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208화 (208/575)

[208] 디 임팩트 9권 8화

주성하는 다리에 부상을 입어 절뚝이는 료쿄의 뒷모습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구사저가 저렇게 다칠 정도면 여기서 큰일이 벌어졌다는 건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주성하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기절해 있는 경비원들의 몸을 발로 툭툭 걷어차며 깨웠다.

“이봐,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어? 얼른 말해 봐.”

주성하는 정신을 차린 경비원들로부터 사형제들이 복면인과 대치했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뭐야, 그럼 한 녀석에게 네 명이 모두 당했다는 건가?’

주성하는 괴한의 무위에 가슴이 섬뜩해졌다.

‘섭 사형이라면 모를까, 어떤 자가 이런 실력을?’

‘그 사람은 괜찮을까?’

류장은 도망가면서도 뒤를 계속 쳐다봤다.

‘제길, 발목이 삐지 않았다면 벌써 이곳을 벗어났을 텐데.’

그는 격자 모양으로 펼쳐진 논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얼마 못 갔군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는 기겁을 하며 품속에서 총을 꺼냈다. 휙 돌아선 그의 앞에 검을 들고 서 있는 도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긴장할 것 없습니다. 당신을 죽이려고 온 게 아니니까요.”

류장은 권총을 품에 다시 넣으며 도현이 들고 서 있는 장검을 힐끔 쳐다봤다. 달빛 아래 보이는 도현의 검에는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한바탕 싸우고 온 모양이었다.

아까 류장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료쿄가 옆구리를 베려고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몸이 굳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니, 몸이 굳지 않았어도 그의 수중에 있던 총구가 료쿄를 향할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찰나지만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을 때 료쿄의 검이 방향을 바꿨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눈앞의 사내 때문이었다.

“구해 줘서 고맙소.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요괴 같은 년 손에 난 이미 죽었을 거요.”

료쿄를 요괴 같은 년이라고 욕하는 류장의 말에 피식 웃은 도현은 들고 있던 검을 논바닥에 꽂았다.

검 손잡이만 남겨 두고 깊숙이 꽂힌 검의 모습에 류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람도 보통 인간은 아니지.’

류장은 양손으로 검을 붙잡고 료쿄와 싸우던 도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발을 내밀어 보십시오.”

도현은 류장이 걷는 모습을 보며 발목을 삐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도현이 발목을 몇 번 만져 주자 류장은 시원해지며 고통이 조금 줄어들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걷기에는 아직 무리였다.

“업히세요.”

도현이 등을 보이자 50이 넘은 류장은 헛기침을 했다.

“그냥 걷겠소.”

“뒤에 그 요괴가 쫓아오고 있습니다.”

“정말이오?”

깜짝 놀란 류장이 도현의 등에 냉큼 업혔다.

“꽉 잡으십시오.”

놀라운 속도로 넓은 농지를 벗어난 도현은 어느덧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근처에 도착했다.

2차선 도로에는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다.

“어디로 갔으면 좋겠습니까?”

도현이 달리면서 물었다.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내가 세워 둔 차가 보일 거요. 미안하지만 그곳까지만 신세를 집시다.”

바람처럼 달린 도현은 잠시 후 한적한 도로가에 세워진 차 한 대를 발견했다.

“저 찹니까?”

“그렇소.”

차 옆에 멈춰 서서 류장을 내려 준 도현은 도로 주변을 살폈다. 밤이 깊어서인지 한적한 농지를 따라 길게 이어진 2차선 도로 위에는 지나는 차량이 없었다.

“당신은 지치지도 않소, 날 업고 그렇게 빨리 달려왔는데?”

사람을 업고도 눈 깜짝할 사이에 먼 거리를 빠르게 뛰어온 도현은 지친 기색 없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대단하오, 엄청난 체력이오.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는데.”

류장의 허풍을 못 들은 척하며 도현이 물었다.

“아까 그곳에서는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도현의 물음에 류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태도에 도현은 더는 묻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강제로 그의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조심하십시오. 아까 봤겠지만 요괴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그 집이니까요.”

도현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어서 가 보십시오.”

“당신은?”

“알아서 하겠습니다.”

도현은 이쯤에서 헤어질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류장은 떠나지 않고 머뭇거렸다.

“머리에 상처도 있고 경비견에게도 물린 것 같은데, 병원에 어서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현의 말에 류장이 찢어진 복면을 완전히 벗었다. 흘러내린 피가 이마를 붉게 물들였다.

“피만 좀 봤을 뿐 큰 상처는 아니오. 나중에 가서 몇 바늘 꿰매면 될 상처. 개한테는 물리지도 않았고.”

개에게 살짝이라도 물렸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멀쩡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짐승도 위험에서 구해 주면 고마움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그 고마움을 모르면 안 되지. 이대로 헤어지면 내가 은혜를 갚을 기회가 영영 사라질 거 아니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그만 가 보십시오.”

“나는 류장이란 사람이오. 내 인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리 성격 좋은 놈은 아니오.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 인사나 나눕시다.”

류장이 악수를 청하자 도현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악수를 나눴다.

“우연히 당신을 도왔을 뿐, 내 소개를 할 입장은 아닙니다. 이해해 주시죠.”

“하하하, 나 그리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류장은 복면을 계속 착용하고 있는 도현에게 손짓을 했다.

“그런데 이제 그것 좀 벗으면 안 되겠소? 보는 내가 다 답답한데.”

“싫습니다.”

도현의 대답에 무안해진 류장이 헛기침을 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소.”

“알아요? 내가 누굽니까?”

“내게 섭상의 차량 번호를 조회해 달라고 의뢰한 사람이 아니오?”

“하하하.”

도현은 괜히 크게 한번 웃었다.

“나 입 무거운 사람이니 경계할 필요 없소. 더구나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을 해치기라도 하겠소?”

“내가 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도현은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슬쩍 물었다.

“뛰어난 직감이라고 합시다. 실은 내게 섭상의 차량을 조사해 달라고 한 사람과 당신의 키가 얼추 비슷해 보여 한번 찔러 본 거요. 그런데 당신의 반응을 보니까, 아주 내가 잘 찍은 것 같습니다.”

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얼굴에 쓴 복면을 천천히 벗었다. 이미 자신이라고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애써 거짓말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일을 보면 자신의 존재를 섭상에게 가서 말할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아마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떻소, 괜찮다면 내 집에서 술 한잔하는 게?”

“머리 먼저 꿰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도 팔에 상처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같이 병원 가서 치료하고 우리 집으로 갑시다.”

류장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도현이 삔 발목을 손봐 줘서 운전하는 데 크게 지장은 없었다.

“어서 갑시다.”

류장의 재촉에 도현은 결국 그의 차에 올랐다.

보쌈

도현은 류장을 따라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아파트에 그는 혼자 살고 있었다.

“뭐 좀 지저분한데, 그냥 그쪽 소파에 대충 앉으시오. 내가 요즘 일이 많아서 집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소.”

도현은 먼지 쌓인 소파에 앉았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옷이 엉망이어서 금방 갈아입고 나올 테니까.”

류장은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에 홀로 남은 도현은 소파에 앉아 집 안을 둘러봤다.

류장이 공안으로 근무하던 때 받은 여러 상장이 벽에 걸려 있었고, 그 옆에 류장이 부인과 찍은 오래된 결혼식 사진도 있었다.

‘부인은 어떻게 된 걸까?’

집 안 분위기를 보면 류장 혼자 산 지 오래된 듯했다.

‘저 사진은?’

도현은 소파에서 일어나 벽 한쪽을 장식하고 있는 또 다른 오래된 사진 앞에 섰다.

액자로 만들어진 사진 속에는 홍영의 아버지 홍문기와 류장이 어깨동무를 한 채 활짝 웃고 있었다. 풋풋한 젊음이 느껴졌다.

“내 친구요. 작년에 갑자기 죽어서 날 황당하게 만들었지.”

뒤에 다가온 류장의 손에는 프랑스어가 쓰인 와인과 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의뢰금 대신 받은 고급 와인이오. 맛은 잘 모르겠는데, 비싼 맛으로 마십시다.”

와인 잔에 연한 노란 빛깔이 나는 술을 가득 담은 류장은 그 잔을 사진 앞에 서 있는 도현에게 건넸고, 그 자신도 술잔에 가득 담았다.

“내가 싸움 좀 하는 인간들을 여럿 봐 왔지만, 아까 그 여자처럼 몸이 빠른 사람은 처음이오. 아 물론, 당신도 그렇고.”

도현은 그의 말을 들으며 와인을 한 모금했다.

술을 좋아하는 편인 그는 와인의 맛이 밋밋하다고 느꼈다.

“무술을 배웠습니까?”

도현의 물음에 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이 사진에 나오는 내 친구와 진가권법을 어려서부터 함께 배웠지.”

도현은 젊은 홍문기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의 얼굴 위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 역시 이 사진 속 홍문기처럼 젊은 시절이 존재했고, 무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었다.

“나는 중간에 공안이 되었고, 이 친구는 끝까지 운동을 해서 어엿한 무술인으로 쿵푸 도장까지 열었는데…… 갑자기 죽더군. 인생이란 이렇게 덧없는 거요.”

와인을 물처럼 꿀꺽꿀꺽 마신 그는 빈 잔에 다시 와인을 가득 담았다.

“당신도 늙어서 후회하지 말고 젊었을 때부터 마음껏 즐기시오. 눈치 보지 말고, 세상에 나 혼자뿐인 것처럼 말이오.”

류장은 부인과 찍은 결혼사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뒤돌아서서 소파로 걸어갔다.

“섭상에게는 어떤 볼일이 있는 거요?”

와인병을 소파 앞 테이블에 놓으며 류장이 물었다.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도현이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목적이 같으면 우리 둘이 힘을 합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류장은 은근한 눈빛으로 말했지만 도현은 담담히 웃기만 했다. 말없이 와인만 비우는 도현의 행동에 류장은 헛기침을 했다.

“좋소. 그럼 내 이야기 먼저 하지. 솔직히 오늘 당신이 돕지 않았다면 모든 게 끝장났을 테니까.”

“듣는다 해서 내 이야기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도현이 먼저 선을 그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류장은 와인을 반쯤 마시고는 소파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하아, 난 말이오, 사실 상해시 공안 수사국에서 뒷돈을 좀 받다가 잘렸소. 공직자로 청렴하게 보낸 시간도 적지 않았지만, 내 아내가 죽고 나니 그딴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더군.”

류장은 죽은 아내의 사진을 깊은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내가 손에 때 좀 묻혔으면 훨씬 즐거운 인생을 살다가 갔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 사실 그녀는 장기이식이 필요한 큰 병에 걸렸지만 못난 나는 아내가 청렴한 내 모습을 좋아한다는 생각에 그녀를 살릴 생각보다는 오히려 더 밤낮없이 공무를 수행했소. 얼마나 어리석은 놈이오? 하하하!”

류장은 목젖이 보일 만큼 미친 듯이 웃었다.

“아, 너무 웃었더니 머리가 좀 아프군.”

그는 병원에서 꿰맨 머리의 상처를 손바닥으로 살짝 누르며 인상을 썼다.

“살고 싶다는 죽은 아내의 일기장을 뒤늦게 읽어 보고는 장기 밀매하는 놈들 중 한 녀석을 잡아 족쳐서 내 아내를 살리지 못한 게 원통하더군.”

도현은 류장의 눈빛이 우울해 보인다고 느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류장의 과거 이야기를 듣던 도현은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갔다.

“아무튼 난 비리 공안으로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소. 내가 과거에 추구하던 가치를 파괴하며 산다는 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더군. 아내의 빈자리도 잊을 수 있었고.”

그는 도현의 빈 술잔에 와인을 따라 주며 씁쓸하게 웃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