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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05화 (205/575)

[205] 디 임팩트 9권 5화

도현은 잠시 생각을 한 후, 대답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넘어설 수 없는 산은 아니라고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그러나 자네가 명심해야 할 게 있어.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바다 아래에 더 큰 걸 감추고 있는 법이지.”

무허와 싸우는 태선군의 무예를 보며 그 깊이를 가늠해 봤던 도현은 청선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태선군의 본실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인가?’

도현이 의아해할 때 청선이 갑자기 몸을 낮춰 도현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왜 이러는 거지?’

도현은 그의 손길을 회피하며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는데, 그 발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 복면인은 역시 자네였군!”

청선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복면인이라니요?”

“시치미 떼지 말게. 그날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자네의 다리를 붙잡으려고 했을 때, 자네가 회피하던 동작이 지금과 똑 같았어.”

청선은 놀랍게도 도현의 발동작을 보고 단번에 암석 위의 복면인이 그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보법이 너무 단순했나? 돌아가서 손 좀 봐야겠군.’

어떤 말을 해도 청선의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도현은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정녕 놀라운 일이야. 그 짧은 시간에 무허의 검을 막아 낼 정도로 성장하다니.”

도현의 자신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이제 무허에 대한 존칭을 생략했군. 노일문을 죽였으니 더 이상 사문의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도현은 청선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다.

“안타깝게 됐어.”

“무엇이 말입니까?”

“자네가 내 목숨을 구해 줬으니, 자네는 이제 나에게 짐이 없다 여기고 마음껏 검선문에 검을 들이댈 것이 아닌가?”

뒷짐을 진 청선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제 적은 검선문이 아니라 태선군입니다.”

“문주가 곧 그 문파라네.”

청선의 눈빛이 다소 차가워졌다.

“자네가 문주이신 사부님께 위해를 가한다면, 모든 검선문의 제자들이 자네를 향해 그 책임을 물으려 할 걸세.”

“선배님은 어떠십니까? 전 아버지 원수를 반드시 갚아야겠는데요.”

도현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물었다.

“모든 일은 나로 인해 벌어진 것. 차라리 내 목숨을 원한다면 자네에게 주겠네.”

“선배님은 저와 친구를 살려 주었을 때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을 원하는 건 돌아가신 아버지도 원하시지 않으실 테고요. 그러나 태선군은 다릅니다. 그에겐 반드시 아버지의 죽음을 돌려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하는 도현의 몸에서 차가운 기세가 흘러나와 단 위의 촛불들이 바람도 없는데도 마구 흔들렸다.

표정이 굳어진 청선을 보며 도현은 괜히 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나 후회가 됐다.

“그릇이 작아 용서할 줄 모르는 제 마음을 비웃어 주십시오.”

“하아! 어찌 자네를 탓할까?”

탄식 섞인 대답을 한 청선은 몸을 반쯤 틀어 노일문의 위패를 보았다.

“저기 보이는 노일문은 내게 쓴소리를 적지 않게 한 사람이네. 그가 어렸을 때는 내가 반대로 그에게 쓴소리를 많이 했는데 말일세. 세월이 흘러 그는 성장하고 난 멈춰 있었네. 왜 그런 것일까?”

도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청선의 말을 그저 듣기만 했다. 사형제 간의 일까지는 그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 봤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고 말이야. 답이 나오더군.”

“무엇이었습니까?”

도현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난 검선문 무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였어야 했어. 무인이 도인 흉내를 내려고 했으니, 모든 게 일그러지고 어긋날 수밖에.”

청선은 꺼져 가는 향을 대신해 새로운 향을 피우며 말을 이어 갔다.

“노일문이 비명횡사하고 제자들이 날 우습게 보고, 자네는 아비를 잃었네. 이 모든 것은 하늘 아래 검선문의 대제자로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내가 거부한 까닭이네.”

향을 다 피운 그는 뒤돌아서서 도현 앞에 섰다. 청선의 눈은 호수처럼 맑아 보였지만, 점차 짙은 푸른 빛이 동공 안에서 넓게 퍼져 나갔다.

푸른 빛은 급기야 청선의 두 눈에서 이글거리듯 타올랐다.

“이제부터 도인 청선은 사라지고 무인 청선만이 존재할 뿐이네! 차후로는 자네를 보더라도 인정에 휘말리지 않고 검선문을 위해서 냉정하게 손을 쓸 것이네. 내 말 이해하겠는가!”

“그 말씀은 태선군과 싸우는 데 개입하시겠다는 뜻입니까?”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을 발산하는 청선을 보며 도현이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사부님이 이미 자네의 도전을 등선궁에서 허락하셨으니, 그건 막지 않겠네. 다만,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은 자네 스스로 감당해야 할 걸세.”

도현은 청선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다가 서서히 허리를 굽혔다.

“도인 청선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물러갑니다. 건강하십시오.”

“자네도 몸조심하게.”

착잡한 눈빛으로 청선을 바라보던 도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실내에서 사라져 버렸다.

격돌

‘결국은 이렇게 됐어. 그와의 싸움은 피하고 싶었는데.’

조금 전 청선과의 대화로 도현의 마음은 무거웠다.

‘어쩔 수 없지. 그는 그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가는 수밖에.’

청선과의 싸움이 꺼려진다 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청선이 있는 건물에서 나온 도현은 순찰을 도는 경비원들이 나타나자 어둠 속에 몸을 감췄다.

‘그만 나가야겠다.’

이 집에 태선군이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이상, 구태여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일일이 건물 내부를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무전기를 맨 경비원들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훑으며 저만치 사라지자, 도현은 숨어 있는 곳에서 나와 그가 넘어왔던 담 쪽으로 이동했다.

‘오원신공은 어떤 무공일까?’

청선을 생각하던 도현의 머릿속으로 불쑥 무허와 태선군이 주고받던 대화가 떠올랐다. 문주에게만이 전수된다는 것을 보면 검선문 최고의 무예일 가능성이 높았다.

도현은 담을 넘기 전 뒤를 돌아봤다.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건물이 보였다. 청선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무허의 말처럼 오원신공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현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담을 타고 비호처럼 위로 솟구쳤다.

10여 미터 가까운 높은 담 위에 올라선 그는 밑으로 막 뛰어내리려다 복면 속 눈이 커졌다. 그가 뛰어내리려는 담 밖은 농지였는데, 그곳에 어떤 사람이 몸을 바짝 낮춘 채 숨어 있었다.

남들이라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도현은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일반인들보다 수배는 더 잘 볼 수 있어서 그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누구지?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아직 상대방은 도현이 담 위에 앉아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검선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도현이 잠시 의혹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개를 동반한 경비원들이 나타났다.

성벽처럼 높은 담을 따라 외곽을 순찰하던 그들은 송아지만 한 커다란 개 한 마리를 앞에 두고 세 명이 한조가 되어 움직였다.

‘저들이 지나가고 담을 넘자.’

도현은 은밀히 담에서 내려와 담벼락과 거리를 두었다.

‘논에 숨어 있던 사람은 누굴까? 저대로라면 개가 발견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잠시 후 경비견이 맹렬히 짖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잡아라!”

“거기 서!”

담 밖으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고, 이어 담 주변에 설치된 조명등에 일시에 불이 들어왔다.

게다가 집 안 이곳저곳에서도 사람이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계속 있다간 나도 들키겠어.’

도현은 정원수 바닥에 깔린 자갈 몇 개를 주워 재빨리 담 위로 올라갔다.

피이잉. 퍼석.

그가 던진 자갈이 담 주변을 밝히던 조명등을 깨 버리자 어두워진 공간을 이용해 담을 넘어 논에 착지했다.

주변을 살핀 그는 신법을 발휘해 정면으로 보이는 논 위를 바람처럼 달려갔다. 좌우 양쪽에서 플래시를 든 경비원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조용히 나가려고 했더니 누가 일을 만드는군.’

쓴웃음을 지은 도현은 섭상의 집과 수백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목격했다. 도망치는 사내와 그 뒤를 쫓는 경비원들이었다.

“멈춰!”

“서지 않으면 개를 푼다!”

“여기가 네놈들 땅이냐! 개를 왜 풀어!”

도망가는 사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개의 목줄을 잡고 쫓아가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야 이 자식아, 여긴 다 우리 회장님 땅이야!”

“좋겠다, 이놈들아!”

“저 자식이 정말!”

도망가는 사내의 비아냥거림에 화가 난 경비원이 개의 목줄을 풀어 버렸다.

“가서 다리를 물어!”

송곳니를 드러낸 송아지만 한 개가 도망치는 사내를 순식간에 따라잡더니 다리를 덥석 물려 했다.

도망치는 사내가 깜짝 놀라며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손안에 들어오는 휴대용 미니 소화기였다.

“이거나 먹어라!”

츄우우우.

분사된 흰 가루들이 개의 얼굴에 뿌려졌다.

커어엉.

커다란 개가 논바닥에 쓰러져 얼굴을 바닥에 마구 비벼 댔다.

그 모습을 보며 도망치는 사내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날 잡고 싶으면 총을 쏴, 이 개자식들아! 얼마든지 상대해 주마!”

“저 미친 자식을!”

경비원들이 이를 갈 때 뒤처져 있던 개가 다시 정신을 차리며 미친 듯이 쫓아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도현은 혀를 찼다.

‘저 개도 독하군.’

휴대용 소화기는 개의 화만 돋운 것 같았다. 개는 이제 도망치는 사내의 다리가 아닌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경비원들이 뒤를 쫓으며 소리쳤지만 개는 이미 흥분한 상태로, 본능적으로 사람을 죽일 만한 급소를 노릴 뿐이었다.

“저리 가!”

도망치던 사내는 휴대용 소화기를 집어 던지며 대응했지만, 넓은 논에서 뒤를 쫓는 개를 상대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찌이익.

개의 이빨에 걸린 사내의 장갑에 구멍이 났고, 뒤이어 얼굴에 착용하고 있던 복면의 일부가 길게 찢어졌다. 개의 이빨이 조금만 깊게 들어갔다면 사내의 얼굴 피부가 뜯겨 나갔을 것이다.

“에라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내는 또다시 달려드는 개를 끌어안고 뒤로 몸을 회전하며 논바닥에 냅다 엎어졌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도현은 도망치던 사내가 큰 모험을 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봤다.

‘실패하면 개의 날카로운 이빨에 목이 뜯길 거야.’

사내와 개가 거의 비슷하게 논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드드득.

개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달빛이 깔린 논바닥에 으스스하게 울려 퍼졌다.

“하아, 하아.”

죽은 개를 밀어내며 급하게 일어서던 사내는 뒤쫓아 온 경비원의 발길질에 뒤통수를 걷어차이고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이 자식이 개를 죽였어!”

논바닥에 엎어진 사내를 둥글게 포위한 세 명의 경비원들은 인정사정없이 발로 짓밟았다.

“개, 개 한 마리 죽였다고 날 죽일 셈이냐!”

“닥쳐, 이 새끼야!”

경비원이 발로 얼굴을 걷어찰 때 기회를 엿보던 사내가 재빨리 경비원의 발을 손으로 막고서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내는 큰 덩치는 아니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집이 날렵해 보였다.

퍼벅퍼벅!

순식간에 세 명의 경비원들을 때려눕힌 사내는 가래침을 뱉으며 말했다.

“하아, 하아, 내가 더 젊었으면 너희들은 벌써 다 죽었어.”

기절한 경비원들을 내려다보던 사내는 눈앞이 번쩍이는 충격을 받고 온몸에 힘이 쫙 풀렸다. 앞이 안 보이고 머리가 뜨끈해지며 복면 안으로 핏물이 스며들어 왔다.

피가 콧구멍을 막자 사내는 숨쉬기가 거북스러웠는지 찢어진 복면의 일부를 옆으로 재빨리 젖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흐릿해진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온 사내는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의 손에는 검집이 들려 있었다.

“너 지금 그 검집으로 내 머리를 때린 거냐?”

“당신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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