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198화 (198/575)

[198] 디 임팩트 8권 23화

도현은 나무들이 무성한 곳을 조용히 지나쳐 비교적 나무가 적어 보이는 공터 부근에 도착했다.

달빛 아래 드러난 공터는 땅이 파여 있었고, 주변 나무는 구멍이 나거나 반쯤 잘려서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매캐한 냄새는 공터에서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아서 바위 뒤편에 숨어 있는 도현의 후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마치 작은 위력의 수류탄이 터진 듯한 공터의 모습에 도현은 의혹이 커졌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저자들은 누구고?’

도현은 공터 한쪽에 서 있는 두 사내를 살폈다.

허리에 검을 찬 그들은 주변을 살피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앞에 무허가 나타나다니, 정말 큰일 날 뻔했소.”

배가 나와 뚱뚱해 보이는 여덟째 방상의 말에, 단신인 일곱째 육기천이 긴장된 음색으로 말을 받았다.

“이곳을 수색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한데, 여기서 그를 발견하다니.”

“무허가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눈빛을 보셨소? 난 심장이 오그라들 뻔했소.”

“긴장은 하되 너무 겁먹을 거 없다. 너도 봤지 않느냐, 무허의 몸이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을. 작년에 사부에게 당한 부상이 아직 회복이 안 된 게 분명하다.”

육기천이 갑자기 도현이 있는 방향으로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작은 바위 위에 우뚝 선 그는 그 짧은 사이에 검을 뽑아 몸을 보호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도현은 사라지고 빈 공간만 있었다.

“사형, 왜 그러는 겁니까?”

방상이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소리요?”

육기천은 청각이 다른 사형제들에 비해서 유독 발달한 사내였다. 키가 작아서 우습게 보였지만, 눈을 감고 소리만으로도 사제인 방상과 검을 다툴 수 있을 만큼 청각과 반사 신경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육기천은 바위 위에서 내려와 주변 일대의 나무들을 훑었다.

“산짐승이겠지요. 옥룡산에 귀여운 것들이 많이 돌아다니잖습니까.”

뚱뚱한 방상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하고는 무허가 도주한 방향을 응시했다. 그가 다시 돌아와 자신들을 기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의 눈에는 은은히 배어 있었다.

“산짐승이라면 폭탄 소리에 벌써 도망갔겠지, 아직 이 주변에 남아 있겠냐?”

육기천은 의심을 풀지 않고 왼편의 나무 주변을 수색했다.

“넌 반대편을 조사해.”

“아니 사형, 이 산에 무허 말고 또 누가 들어왔겠습니까? 있다면 귀 막고 눈 가리고 모른 척하는 도관의 도인 녀석들뿐인데요. 그놈들이야 감히 우리 검선문에 반항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떠들 시간이면 반대편을 다 조사했겠다.”

육기천의 손짓에 방상은 입을 다물고 바위를 중심으로 오른쪽 수풀과 나무 들을 조사했다.

잠시 후 그들은 도현의 흔적을 못 찾고 다시 공터로 되돌아왔다.

“거보세요. 아무도 없잖습니까.”

“흠.”

육기천은 허리에 맨 가방에서 개조한 소형 폭탄을 하나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했다.

“사형, 근데 폭탄 만드는 기술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어디서 배우긴, 폭탄 전문가에게 배웠지. 다른 사형제들이 조직을 만들고 돈을 벌 때, 난 공부를 하며 이 기술을 배웠다. 쓸모가 있어. 너도 조금 전 봤지 않느냐, 내 폭탄에 기겁을 한 무허가 도주하는 모습을, 크크.”

키가 작고 왜소해 보이는 외모 탓에 육기천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기피하는 성격이 됐다. 사문에서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이는 팔사제 방상뿐이었다.

“사형, 그런데 폭탄을 사용한 것을 사형제들이 알면 우리를 비웃지 않겠습니까? 총도 아니고.”

“사부님의 말씀을 잊었느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허를 죽이라 하셨다. 오히려 이 폭탄에 무허가 죽었으면 사부님께서는 나를 크게 칭찬해 주셨을 거다.”

“그래도 검선문의 제자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이유는 가진 무공 때문인데, 우리들도 총과 폭탄을 사용하면 그들과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목숨을 구해 줬더니 네 녀석이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구나.”

육기천이 손바닥으로 방상의 입을 찰싹 때렸다.

“멍청한 놈아, 이게 아니었으면 무허가 부상을 당했다 해도 우리 둘의 실력으로 얼마나 버틸 것 같으냐?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우리가 입었을 부상은 아주 컸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사형.”

방상이 머리를 긁적일 때, 섭상이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나무를 타고 하늘을 훨훨 날아온 그의 무위는 폭탄을 만지작거리던 육기천의 기를 단번에 죽였다.

뒤를 이어 주성하와 화지약이 현장에 나타났다.

“무허는?”

섭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용사 계곡 방향 쪽으로 도주했습니다.”

육기천이 정중하게 대답을 했다.

“쫓지 않고 여기서 무얼 하는 게냐?”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따라들 와.”

섭상이 앞장서서 바람처럼 용사 계곡을 향해 달려가자, 그 뒤를 나머지 제자들이 급히 쫓았다.

잠시 후 그들이 사라진 공터에 도현이 나타났다.

청각이 예민한 육기천에게 하마터면 발각될 뻔한 도현은 오른쪽 나무 위에 숨을 멈추고 은신해 있었다.

방상이 건성으로 조사한 나무 중 하나였다.

“검선문의 제자였군.”

도현은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저들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실력들이 모두 범상치 않아 보였다. 특히 나뭇가지를 밟으며 온 자는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등선궁에서 종적을 감춘 검선문을 추적해야 할 입장인 도현으로서는 뜻밖에 만난 저들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무허라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느낌이 태선군이 이 주변에 와 있을 것 같았다.

‘저들을 따라가다 보면 태선군을 볼 수도 있겠어.’

도현은 섭상 일행의 뒤를 쫓아 서둘러 몸을 날렸다.

“대사형, 빨리 좀 오십시오.”

노일문의 닦달에도 청선은 도통 급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혼자 가라 하지 않느냐, 이놈아. 나는 오랜만에 등선궁에나 들러서 청소나 해야겠다. 사부님이 반쪽으로 만들어 놓은 목상들도 정리하고.”

그의 손에는 손바닥만 한 술병이 들려 있었다.

“지금이 그럴 때입니까. 무허를 잡아서 사부님 눈에 들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내가 어찌 무허 사숙을 잡겠느냐, 사문의 어른을.”

노일문이 주위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리 심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문주이신 사부님이 정식으로 무허 사숙을 파문시켰으니, 그는 더 이상 사문의 어른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적입니다.”

청선이 껄껄 웃으며 안개가 자욱한 용사 계곡 입구를 응시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수시로 안개가 끼는 용사 계곡은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용의 움직임처럼 힘이 넘치기도 하고 뱀의 움직임처럼 은밀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사백이 승천하시고 남은 유일한 분이 무허 사숙인데, 사부님은 어찌 사형이신 무허 사숙을 품지 못하는가.”

“사부님을 탓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번 일은 저도 사부님이 옳다고 생각하니까요.”

청선과 가까운 노일문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무허는 자신의 고강한 무공을 이유로 처음부터 사부님을 문주로 인정하지 않은 자입니다. 몸이 약한 류선 사백께서 문주직을 계승하기 어렵다 하여 전대 문주님이 우리 사부님을 후계자로 지명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사부님이 그로 인해 얼마나 오랜 시간 무허와 다투셨습니까? 끝까지 우리 사부님을 문주로 인정하지 않은 무허는 대가를 받을 만합니다.”

“싸우지 않고 지내면 좋지 않으냐.”

청선이 딸꾹질을 하며 말했다.

“술 좀 그만 드십시오! 상해에서 올 때부터 취해 있더니, 대체 어느 정도까지 술을 드셔야 만족하실 겁니까!”

노일문이 청선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땅바닥에 술을 쏟아 버렸다.

“대사형이 힘으로 검선문을 장악하지 않는 한, 사부님과 무허가 다투는 지금의 양상이 우리 사형제들 사이에 재현될 겁니다. 그것도 훨씬 참혹하게 말입니다.”

쨍그랑.

노일문이 던진 술병이 산산조각이 났다.

“일어나십시오. 무허의 심장을 도려내서 사부님께 인정을 받고, 더 늦기 전에 사형제들의 욕망을 꺾어 버리십시오.”

“세상이 돈다. 어지럽구나.”

청선이 비틀거리다 술기운을 참지 못하고 용사 계곡 입구에서 쓰러졌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한숨을 내쉰 노일문은 정신을 잃은 청선을 들쳐 업으려다 몸이 굳어졌다. 그의 목울대에 검이 닿아 있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서슬 퍼런 검날이 그의 목을 완전히 베어 버릴 것 같았다.

“내 심장을 도려내고 싶다고 했느냐?”

귓가에 들리는 조용한 노인의 목소리에 노일문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허 사숙.”

“적이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사숙이라고 하는 것이냐.”

청선을 업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었던 노일문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에서 귀신같이 다가온 무허의 검에 허를 찔린 상태였다.

“문주란 작자가 세속의 탐욕에 물드니 그 제자 되는 녀석들도 다 이 모양인 것이야.”

“문주님을 보필할 의무가 있는 장로이신 무허 사숙의 태만도 컸지요.”

이미 죽을 각오를 한 노일문이 무허를 탓했다.

“이놈아, 애초에 문주가 아닌 자를 내가 왜 보필해야만 하느냐.”

“전대 문주님이 그리 정하셨으니까요.”

“전대 문주는 태선군에게 오원신공을 전수해 주지 않았다. 문주 무공을 전수해 주지 않았다는 것은 문주감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태선군은 내게 문주가 아니다.”

등 뒤에서 들리는 무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역시 당신은 반도요. 전대 문주님의 제자인 당신이 사부의 명까지 부정하는 것을 보면.”

허공에 피가 튀었다.

분노한 무허의 칼날이 노일문의 목에 깊이 들어간 것이다.

“내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날이 검선문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이다. 죽기 전에 즐겁게 듣고 가거라.”

목에서 피를 콸콸 쏟아 내던 노일문이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고개를 돌릴수록 칼날에 그의 목이 더 심하게 베어졌다.

아이처럼 피부가 탱탱한 늙은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무……허.”

“오냐, 말해라.”

“청선은 죽이지…… 마시오. 그는…… 쫓기던 당신을 살려 줬다 들었소.”

“그가 네게 무엇이기에 죽어 가면서도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냐.”

“그는…… 내가 존경하는 대사형이오.”

노일문은 눈동자만 움직여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청선을 내려다봤다.

“사형, 술 좀 적게 드시오.”

마지막 말을 내뱉은 노일문이 뒤로 쓰러졌다.

“아까운 녀석이군. 이런 녀석이라면 내 제자로 삼을 만한데 말이야.”

무허는 죽은 노일문의 가슴에 칼을 움직여 태선군에게 보내는 글을 적었다.

죽은 자의 몸에 칼로 흠집을 내 글을 남겨 놓은 무허는 정신을 잃은 청선을 어깨에 메고 쫓기는 자라고 볼 수 없는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용사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밤안개에 휩싸인 용사 계곡으로 사라진 지 얼마 안 돼 신법을 발휘하며 무허를 뒤쫓던 섭상 일행이 나타났다.

주변을 살피며 무허의 흔적을 찾던 그들은 주성하의 비명 같은 신음 소리에 다들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냐?”

“사, 사형, 여, 여기.”

주성하가 다가온 섭상에게 죽어 있는 노일문을 가리켰다.

“음…….”

섭상이 탄식 어린 신음을 흘렸다.

화지약과 육기천, 방상도 사형인 노일문의 죽음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 받은 얼굴로 시체를 내려다봤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이들을 미행하던 도현은 저들이 무슨 이유로 한데 모여 있는지 알지 못해 궁금했다. 그들은 대화도 없었다. 마치 입이 없는 사람처럼 그저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지. 뭘 발견한 모양인데.’

도현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나무 뒤에서 나오다가 멈칫했다.

맞은편 숲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번엔 누굴까?’

도현은 달빛 아래 드러난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피가 뜨거워졌다.

그는 다름 아닌 태선군이었다.

허리에 고풍스러운 검을 찬 태선군은 오비와 고진영을 대동하고 섭상과 제자들이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피 냄새가 아니더냐?”

“사부님, 노일문이 무허의 손에 죽었습니다.”

섭상이 무거운 얼굴로 보고를 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