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디 임팩트 8권 15화
좋은 쪽보다는 점점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뻗어 나갔고, 장철호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안전모를 착용했다.
그때 리모델링 중인 건물 안으로 30대 초반의 건장한 남자와 미모의 젊은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
“오빠, 정말 이 건물이 오빠 거야?”
“그럼 내거라니까. 리모델링만 끝나면 시세가 한 40억은 될걸.”
“와우, 대단하다. 대출은?”
“한 10억 꼈지. 내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데 돈 투자할 때가 또 있어서.”
“그렇구나. 오빠 말대로 나 탤런트 일 그만둘까 보다.”
“그러라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평생 행복하게 해 줄게.”
“격투는 언제 그만둘 거야, 그럼?”
미모의 여자가 남성을 껴안으며 물었다.
“한 3년 더 하고. 간신히 세계적인 파이터가 됐는데 돈 좀 더 벌어야지.”
“오빠 경기하는 모습 보기 싫어. 너무 아플 것 같아.”
여자가 눈물을 글썽이자 남자는 여자를 번쩍 안아 들며 말했다.
“걱정 마, 하나도 안 아프니까. 짐승 우리 같은 케이지는 내 아늑한 방 같은 곳이야.”
“멋져, 오빠. 그런데 저 사람 이상해. 자꾸 몸을 긁고 있어.”
젊은 여자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있는 장철호를 가리켰다.
뒤를 돌아본 남자가 장철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어이, 이봐!”
장철호는 못 들은 척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제지를 당했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나?”
격투 선수 박세중이 장철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어쩐지 뒷모습이 눈에 익다 했지. 반갑다, 장철호.”
장철호는 철탑처럼 몸이 단단해 보이는 박세중을 보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반갑다.”
“아니, 아는 사람을 봤으면 알은척을 해야지, 왜 피하고 그래?”
박세중이 건들거리며 장철호의 복부를 장난스럽게 쳤다.
퍽.
장철호의 작업복 위로 먼지가 올라왔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 장철호는 안전모를 올리고 박세중의 눈을 말없이 노려봤다.
“에이, 장난인데 뭘 또 그렇게 노려봐. 섭하게.”
“오빠, 누구야?”
옆에서 지켜보던 여자가 물었다.
“응? 아, 이 사람. 예전에 같이 운동을 했어. 훌륭한 격투 선수였지. 인사해.”
“안녕하세요, 이세희예요.”
장철호는 박세중을 노려보던 눈을 풀며 조용히 말했다.
“장철호입니다.”
이세희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둘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에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아니, 근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일하는 거야?”
“그래.”
“참나, 케이지 안의 야수가 이런 데서…….”
박세중이 혀를 차며 독사 같은 눈빛으로 장철호의 전신을 쭉 훑어봤다.
“오른쪽 어깨는 어때? 그때 내가 좀 심하게 했지? 나하고 붙고서 케이지를 떠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고.”
“일하러 가야 돼. 만나서 반가웠다.”
박세중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탄 장철호는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지만 올라갈 수가 없었다.
박세중이 문을 양손으로 막으며 비릿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건방지게 그때 날 자극하냐고, 실력도 없으면서.”
“물러나. 문 안 닫히잖아.”
“병신.”
“오빠, 왜 그래?”
뒤에서 지켜보던 이세희가 박세중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만 나가자. 영화 봐야지. 시간 다 됐어.”
“이거 놔, 이년아!”
“오, 오빠, 이년?”
“가만히 좀 있으라고.”
박세중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이세희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입을 다물었다.
“박세중, 왜 이러는 거냐. 난 케이지를 떠난 사람이야.”
“안 그래, 이 씹새끼야!”
박세중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장철호의 멱살을 잡으며 밖으로 거칠게 끌어냈다.
“난 열심히 했을 뿐인데, 개 같은 자식들이 내가 네 약점을 일부러 공략했다고 떠들어 대잖아. 지금도 말이야, 이 개새끼야!”
박세중의 주먹이 어깨 위로 올라갔다.
“오빠, 싸우지 마. 격투 선수가 싸우면 큰일 나잖아.”
이세희가 뒤에서 박세중의 허리를 감싸고 말렸다. 하지만 박세중은 올린 주먹을 내리지 않고 계속 장철호에게 소리쳤다.
“넌 케이지를 떠나면서 한마디라도 했어야 돼, 이 개새끼야! 그 시합은 공정했다고. 근데 넌 끝까지 아무 말 없이 떠나갔어. 그 일 때문에 내가 격투계에서 지금도 손가락질받고 있다고, 이 빌어먹을 자식아!”
“케이지 안에서 공정한 건 없다.”
“뭐, 뭐라고?”
“짐승은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든다. 케이지 안의 우리들은 냉정한 승부사들이야. 약한 부위를 타격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건 당연한 거야. 넌 제대로 싸웠고, 난 방비를 못 했을 뿐. 그뿐이다. 애초에 공정함 따윈 없는 거야. 그런 거에 연연하지 말고 넌 네 길을 가.”
“졸라 멋지게 말하네, 씨발 놈이. 너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문제지!”
박세중이 입에 침을 튀기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패배자에게 화풀이하는 건 옹졸한 짓이다. 그 화는 다음 격투 상대에게 쏟아 내.”
멱살을 푼 장철호는 엘리베이터에 다시 탔다.
“밥이나 잘 처먹고 다녀, 이 개새끼야!”
박세중이 지갑에 있는 돈을 몽땅 꺼내 문이 닫히는 틈으로 집어 던졌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응? 아니야, 아무것도.”
도장에 멍하니 앉아 있던 장철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복을 벗었다.
용주 대신 매질하려고 지하 도장에서 5층으로 올라온 도현은 장철호의 몸 곳곳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자 깜짝 놀랐다.
그는 단번에 그곳들이 기예잡술서상에 나와 있는 서른여섯 곳의 혈도임을 알아봤다.
“여기, 왜 이러는 거예요?”
“모르겠어. 아침부터 혈도 부근에서 열이 나면서 간질간질하더라고.”
“지금도 그래요?”
“조금. 아까보다는 나아졌는데 열도 나고 간지럽다.”
“그래서 얼굴이 무거운 거예요? 걱정돼서?”
“그래, 인마. 너 같으면 몸이 이런데 웃고 다니겠냐?”
장철호는 일부러 밝은 음색으로 말하고는 왼쪽 발바닥을 내밀었다.
“자, 이제 시작하자.”
“잠깐만요, 형. 심상치 않아요.”
“괜찮아, 때려!”
장철호가 외쳤지만 도현은 목검을 거두고 뒤돌아섰다.
“옷 입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기예잡술서 가지고 올게요.”
지하 도장으로 내려간 도현은 용주와 홍영을 달고 왔다. 그들은 장철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걱정이 가득했다.
“거봐요, 형. 이거 순 엉터리라니까요.”
용주가 장철호의 도복을 들추며 몸을 살폈다.
“아이고, 이거 뭐야. 이러다 종기처럼 몸 곳곳에 고름이 올라오는 거 아니야?”
듣고 있던 장철호가 손으로 용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재수 없게.”
“수련 중단해요, 오빠. 호심공으로 다친 어깨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잘못될까 봐 걱정돼요.”
홍영은 축기가 가능해져 내공이 서서히 모이고 있었다. 아직 용주처럼 내공 활용법을 터득하지 못해 애를 먹고는 있지만, 도현이 이계에서 돌아와서 여러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주고 있어서 조만간 내공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장철호만 호심공을 통한 축기를 이루지 못했고, 그래서 홍영은 진작 외공 수련을 만류하고 싶어도 만류하지 못했었다. 혹시나 내공이 안 되면 외공이라도 효과가 있었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이 이렇게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홍영까지 나서서 외공 수련을 그만두라고 압력을 가하자 장철호는 고민 가득한 얼굴로 도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 안 되는 걸까? 그땐 난 단순히 운이 좋아서 벽에 깔리고도 몸이 멀쩡했던 걸까? 지금의 이 변화는 매를 맞은 후유증이고?’
장철호는 눈을 감고 도장 바닥에 드러누웠다.
늘 힘이 넘쳤던 장철호가 어딘지 우울한 얼굴로 누워 있자, 용주와 홍영은 미안한 마음에 잔소리를 멈췄다.
도현은 지하 도장에서 가지고 올라온 기예잡술서를 꼼꼼히 확인했다. 인체 혈도가 그려진 부위도 다시 살폈다. 이미 수없이 읽어서 머릿속에 기예잡술서의 주요 내용이 각인되듯 남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두 눈으로 글을 읽으며 다시 확인 과정을 거쳤다.
얼마 안 되는 내용이기에 확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 그렇다고 저런 과정이 정상이라는 것도 언급이 없고.’
기예잡술서를 내려놓은 그는 목검을 챙겨, 누워 있는 장철호의 곁에 섰다.
“형.”
“뭐 잘못됐냐?”
“아니요. 지금 증상과 관련된 내용은 비슷한 부분도 없어요.”
“그럼 계속할까?”
장철호가 두 눈을 뜨고 물었다.
위에서 철호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도현은 장철호와 한동안 시선을 주고받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보죠.”
“야! 도현아!”
“도현 씨!”
용주와 홍영이 목소리를 높이며 다가왔다.
“여기서 멈추면 누군가는 평생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우리가 아닌 철호 형이 말이야.”
“도현이 말이 맞다. 난 평생 찝찝하게 살고 싶지 않아. 그만두는 시점은 내가 결정할 거야.”
“이러다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어요.”
“죽지는 않겠지. 안 그래, 도현아?”
“죽을 수도 있어요.”
도복을 벗으려던 장철호가 움찔했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제가 시원하게 매질을 해 드릴게요. 하실 겁니까?”
도현이 목검을 추켜세우자 그 기세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용주가 매질하던 거하고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 전해져 올 것을 예감한 장철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홍영이는 나가 있어. 매 맞으면서 추접한 꼴 보이기 싫으니까.”
“정말 두 사람 다 고집쟁이들이에요!”
홍영이 화난 얼굴로 나가려 하자, 도현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홍영 씨, 이거 괜찮을 거예요. 이렇게 때린다고 해서 죽지 않아요. 혈도에서 열이 나고 간지러운 건, 그 부분에 기가 왕성이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문을 열고 나가려던 홍영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돌아섰다.
“정말요?”
“네, 내가 아는 한은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너무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 없다고요.”
“잘못되면 두 사람 다 평생 안 볼 거예요.”
홍영이 나가자 장철호가 도복을 완전히 벗고 사각 트렁크 차림으로 도현 앞에 섰다.
“그 말 정말이냐, 기가 왕성히 흘러서 그렇다는 말?”
“어떨 것 같아요?”
도현의 말에 장철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왼쪽 발바닥을 내보였다.
“시작하자.”
따악.
장철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현의 목검이 열이 나는 장철호의 발바닥을 가격했다.
“허억!”
익숙한 아픔이었지만 오늘은 너무나 아팠다. 혈도에 열이 나서 그런지, 아니면 도현이 잘 때려서 그런지 구분이 안 갔다.
그렇지만 장철호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하체를 거쳐 위로 올라오는 도현의 매질을 견뎌 냈다.
“아이고, 아프겠다.”
곁에서 지켜보던 용주가 몸서리를 쳤고, 도현은 장철호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며 매질을 하다가 마지막 서른여섯 번째 혈도가 있는 등의 중앙 부분을 힘 있게 가격했다.
그 순간 도현의 표정이 급변했다.
‘반탄!’
목검을 통해 자신이 후려친 힘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쩌어억.
그와 동시에 목검의 끝부분에 금이 쫘악 갔다.
“뭐 하는 거야? 왜 마지막 혈도는 안 쳐?”
한참을 기다려도 등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장철호가 의아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등에 뭔가가 왔다 간 느낌은 있었지만 그는 그것이 도현이 내려친 목검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어? 목검이 왜 그렇게 됐냐?”
도현이 들고 있는 목검 끝이 갈라져 있자 장철호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목검을 든 도현도, 창가에서 지켜보던 용주도 이 놀라운 현상에 말문이 막혀 장철호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왜들 그래?”
“철호 형, 서른여섯 번째 혈도가 있는 등의 중앙 부분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어요?”
도현이 정신을 수습하며 물었다.
“약간 시원한 느낌도 났고, 그냥 뭔가가 꾹 누르고 지나가는 느낌도 났고. 아니 왜?”
“그 느낌이 이 목검으로 때렸을 때 전달된 충격이에요.”
“뭐라고? 때렸었다고?”
“게다가 제가 전달한 힘을 고스란히 제게 되돌려줬어요. 아니, 더 큰 힘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목검 끝이 갈라진 이유는 형의 몸에서 나온 반탄력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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