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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07화 (207/575)

[207] 디 임팩트 9권 7화

그는 내공과 검술을 겸비한 고수들과 단체로 싸워 본 적이 없었다.

“난 당신들과 싸우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오. 길을 터 주면 조용히 가겠소.”

“크하하하!”

고진영이 크게 웃었다.

“이 미친 녀석아,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한밤중에 와서 소란을 피워 놓고 싸우려고 온 게 아니라고?”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요.”

“그럼 조금 전에 도망간 녀석이 의도한 건가?”

코웃음을 치던 고진영은 현장에 도착한 경비원들에게 턱짓을 했다.

“저쪽으로 도망간 놈이 있으니까 잡아 와.”

류장이 도망간 쪽을 바라보며 고진영이 지시를 내렸다. 그는 류장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내공이 없는 일반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고, 그래서 경비원들만을 보내도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10여 명의 경비원들이 개를 끌고 류장의 뒤를 쫓아가려 하자 도현의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류장은 죽은 홍 사부의 친구이자 홍영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의 위험을 보고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도현은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회전을 했다. 그러자 검이 붙잡힌 료쿄도 함께 회전을 했다.

검을 포기하면 료쿄는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검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깟 일에 검을 놓을 수 없다는 오기도 일어났다.

도현이 회전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검과 함께 회전하는 료쿄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고진영과 화지약, 방상은 도현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료쿄가 다칠까 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도현이 합장한 손을 풀어 버렸다.

“버티느라 고생하셨소.”

도현은 검과 함께 료쿄를 뚱뚱한 방상에게 번개처럼 던졌다.

“어어!”

료쿄를 남몰래 흠모하고 있던 방상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료쿄를 피하지 않고 두 팔을 벌려 안았다.

워낙 짧은 거리라 료쿄는 속수무책으로 방상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 틈에 도현은 방상을 가볍게 뛰어넘어 류장을 추격하는 경비원들 속에 난입했다.

“며칠씩 쉬어야겠소.”

도현의 손이 경비원들 몸에 닿을 때마다 큰 소리가 나며 사내들이 한 명씩 논바닥에 쓰러졌다.

개는 도현의 눈빛을 보고는 깨갱거리며 몸을 낮췄다.

단숨에 10여 명의 경비원들과 두 마리의 개를 제압한 도현은 섬뜩한 기운에 놀라 옆으로 열 번이 넘는 재주를 넘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흙이 솟구쳤다.

눈이 날카로운 화지약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섬전과 같은 극쾌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도현을 계속 쫓아가며 스물두 번의 찌르기를 한 호흡에 발휘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찌르기만으로 여러 조각 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그녀는 기어이 재주를 넘으며 피하는 도현의 바지 자락에 구멍을 만들어 냈다.

‘이 여자도 보통이 아니군.’

구멍 난 바지로 찬 바람이 솔솔 들어오자 도현은 그제야 그가 마주한 사람들이 내공은 부족할지언정 천 년을 이어 온 검선문의 검술을 수십 년간 연마해 온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는 화지약의 공격을 회피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화지약을 상대하는 동안 고진영과 방상, 그리고 료쿄가 어느새 그를 포위해 버렸다.

그들은 화지약을 도와 언제든 달려들 기세였다.

특히 료쿄는 도현에게 당한 게 있어서인지 그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난감하군. 이들과 싸우려고 온 게 아닌데 말이야.’

소나기 같은 화지약의 빠른 찌르기 공격이 뱀처럼 휘어져 들어와 도현의 팔을 스치고 지나가자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피하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

도현은 저 멀리 섭상의 집 방향을 힐끔 쳐다봤다.

이들 외에 몇 명의 제자들이 추가로 등장할지 몰랐고, 혹시 태선군까지 나타난다면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아직은 전력을 다해 태선군과 부딪칠 상황이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속전속결.’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된 처지.

마음을 굳힌 도현이 몸을 살짝 비틀며 손가락을 튕겼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화지약의 검이 방향을 잃고 옆으로 쏠렸다. 그 틈에 도현은 화지약과 거리를 두고 소리쳤다.

“여러 말 않겠다. 죽고 싶은 자만 앞으로 나와!”

잠잠했던 도현의 몸에서 살을 에는 듯한 진한 살기가 풍겨 나왔다. 허풍 떠는 기세가 아니었다. 진짜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 보고 생명을 끊어 본 자만이 발산할 수 있는, 무겁고도 어두운 살기였다. 도현을 포위하고 서 있는 네 명의 제자들은 그 살기에 일순 압도당한 듯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으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 어딘지 부족해 보이는 뚱뚱한 방상조차도 뒷머리가 곤두서는 살기를 이겨 내며 검선문의 제자로서 부족하지 않은 용감함을 보였다.

“어디서 사람 잡는 짓을 해 왔는지 모르지만, 이 방상 님이 널 죽여 버리겠다! 이얏!”

방상이 뚱뚱한 몸과는 어울리지 않은 물 찬 제비의 모습을 보여 주며 순식간에 도현의 머리 위로 떠올라 현기 어린 검술을 선보였다.

보고 있으면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회전하는 검. 도현은 단번에 그 검술을 어디서 봤는지 깨달았다.

‘홍콩의 복면인이 사용했던 검술이다.’

주성하를 몇 차례 보면서도 홍콩의 복면인과 연관시키지 못했던 도현은 홍콩에서 주성하가 사용했던 검술을 방상이 사용하자 이번에는 바로 알아본 것이다.

‘이자는 그때 그 복면인이 아니야. 같은 검술을 사용하지만, 그자보다 훨씬 정교하고 깊이가 있어.’

달빛을 등지고 허공에서 떨어지는 방상의 검을 쫓아 밤하늘의 별들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것 같았고, 도현은 자신의 몸이 세상의 모든 별들 아래 묶인 듯했다.

‘배워 볼 만한 검술이야.’

적이 아니고 시간이 많았다면 오래 지켜보고 싶은 검이었지만, 도현은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온몸을 죄여 오는 검의 기세를 막강한 내공의 힘으로 깨 버린 후 차가운 눈빛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

검술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도현의 오른손을 보고 놀란 방상이 급히 도현의 손목을 베어 버리려 했다.

방상의 시선이 도현의 오른손에 가 있을 때 도현은 허리 아래로 내려놓은 왼손을 쫙 펼쳤다.

밤공기를 가르는 거센 장풍이 방상의 복부에 벼락처럼 꽂혔다.

“허억!”

배가 통째로 갈라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방상이 주저앉았고 도현은 냉정한 얼굴로 그런 그의 얼굴을 걷어찼다.

빠각.

앞니가 부러진 방상이 뒤로 넘어질 때 제일 가까운 곳에 서 있던 화지약이 빗방울도 잘라 버리는 쾌검을 휘둘렀다.

“양보는 한 번이면 족하다.”

어느 틈에 빼앗았는지 도현의 손엔 방상의 검이 들려 있었다. 그는 화지약이 빛살처럼 쏘아 대는 쾌검을 향해 마주 검을 날렸다.

채챙챙챙.

귀청이 떨어지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불꽃과 함께 생성되며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어둡게 만들기를 반복했다.

도현이 펼치는 쾌검에 모든 공격이 막힌 화지약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장풍을 사용할 만큼 내공이 깊다 해서 검술까지 훌륭하란 법은 없는데, 눈앞의 사내는 내공은 물론 검술까지 뛰어나서 그녀가 평생을 연마해 온 쾌검을 어렵지 않게 모조리 막아 내 버렸다.

“아앗!”

도현의 검에 어깨를 찔린 화지약이 비명을 지르며 표독스럽게 그를 노려봤다.

“이놈!”

그녀는 왼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뚫고 들어온 도현의 검을 덥석 잡았다.

내공으로 손을 보호했지만 그녀의 손은 도현이 뿜어내는 날카로운 검기에 베여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죽어라!”

화지약은 왼손으로 도현의 검신을 잡고 오른손에 있는 검으로 도현의 목을 찔러 갔다.

그러나 도현의 발이 더 빨랐다. 복부를 걷어차인 그녀는 뒤로 총알처럼 날아가 논바닥에 처박혔다.

단숨에 방상과 화지약을 제압한 도현은 뒤늦게 뛰어든 고진영을 향해 왼손을 쭉 내밀었다. 소리 없이 날아간 장풍이 고진영이 만든 장풍을 중간에서 막았다.

두 장풍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큰 소리가 났다.

콰아앙.

“이것도 막아 봐라!”

내공만큼은 사부에 근접했을 거라며 사형제들에게 자랑을 늘어놨던 고진영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엄청난 기운이 서린 장풍을 연거푸 쏘아 댔다. 그러나 도현은 냉소를 흘리며 고진영이 만든 장풍에 대응하지 않고 옆으로 슬쩍슬쩍 피했다.

“저놈이!”

고진영은 도현의 검술이 뛰어나 보이자 가까이 가지 않고 막강한 내공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장풍을 쏴 댔지만, 도현은 유령처럼 장풍을 피할 뿐 상대해 주지 않았다. 대신 기척 없이 다가와 검을 휘두르는 료쿄의 검을 상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여 합을 겨룬 도현은 료쿄의 검이 스스로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임기응변에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이 이들 중 검술은 제일이오.”

사아악.

소매를 베인 도현은 그녀의 검이 옆으로 흘러갈 때 료쿄의 팔을 베어 버렸다.

번쩍이는 검광 속에 피가 튀었다.

도현은 료쿄가 팔을 베이고도 덤벼 오자 허리를 낮춰 그녀의 검을 피한 뒤 일어서며 그녀의 종아리 부근도 베어 버렸다.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는 그녀의 복부를 도현이 발등으로 차 버렸다.

화지약처럼 그녀도 논바닥에 처박혔다.

인정사정없이 부상을 입히고 날려 버린 도현은 기습적으로 다리를 향해 날아오는 장풍을 피해 공중으로 떠올랐는데, 기회를 잡은 고진영이 전력을 다해 양손으로 거대한 장풍을 만들어 날렸다.

“정 원한다면 받아 주지.”

도현이 날린 장풍이 고진영의 장풍과 두 번째로 부딪쳤다.

콰아아앙.

긴 여운이 남는 소리가 달빛 가득한 논바닥에 울려 퍼졌고, 고진영은 두 장풍이 만드는 거센 먼지바람에 눈을 가늘게 뜨며 전면을 응시하다가 비명을 질렀다. 장풍을 날리고 쾌속하게 달려온 도현이 어느 틈엔가 고진영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은 것이다.

“이 자식!”

고진영이 고통을 참으며 복면을 쓴 도현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도현이 옆구리에 꽂힌 검을 번개처럼 빼내 재차 그의 팔을 그어 버리자, 그는 감히 도현의 목을 잡기 위해 또다시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그저 분한 눈빛만으로 도현을 노려볼 뿐이다.

‘우리 사형제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다니. 대체 이놈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넷째인 고진영은 사제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 같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내 말 잘 들어.”

도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주변에 쓰러져 있는 방상과 화지약, 그리고 료쿄를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들과 싸울 생각으로 온 게 아니기 때문에 이쯤에서 끝내겠다. 하지만 뒤따라오는 자가 있다면 그땐 정말 죽인다.”

도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본 뒤 몸을 돌렸다.

“잠깐!”

땅에 쓰러져 있던 방상이 손짓을 했다.

“내 검은 주고 가야지!”

도현은 손에 든 검을 내려다봤다. 료쿄의 보검을 상대하다보니 날이 다 상하고 검신은 약해져 있었다.

“중간에 놓고 가지. 아침에 찾아봐.”

도현이 류장이 도주한 곳으로 달려가려 하자 이번에는 료쿄가 외쳤다.

“누군지 밝히고 가라!”

그러나 도현은 대꾸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빌어먹을 자식! 다른 사람들은 팔다리에 부상만 입히더니, 왜 나만 옆구리에 검을!”

고진영은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옆구리를 손으로 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두들 괜찮은 거냐!”

고진영의 물음에 방상과 화지약, 료쿄가 비틀거리며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놀라운 고수의 출현에 말이 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명이 달려왔다. 그는 주성하였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경비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기절해 있고, 사형제들은 모두 부상당한 채 어두운 기색으로 모여 있었다.

“우리는 먼저 돌아가겠다. 주 사제 너는 기절한 녀석들을 다 깨워서 데리고 와.”

고진영이 사형제들을 데리고 걸어가자 뒤에 남은 주성하가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다들 몸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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