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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01화 (201/575)

[201] 디 임팩트 9권 1화

정보연구소

아침 식사를 한 도현은 홍영의 방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숀이 보낸 이메일을 확인했다.

-영국까지 올 수 있다는 답장에 조금 놀랐습니다. 내 말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응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거든요. 조금은 장난스럽게 한 말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제 당신이 누군지 궁금해지는군요. 다음에 연락을 할 땐 구체적으로 만날 장소와 시기를 정해서 알려 주겠습니다. 빨리 만나 증조부가 남긴 기록사진과 그 배경 이야기를 해 주고 싶지만, 사정이 있어 안타깝군요. 조만간, 다시 연락을 하겠습니다.

어젯밤에 홍영이 그에게 해 준 이야기와 다를 게 없었다.

도현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숀에게 보내는 글을 직접 적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홍영보다는 회화 실력이나 문장 능력이 다소 부족하긴 했지만, 도현은 하고 싶은 의사 표현을 놓치지 않고 정확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답장 잘 받았고 연락을 기다리겠다는 글을 적은 도현은 홍영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숀과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라도 있다면 한번 통화해 보고 싶었지만, 그는 전화번호를 남겨 놓지 않았다.

‘아예 언급도 없어.’

지난번 이메일에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 고맙겠다고 했지만, 숀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인지 전화번호 얘기는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정보가 필요한 건 나니까.’

도현은 이메일을 보낸 후, 태선군의 제자이자 베스트엠의 회장인 섭상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 봤다.

홍콩에 본사를 둔 부동산 투자 개발 회사의 회장인 그는, 주로 홍콩과 중국의 경제 신문에 이름이 실리는 인물이었다.

어떤 언론에서는 그를 홍콩과 중국을 넘어 동남아시아와 한국, 일본까지 그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는, 공격적인 리더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기업은 아니었지만, 부동산 투자 회사로서는 근래에 급성장했던 것이다.

‘이런 회사를 운영하는 회장이 직접 옥룡산까지 와서 태선군의 지시를 받고 무허를 잡으려고 했다는 건 그만큼 태선군이 제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거겠지.’

보양단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 여러 명의 제자들이 용사 계곡의 평평한 바위 위에서 죽여 달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던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태선군을 없애면 그의 충성스러운 제자들과 또 한 번의 싸움이 시작될지도 모르겠어.’

도현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필요하다면 태선군의 제자들과 싸울 용의가 있었다. 그것도 단호하고도 냉정하게. 하지만 청선이 마음에 걸렸다. 무허의 손에서 그를 구해 준 것으로 마음의 빚은 청산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청선은 도현에게 칼로 베어 버리기에는 난감한 존재였던 것이다.

“검선문의 다른 제자들도 이 사람처럼 세상에 나와 활동을 하고 있겠죠?”

홍영이 컴퓨터 모니터 속에 떠오른 섭상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등선궁은 먼지와 낙엽이 뒹굴고 있었으니까요.”

“태선군 때문에 그들과 갈등을 맺게 된다면…….”

홍영이 의자에 앉아 있는 도현의 옆모습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필요하다면 내 칼끝은 그들을 향하겠죠.”

이계에서 수없이 피를 본 그다. 각자의 대의와 이득을 위해서 서로 편을 가르며 싸우는 판이라면, 도현은 그 누구보다 독하게 나갈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홍영은 그 말속에 깃든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도현은 겉으론 부드러운 눈빛을 흘리고 있지만, 속은 거센 태풍이 언제라도 휘몰아쳐 나올 준비를 마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는 도현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차분히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난 언제나 당신 편이에요. 그리고 함께할 거예요.”

도현은 어깨에 올라온 홍영의 손에 손을 얹었다. 따뜻했다.

“걱정 말아요, 홍영 씨까지 그들과 싸우게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요.”

깊은 눈빛으로 홍영을 올려다보던 도현은 고개를 돌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상해에 소재한 정보 자문 회사 수십여 개가 화면 가득 떠올랐다. 이들은 모두 한국의 흥신소 역할을 하는 곳으로, 돈만 주면 도현이 옥룡산에서 확보한 차량 번호를 통해 여러 정보를 물어다 줄 사람들이었다.

물론, 도현은 이 차량 번호 하나로 태선군이 옥룡산을 떠나 현재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완벽히 알아낼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추적의 단서로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그게 안 된다면, 할 수 없이 섭상을 통해 태선군의 위치를 파악해야겠지.’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

도현은 이런 계통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봤고, 뒤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던 홍영은 그런 도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스터 백, 뭔가 열심히 하던 것 같았는데, 왜 가만히 있는 거죠?”

장난스러운 그녀의 말에 도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정보 자문 회사가 너무 많아서 어떤 곳으로 해야 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네요.”

“내가 도와줄까요?”

“홍영 씨가요?”

“난 상해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이 도시의 밝은 면도 알지만, 동시에 어두운 면도 적지 않게 알고 있다고요.”

뭔가 도시의 큰 비밀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홍영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그 표정이 재밌어서 도현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어떤 곳으로 해야 할지 홍영 씨가 결정해 봐요.”

도현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러자 홍영이 컴퓨터를 꺼 버렸다.

“아니 왜?”

“내가 아는 데는 이런 곳들이 아니에요. 아버지의 친구죠.”

“친구요?”

“아버지 고향 친구인 그분은 상해 공안 수사국에 있다가 비리 혐의로 그만두셨어요. 비록 깨끗하지 않은 분이지만,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았어요. 제게도 잘 대해 주셨고요. 그분이라면 도현 씨가 조금 전 보고 있던 정보 자문 회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차량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 주실 수 있을 거예요.”

“공안을 그만두신 분인데, 그럴 만한 정보력이 있을까요?”

홍영의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을 하던 도현이 물었다.

“그분도 인터넷에만 노출이 안 되었을 뿐이지, 작은 정보 자문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공안이 수사하던 아버지 사건 자료를 구해서 내게 전해 준 분이 바로 그분이기도 하고요.”

홍영은 그를 무척 신뢰하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사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람이 해 주는 게 서로 편하지 않을까요?”

도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홍영 씨가 그분에게 가서 차량 번호를 조사해 달라고 하는 순간부터 그분이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잖아요. 일이 아닌 사적으로 말이에요. 돌아가신 홍 사부님과 친구분이시라면 더더욱 그러지 않겠어요?”

“아…… 그렇겠네요. 미안해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홍영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도현을 도와 태선군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했던 그녀는 얼굴을 조금 붉힌 채, 컴퓨터를 다시 켜려고 했다.

하지만 도현이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홍영 씨, 잠깐만요. 내 말 끝까지 들어 보세요. 홍영 씨는 그분하고 사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지만, 난 아니잖아요.”

“아!”

홍영은 도현의 말뜻을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가서 그분을 만날게요. 사적인 관계가 아닌, 고객으로서요. 그럼 되겠죠?”

홍영이 추천할 정도로 정보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구태여 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함께 나가요. 그분이 운영하는 사무실 앞까지 데려다 줄게요.”

“그래요.”

빙그레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던 도현은 홍영의 책상 한편에 있는 사진 액자에 시선이 갔다.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의 소년이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소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이건…….”

“기억 안 나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잖아요.”

홍영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진 액자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때 왜 이렇게 긴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그래 보여요?”

도현은 아닌 척 대답을 했지만, 사진을 보자 과거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가 중학생일 때다. 방학 때 아버지를 따라 처음 상해로 가서 홍문기의 딸인 홍영을 보고 어찌나 설레고 마음이 뒤숭숭하던지 그날 밤은 이상하게 잠도 못 이루고 뒤척이다 새벽을 맞이했을 정도였다.

이 사진은 그가 3박 4일이라는, 짧은 상해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직전 쿵푸 도장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었다.

홍문기에게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비행기에 올랐던 것도 생각났다.

그러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며칠을 후회했는지 모른다.

10년도 더 된 과거 생각에서 벗어난 도현이 웃음기 밴 어조로 말했다.

“그때는 홍영 씨가 하도 쌀쌀맞게 행동해서 그랬나 보죠 뭐.”

“내가요?”

홍영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사진 액자에 손을 뻗었다.

“사진 찍기 싫다고 했잖아요. 그때 내가 얼마나 무안했는지. 그래서 이렇게 경직된 표정이 나온 거예요. 홍영 씨는 정면이 아닌 옆을 힐끔 쳐다보고 있고.”

“서운했으니까요.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그날 아침에 들었잖아요. 난 그것도 모르고 그 전날 밤에 함께 놀러 갈 장소도 생각해 놨었다고요.”

“정말요?”

“여기 사진 잘 보면 내 눈가에 눈물이 조금 맺힌 게 보이죠? 억지로 참았지만 사진 찍을 때 눈물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고요.”

“눈물이 어디 있는데요?”

“잘 봐 봐요.”

“안 보이는데?”

“잘 보라니까요.”

홍영이 약 오른 표정으로 사진 액자를 들이밀자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알아요, 아주 잘 보여요.”

“이계에 다녀오면서 장난만 더 늘었어요.”

도현이 장난치는 걸 알면서도 같이 맞장구를 쳐 준 홍영은 살짝 토라진 얼굴로 들고 있던 사진 액자를 소중한 보물처럼 책상에 다시 내려놨다.

그녀가 도현과 어린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은 이것이 유일했다.

충북 괴산군을 지나 태불산 산자락에 도착한 서지철은 차에서 내려 주소지를 확인했다.

“여기군.”

수첩을 품에 넣은 그는 이평리 작은 마을을 자기가 살던 동네처럼 편안한 얼굴로 돌아다녔다.

“조용하니 좋군.”

태불산을 배경으로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앞으로는 작은 개천이 흘렀다.

동에서 서로 쭉 길을 따라 동네를 기웃거리던 그는 백도현의 조부 백만석이 살았던 집을 찾아내고는 슬며시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멘트 벽에 철문을 달아 놨지만, 마당 뒤에 집은 낡은 한옥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시골집이라면 으레 한 마리씩 키우고 있는 개가 서지철을 향해 마구 짖어 댔다.

서지철은 갈색 선글라스를 벗고 쥐방울만 한 작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용히 해라, 잡아먹기 전에.”

컹!

작은 개가 갑자기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며 껑충 뛰어 올라 서지철을 물려 했고, 그는 깜짝 놀라 뒤로 급히 물러났다. 체구는 작은 개가 성질이 보통 사나운 게 아니었다.

서지철은 개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개와 대치한 상태에서 몇 차례 더 부른 끝에 머리가 허연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뉘시오?”

점심을 먹고 낮잠이라도 잤는지 주름 가득한 할아버지는 마루에 서서 긴 하품을 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서지철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개를 피해 마루가로 다가갔다.

“서울에 있는 부동산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서지철은 지갑에서 가짜로 만든 명함을 건네며 집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 재빨리 살폈다. 예상대로 명함을 앞뒤로 살피는, 눈앞의 노인 밖에는 없었다.

“부동산?”

“예, 이 일대 땅 좀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박 노인은 방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오.”

방 안으로 들어간 박 노인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 땅을 사고 싶어서 온 것 같은데, 나 그렇게 쉽사리 땅 파는 사람 아니오. 다 늙어서 땅 판 돈 가지고 마누라 새로 들일 것도 아니고.”

걸쭉한 노인의 입담에 서지철이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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