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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191화 (191/575)

[191] 디 임팩트 8권 16화

장철호는 부서진 목검을 보며 얼떨떨했다. 모두 지어낸 이야기 같았다.

“장난치는 거 아니지?”

“형, 저도 봤어요! 도현이 말 그대로라니까요! 이런 젠장, 이거 완전 끝내주는 거 아니야?”

용주는 장철호의 몸을 부처님 몸 만지듯이 살살 어루만졌다.

“이 몸이 이제 금강불괴가 되는 건가?”

몽롱한 눈빛으로 눈이 부신 듯 장철호의 몸을 더듬거리던 용주는 입고 있는 도복을 벗어 던졌다.

“나도 다시 시작해야겠어!”

“잠깐만. 한 번 더 해 봐야겠어.”

도현은 새로운 목검을 들고 장철호를 응시했다.

“형, 괜찮죠?”

“응? 그럼, 또 해 봐. 나도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알아야겠으니까.”

장철호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다시 왼쪽 발바닥을 보였다.

도현의 목검이 처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어느 순간 마지막 혈도가 있는 등 부근에 목검이 도달했다.

빠각!

조금 더 큰 힘으로 내려친 도현의 목검이 어김없이 부서졌고, 도현은 손바닥에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다.

“보라구요! 이거 완전 대박이라니까요!”

용주가 함성을 지르며 만세를 불렀다. 누가 봐도 외공이 어떤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또 한 번 해 보자!”

도현은 다시 목검을 휘둘렀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단하다. 단순히 막는 게 아니야.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는 외공이었어!’

도현은 감탄을 하며 바닥에 던져 놓은 기예잡술서를 응시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이 귀중한 비급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홍영도 연락을 받고 5층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장철호의 몸에서 일어난 놀라운 반응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왜 마지막에만 반탄력이 일어났지?”

장철호가 말을 하며 도현을 바라봤다. 깊이 생각을 한 도현이 답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어요. 서른여섯 개의 혈도를 서른여섯 단계로 나누는 거죠. 형은 이제 막 서른여섯 개의 혈도 중 한 곳에서 선천지기의 도움을 받아 반탄력을 이끌어 낸 거죠.”

“그럼 남은 곳도 수련하다 보면 오늘처럼 반응이 있겠군.”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하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었다니.”

용주가 기예잡술서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모두가 익히자. 철호 형은 이미 익히고 있으니까, 도현이 너도 익히고 홍영 씨도 익히고.”

“옷을 벗어야 되는데…….”

“도현이 보고 해 달라고 하면 되죠. 어차피 결혼할 사이 아닌가?”

용주의 말에 홍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모두가 이 외공을 익힐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워.”

도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서른여섯 곳의 혈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곳에 담긴 선천지기는 다 제각각이야. 기예잡술서는 선천지기의 힘이 강한 자가 외공을 빨리 배울 수 있다고 했고.”

“그게 뭐. 다 배울 수 있다는 거잖아, 아무튼.”

“그 구절을 깊이 생각해 보면 그리 간단한 게 아니야. 나도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무서운 말이지. 한마디로 선천지기가 약한 자는 언제 효과를 볼지 알 수 없다는 말도 되거든. 철호 형이 몇 달 만에 서른여섯 개의 혈도 중 한 부위에 효과를 봤다면, 선천지기가 약한 사람은 몇 년, 몇십 년이 걸려야 겨우 한 곳에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뜻도 되니까.”

“몇십 년?”

용주의 입이 딱 벌어졌다.

“내가 선천지기가 강한 편인가?”

장철호가 의아한 눈빛으로 도현을 봤다.

“예, 형은 강해요. 제가 경지가 낮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혈도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어느 정도 느낄 수가 있거든요. 아까 제가 형의 혈도들을 만져 봤는데, 용주의 몸에서 느껴지는 선천지기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어요.”

듣고 있던 용주가 말했다.

“어? 너 그래서 아까 내 몸 만졌던 거냐?”

“응.”

“철호 형하고 난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보름달과 반딧불.”

“뭐야? 이런 젠장.”

용주가 손에 든 기예잡술서를 내팽개쳤다.

“내공이나 수련해야지.”

“나는 어때요?”

홍영이 조용히 물었다.

“다리를 내밀어 봐요.”

도현이 홍영의 발바닥과 종아리 부근의 혈도를 눈을 감고 만져 봤다.

잠시 후 눈을 뜬 도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요, 홍영 씨. 용주보다 낮아요.”

“그래요? 그럼 나도 외공보다는 호심공에 집중해야겠네요?”

“아무래도 그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꼭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효과가…….”

도현은 홍영이 부득불 익혀야 한다면 자신이 그녀의 몸을 보며 때려야 해서 난처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용주 씨와 난 축기가 되고 있으니까 호심공에 집중해야겠어요.”

홍영의 말에 도현은 안도를 하며 장철호를 봤다.

“철호 형, 제가 보기에 이 외공은 굉장한 거 같아요. 단순히 몸을 단단히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일종의 차원 높은 무공 같아요.”

“그렇단 말이지.”

장철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금강불괴는?”

용주는 외공이 자신에게는 별로 맞지 않을 거라는 도현의 말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장철호라도 외공을 익힐 수가 있게 돼서 기분이 좋았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책에도 언급이 안 되어 있으니까. 철호 형이 끝까지 가다 보면 그 해답을 보여 주겠지.”

도현의 웃음기 섞인 대답에 장철호는 어깨가 으쓱했다.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게 다행이다 싶었다.

“형, 존경합니다.”

도현의 칭찬에 장철호가 머쓱한 얼굴로 손짓을 했다.

“내가 뭐 대단하다고, 하하하.”

장철호의 시원한 웃음에 둘러앉은 용주와 홍영, 도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근데 넌 어떠냐?”

“뭐가요?”

“선천지기 말이야.”

도현은 잠시 말이 없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좀…… 강해요.”

“얼마큼?”

“형보다 조금요.”

“그러니까 얼마나?”

“보름달과 반딧불 정도.”

“뭐!”

모두가 놀라 도현을 일제히 쳐다봤다.

“그럼 네가 기예잡술서상의 외공을 수련하면…….”

“효과가 좀 빨리 나타날 수 있겠죠. 하지만 당장은 제게 필요한 무예는 아니에요. 과거라면 모를까.”

“내공 때문에?”

“예. 지금 가지고 있는 내공을 이용하면 굳이 외공이 아니라 해도 몸을 강화시킬 수가 있거든요. 지금 제게 중요한 건 외공보다는 마음을 검과 일체화시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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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인근 작은 마을의 대나무 숲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스기하라 마사키는 도현에게 호되게 당한 후유증으로 인해 여전히 몸이 불편했다.

채 녹지 않은 눈을 밟으며 대나무 앞에 선 그는 손에 든 그림을 대나무에 고정시켰다.

몇 발자국 물러난 그는 도현의 얼굴이 그려진 조악한 그림을 노려보다가 후다닥 뛰어와 일본도로 베어 버렸다.

그림만 반으로 잘렸을 뿐 뒤에 서 있는 굵은 대나무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정교한 검술 솜씨였다.

“백도현!”

정말 죽도록 목검으로 얻어맞고 도장에서 탈출하듯 기어 나온 스기하라 마사키는 그때만 생각하면 혈압이 올라 얼굴이 뜨거워졌고, 부끄러움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다.

정당한 대결에서 패했지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패배를 밑거름 삼아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검객의 마음은 일방적으로 당한 그날의 기억을 뛰어넘지 못했고, 매일매일 이렇게 붓으로 그린 도현의 그림을 대상으로 분풀이를 해 오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 이따위 그림이 아니라 실물을 베어야지!”

도현에게 패한 뒤 검술은 더욱 정교해졌지만 호랑이를 떠올리게 하는 그 무시무시한 도현의 검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놈의 눈빛!”

스기하라 마사키는 땅에 떨어진 도현의 그림을 칼로 내려찍었다.

씩씩대는 그의 뒤에서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좋지 않을 때 찾아왔나 보군요.”

마사키는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자가 서 있었다. 늘씬한 체형에 머리카락은 끈으로 묶어 등 뒤로 넘긴, 눈빛이 살아 있는 여자.

“아가씨!”

마사키는 칼을 거두고 눈이 녹지 않은 땅에 그대로 엎드려 큰절을 하듯 인사를 했다.

그녀는 6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전통 검술의 원형을 유지하고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검도 집안의 외동딸, 유키히로 료코였다.

“일어나세요. 과한 인사라 쑥스럽네요.”

“아닙니다, 아가씨.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아가씨 아버님이 전수해 준 검술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알았으니까, 일어나세요.”

마사키는 거의 10여 년 만에 만난 유키히로 료코를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젊은 시절 야쿠자로 활동할 때 멋모르고 료코의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댔다가 번쩍하는 순간 머리카락이 몽땅 잘리는 일대 사건을 겪은 뒤, 그는 야쿠자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문하로 들어갔었다.

어렸을 때부터 검도부 학생으로 촉망받았던 마사키는 길을 잘못 선택해 야쿠자가 되었지만, 본디 검에 대한 자질이 깊어서 료코의 아버지 유키히로 이사무의 문하로 들어간 뒤 실력이 일취월장해 지금에 경지까지 오른 것이다.

문하에서 독립한 지 8년이 넘었지만 그는 스승의 생일 때마다 꼬박꼬박 찾아가서 예를 표했고, 돈이 생길 때면 기부도 했다.

“이 그림은 누군가요?”

료코가 반으로 잘린 도현의 그림을 집어 들며 물었다.

엎드렸다가 일어서던 마사키가 붉어진 얼굴로 답했다.

“그냥 그린 그림입니다, 의미 없는.”

“분노가 느껴져요. 누가 마사키 님을 화나게 했을까요?”

“그게…… 아가씨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마사키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다탁 넘어 료코를 봤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차를 조용히 마시고 있었다.

“아가씨, 정말 오랜만에 뵙는군요. 거의 10년 만인가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매년 스승님께 인사드리러 갈 때마다 아가씨의 근황이 궁금해 여쭤 봤었습니다.”

“들었어요. 고마워요.”

료코가 살짝 미소를 짓자 얼굴에 칼자국이 꿈틀거렸다.

“아가씨 그런데 그 칼자국은 대체 어디서…….”

“아실 것 없어요.”

무안해진 마사키가 뜨거운 차를 서둘러 입에 댔다. 그녀는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은 여자였다. 그가 스승의 문하에 있으면서 검을 배울 때도 그녀는 집 안에 거의 있지 않았고, 1년에 한두 번 정도만 얼굴을 비췄을 뿐이다.

그나마도 10년 전부터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아서,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증만 쌓여 갔었다.

그런 여자가 갑자기 자신의 집을 방문하니, 마사키는 당황스럽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가씨,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마사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가 보내서 왔어요.”

“스승님요?”

료코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집에 왔더니 아버지께서 마사키 님의 일을 제게 맡기시더군요.”

“제 일이라니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패했다면서요?”

마사키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는 몇몇 지인에게만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는데, 어떻게 스승의 귀에까지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스승님의 명예를 떨어트렸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할 일이 뭐가 있나요. 강자를 만나면 패하는 게 세상이치인데.”

료코는 무의식적으로 칼자국이 난 볼을 가볍게 만졌다.

“아버지는 속사정을 알고 싶어 하세요. 마사키 님이 패했다는 사실만 알 뿐,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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