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187화 (187/575)

[187] 디 임팩트 8권 12화

“호심공도 대단한 것 같아. 내가 내공 활용법을 깨달은 뒤로는 축기가 더 빨라지는 거야. 그래 봐야 네게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하루하루 사는 재미가 있어. 내공이 조금씩 증가하는 게 느껴지거든.”

내공 활용법을 깨닫는 과정 중에 어떤 정신적인 성숙을 이뤘는지 진지한 어조로 말을 하는 용주의 몸에서는 차분함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곧 히죽 웃으며 도현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리려는 시늉을 해 보였다.

“무게 잡고 말하기 힘드네. 넌 어떻게 살다 왔어? 성에 있다는 고대 지하 유적은 살펴봤냐?”

“군고구마 먹으면서 얘기하자. 얘기가 길어.”

“잠깐만, 그럼 그거 먼저 말해 봐. 타투 사라졌냐?”

“사라졌어.”

“젠장, 그랬군.”

도현은 관장실에서 이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물론, 어베인 일행 중 로나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홍영이 오해할 수도 있었다.

홍영은 이미 들은 얘기였지만 다시 들어도 흥미로운지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도현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폭주는 결국 너 스스로 강해져서 컨트롤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계의 수정이 설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수정이 아닌 바에야 어디서 또 찾겠냐?”

“그렇겠지.”

“그나저나 용암이라니. 정말 놀랐겠다. 머리 위로 화산재 쏟아지고.”

도현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도현아, 이제 내공이 태선군을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는 조금 전 말, 얼마나 무게감이 있는 거냐?”

용주가 눈을 빛내며 물었고, 홍영 또한 살짝 긴장한 얼굴로 도현을 바라봤다.

도현이 그동안 이계에서 피땀을 흘린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제일 큰 부분은 내공 때문이었다.

“확신할 순 없겠지, 그의 몸속을 샅샅이 훑어보지 않는 이상은. 그렇기 때문에 나도 말하기 조심스러웠어.”

도현은 물을 한 모금 한 후 신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슈빅타이런을 수없이 잡으며 흡수한 기운들은 대단해서 말로 다 설명하기가 어려워. 자화자찬 같지만, 이 정도 내공을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키울 수 있을까 두려울 정도였거든. 아무리 태선군이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아서, 내공만큼은 이제 한번 해볼 만하다 싶어서 한 말이야.”

“그렇게 많이 내공을 흡수한 거야?”

“그래, 나도 놀랄 정도로. 몇 가지 보여 줄게.”

도현이 의자에 앉은 자세로 한 발을 들어 가볍게 땅에 굴렀다.

“당시 태선군은 땅을 울렸고.”

우르르르릉.

지진이라도 난 듯 관장실 주변이 흔들렸다.

“이렇게 장풍을 쏘기도 했지.”

도현이 손을 둥글게 말아 쥐었다가 야구공을 던지듯 휙 집어 던지자, 멀리 도장 구석진 곳에 세워 두었던 목각 인형이 박살이 났다.

“또한 이렇게 멀리 있는 사물을 끌어당기기도 했고.”

도현이 의자에서 일어나 양손을 활짝 펴 끌어당기는 시늉을 하자, 조금 전 그의 장풍에 맞아 부서진 목각 인형 조각들이 허공을 날아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부서진 조각들이 날카로워서 그대로라면 도현의 손이 다칠 위험도 있었다.

파편들이 가까이 왔을 때 도현은 힘을 풀어 버렸고, 관장실 출입문 앞에 목각 인형의 잔해들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어지럽게 떨어져 내렸다.

도현이 보여 준 놀라운 능력에 홍영과 용주는 일순 말문이 막혀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이계를 다녀왔지만, 이번만큼 도현이 큰 성장을 하고 돌아온 적은 없었다.

“내가 지금 보여 준 기술들은 무예에 대한 높은 깨달음과 막대한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휘할 수 없는 것들이야. 특히, 내공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하지. 내가 이계를 오가며 생각한 하나의 목표가 있었어. 적어도 이러한 재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펼치지 못한다면, 결코 태선군 앞에 서서는 안 된다고.”

도현은 부서진 목각 인형의 조각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제는 적어도 그 목표 하나는 세워진 셈이야. 내공이 뒷받침된 것이지. 남은 건 하나. 내공에 부족하지 않는 내 검술 실력을 쌓는 것뿐.”

도현이 손에 힘을 주자, 목각 인형의 조각이 먼지처럼 잘게 부서져 허공으로 퍼져 갔다.

홍콩에 도착한 김성국은 홍콩 지사장이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

한국에서 대형 유통 업체인 서림을 이끌고 있는 그는 경기 북부에 계획 중인 프리미엄 아울렛이 부지 문제로 난항을 격자 직접 해결을 하기 위해 홍콩까지 날아왔다.

“이 정도는 네 손에서 해결했어야지.”

전략기획실을 맡고 있는 김탁훈은 아버지의 질책 섞인 말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우리와 경쟁 상대인 해진은 부산 지역에 이어 경기 남부에도 프리미엄 아울렛을 준비 중이다. 백화점도 밀리고 이제는 도심 밖 교외에서 벌어지는 2차 상권 전쟁도 녀석들에게 밀리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창밖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던 김성국이 옆에 앉은 김탁훈을 강하게 응시했다.

“내 뒤를 이어 회사를 운영하고 싶으면, 제대로 된 업무 능력을 보여. 그래야 나도 널 보호해 줄 수 있을 게 아니겠냐.”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디까지 협상이 됐어?”

“아직 아무것도…….”

“차 세워.”

아버지가 타고 있는 차에서 쫓겨난 김탁훈은 뒤따라오던 또 다른 회사 차량에 올라탔다.

그 차량에는 서울에서 동행한 김성국의 개인 보디가드 최태진이 타고 있었다.

“젠장. 내가 제주도 땅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도 참.”

김탁훈이 담배를 피우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은 저돌적인 분이십니다. 좀 더 치열한 모습을 보이시는 게 앞으로 실장님에게 이득이 될 겁니다.”

최태진의 조용한 조언에 김탁훈이 미간을 좁혔다.

“지금 내가 홍콩에 와서 놀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제주도 땅 문제 때문에 막혔다니까 그러네. 회사 소유도 아니고, 아버지 개인 땅인데 내가 아버지 허락 없이 어떻게 협상에 임하겠어요?”

“그게 능력이죠. 몸이 불편하신 사장님을 홍콩까지 오시게 만든 건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전화상으로 직접 사장님께 제주도 땅에 관한 처리 문제를 일임해 달라고 하셨어야죠.”

“아버지는 아직 날 믿지 않아요.”

김탁훈이 담배를 비벼 껐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치열한 모습을 보이시라고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책임지겠다는 모습으로 강하게 주장하셨다면, 사장님은 제주도 땅 문제를 실장님께 일임했을 겁니다. 사장님이 원하는 강하고 열정적인 아들의 모습이 그런 것이니까요.”

“언제부터 그렇게 말씀을 잘하셨습니까?”

“보이는 걸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차창을 내려 밖을 응시하던 김탁훈이 고개를 돌려 최태진을 쳐다봤다.

“최 팀장님, 지금이라도 내가 아버지 대신 나서는 게 좋겠습니까?”

“늦은 감이 있습니다. 지금은 홍콩까지 온 사장님이 빈손으로 귀국하시지 않게 기도하시는 게 좋습니다.”

“미치겠군.”

김탁훈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눈을 감았다.

“상해 지사에서는 편하고 좋았는데, 전략기획실을 맡고서부터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내가 능력이 그렇게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실장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요.”

김탁훈은 눈도 뜨지 않고 손짓을 했다.

“백도현 문제입니다.”

김탁훈이 슬며시 눈을 떴다.

“손을 봤습니까?”

“그게 아니라 일을 맡은 전문가가 손을 떼기로 했습니다.”

“이제 와서?”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김탁훈이 최태진을 응시했다.

“일전에 만났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더군요. 교통사고를 당했다는데, 하는 행동이 더는 신뢰할 수가 없어서 제가 이 일에서 물러나라고 했습니다.”

“준 돈은요?”

“반만 돌려받았습니다. 다 받으려면 자기와 싸울 각오를 하라더군요. 손을 봐 줄까 하다가 물러났습니다.”

“시간만 허비하고 돈만 떼인 꼴이군요. 정말 답답합니다. 회사 일도 안 되고 내 머리를 잡고 운전대에 처박은 그 망할 자식도 손을 못 봐 주고.”

“백도현 사건은 그냥 마음속에 묻어 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최태진의 갑작스러운 말에 김탁훈이 인상을 썼다.

“뭐라고요?”

“백도현을 손본다는 건 결국 홍영이라는 여자 때문이 아닙니까? 주변에 여자도 많으신데, 그깟 중국 여자 때문에 이렇게 신경 쓰실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말이죠.”

“나는 그놈에게 맞았습니다.”

“사내라면 한번쯤 시비도 붙고 주먹질도 할 수 있습니다. 회사 경영을 보고 집중해야 할 시기에 이런 일에 자꾸 신경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 팀장님,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전문가를 고용해 백도현을 손봐 주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간단한 일로 봤으니까요. 하지만 녀석은 전문가도 인정할 만큼 싸움을 잘하는 무도인이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칼까지 귀신처럼 잘 쓰는 자더군요.”

“칼을 귀신처럼?”

김탁훈이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백도현이 격투 능력이 뛰어난 무도인이라는 말은 지난번에 들었다. 하지만 칼 얘기는 처음 들었다.

최태진은 서지철에게 얼마 전 들었던 정보를 이야기해 주었다.

“실은 의뢰금의 반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그가 그동안 모은 백도현에 관한 정보를 요구했습니다. 그 정보 중에는 백도현이 백두TV에 나와 눈을 가리고 사과를 벤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앞이 보여도 하기 어려운 행동을 그는 눈을 가린 채 했더군요. 놀라운 검술 솜씨였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쇼 아니에요?”

믿지 못하는 그에게 최태진이 노트북을 펼쳐 보여 줬다.

“직접 보시죠. 당시 방송에 나갔던 영상분입니다. 모자이크 없는 영상을 구하기 위해서 힘이 좀 들었습니다.”

천으로 눈을 가린 도현이 유려한 몸짓으로 뒤에서 날아오는 사과를 베는가 싶더니 좌우는 물론, 한꺼번에 여러 군데에서 날아오는 사과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모조리 검으로 막고 잘라 버리는 영상이었다.

“괴물 같은 자식.”

김탁훈은 놀란 얼굴로 동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자가 앙심을 품고 사장님에게 덤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확실히 끝을 볼 게 아니라면 어설프게 건드릴 자가 아닙니다.”

홍콩에 본사가 있는 부동산 개발 전문 회사 ‘베스트엠’은 한국 투자 회사와 손을 잡고 제주도에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호텔 시설을 확충하면서 인근 부지가 필요하게 됐다.

그러나 그 부지는 김탁훈의 아버지, 서림의 대표 김성국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땅으로 매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 입장이 되었다.

경기도 북부에 프리미엄 아울렛이 들어가기 적당한 부지가 있는데, 그 부지가 바로 홍콩 기업 베스트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넘는 협상 끝에 서림의 김성국은 베스트엠 측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제주도 땅을 팔기로 했고, 베스트엠은 경기도 파주 일대의 땅을 서림에게 정상적인 가격으로 넘기기로 했다.

협상이 원만히 타결되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베스트엠의 회장 섭상이 테이블 너머에 앉아 있는 김성국에게 물었다. 통역을 통해 섭상의 말을 전해 들은 김성국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감사하지만, 내일 아침에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저녁 비행기로 귀국해야만 합니다.”

“아쉽군요. 한국에서 온 유명한 기업인이신 김 사장님과 사적으로 얘기를 길게 나누고 싶었는데요.”

“저 역시 아쉽지만 사전에 잡아 놓은 약속이라서 어쩔 수 없군요.”

“김탁훈 씨는 어떻습니까? 이번 협상에 길을 트신 분인데, 저분이라도 보내 주시지요.”

“제 아들을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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