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디 임팩트 9권 6화
료쿄의 질문에 사내는 낮게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지나가는 사람인데.”
“여길?”
료쿄가 미소를 짓자 얼굴에 난 칼자국이 꿈틀거렸다.
경비원들이 들고 있던 플래시가 바닥에 떨어져 하늘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빛이 료쿄의 옆모습을 비춰서 그녀의 모습은 무덤에서 나온 귀신처럼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태선군의 제자를 만났으니 저 사람은 꼼짝없이 잡히겠군.’
도현은 논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서 전면을 계속 주시했다.
복면인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차피 그가 가는 방향과 길도 겹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료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난 것이다.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왜 개를 죽이고 경비들까지 손을 댔지? 오해라면 풀면 그만인데.”
“오해를 풀 시간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궁색한 변명을 하며 사내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자꾸 그렇게 가면 또 한 번 이것으로 맞는 수가 있어.”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검집을 흔들었다.
“저기 뒤에 경비들이 오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얌전히 서 있어.”
도망갈 기회를 엿보고 있던 사내는 료쿄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후다닥 뒤로 몸을 뺐다.
“흥!”
콧방귀를 뀐 료쿄는 공중을 날아 순식간에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밤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그 모습이 마치 귀신과 같아서 사내는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비켜!”
사내는 앞을 가로막은 료쿄를 향해 여러 번 주먹질을 했다. 나름 수십 년간 수련한 권법이었다.
그러나 료쿄는 고개만 살짝살짝 흔들어 주먹을 피한 뒤 발등으로 사내의 뺨을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사내는 수 미터나 날아가 논바닥에 처박혔다. 사내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기어이 일어섰다.
경비들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이 여자를 뚫지 못하면 꼼짝없이 잡힐 상황이었다.
“비키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가 없지.”
사내는 개의 공격에도 꺼내지 않았던 권총을 꺼내 료쿄를 겨냥했고, 료쿄의 눈빛은 차가워졌다.
“날 쏘겠다고?”
“긴말하지 않겠다. 비켜!”
사내는 소리를 치다가 찢어진 복면의 끝이 입안으로 말려들어 오자 위로 확 젖혔다. 그러자 주먹코와 두툼한 입술이 도현의 눈에 들어왔다.
콧등 윗부분은 아직 복면에 가려져 있었지만, 코를 비롯한 하관이 드러나자 도현은 사내가 누군지 알아챘다. 놀랍게도 그는 류장이었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도현이 류장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는 순간, 료쿄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 류장은 잠시지만 료쿄를 시야에서 놓쳤다.
‘어디에?’
류장이 놀라 주변을 살필 때 땅에서 유령처럼 료쿄가 솟아오르며 손에 든 검을 뽑아 휘둘렀다.
한쪽 다리를 길게 내뻗으며 상체를 기울인 채 손에 든 검을 경쾌하게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베기였다.
그녀의 검이 어둠을 가르며 겁 없이 총을 꺼낸 류장의 옆구리를 지나치려 할 때 느닷없이 자갈 하나가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료쿄는 급히 검의 방향을 바꿔 자갈을 베었다.
불꽃이 튀며 자갈이 두 조각이 났고, 그녀는 자갈이 날아온 방향으로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누구냐!”
말과 동시에 그녀의 검이 벼락처럼 논바닥으로 떨어졌다.
푸욱.
도현이 방금 전까지 숨어 있던 자리에 그녀의 검이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간발의 차로 그녀의 검을 피한 도현은 또다시 자갈을 튕겼다.
차아앙.
암기처럼 날아오는 자갈을 어둠 속에서도 놓치지 않고 단번에 베어 버린 료쿄는 반으로 잘린 자갈 사이로 도현을 노려봤다.
반으로 잘린 자갈이 논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그녀 앞에서 도현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휙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류장에게 달려가는 도현을 발견하고는 눈초리가 위로 올라갔다.
“흥!”
그녀는 제비처럼 몸을 날려 금세 도현의 뒤를 따라잡고 사방으로 검을 날렸다. 차갑고 매서운 검기가 도현을 비롯해 류장까지 삼켜 버리려 했다.
‘피하면 류장이 다친다. 검을 가지고 왔으면 좋았을 것을.’
홍영과 가까운 사이인 류장을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중간에 개입한 도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손을 가슴 높이로 올렸다.
“몸을 낮추시오!”
도현의 다급한 지시에 류장은 반사적으로 논바닥에 엎드렸다.
엎드린 류장 앞에 우뚝 선 도현은 공중을 향해 양손을 전광석화처럼 여러 번 내뻗었다.
쉬쉬쉬쉭.
수십 개의 손바닥이 환상처럼 밤하늘을 수놓으며 그물처럼 쏟아지는 료쿄의 검들을 모조리 튕겨 냈다.
‘검이 없다면 손으로 만든다!’
막대한 내공을 밑바탕으로 한 도현의 장막은 단전에 진기가 바다처럼 넓지 않고서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었다.
“앗!”
료쿄는 뜻밖의 광경에 너무 놀라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검도 아니고 장력으로 그녀의 공격을 이렇게 촘촘히 막아 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콰아앙!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수십 가닥의 검기를 만들어 낸 그녀의 보검이 도현의 양 손바닥에 꽉 붙들렸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위를 올려다본 류장은 도현의 양손과 료쿄의 보검 사이에 푸른 전류와 같은 스파크가 계속 휘몰아치자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더욱 놀라운 건 도현은 땅에 있지만 료쿄는 공중에서 보검을 찌르는 동작으로 멈춰 있었다는 것이다.
“물러나시오.”
도현의 묵직한 목소리에 료쿄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물러나지 않는다!”
“그럼 우리 둘 다 내상을 입게 될 거요. 하지만 난 신묘한 수법이 있어서 금방 내상을 회복할 수 있소. 당신도 그렇소?”
료쿄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도현의 양손에서 검을 빼내기 위해 단전의 힘을 모두 개방해 검에 집중했다. 놓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도현은 꿈쩍도 않고 있었다. 도리어 그녀의 검을 통해 무지막지한 기운이 타고 올라와 그녀의 내공을 밀어내려 했다. 그 여파로 도현의 양손과 그녀의 검 사이에서는 기이한 푸른 빛이 번쩍거렸던 것이다.
“다시 한 번 경고하겠소. 검을 놓고 물러나시오.”
“넌 누구냐!”
“내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소. 지금은 당신이 매우 위험한 처지라는 게 중요하지.”
“검을 빼앗기는 건 검객의 수치다!”
“나 같으면 실리를 택하겠소.”
도현은 말을 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경비원들을 응시했다. 외곽을 경비하는 경비원들은 검선문의 무예를 배우지 않은 듯해서 별걱정은 없었지만, 태선군의 제자들이 나타나면 류장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눈빛이 차가워진 도현이 복면 밖으로 서늘한 눈빛을 뿜어냈다.
“후회하지 마시오.”
뭔가 결심이 선 듯한 그의 모습에 료쿄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번 해 봐! 난 죽어도 검을 놓지 않을 테니까!”
도현은 그녀의 결연한 태도에 속으로 감탄했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도현이 작정하고 단전의 힘을 끌어 올리자 주변의 흙들이 회오리치며 사방으로 퍼져 갔고, 공중에서 검을 잡고 있던 료쿄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료쿄는 전력을 다해 도현의 힘을 막아 내고 있었지만 점점 번쩍이는 푸른 빛이 그녀의 검을 타고 그녀의 몸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검술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내공이 기이하게 높아 보이는 사내에게 검을 붙잡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입으로 한 가닥 피를 흘리며 힘들게 말했다.
“검술로 겨뤘다면…… 넌 내 상대가 안 됐을 것이다.”
“내게 검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않소.”
도현은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널 반드시!”
그녀는 끝이 없어 보이는 도현의 내공에 결국 견디지 못하고 검을 놓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검 손잡이를 끝까지 잡고 버틸 수가 없었다.
도현의 힘에 조금씩 밀려난 그녀의 진기는 역류해 기의 통로를 거칠게 휘돌며 그녀의 전신을 고통스럽게 했다.
‘아, 가문의 검을 결국 빼앗기는구나!’
료쿄가 속으로 탄식을 할 때 천둥 같은 목소리가 넓은 농지를 가득 메웠다.
“조그만 더 버텨라, 사매!”
범상치 않은 힘이 담긴 목소리에 도현은 급히 옆을 봤다.
축지법을 쓰듯 공간을 단축하며 달려오는 우람한 덩치의 중년인이 있었다. 그는 태선군의 넷째 제자 고진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진영의 뒤에는 여섯째 화지약과 여덟째 방상까지 있었다.
‘음.’
도현은 속으로 묵직한 침음을 터트렸다.
용사 계곡에서 본 태선군의 제자들이었다. 노일문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무허의 제자 한섬을 추적하던 태선군의 제자들이 모두 섭상의 집에 모여 있었는데, 운 없게도 그들이 나선 것이다.
평상시라면 경비원들이 나설 일이었다. 하지만 침소에서 잠을 자고 있는 줄 알았던 태선군이 술을 마시고 있는 제자들을 방문해 뭔가 지시를 내리던 참에 집 밖이 소란스러워 졌다. 이윽고 떨어진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라.’라는 태선군의 말 한마디에 섭상 이하 전 제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선 것이다.
일부는 침입자가 집 내부로 들어왔는지 집 안의 건물들을 수색했고, 나머지 인원은 집 밖을 수색하다 결국 료쿄에 이어 고진영, 화지약, 방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현을 향해 몰려든 것이다.
“도망가시오.”
도현은 등 뒤에 엎드려 있는 류장에게 서둘러 말했다.
“당신은?”
“어서!”
도현의 고함 소리에 류장은 검을 잡고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료쿄를 힐끔 보다가 발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머리통을 날려 주마!”
사형제들 중 가장 힘이 좋은 고진영이 곰처럼 우악스럽게 달려들며 허공에서 주먹으로 도현의 머리를 세차게 가격했다. 료쿄의 검을 놓고 피하지 않으면 그 주먹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현은 고진영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받아라!”
도현이 양 손바닥에 끼운 료쿄의 검을 고진영에게 휘두른 것이다.
검에 의지해 허공에 떠 있던 료쿄의 몸이 창대에 걸린 깃발처럼 바람을 가르며 고진영에게 날아갔다.
“어!”
깜짝 놀란 고진영은 주먹을 거두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고진영이 있던 자리에 몸의 중심을 잡고 가까스로 착지한 료쿄는 매서운 눈빛으로 도현을 노려봤다.
도현이 내공을 서서히 거두는 게 느껴졌다. 그에 따라 그녀의 몸을 괴롭히던 역류된 기운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비록 내상을 입긴 했지만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
“포위해라!”
고진영의 지시에 한발 늦게 도착한 화지약과 방상이 도현의 퇴로를 막으며 검을 뽑았다.
스르릉.
고진영도 검을 뽑아 료쿄의 검을 붙잡고 서 있는 도현을 압박했다.
‘저놈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료쿄를 도와주면 나중에 내 편이 되어 주겠지? 좋은 기회야.’
속으로 미소를 짓던 고진영은 그러나 살짝 긴장했다. 그는 도현과 료쿄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료쿄의 내공도 상당한데 저놈이 내공으로 료쿄을 제압하고 있다니, 쉽게 볼 놈은 아니야. 대체 뭐 하는 놈일까? 무허가 남긴 또 다른 제자인가? 그래도 내게는 어림도 없겠지?’
검술의 이해력이 조금 부족했던 그는 일찌감치 사부로부터 내공을 쌓아 부족한 검술을 보완하라고 가르침을 받아 왔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수십 년을 우직하게 내공만 깊이 수련해 왔고 내공에 있어서만큼은 사형제들 중 자신을 따를 자가 없을 거라고 속으로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저놈을 내공으로 혼내 줘야겠군. 검술로는 료쿄에게 뒤처지니 내 체면이 서질 않을 테고, 지약이와 방상에게도 이참에 내가 가진 내공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줘야겠어. 그래야 문파에 제대로 된 사람이 둘째 사형과 셋째 사형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고진영은 한 발짝 나서며 외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그 손을 놓아라!”
“살고 싶어서 못 놓겠어.”
료쿄와 힘겨루기를 했던 도현은 서서히 힘을 줄이고는 있지만 료쿄가 제멋대로 검을 빼낼 수 없게 적절하게 힘 조절을 하고 있었다.
합장하는 자세로 료쿄의 검을 양 손바닥 안에 가둬 둔 도현은 말을 하면서 자신을 포위한 제자들의 면면을 훑어봤다.
‘1 대 4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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