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181화 (181/575)

[181] 디 임팩트 8권 6화

밤새워 도현은 평탄한 길과 경사로를 반복해 걸어야만 했고, 폭이 넓다고 생각했던 공간도 지하로 끝없이 내려가는 기이한 구조에 넓은 줄을 모를 정도가 됐다.

마치 땅의 중심부로 끝없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서 두려움을 모르는 도현도 은근히 마음 한쪽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루드에게 좀 더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어.”

단순히 위치 정도만 확인해 둔 자신의 부족한 준비성을 탓했다.

“오늘은 이쯤에서 잠을 자자.”

약간이라도 잠을 자 둬야 했다. 도현은 바위 옆에 자리를 잡았다. 빠른 그의 걸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간 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은 벌써 쌍둥이 폭포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바위 뒤편에 자리를 잡고 눈을 붙인 도현은 새벽에 다시 길을 떠났다.

지난밤과 달리 경사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평탄한 길이 쭉 이어졌다.

동이 트고 세상이 완전히 밝아질 무렵, 도현은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 다 녹았어.”

그가 서 있는 지점을 기점으로 해서 뒤는 여전히 눈이 쌓인 추운 공간이었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땅은 눈은 보이지 않고 파릇파릇한 풀들이 자란 초원이었다.

귀를 시리게 하던 찬 공기 대신 봄바람 같은 훈훈한 공기가 도현의 귀를 간질였다.

기후가 한순간에 변한 것처럼 보이는 이 신기한 광경에 도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갈수록 안의 공기는 따뜻해졌고, 급기야 도현은 추위를 막아 주던 목도리와 망토까지 벗어서 가방 안에 집어넣어야만 했다.

“지열이라도 올라오는 건가?”

허리를 굽혀 땅의 흙을 한 줌 움켜쥔 도현은 그 부드러운 촉감을 음미하다가 안에서 불어오는 훈풍에 몸이 나른해졌다.

겨울 추위 속에 적응되었던 그의 몸이 봄의 기운을 맞으며 근육이 이완되는 느낌이었다.

꽃과 나무 들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많이 등장했다.

나비와 새가 아침을 맞이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정말 평화로워 보였다.

끝없이 깊은 지하의 길을 어제부터 걸어온 도현은 쌍둥이 폭포로 가는 길이 너무 삭막해서 꼭 저승으로 가는 길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마주친 자연 전경은 그런 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도 안정적이고 따뜻해 보였다.

알록달록한 나비 몇 마리가 어깨와 손에 앉아서 장난치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도현은 나비들이 날아가자 그때서야 숲 안으로 진입했다.

지면 아래 깊숙한 곳에 생성된 신비로운 자연환경에 감탄을 하며 걷던 도현은 멀리서 들리는 처절한 비명 소리에 느슨하게 풀어졌던 마음을 단번에 바로잡고 몸을 살짝 낮췄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비명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던 도현은 전방에서 수풀을 헤치며 뛰어오는 사내들을 발견했다.

세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겁에 질린 채 도현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어이쿠!”

앞서 가던 사람이 도현의 근처에 있는 넝쿨에 발이 걸려 넘어지자 뒤따라오던 사내들도 같이 넘어졌다.

그들은 서둘러 일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도현은 그를 스쳐 지나가는 사내들에게 소리쳐 물었다.

“보면 모르나! 도망가고 있잖아!”

“당신도 샤빌의 뿔 때문에 왔다면 포기하고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슈빅타이런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여 명을 찢어 죽였단 말이야!”

“그놈은 악마라고!”

멀어지면서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극한의 공포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쌍둥이 폭포에 다 온 모양이군.’

도현은 눈을 빛내며 사내들이 도망쳐 온 흔적을 따라 숲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곳곳에 해골과 그들이 생전에 사용했을 무기들이 녹이 슨 채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숲이 점차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해 갔고, 도현의 어깨와 손에 앉아 장난을 치던 나비들이 흰 해골 위에 앉아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도현은 굳은 얼굴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 나비들을 손을 저어 쫓아 버렸다.

그 나비들이 처음처럼 귀엽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수십여 미터를 더 들어가자 무성한 나뭇가지 위에 사지가 찢겨서 걸려 있는 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또옥. 또오옥.

죽은 자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의 소리까지 잡아내며 도현은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슈빅타이런은 보이지 않았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더 많은 시체가 보였다. 팔다리가 뽑히고, 몸이 찢어진, 하나같이 잔인한 형태의 죽음이었다. 슈빅타이런에 쫓기다가 차례차례 죽은 모습이었다.

굳은 얼굴로 도현은 계속 안으로 들어갔고, 공터에 쌓여 있는 수십여 구의 시체들을 또다시 발견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서는 슈빅타이런과 싸운 흔적이 보였다.

화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죽은 자들의 손에도 무기들이 저마다 하나씩은 들려 있었다.

결과는 전멸.

수십여 명이 죽어 있는 공터를 가라앉은 시선으로 둘러보던 도현은 숲을 벗어나 마침내 거대한 산을 마주 보고 섰다.

지상의 에베레스트 산을 지하로 끌고 오면 이럴까?

그 높이는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높았고, 그 둘레의 거대함 역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로 지하에 산이 존재했어.”

햇빛이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산을 비추었고, 수목이 울창한 산 한쪽에는 수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두 개의 꼭 닮은 폭포수가 장대한 물줄기를 만들며 웅장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폭포수는 흘러 흘러 하나의 강을 만들었고, 그 강은 도현의 앞에서 출렁이며 굽이쳐 지하 어딘가로 빠져나갔다.

허벅지까지 오는 그 강을 건너 산 아래에 도착한 도현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산 정상은 너무 높아 보이지도 않았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윗부분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신비로움을 더했다.

사람 수십여 명을 파리 잡듯 살해하고 사라진 슈빅타이런의 서식지가 바로 이 산이라고 했다.

더 강한 녀석들도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긴장감이 밀려왔고, 한편으로는 흥분도 됐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

타투에서 시선을 뗀 도현이 산 안으로 은밀히 들어갔다.

바깥의 기후가 어찌 됐든 지하에 존재하는 산의 기후는 온화했고, 종류를 알 수 없는 나무들은 우람하고 키가 컸다. 짙은 녹색의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는 산을 조사하던 도현은 머리 위에서 서늘한 느낌이 전해져 오자 몸을 옆으로 구르며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두 동강이 난 뱀이 꿈틀거리며 도현의 몸을 물기 위해 기어왔다.

몸체와 분리된 뱀의 얼굴이 다가오는 모습은 징그러웠지만, 도현은 표정 변화 없이 손에 잡히는 작은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돌이 입을 쩌억 벌린 뱀의 입안으로 들어가 뒤로 뚫고 나갔다.

뱀을 죽인 도현이 무성한 수풀을 젖히며 걸음을 옮길 때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쿠우웅. 쿵쿵.

‘가까운 곳이다.’

나무가 부러지고 땅이 들썩이는 소리에 도현은 빠르게 그 방향으로 달려갔다.

키 높이까지 자란 주황색 꽃잎을 옆으로 젖히며 전방을 살핀 도현은 뜻밖의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갈색과 녹색 빛깔을 띤 슈빅타이런 두 마리가 맹렬히 싸우고 있었다.

인간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녀석들은 신장이 5미터를 넘어 거의 6미터에 이르렀는데, 얼굴은 사자를 닮아 입을 벌릴 때마다 사람 팔만 한 송곳니가 드러나곤 했다.

덩치와 어울리는 거대한 손을 인간처럼 말아 쥔 슈빅타이런들은 마치 복싱을 하듯 빠르게 주먹을 날리기도 했고, 반대로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재빨리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기도 했다.

쿠웅.

녹색 슈빅타이런이 피한 자리에 있던 나무에 구멍이 뻥 뚫렸다.

인상을 쓴 갈색 슈빅타이런은 나무에 박힌 자신의 주먹을 빼내다가 옆구리에 녹색 슈빅타이런의 주먹을 얻어맞고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작은 나무들을 부러트리며 굴러가던 갈색 슈빅타이런은 뒤쫓아 온 녹색 슈빅타이런의 공격을 피하며 잽싸게 일어섰다.

일어선 녀석의 손에는 바위가 들려 있었다.

콰아앙.

갈색 슈빅타이런이 집어 던진 바위에 눈가를 맞은 녹색 슈빅타이런이 뒤로 휘청거렸고, 기회를 잡은 갈색 슈빅타이런은 근처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괴성을 지르며 휘둘렀다.

나무에 얻어맞은 녹색 슈빅타이런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도현이 숨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뽑아내던 녀석은 도현과 눈이 딱 마주쳤다.

크르르르.

사람 얼굴만 한 붉은 눈동자를 깜빡거리던 녀석은 뽑은 나무를 서서히 들어 올리더니 도현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땅이 진동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격이었다.

‘이렇게 첫 대면을 하는군.’

공격을 피한 도현이 공중에서 회전을 한 후, 땅에 착지했다.

스르릉.

검을 뽑은 도현은 나무를 들고 서 있는 갈색과 녹색의 슈빅타이런을 차분히 둘러봤다.

녀석들은 싸우기를 멈추고, 그를 살기 짙은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두 마리라. 조금 곤란한데.”

사자 얼굴만 아니면 거인이라고 불려도 될 만큼 인간의 체형과 흡사한 녀석들이었다.

조금 전 복싱을 하듯 두 주먹으로 싸우던 모습 때문에 더 그렇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인간이 아닌 몬스터였다.

인간의 출현에 강한 적대감을 보인 두 녀석은 서로 간의 싸움을 멈추고 그에게만 적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대일로 하자고.”

도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와 수 미터에 이르는 굵은 나무를 휘둘렀다.

콰아앙. 쾅쾅. 콰앙.

도현이 피하는 자리마다 돌과 흙이 비산했고, 주변 나무들은 크게 손상돼 뒤틀렸다.

‘두 마리가 동시에 공격하니, 정신없군.’

주변 일대는 폭격이라도 맞은 듯 땅이 파였고 작은 나무들은 부러져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시간을 너무 끌면 주위에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녀석들도 합세하겠지.’

슈빅타이런의 움직임을 한동안 관찰하던 도현은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하겠다 싶었다.

‘갈색 녀석부터!’

녹색 슈빅타이런이 휘두르는 나무를 피해 몸을 한 바퀴 구른 도현은 땅을 박차며 왼편에 있는 갈색 슈빅타이런을 향해 돌진했다.

카오!

접근하는 도현이 가소롭다는 듯이 갈색 슈빅타이런이 나무를 집어 던졌다.

나무가 박살이 나며 그 파편 조각이 달려오는 도현의 몸을 덮쳤다.

파편 조각들이 도현의 몸을 꿰뚫어 버릴 찰나, 눈부신 검광이 도현의 몸 주위를 휘감았다.

‘모든 게 보인다. 나무 파편들이 다가오는 길이 보여!’

도합 마흔두 개.

그중 열두 개는 치명적인 것.

도현의 검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나무 파편들을 몸 앞에서 모조리 쳐 냈고, 도현은 삼단뛰기를 하듯 보폭을 점점 넓히다가 어느 순간 허공으로 솟구쳤다.

갈색 슈빅타이런이 떠오르는 도현을 향해 강철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갈색 슈빅타이런이 생각하는 것보다 도현의 움직임이 한 박자 더 빨랐다.

쉬이이익.

강철 주먹을 발밑으로 흘리고 공중에 높게 솟구친 도현은 검기가 생성된 검을 횡으로 그었다. 슈빅타이런이 화살이나 검도 튕겨 내는 질긴 피부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목 부위에 검기가 섞인 검을 맞는다면 꼼짝할 수가 없을 거라고 판단 내린 것이다.

단 한 번에 끝장을 내 버리려는 듯, 도현의 눈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검광이 갈색 슈빅타이런의 목을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옆에서 달려온 녹색 슈빅타이런이 주먹으로 도현의 몸을 가격했다.

쩌어엉.

검을 횡으로 긋던 도현은 그 자세 그대로 폭풍에라도 휩쓸리듯 허공을 훨훨 날아 멀리 있는 나무에 처박혔다.

쿠우웅.

도현의 표정이 고통으로 살짝 일그러졌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진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망설임 없이 돕는군.’

그는 녹색 슈빅타이런을 의식하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 못 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