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디 임팩트 8권 25화
차아아앙.
고풍스러운 검이 칼집에서 나오는 소리가 도현의 귀에 들릴 정도로 그의 검은 칼집 안에서부터 강한 힘을 가지고 뽑혀 나왔다.
대낮임에도 두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푸른 검광이 그의 검에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태산이라도 자를 만한 거력이 담긴 태선군의 검은 그 안에 수백의 변화까지 담겨 있어서 막는 게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수백 명의 검객이 허공에서 각기 다른 자세로 검을 휘두르는 환상을 만들어 낸 태선군은 차가운 얼굴로 무허에게 그 검을 보냈다.
무허는 고요한 눈빛으로 도끼질을 하듯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고, 두 개의 검이 부딪치며 만들어 낸 뜨거운 열기가 수십 미터 아래에 있는 도현에게까지 후끈하게 전달되었다.
검에 담긴 힘이 어마어마했다.
산을 쪼갠다는 말은 태선군과 무허가 휘두르는 검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검이 부딪칠 때마다 공기들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리며 진공상태를 만들기도 했고, 주변의 암석들이 검의 기운에 휘말려 들썩이다가 우지직하며 조각조각 부서져 허공으로 비상하기까지 했다.
도현은 그들이 싸우는 장면을 더욱 가까이서 보기 위해 암석 정상으로 올라갔다.
차차차차창창.
한순간에 수백 번은 부딪쳤을 것 같은 믿기지 않는 엄청난 쾌검 속에서 그들은 서로 교차했고, 다시 그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도현은 그들이 만드는 절대 쾌검 속에 숨어 있는 검술의 변화를 파악하려 애를 썼지만, 그의 현재 수준으로는 그 모든 걸 단번에 다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눈으로 봐서는 절대 저 빠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도현의 눈에는 마치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용들의 움직임.
오원신공을 제외한 검선문에서 제일 강한 양대 검법을 나란히 한 가지씩 익힌 두 명의 노검객은, 이미 마음으로 검을 휘두를 만한 경지에 오른 초고수였던 것이다.
도현은 형용할 수 없는 극치의 검술을 관전하며 마음속에서 무한한 기쁨이 샘솟았고, 손이 자기도 모르게 저들이 펼치는 절대 쾌검 속 검술의 일부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위로 올라오며 청선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현은 그 생각조차도 잊어버릴 만큼 저들의 싸움에 깊이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곶감 빼먹듯 하나하나 무허와 태선군의 검을 자신도 모르게 훔쳐 배우던 도현은 태선군의 외침에 정신이 되돌아왔다.
“넌 누구냐!”
‘어, 내가 왜 여기까지 다가왔지?’
처음에는 그들과 거리가 제법 됐었는데, 지금은 불과 10여 미터도 안 됐다.
그도 모르게 그들의 검에 이끌려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도현은 싸우는 와중에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태선군과 무허를 보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신분을 들키면 곤란한 일이 생길 게 분명해.’
태선군과 악연으로 맺어진 도현은 혹시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인지 알아챌까 봐 목소리를 굵게 바꿔 말했다.
“난 상관 말고 두 분은 하던 일 마저 하시죠.”
“뭐라?”
태선군과 무허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복면을 한 도현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은 그 와중에도 서로를 향해 치명적인 살수를 쓰고 있었다.
“네 이놈, 어디로 가는 것이냐!”
슬금슬금 쓰러지는 소나무로 향하는 도현을 본 무허가 소리쳐 물었다.
“저 사람을 구하러 가는 겁니다.”
“뭐라? 멈추지 못할까!”
노한 무허가 태선군의 검을 막으며 발밑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걷어찼다.
내공이 실린 돌멩이는 도현의 머리를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하지만 도현은 가볍게 돌멩이를 피하며 소나무로 접근했다.
태선군은 도현의 정체가 의심스러웠지만 하는 행동이 청선을 구하려 하는 것 같아서 무허의 손발을 묶어 두기 위해 공격을 더 강화했다.
“그놈을 풀어 주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무허의 위협에도 도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등에 멘 목함에서 검을 꺼낸 도현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청선의 발목과 손목을 묶은 천들이 여러 조각이 나 흩어졌고, 밑으로 떨어지는 청선의 몸을 도현이 번개처럼 낚아채 평평한 암석 정상에 눕혔다.
뒤통수에 충격이 오자 청선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으음, 여긴 어디지?”
도현은 자신임을 밝히려다가 입을 다시 다물었다.
‘굳이 지금 말을 할 필요가 없지.’
하지만 아까 들은 얘기는 해 주어야 했다. 도현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태선군과 무허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작게 속삭였다.
“무허는 당신이 전대 문주에게 전수받은 오원신공을 태선군이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다고 했소. 조심하시오.”
“넌 누구냐?”
청선이 별로 놀라지 않는 얼굴로 도현의 다리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도현이 그 손길을 가볍게 회피하며 저만치 물러났다.
‘이제 여기서 몸을 피하자.’
작년에 목숨을 구해 준 청선에게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도움을 준 도현은 수십 미터 높이의 암석에서 내려가려 했다.
그때 돌연 뒤에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네 이놈!”
화가 머리끝까지 난 무허가 태선군의 검을 뒤로 밀어낸 뒤, 번개처럼 방향을 바꿔 도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도현은 해일처럼 다가오는 무허의 검세를 기다리다가 검을 묵직하게 수평으로 그었다.
그가 주입한 내공을 견디지 못한 골동품 검이 균열을 일으키며 무허의 검과 부딪쳤다.
꽈앙.
상상을 뛰어넘는 굉음 속에 무허가 뒤로 주르르륵 밀려났다.
검술의 깊이와 깨달음은 무허가 앞섰지만, 내공에서만큼은 도현을 앞서지 못했다.
‘내공에서 밀려?’
무허가 도현이 사라진 자리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공이 실린 돌멩이를 가볍게 피하는 모습에 보통 놈이 아니라 생각하고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태선군이 뒤를 쫓아와 공격하면 도현을 공격하던 검을 태선군에게 사용할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전 도현을 공격했던 무허의 검은 그야말로 막강한 내공이 깃든 무서운 검이었다.
그런데 도현이 그 검을 막은 것뿐만 아니라 되레 더 큰 힘으로 무허를 밀어내 버렸다.
‘검술도 뛰어났어. 대체 녀석이 누구기에?’
그가 놀라워할 때 음습한 기운이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태선군이 작정을 하고 기습적으로 날린 장풍에 무허는 피를 토하며 절벽으로 떨어졌다.
“태선군, 또 기습을!”
수백 미터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지던 무허는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렸지만 장풍을 맞아 일시적으로 기혈이 흔들려 내공이 잘 모이질 않았다.
“태선군!”
무허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추락하며 고함을 치는 모습을 태선군은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도 운이 좋아 살아난다 해도 몇 년은 고생할 부상이었다. 보양단은 일시적으로 내상을 다스리는 것일 뿐, 완전한 회복이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재차 장풍을 맞고 수백 미터 절벽 아래로 추락을 했으니, 목숨을 부지해도 지금처럼 날뛰지는 못할 것이다.
“사부님, 저와 같이 있던 노 사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청선이 물었다.
“내려가자.”
“사부님, 노 사제는요. 설마 잘못된 건 아니겠지요? 상황을 보니 무허 사숙이 저를 잡아서 사부님을 유인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너는 반도에게 어찌 사숙이라 하느냐.”
검을 허리에 차며 태선군이 엄한 목소리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네 꼬락서니를 봐라. 대체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대제자가 맞느냐!”
청선은 아랫도리를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산을 내려가면 너에 대한 징벌이 있을 것이다.”
“예, 달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노 사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죽었다.”
“예? 사부님, 그 무슨 무서운 말씀을. 노 사제가 왜 죽습니까?”
“네가 사숙이라며 떠받들던 무허가 죽였다.”
청선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사부님, 그럴 리가요. 노 사제가 죽다니요?”
“못난 놈.”
태선군은 겉옷을 벗어 청선에게 휙 던졌다.
“네가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노일문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건, 대제자인 네가 그 자리에 걸맞은 위엄과 힘을 보여 주지 못한 죄. 돌아가서 근신하며 반성해라.”
넋을 놓고 멍하니 서 있는 청선의 팔을 잡고 태선군은 암석의 정상에서 뛰어내렸다.
청선과 산을 내려가던 태선군은 뒤를 힐끔 쳐다봤다. 제자를 살려 준 복면인의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다.
무허의 만만치 않은 검을 막아 낸 복면인의 한 수에는 강력한 힘이 서려 있었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태선군은 그 힘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공이 어느 정도이기에 무허가 당황을 했던 것일까?’
태선군은 새로운 방해꾼이 나타난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널 구해 준 복면인과는 어떤 사이냐?”
“…….”
“청선!”
사부가 건네준 겉옷을 입고 산을 터벅터벅 내려가던 청선이 천천히 대답을 했다.
“그는 모르는 자입니다.”
“한데 그가 왜 나타나 너를 구했겠느냐? 잘 생각해 봐라. 무허를 감당할 만한 고수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야.”
“그런 고수와 인연을 맺은 적이 없습니다.”
태선군은 청선의 대답 속에서 거짓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음…… 대체 누가.”
태선군과 청선이 탄 고급 승용차가 떠나자, 그 자리에 도현이 나타났다. 그는 종이에 차량 번호를 적다 옥룡산 근처의 마을 사람들이 다가오자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그는 상해로 돌아와 홍영의 집으로 가기 전, 병원에서 가슴에 입은 검상을 치료했다. 무허의 검을 막고 반격에 성공했지만, 그도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검이 변화를 일으켰어. 만약 그 검을 조금만 늦게 막았다면, 지금보다 부상이 훨씬 심했을 거야.’
도현은 태선군과 무허의 싸움을 보면서 아직 그는 태선군에 비해서 검술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미묘한 차이로도 이렇게 가슴에 부상을 입을 수가 있는 게 고수들 간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내공은 그에 비해서 뒤처지지 않는 것 같았다.
‘부족한 검술과 내공의 우의. 정면으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
도현은 깊은 생각을 하며 병원 로비를 지나다가 귀에 익숙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그는 몸을 반쯤 틀어서 벽걸이형 TV를 응시했다.
충칭에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주도하는 홍콩의 부동산 개발 회사 베스트엠의 회장이 나와서 기자와 잠깐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도현이 옥룡산에서 본 태선군의 제자였다.
‘저 회사의 회장이었나?’
도현은 옥룡산에서와는 달리 부드러운 눈빛으로 인터뷰를 하는 섭상을 담담히 지켜봤다.
태선군이 타고 간 차량의 번호를 확보해 두기는 했지만, 이걸 통해 태선군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이나 검선문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선군에게 직접 지시를 받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는 듯한 섭상을 주시하고 있으면, 언제든 태선군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잘됐어.’
병원을 나온 도현은 저녁 무렵 홍영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홍영의 어머니 생일이었다.
“어서 오게.”
홍영의 어머니가 친자식을 보듯 따뜻한 눈빛으로 도현을 보며 안아 주었다.
밤이 깊은 시각, 도현의 방으로 홍영이 들어왔다. 어머니 때문에 깊은 얘기를 물어보지 못한 홍영은 도현이 옥룡산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놀라워했다.
“아직은 태선군을 상대하기에는 이른 것 같아요.”
도현의 말에 홍영은 미소를 보였다.
“고생했어요. 피곤할 텐데, 그만 자요.”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녀는 방문을 열려다 뭔가가 생각난 표정으로 되돌아섰다.
“아, 잊을 뻔했어요.”
“뭐를요?”
“영국의 숀이 답장을 보내왔어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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