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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12화 (212/575)

[212] 디 임팩트 9권 12화

그는 이어서 도현과 가까운 인물군에 포함시킨 백두TV의 이호선 피디와 김유진 작가, 그리고 호태식의 이름을 가볍게 훑어봤다.

“태식이는 빼는 게 좋겠지.”

서지철은 보드 마커 지우개로 호태식의 이름을 지워 버렸다.

주성하에게 보고할 때 백도현과 가깝게 지내는 인물들 속에 호태식을 포함시킬 수는 없었다. 밉긴 해도 호태식은 그의 사람이었다.

“집안을 보면 수십억을 호가하는 도장 건물을 살 능력이 안 돼. 백도현은 분명 거액을 구해 온 거야. 그것도 은밀히.”

주성하의 의뢰와는 별도로 자신이 궁금해하는 점을 관심 깊게 살피고 있었는데, 여전히 백도현이 무슨 돈으로 빌딩을 매입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백도현의 아버지 백남식의 죽음도 수상하고. 뭐 이리 수상한 게 많아 이놈의 집구석은.”

미간에 주름을 깊이 만들던 서지철은 인터폰 울리는 소리에 서재를 나와 작은 액정 화면을 들여다봤다.

호태식이 씨익 웃고 있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호태식이 손에 든 보쌈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형님, 보쌈 좋아하시죠?”

“왜 왔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말해 놓고.”

“생각해 보니까 나 아니면 형님 생각하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나 싶어서요. 보쌈에 소주나 한잔해요.”

호태식은 서지철이 전화를 안 받자 혹시나 집에 있나 싶어서 무턱대고 찾아왔다.

“나 바쁘니까, 그만 가.”

“집에 있으면서 뭐가 바빠요.”

호태식은 주방 식탁에 보쌈 봉지를 내려놓았다.

“들고 있는 건 뭐냐?”

서지철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며 물었다.

“아, 이거요. 한번 보실래요?”

호태식이 조심스럽게 브로마이드를 펼쳤다.

“뭐야 그게?”

“탤런트 최규리요. 이쁘죠? 흐흐.”

“미친놈,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걸 가지고 다녀.”

서지철은 보쌈 봉지를 뜯어 안의 내용물을 식탁에 펼쳤다.

“이 피디가 사인을 받아 줬어요. 나중에 액자로 만들어서 집에 걸어 놓으려고요.”

“가끔 너 보면 제정신이 아닌 놈 같아. 해결사 노릇 그만한다고 경찰에 자수를 하지 않나, 내부를 살피라고 도장에 투입시켰더니 백 관장 편으로 돌아서질 않나.”

“탤런트 좋아하는 것도 죄입니까? 별 이야기를 다 갖다 붙이네.”

퉁명스럽게 대꾸한 호태식은 거실 소파에 브로마이드를 조심스럽게 놓고 주방에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서지철의 술잔에 소주를 따르며 호태식이 넌지시 물었다.

“일하고 지냈지.”

“백 관장요?”

“알면서 왜 또 물어?”

서지철의 경계하는 눈빛에 호태식이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습니다. 활기찬 봄을 향해 건배!”

“건배는 얼어 죽을.”

잔을 세차게 부딪친 서지철은 소주잔을 비우고 보쌈을 안주 삼아 먹었다.

별다른 말 없이 호태식과 소주 두 병을 비운 서지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 아프네.”

서지철이 화장실을 가자 호태식이 슬그머니 주방을 나와 서지철의 서재로 조용히 들어갔다.

흰 보드에 적힌 이름들을 가볍게 훑어본 그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책상 위에 도현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그가 막 뒤적여 보려 할 때, 서지철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그의 목을 졸랐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형님, 왜 이래요?”

“왜 이러긴 자식아. 너 염탐하려고 온 거잖아, 내가 백 관장 조사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뭘 염탐을 해요. 그냥 궁금해서 잠깐 본 것뿐인데. 이것 좀 풀어요.”

“너 혼 좀 나야겠어.”

서지철이 팔에 힘을 주자 호태식은 숨이 막혀 왔다. 지난 번 길가에서 그가 주짓수로 서지철의 목을 조른 적이 있는데, 마치 그때 일을 되돌려 주려는 행동 같았다.

얼굴의 핏기가 사라진 호태식이 등 뒤에서 팔로 목을 조르는 서지철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서지철은 고통 서린 신음을 흘리면서도 호태식의 목을 감싼 팔을 풀지 않았다.

“비정한 해결사의 세계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네게 똑똑히 보여 주겠다!”

그는 화장실에서 가지고 나온 칫솔을 호태식의 항문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허억.”

호태식의 눈이 반쯤 돌아갔다.

“또 까불래?”

“혀, 형님.”

“대답해!”

한 손으로 호태식의 목을 조이며 다른 한 손으로 호태식의 항문에 칫솔을 박은 서지철은 슬쩍 칫솔을 움직였다. 그러자 호태식이 비명을 질러 댔다.

“아, 정말 왜 이래요!”

“백 관장 일에 자꾸 나서지 마. 알았어?”

기세 좋게 외치던 서지철의 눈이 급속도로 커졌다. 호태식이 그의 불알을 움켜쥔 것이다.

“내 똥구멍이 작살나는지 형님 그게 박살이 나는지 한번 해 봅시다!”

화가 난 호태식이 손에 힘을 주자 서지철은 심한 고통에 눈물이 다 나왔다.

“내가 물러날 줄 알고?”

서지철은 고통을 참으며 칫솔을 휘저었다.

“허억.”

호태식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서지철은 숨이 막히는 고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독한 새끼!”

서지철은 칫솔을 더욱 깊숙이 밀어 넣고 힘껏 위로 들어 올렸다. 호태식은 항문에서 느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괴이한 고통에 더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고자 되도 난 모릅니다! 에잇!”

인정사정없는 호태식의 손아귀 힘에 서지철은 길게 비명을 내질렀다.

“추, 추접한 새끼!”

“항문을 찌른 사람은요!”

둘은 한참 동안 서로에게 고통을 주다가 더는 못 견디겠는지 동시에 손을 놓고 물러났다.

호태식의 면바지는 거의 구멍이 나기 직전이었다. 서지철이 힘껏 칫솔 손잡이를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칫솔을 집어 던진 호태식은 서재에 엎드려 누웠고, 서지철은 천장을 보며 하체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여운을 감내해야만 했다.

“형님, 백 관장 조사해 보니까 어때요?”

엎드려 누워 있던 호태식이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궁금하면 네가 조사해 봐, 자식아.”

“보쌈 사 왔잖아요. 퉁 쳐요.”

어기적거리며 일어난 호태식은 책상 위에 자료들을 빠르게 살펴봤다.

“이상한 것도 없네. 근데 왜 백 관장 뒷조사를 해 달라고 한 거야.”

“이상한 게 왜 없어. 지하 월세 살던 놈이 갑자기 건물을 샀고, 그 녀석 아버지는 외상 없이 몸속 장기들이 두부처럼 으깨져 사망했는데.”

“건물이야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맞았나 보죠. 죽은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와 몇십억이라도 줬든가.”

호태식은 도현이 나쁜 짓을 하면서 돈을 벌 사람은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그럼 백도현의 부친은? 왜 그렇게 죽은 거야?”

“그거야 모르죠. 하지만 뭔가 문제가 있었다면 아들인 백 관장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칼 하나 들면 세상 무서울 것 없이 휘젓고 다닐 인물인데.”

“아주 백 관장을 신처럼 보고 있네.”

서지철이 인상을 쓰면서 호태식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나가, 자식아!”

토끼

낮에 중국에서 귀국한 도현은 지하 도장에서 도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5층으로 올라갔다.

용주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로나 얘기를 홍영에게 발설한 용주와 뜨거운 대련을 한판하려고 했던 도현은 그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되돌아섰다.

도현이 5층 도장에서 사라지자 용주는 잠시 후 슬그머니 눈을 떴다. 히죽 웃던 그는 도현이 통유리로 된 5층 도장 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자 얼굴색이 검게 변했다. 지하 도장으로 내려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용주는 지하 도장으로 끌려가 2시간 넘게 수련용 진검으로 도현을 상대해야만 했다. 단전의 내공은 벌써 바닥나고 팔은 검을 들 힘조차 없었다. 두 다리는 풀려서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막지 않으면 다쳐!”

도현은 냉정한 눈빛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정말 막지 않으면 얼굴이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다.

용주는 이를 악물며 검을 머리 위로 올렸다.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용주가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뒤로 밀리긴 했지만 온몸의 힘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서도 도현의 검을 막았다.

‘철호 형을 때리며 손아귀 힘을 기르지 않았다면 도현이 공격에 검을 놓치고 말았을 거야.’

등의 일부에 반탄력이 생성된 장철호를 매질할 때면 목검을 통해 강한 힘이 되돌아왔고, 그럴 때마다 용주는 손에서 목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손아귀 힘이 비약적으로 강해졌고, 그 효과가 지금 증명된 것이다.

“네가 지쳤다고 해서 적이 검을 멈추진 않아.”

“어떻게 해야지?”

“도망가야지.”

“뭐?”

“지금처럼 강한 의지와 철호 형을 때리며 기른 너의 강인한 손아귀 힘으로 어떡하든 검을 막아 내고 도망가야지.”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검을 다시 휘둘렀다.

챙!

아슬아슬하게 도현의 허리 베기를 막은 용주는 관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다리!”

도현의 지적에 용주는 몸을 훌쩍 날려 낙법으로 도장 바닥을 한번 굴렀고 뒤이어 경고 없이 날아온 도현의 찌르기를 검으로 막아 냈다.

힘이 없는 가운데 도현의 검을 척척 막아 내는 자신의 손이 하도 기특해서 용주는 환하게 웃다가 다급하게 관장실로 쏙 들어갔다. 이 이상은 무리라는 걸 그는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수고했다. 하루가 다르게 검술이 늘고 있어.”

도현이 검을 거두며 칭찬했다.

“하지만 주의해야 돼. 내공이 아직은 호검술을 마음껏 사용할 만큼 깊지가 않아. 아까처럼 무턱대고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필요할 때만 영리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어.”

용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관장실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은 그냥 숨 쉬지 말고 호심공을 통해 숨을 쉬면 훨씬 몸의 기력이 빨리 회복될 거야.”

“하아, 하아, 아직은 내가 그 수준이 안 되잖아.”

“해 봐. 이제는 충분히 가능해.”

도현의 말에 힘을 얻은 용주는 거친 숨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몸을 천천히 움직여 주었다.

머리가 띵하니 어지럽고 산소 결핍으로 가슴이 몹시 답답하고 괴로웠다.

지금까지 호심공은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수련해 왔다. 그러다가 힘이 들면 멈추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2시간 넘는 대련을 통해 숨 쉬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호심공을 펼쳐야만 했다.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묶인 채 해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야. 숨을 쉬고 싶어!’

용주는 죽겠다 싶어 도현을 바라봤지만 도현은 좀 더 버텨 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언젠가 한 번은 넘어서야 돼.’

호심공이 진짜 빛을 발하는 순간은 수련자가 극한에 몰렸을 때다. 지치고 힘이 없는 수련자에게 빠른 회복과 기력의 충만함을 주기 때문이다.

남보다 빠르게 내공이 회복되고 몸에 활력이 솟는다면, 위험에서 벗어나고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1분 1초의 빠른 회복이 경우에 따라선 수련자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어려운 고비 속에 호심공을 제때 펼칠 줄 알아야만 한다. 특히나 용주처럼 아직은 내공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게 빠른 내공의 회복은 든든한 무기가 된다.

도현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주의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갔다. 그 모습에 도현의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아직은 무리인가?’

갈등을 하던 도현은 용주에게 그만 멈추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용주의 얼굴색이 서서히 정상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됐다!’

도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답답해하던 용주의 얼굴이 조금씩 편안해졌고, 무거워 보였던 몸의 움직임도 차츰 평상시와 같은 모습을 보여 줬다.

“하하하!”

얼마 후 용주가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도현아, 온몸으로 맑은 기운이 스며드는 게 느껴져! 그것도 어제보다 훨씬 빨리 축기가 되고 있어!”

“빈 단전에 내공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서 그래. 그만 말하고 호심공에 집중해.”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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