는 그곳을 통해 도시로 식량과 물품 들이 유입됐고, 반대로 다크캐슬의 물품들이 빠져나간다.

선착장을 이용하는 상선들은 스므차가 정한 매우 높은 세금을 내야 했는데, 그 때문에 도망자들을 태운 여객선들은 스므차의 선착장을 이용하지 않기 위해, 강변 근처에서 승객들을 하선시켜 왔다.

하지만 그 강변 쪽은 몬스터 때문에 매우 위험했고, 따라서 다크캐슬을 떠나 본토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은 안전하게 다크캐슬을 떠나길 원해 선착장에서 본토로 가는 상선들을 주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매우 비싼 승선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본토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는 경우도 상당했다.

그 선착장에는 스므차의 전투함이 많았고, 그 배들을 관리하며 선착장을 경비하는 스므차의 병사들 또한 그 수가 많고 정예였다.

지난번 전쟁 때 선착장과 배를 지키는 수백의 병사들이 성의 위급함을 알고도 함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이유는, 유사시 다크캐슬을 떠나 본토로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배들을 지키는 임무가 막중했기 때문이다.

“브링틱이 어딥니까?”

도현이 어베인이 따라 주는 술을 받으며 물었다.

“북쪽 야만인들이 사는 곳이네.”

“야만인요?”

“몬스터를 개나 고양이처럼 애완동물로 기르고, 때론 밭을 갈 때 말이나 소 대신 이용하는 자들이지.”

“여기가 브링틱이에요.”

로나는 지도를 펼쳐 보였다.

브링틱은 바다처럼 넓은 블랙리버를 따라 며칠에 걸쳐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곳으로, 배에서 내린 후 상당한 시간 동안 북쪽 대륙 안쪽으로 걸어가야 나온다.

‘몬스터와 함께 어울려 산다는 건가? 특이한 사람들이군.’

도현이 겪어 본 몬스터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에 어베인의 말이 이해가 안 됐다.

“어떻게 몬스터와 함께 공존할 수가 있는 겁니까?”

“그들만의 방식이 있나 보더군. 하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브링틱인들을 야만인 취급하고 있지. 길거리에 몬스터를 데리고 다니는 자들이 보이면 얼마나 소름이 끼치겠는가?”

“위험한 곳 같은데 왜 그곳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도현이 지도에서 시선을 떼며 물었다.

“우리가 다크캐슬에 오기 직전에 얻은 정보에 따르면, 브링틱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수만 명의 병사들이 죽어 있는 무덤이 발견됐다는군.”

“수만 명요?”

놀라는 도현에게 로나가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에 수만 명의 병사들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갑자기 터진 거대한 얼음산의 영향으로 모두 얼어 죽었다더군요.”

“어떻게 그런 일이.”

도현은 얼음산이 터져 병사들을 얼렸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다.

“그 얼음산 지하에는 세상을 다 얼릴 만한 지독한 차가움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얼음산이 터지며 그 일부가 빠져나온 거래요. 차가움이 섞인 공기를 접한 병사들은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다가 그 상태로 얼어 죽은 거죠. 그 전설적인 장소가 알고 봤더니 브링틱 주변이었던 거예요.”

로나의 말을 받아 짐브리오가 말을 더했다.

“그런데 고대 병사들이 싸운 이유가 있어. 그들 왕은 씨드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운 거거든. 그놈들이 모두 얼어 죽었으니까, 아직 아무도 그 씨드를 차지하지 못했겠지.”

“씨드 때문에 가는 거였군요.”

도현은 지하 감옥에서 딘과 리드만에게 들었던 엘바와 씨드 얘기를 떠올렸다. 엘바는 복용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물질이지만, 씨드는 아무런 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엘바보다 훨씬 대단한 힘을 복용자에게 주는 것으로 들었다.

“씨드를 찾으면 조금씩 나눠 먹으려고.”

짐브리오가 씨익 웃으며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위험하겠군요.”

도현이 차분히 말했다.

“위험하지. 아마도 벌써 소문이 다 퍼져서 힘 있는 놈들은 죄다 몰려올 거야.”

“그런데 왜 가는 겁니까?”

“우린 도둑이자 모험가니까. 그런 흥미로운 곳을 지나칠 수가 없지.”

짐브리오는 당당히 말하며 길게 트림을 했다.

“지저분하게 정말. 적당히 해요, 적당히!”

아까부터 트림을 계속해 대는 짐브리오에게 로나가 한 소리 했다.

“나오는 걸 어떡해, 꺼억.”

로나의 얼굴에 대고 짐브리오가 또 트림을 했고, 로나는 화난 얼굴로 짐브리오의 얼굴을 이마로 들이받았다.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진 짐브리오는 코피를 닦으며 일어났다.

“도현과 헤어진다고 내게 이런 식으로 분풀이하면 안 되지.”

“뭐예요?”

로나가 발끈하려 하자, 어베인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며 외쳤다.

“둘 다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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