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211화 (211/575)

[211] 디 임팩트 9권 11화

“귀신 영화 찍는다고 진짜 귀신 데리고 와서 찍습니까?”

“예?”

“외팔이 검객은 배역이 그런 설정이지 진짜 나 같은 외팔이 검객이 왜 굳이 필요하냐 이 말입니다. 검술이나 액션도 촬영하면서 무술 감독이 맞추면 되는 거고.”

장철호는 목검을 한번 크게 휘둘러 다시 호심공을 수련할 준비에 들어갔다.

“말씀은 고맙지만, 관심 없습니다.”

“그러시지 말고 오디션을 보시죠. 간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지만, 되면 상당히 인상적인 배역으로 인해 언론의 주목을 받을 겁니다.”

“언론에 주목을요?”

“말하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장 사범님은 실제로 한 팔을 사용 못하는 분이시잖습니까?”

이호선과 김유진은 장철호가 어깨 부상으로 인해 격투계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도장에서도 그는 오른팔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 왼팔로만 지금까지 검을 수련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있을 때만 그랬던 것이고, 저녁 교육이 끝나고 관원들이 없을 때 장철호는 오른팔을 움직여 재활 운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었다.

장철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격투기에서도 한때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홀로 고독하게 검을 수련하는 사내. 현실의 그런 사람이 외팔이 검객으로 등장하면 언론에 관심이 뜨거워지거든요. 그걸 말씀드린 겁니다.”

“그러니까 나보고 당신들 드라마에 나가서 시선 끌이나 하라 이 말인가?”

“그렇게 볼 게 아니죠. 장 사범님도 드라마를 이용해서 잘하면 유명 인사가 될 수도 있거든요.”

김유진도 옆에서 거들었다.

“장 사범님, 저희는 순수하게 장 사범님을 도와 드리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나아가 우리 호검술 도장의 이름도 날리고요.”

장철호는 이 피디와 김 작가를 둘러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이 나쁜 의도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괜찮네.”

언제 왔는지 곁에서 듣고 있던 용주가 말했다.

“뭐가 괜찮아?”

장철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용주를 째려봤다.

“그 외팔이 검객 배역요. 한번 해 봐요.”

“관심 없다.”

“멋있잖아요.”

“싫다고 했다.”

장철호가 딱 잘라 말하자 용주도 더는 권하지 못했다.

“얼굴에 수염 붙이고 나와서 어색하게 연기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안 되겠네.”

입맛을 다신 용주는 이호선과 김유진을 둘러봤다.

“자 자, 그만 옷 갈아입고 집으로 가 주세요. 장 사범님은 드라마에 출연하시지 않겠다고 합니다.”

“장 사범님, 정말 싫습니까?”

이호선이 아쉬워하며 물었다.

“신경 써 준 건 고맙지만 난 전혀 관심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장철호는 입을 꾹 다물고 호심공 수련에 들어갔고, 이호선과 김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옷을 갈아입고 5층 도장을 나섰다.

“태식 씨, 여기 그때 말한 최규리 씨 사인요.”

같이 도장을 나선 호태식은 이호선이 둘둘 말린 브로마이드를 건네자 바로 펴 봤다. 30대 중반의 농염한 미모를 자랑하는 탤런트 최규리가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는 커다란 TV 포스터였다.

그곳에는 굵은 매직으로 호태식의 행복을 바란다는 글과 함께 최규리의 사인이 날아갈 듯한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드디어 받았다!’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톱스타 여배우의 사인이 담긴 브로마이드를 받은 호태식의 입은 좋아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고맙습니다, 이 피디님!”

“뭘요. 별것도 아닌데.”

“오늘 분식 제가 쏠까요?”

그들은 종종 저녁 교육을 끝내고 함께 어울려 근처 분식집에서 순대며 떡복이를 사 먹었다.

“아니에요. 회사에 가서 할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하죠.”

“그럴까요? 하하하.”

호태식과 헤어져 차에 오른 이호선은 어두운 기색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것 봐요. 왜 최 피디님에게 장 사범님 얘기를 꺼내서는.”

조수석에 탄 김유진이 답답하다는 시선으로 이호선을 쳐다봤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왜 술자리에서 장 사범 얘기를 했을까?”

차창을 내린 그는 가슴이 답답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제 어쩔 거예요? 최 피디님은 전직 격투 선수가 한 팔을 사용 못하는 장애를 안고도 검술을 피나게 수련해서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는 걸 언론에 흘려 화제를 만들려고 하잖아요. 그렇게 바람을 넣은 게 피디님이고요.”

“내가 바람을 넣어? 최 선배가 그림을 짠 거지, 난 그냥 한 팔을 사용 못하면서도 막노동도 하고 꾸준히 도장에 나와 검을 수련하는 장철호 씨가 존경스러워서 우연히 입에 담은 것뿐이라고.”

변명하듯 이호선이 말했다.

“아무튼 최 피디님이 엄청 실망하실 거예요.”

“장 사범에게 내일 다시 한 번 말해 볼까?”

“그 고집스러운 입술을 못 보셨어요? 그 눈빛하고요. 또 제안을 하면 목검으로 우릴 때릴지 모른다고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김유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젠장. 최 선배가 또 날 붙잡고 엉엉 울겠다.”

최 피디는 술만 들어가면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섭섭한 사람에게 밤늦게 전화를 해서 불러내는 게 특기였다.

“정말 답이 없는 건가?”

담배를 뻑뻑 피우는 그에게 김유진이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박수를 쳤다.

“아! 그거예요!”

“뭐 좋은 생각이라도 났어?”

“백도현 관장요.”

“백 관장?”

“우리 호검술 도장의 먹이사슬을 보면 그 정점에 백 관장이 있잖아요.”

“그렇지! 장 사범도 백 관장에겐 꼼짝 못하지.”

이호선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백 관장에게 이번 기회가 얼마나 장 사범에게 좋은지 설명하고 오디션을 보게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다 좋은데 백 관장이 우리 부탁을 들어줄까? 그 사람도 여간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지난번에 우리가 그렇게 TV에 나와 달라고 해도 꿈쩍도 안 했잖아.”

“그때와는 좀 다르죠. 본인이야 그렇다 치지만 장 사범은 한 팔도 불편하고 앞으로 먹고사는 데 이번 기회가 도움이 되잖아요. 잘하면 유명 인사도 될 수 있고.

김유진의 설명에 이호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백 관장이 겉은 엄해도 속마음은 따뜻한 면이 있지. 장 사범의 미래를 생각하면 충분히 움직일 가능성이 있어. 좋아, 백 관장에게 부탁을 하자!”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그는 차에서 급히 내리려 했다.

“어디 가요?”

“지하 도장에, 백 관장 만나려고.”

“에이, 무슨 소리예요. 홍영 씨하고 중국에 갔잖아요. 아직 안 돌아왔다고요.”

“아, 그렇지.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차 문을 다시 닫은 이호선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언제 돌아오지?”

“조만간 오겠죠. 간 지 열흘은 됐지 않아요?”

“드라마가 어때서요.”

밖에서 도장 안을 못 보게 커튼을 치며 용주가 말했다.

“오글거리잖아.”

“하고는 싶은 거예요?”

“아니.”

장철호는 도복을 벗고 도장 한가운데에 섰다. 주변에는 목검 서너 자루가 눕혀 있었다.

하루에 1시간 정도 매를 맞는데, 그 시간 안에 목검이 모두 쓸모없게 부서진다. 처음에는 훨씬 더 많이 부서졌지만, 차츰 용주가 힘 조절을 하고 요령이 생기면서 부서지는 목검의 수가 이제는 많이 줄어들었다.

“형도 참. 내가 보기엔 괜찮은 기회 같은데.”

돌아선 용주는 바닥에 눕혀 있는 매타작용 목검 한 자루를 손에 쥐고 불량스러운 태도로 장철호 앞에 섰다.

“또 이 시간이 왔네요, 형. 정말 이제 때리는 것도 지겨워 죽겠습니다.”

“자식아, 스트레스받은 거 있으면 이참에 내게 풀면 되지, 뭐가 지겨워.”

“이걸로 어떻게 돈을 못 버나? 자, 갑니다. 준비하세요, 형.”

자세를 잡은 장철호를 때리려던 용주는 사범실에 놔둔 휴대폰이 마구 울어 대자 목검을 내렸다.

“잠시만요, 형.”

용주는 사범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용주야.

“어, 도현아.”

며칠 전 태선군의 제자들과 한바탕했다는 전화를 받은 뒤로 도현의 전화는 지금이 처음이었다.

-너 로나 이야기를 했더라.

“로나?”

-시치미 떼지 마라.

“아, 그랬지. 응, 내가 말했어. 근데 왜?”

-돌아가서 보자.

의미심장한 도현이의 말에 용주는 소리 내어 웃었다.

“자식아, 얼마든지 와서 봐. 홍영 씨에게 네가 나 때린다고 말할 테니까.”

-…….

“언제 올 거냐?”

-내일. 홍영 씨는 모레.

“같이 안 오고 왜?”

-둘 다 가면 홍영 씨 어머님이 허전해하실까 봐서. 홍영 씨는 하루 더 있다 한국으로 가기로 했어.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잘했다.”

-그러니까 넌 내일 하루만큼은 홍영 씨 등 뒤에 숨을 수 없게 됐다는 말이기도 해.

“어!”

놀란 용주의 눈이 커졌다.

-돌아가서 보자.

조금 전과 같은 말이었지만 용주는 등에 식은땀이 났다.

“야, 인마, 로나 얘기를 굳이 감출 이유가 없잖아.”

-그러니까 돌아가서 얘기하자. 받고 싶은 선물 있냐?

“없어, 인마! 끊어!”

전화를 끊고 돌아선 용주는 긴장된 얼굴로 잠시 서 있다가 장철호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도현이냐?”

“예, 내일 온다네요. 홍영 씨는 하루 더 있다가 오고요.”

“그래? 상해에서는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재밌었겠죠.”

용주는 목검을 힘 있게 쥐었다.

“너 눈빛이 왜 그래?”

“제 눈빛이 왜요?”

“좀 전과 다르잖아. 마치 엄청 스트레스받아서 참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야.”

“잘 보셨어요.”

“뭐?”

“형, 스트레스 좀 제대로 풀게요. 각오하세요!”

“야! 잠깐만!”

반탄력이 생긴 부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매를 맞는 지점은 아팠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더 아팠다.

“천천히! 야!”

서지철은 그동안 모은 도현의 뒷조사 자료를 정리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손에는 도현의 아버지인 백남식의 죽음과 관련된 경찰 수사 자료가 들려 있었다. 어렵게 구한 자료인데, 그는 부검 기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죽을 수가 있지? 장기들이 모두 파괴돼서 죽은 거잖아. 겉은 멀쩡한데 속만 이렇다는 게 말이 되나?’

정신병원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사망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보니 의문점이 생겼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프로 해결사는 집요해야 한다. 의뢰인이 물어보면 충분한 답변을 해 줘야 한다.

고독한 얼굴로 자료를 들여다보던 그는 책상에 자료를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커다란 흰 보드 앞에 섰다. 그곳에는 도현의 이름을 중심으로 가깝게 지내는 여러 인물들의 이름이 보드 마커로 기록되어 있었다.

서지철은 붉은 보드 마커로 홍영의 이름에 밑줄을 그었다.

‘홍영, 이 여자는 죽은 백남식과 친구 사이인 홍문기의 딸이다. 상해가 집이고 어렸을 때부터 백도현과 아는 사이였다가 지금은 그놈과 눈이 맞아 한집에서 산다. 이 여자를 좋아하는 어떤 놈팡이가 최태진을 앞세워 백도현을 손봐 달라고 한 적도 있다. 백도현이 종종 사라질 때에도 이 여자만큼은 꾸준히 도장에 붙어 있었다.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장철호.’

서지철은 보드에 쓰인 장철호의 이름 밑에도 역시 붉은 밑줄을 그었다.

‘이놈은 또라이다. 백도현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막노동을 하면서 밤늦게까지 도장에서 검술을 수련하고 버스나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고시원으로 향한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운동 머신. 격투기로 한때 잘나갔지만 한 번의 교통사고와 케이지 안에서의 부상으로 그 바닥에서 은퇴를 했다. 보육원 출신이고, 백도현과는 한집에서 같이 살기도 했던 사이. 역시 별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그의 시선이 용주의 이름 앞에 멈췄다.

‘조용주.’

서지철은 용주의 이름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조용주는 아주 뺀질뺀질한 녀석으로 백도현과는 고등학교 친구 사이고 죽은 백남식의 제자이기도 하다. 호검술 도장 사범으로 관원들을 교육시키고 있는데, 도장 건물을 관리하는 관리인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실질적인 백도현의 오른팔. 백도현이 건물 운영을 맡길 정도니 조용주는 백도현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백도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녀석이 바로 이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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