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189화 (189/575)

[189] 디 임팩트 8권 14화

눈부신 햇살이 눈을 자극했다.

그가 잠을 잤던 곳은 별채식으로 꾸며졌는데, 본채와는 떨어져 있어서 어찌 보면 정원 한가운데 덜렁 서 있는 느낌도 났다.

그는 정원에 난 길을 통해 본채를 향해 걸어가다가 앞에서 걸어오는 주성하와 맞닥트렸다.

“편안하게 주무셨습니까, 김 실장님.”

“잠은 잘 잤지만, 지난밤에 제가 회장님께 실수를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김탁훈은 주성하와 안면이 있었다. 파주의 부지 문제로 홍콩에 도착해 섭상을 처음 만났을 때 곁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주성하를 섭상의 비서로 알고 있었다.

“회장님은 오히려 즐거웠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김탁훈의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졌다.

“아침은 저와 함께하시죠. 회장님은 일이 있으셔서요.”

주성하는 김탁훈과 아침을 먹으며 어제 일을 거론했다.

“회장님은 김 실장님이 아주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독한 술을 거부하지 않고 사내답게 마시는 모습에 감탄을 하셨어요.”

“초대를 하셨는데 술을 마다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죠.”

김탁훈은 사내대장부처럼 말을 했다.

“사실 어제 마신 술은 백 년 가까이 된, 몸에 좋은 술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김탁훈의 눈이 조금 커졌다.

“서림과 협상이 잘돼 회장님이 아끼던 술을 대접하신 거죠.”

“알았다면 아껴서 마실 걸 그랬습니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척하는 김탁훈을 지그시 바라보던 주성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제 술을 마시며 회장님에게 손을 봐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러지 못해 속상하다고 그러셨다고요?”

그런 이야기까지 했나 당황하던 김탁훈은 간신히 자신이 술에 취해 한 말을 생각해 냈다.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회장님이 불쾌하셨다면 대신 사과의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탓하려고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닙니다. 그럴 입장도 아니고요. 다만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회장님도 궁금해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별일 아닙니다. 말 꺼내기 창피한 일이기도 하고요.”

김탁훈은 여자에게 찝쩍대다가 맞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피곤한 일들이 많아지죠. 사업이 아니라 해도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원한도 쌓이고 밤잠을 설칠 만큼 분한 일도 생기지요. 쌓이면 독이 되고 수명을 단축시키는 법입니다. 친구처럼 절 생각하시고 말씀해 보십시오. 들어 보고 제가 도울 수 있으면 도와드리죠.”

“도울 수…… 있다고요?”

김탁훈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돕는다는 겁니까, 남의 일을?”

“호의는 호의로 받아들이십시오.”

주성하와 눈싸움을 하듯 바라보던 김탁훈은 물을 한 모금했다.

“창피하지만 여자 때문에 한 남자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여자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죠.”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상대는 어떤 사람입니까?”

“검술 도장 관장입니다.”

“검술 도장요?”

“손을 한번 보려고 했는데…… 녀석이 워낙 싸움을 잘해서 말입니다.”

“죽이려 했습니까?”

주성하의 말에 김탁훈이 깜짝 놀라며 급히 손을 휘저었다.

“그건 아니고, 병원에서 한동안 고생할 정도만 손을 봐 주려고 했다는 뜻이죠. 한데 그 녀석이 범상치 않아서 포기할까 생각 중입니다.”

“그렇게 쉽게 포기해서야 되겠습니까.”

“칼을 정말 잘 다루는 녀석이에요. TV에 나올 정도로 말입니다. 녀석이 눈이 뒤집혀서 막무가내로 칼을 휘두르면 큰일이 벌어질 거 아닙니까. 찝찝해서 더는 신경 쓰기 싫어서요.”

“TV에 나와요?”

“눈을 가리고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날아오는 사과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칼로 베어 버리더군요. 검술 도장 관장을 한다더니, 진짜 검술의 달인 같았습니다.”

김탁훈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성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검을 한 번 휘둘러 나무에 이름까지 새겨 넣을 수 있는 그의 경지에서 보면 눈 가리고 사과 베는 건 그야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다시는 칼을 들 수 없게 양 손목을 베어 버리면 되겠군요. 후환이 두려우시다면 말씀입니다.”

섬뜩한 주성하의 말에 김탁훈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침 적당한 사람을 알고 있으니, 조만간 그자를 처리해 드리죠. 그자가 사는 주소와 얼굴이 담겨 있는 사진 한 장만 제 이메일로 보내 주십시오.”

주성하가 종이에 메모를 해 건넸다.

“잠시만요. 난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하는 것 같기에 얘기해 준 것뿐이에요. 특별히 뭘 어떻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고요.”

“압니다, 당연히 아니죠. 우리는 건전한 사람들 아닙니까.”

주성하는 이메일을 적은 종이를 김탁훈의 손에 쥐여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효과

종로 3가에 있는 보석 감정원에서 나온 용주는 도현에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말이 되냐? 이계에서 금화 쉰 개 가치의 루비인데, 여기서는 고작 천만 원도 안 돼? 최소한 사오천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억은 넘지 않아도 말이지.”

“그러게. 생각보다는 좀 적네.”

도현은 약간 실망한 얼굴로 코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루비가 든 보석 주머니가 만져졌다.

몬스터 재료를 팔고 번 금화 중 반 정도를 짐브리오와 로나에게 주고, 남은 금화들은 모두 휴대가 간편한 루비 보석들로 교환을 했다.

몬스터 지역에서 수련을 하려고 계획 중이었던 그는 금화 상자를 달랑거리며 메고 다닐 수도 없어서 루비로 교환한 것이다.

보석 주머니에는 금화 쉰 개 가치의 루비 열여덟 개가 들어 있었다.

‘큰 손해를 봤어.’

보석에 대해 잘 모르는 그는 이계에서 대우를 받는 루비의 가치를 보고 이쪽에서도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 밖이었다.

루비는 품질이 낮았다. 그나마 루비가 커서 개당 천만 원 정도는 시장에서 거래될 거라는 보석 감정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열여덟 개니까 1억 8,000이네. 작은 액수는 아니지만 금화로 가져왔을 때와 비교하면…….’

수억을 손해 본 셈이다.

유명하다는 종로의 보석 감정원 두 곳을 모두 돌아다녀 봤지만 그들의 의견은 같았다.

보석 감정원을 나와 커피숍으로 들어간 용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는 루비가 우리 세상보다 훨씬 희소성이 있나 보다. 그렇지 않고는 품질이 낮은 루비가 금화의 가치보다 그렇게 높을 리가 없잖아.”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보는 품질의 기준과 그들이 보는 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지. 미의 기준이라든가.”

도현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너무 심해. 아, 열 받아! 네가 모처럼 고생해서 큰돈을 벌어 왔다고 좋아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적잖아. 네가 화산 폭발 속에서도 손에 꾹 쥐고 온 보석 주머니인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2억 가까운 돈은 적은 게 아니니까 만족하자. 더 이상 신경 써 봐야 속만 더 아프고.”

“팔 거냐?”

용주가 커피숍을 둘러보며 조용히 물었다.

“팔지 않으면, 가지고 있을 거야?”

“자식이. 넌 그래서 안 돼, 인마.”

용주는 테이블에 손을 올리며 상체를 약간 숙였다.

“가지고 있다가 이계로 돌아가면 금화로 다시 교환해. 그럼 사라진 가치가 다시 생기니까.”

“좋은 생각이긴 한데, 스톤을 구하는 게 우리 뜻대로 쉽게 되는 게 아니잖아. 스톤을 구해도 이번에는 조 박사님 차례고.”

“모른 척하고 네가 또 에너지를 흡수하면 되지, 뭘 또 딱딱하게 또박또박 순서를 따지냐. 삼촌도 이해하실 거야. 그리고 지금 삼촌은 다른 연구 때문에 그 뉴질랜드에 사는 초고대 문명 연구가인 사무엘 박사하고 탐험을 떠났잖아. 다른 데 관심이 생기신 것 같으니까, 이럴 땐 그저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아.”

“글쎄.”

도현은 웃고 말았다.

“너 언제 취영산으로 갈 거냐?”

“내가 취영산으로 가려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내공은 충분해졌고, 이제는 검술이라며. 그럼 뻔하지, 네게 깨달음을 준 그 산에서 다시 수련을 하고 싶겠지.”

도현은 커피숍 창밖을 깊은 시선으로 내다봤다.

“온 지 며칠 안 됐는데 바로 떠나면 홍영 씨가 서운해할 것 같아서. 한동안은 도장에 더 있으려고. 그런데 취영산에 가기 전에 먼저 들러 볼 곳이 있어.”

“어디?”

도현이 느리게 대답했다.

“옥룡산.”

“뭐? 옥룡산에?”

용주가 놀란 눈으로 도현을 응시했다.

태선군이 있는 등선궁은 옥룡산 깊은 곳에 있다. 옥룡산에 간다는 말은 태선군에게 간다는 뜻이다.

“적을 알아야 제대로 준비를 할 수 있는데, 단순히 그때 처음 본 그자의 느낌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을 하는 도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이제 그자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할 순간이 온 것 같아. 그가 어떻게 생활하고 수련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내가 확인할 수 있다면 그자에게 도전할 시기를 쉽게 결정할 수 있을 거야.”

준비 없이 마음만 급해 위기를 자초했던 지난번의 일을 거울삼아서 이번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한다.

“음, 정찰 개념으로 다녀오는 게 필요하긴 하지. 어쩌면 그자는 벌써 죽었을 수도 있고.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그래 가자, 옥룡산으로.”

“용주야, 이번에는 나 혼자 다녀올게.”

“내가 짐이냐?”

“아니, 든든한 친구.”

용주는 피식 웃으며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마음이야 같이 가고 싶었지만, 은밀히 행동하려는 친구에게는 그의 동행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갔다가 허접해 보이면 그냥 발라 버려, 기다리지 말고.”

리모델링하는 건물 현장에서 간식으로 나온 빵과 음료수를 먹던 장철호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벽에 기대 등을 살살 문질렀다.

‘왜 이렇게 간지러운 거야.’

손이 닿지 않는 등을 벽을 이용해 긁은 그는 이번엔 발바닥에서 열이 올라오며 간질간질하자 빵을 입에 물고 재빨리 신발을 벗어 손으로 마구 긁어 댔다.

주변에 앉아 있는 작업반 동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너무 간지러워서 어쩔 수 없었다.

“발바닥에 무좀이라도 있는 거야?”

홍 반장의 물음에 장철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무좀은 아닌데, 이상하게 오늘 몸 이곳저곳이 간지럽네요.”

말을 하면서 장철호는 엉덩이 부근도 긁었다.

“아이, 더러워서 빵을 못 먹겠네.”

40대 김 씨의 말에 장철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해요. 그런데 좀 많이 간지러워서.”

옷 속으로 손을 넣고 이곳저곳을 긁는 그의 행동에 간식을 먹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씻고 살게.”

홍 반장까지 일어나자 장철호는 억울한 표정으로 먹다 남은 빵을 한입에 넣었다.

몸에 두드러기가 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곳저곳이 심하게 간지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까 간지러운 곳이 모두 그곳들 아냐?’

외공을 위해 매질을 당하고 있는 전신 서른여섯 곳의 혈도 부위였다. 그곳들이 열이 올라오며 이렇게 근질근질했던 것이다.

다른 곳은 간지러운 곳이 없었고, 열도 나지 않았다.

피부에서 열이 올라온다는 게 이상했지만, 파스를 붙이고 후끈 달아오르는 피부처럼 그런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장철호는 서른여섯 곳의 혈도들을 번갈아 가며 긁었다. 손이 닿지 않는 부위는 나무를 이용해 긁기도 했다.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알 수가 없네.’

그는 위층에서 떨어진 벽에 깔리고도 몸이 멀쩡한 이유가 외공의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이후로 그의 신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그땐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식할 정도로 우직하게 도장에 가서 용주에게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용주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내공이 생겼고 사용할 수도 있게 됐으니, 더는 외공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고통을 받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장철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질을 당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서른여섯 곳의 혈도가 열이 나며 간지럽자 덜컥 겁이 났다.

‘너무 자극을 줘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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