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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16화 (216/575)

[216] 디 임팩트 9권 16화

그들이 집에 도착하자 노부부인 허진국과 황순옥은 둘이 어떤 사이냐고 캐물었고 도현은 홍영의 손을 잡으며 결혼할 사이라고 어색하게 답했다.

시간이 늦어 다음 날 내려가기로 한 홍영은 도현과 함께 밤늦게까지 노부부의 말동무를 해 주다가 작은 방으로 건너왔다.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같이 자야 할 형편이었다. 게다가 덮는 이불도 하나밖에 없었다.

“안 잘 거예요?”

먼저 이불 속에 들어간 홍영이 벽을 보고 좌선을 하고 있는 도현에게 물었다.

“아까 폭포를 보며 느낀 게 좀 있어서요. 먼저 자요. 난 명상 좀 하다가 잘게요.”

“신경 쓰이잖아요.”

“아, 미안해요. 내가 밖으로 나갈게요.”

도현이 문고리를 잡을 때 이불 속에 누워 있던 홍영이 손을 뻗어 도현의 발목을 잡았다.

흠칫한 도현이 뒤를 돌아봤다. 베개를 베고 누운 홍영이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핑계대지 말고 와서 자요. 아무렴 내가 도현 씨를 잡아먹을 것 같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정말 아까 느낀 게 있어서 생각을 좀.”

“도현 씨가 이럴수록 내가 불편하잖아요, 미안하고. 내가 쫓아내는 것 같아서.”

결국 도현은 한이불을 덮고 그녀 옆에 누웠다.

한집에서 살기는 했지만 이렇게 함께 자기는 처음이어서 그의 가슴은 몹시 두근거렸고, 몸은 미라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홍영이 천장을 바라보는 도현에게 말했다.

“불 꺼야죠.”

“아.”

도현은 호롱불을 끄고 돌아왔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홍영의 부드러운 손이 도현의 손을 더듬어 찾았다.

긴장한 도현에게 홍영이 따뜻하게 말했다.

“잘 자요.”

“홍영 씨도요.”

잠시 후 홍영은 새근새근 잠들었고 도현은 잠이 안 와 뜬 눈으로 멀뚱멀뚱 집 천장만 올려다봤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가던 어느 순간, 도현은 잠이 들었고, 닭 우는 소리에 깨 보니 자신의 팔을 베고 홍영이 누워 있었다.

도현은 어둠 속에 보이는 홍영의 잠든 모습을 취한 듯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홍영을 품으로 깊이 안았다.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요.”

홍영의 졸린 목소리에 도현은 작게 대답했다.

“그래요.”

“쿨럭, 쿨럭.”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서지철이 크게 기침을 해 대자 서 있던 사람들이 슬쩍 옆으로 떨어졌다.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은 서지철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연이어 기침을 했다.

‘빌어먹을. 감기가 안 떨어져.’

며칠 전 도현을 쫓아 취영산에 다녀왔다가 걸린 감기였다.

갈색 선글라스를 낀 채 아늑한 분위기의 복도를 걷던 그는 객실 번호를 확인하고 문을 두드렸다.

아침 비행기로 한국에 도착한 주성하가 나타났다. 그는 백도현의 뒷조사가 마무리됐다는 연락을 받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한국까지 왔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그들은 객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뒷조사 결과입니다.”

서지철은 나오는 기침을 억지로 참으며 서류 가방을 통째로 넘겼다.

주성하는 그 자리에서 가방을 열어 자료들을 살폈다. 도현의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부터 군대는 어디서 복무를 했는지까지, 여러 기록들이 자료의 출처와 함께 원본, 중국어로 된 번역본이 함께 들어 있었다.

“중국어로 번역을 해서 첨부하다니, 꼼꼼하군요.”

주성하의 칭찬에 서지철이 별거 아니라는 어투로 답했다.

“기본 아닙니까?”

서지철은 대답을 하며 속으로 조선족 출신의 아르바이트생을 구해 번역본을 준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흠, 그런데 특별한 게 없군요.”

“바라던 거라도 있었습니까?”

서지철이 슬쩍 묻자 주성하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이런 노멀한 내용과는 다른, 내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게 나올 줄 알았거든요.”

“백도현의 개인 이력부터 가족사까지 잘 정리된 자료입니다.”

“백도현 주변 인물에 대해 기술된 게 있는데…… 다른 자들은 없었습니까? 이를테면 백도현이 은밀히 만나는 자들, 뭐 그런 자들 말입니다. 어디를 몰래 간다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여기 보면 백도현이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건 뭡니까?”

“아, 그건 같이 사는 애인의 집에 간 겁니다.”

주성하는 홍영의 사진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탁훈이 빼앗겼다는 여자였지. 이 여자가 백도현과는 어려서부터 친분이 있었군.’

서지철이 조사해 온 것에 따르면 홍영의 아버지와 백도현의 아버지는 친구 사이였고, 그게 인연이 되어 연인으로 발전한 것 같았다.

“취영산은 뭡니까?”

“백도현의 개인 수련 장소입니다.”

“개인 수련 장소?”

주성하의 눈이 반짝였다.

“취영산 깊숙한 곳에 노부부가 사는데, 그 집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근처 산속에서 검을 수련하는 거죠.”

“직접 봤습니까?”

“예, 며칠 전에 다녀왔습니다. 쿨럭, 쿨럭.”

터져 나오는 기침을 더는 참지 못해 서지철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창피하지만 이 감기가 그곳에 다녀오면서 걸린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수련을 하던가요?”

“……그냥 폭포 밑에서 정신 수양도 좀 하는 것 같고, 검도 휘두르고 그랬죠.”

“음, 그렇군요. 며칠 전이면 지금도 취영산에 있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라갔거든요. 상당히 오래 머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뒷조사 자료를 보면서 궁금한 점을 툭툭 물어보던 주성하는 손에 든 자료를 탁자 위에 던진 듯 내려놨다.

‘백도현이 수련하는 장소까지 추적해서 조사해 올 정도면 이자가 허투루 조사한 것은 아닐 테고. 백도현은 집안에 내려오는 검술을 익혀 고수가 된 케이스인가?’

백도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가족사를 다시 한 번 쭉 읽어 본 주성하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너무 의심을 하고 겁을 내는 것도 좋지 않지. 좋아, 우려와 달리 이자는 스스로 성장한 놈이야. 별다른 배경이 없어. 건드려도 돼. 료쿄를 불러 조용히 제거하자.’

김탁훈은 도현을 혼내 주라고 주문했지만 이왕에 손대는 거 확실히 목숨을 끊어 놓기로 결정했다. 홍콩에서 기예잡술서 문제로 다투기도 했고, 이만한 고수를 어설프게 부상만 입혀 놨다가는 분명히 뒤가 골치 아파지는 법이다.

냉정한 처리가 필요하다.

‘료쿄가 오면 백도현 넌 죽은 목숨이다.’

속으로 차갑게 웃던 그의 시선에 백남식의 죽음과 관련된 경찰 수사 자료가 들어왔다.

‘응?’

조금 전에는 관심이 없어서 대충 보고 지나쳤는데, 지금은 부검 결과 내용이 그의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백남식의 사인을 들여다보던 그의 눈이 커졌다.

‘이건 내가수법에 당한 흔적인데? 외상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면 그 경지가 이미 깊을 대로 깊었다는 뜻! 대체 어떤 고수가!’

“무슨 문제 있습니까?”

“백도현 부친의 죽음이 이상해서요.”

“아, 그렇죠? 나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서지철은 주성하가 생각 깊은 얼굴로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하자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서지철을 보낸 주성하는 손을 뻗어 백남식의 사망 일자를 확인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건이 머리를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확인해 봐야겠어.”

그는 굳은 얼굴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륀, 나요, 주성하.”

-예, 말씀하십시오.

“작년에 명예 회장님을 모시고 어디로 갔었습니까?”

-한국에서 말입니까?

베스트엠 한국 사무소에 있는 륀은 일반 직원이 아닌 검선문의 일을 하는 자였고, 명예 회장은 이들이 부르는 태선군의 호칭이었다.

“네, 한국에서.”

-정신병원에 다녀왔었습니다.

“혹시 은혜정신병원입니까?”

주성하가 자료를 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일전에 그 일입니다.

알고자 한 바를 확인한 주성하는 굳은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백남식을 죽인 사람은 사부님이었어. 그럼 이 자식이 등선궁에 찾아와 사부님을 진노케 했다는 그 녀석이잖아, 대사형이 살려 보냈다는.”

그는 사진 속 백도현을 노려봤다.

악연이었다. 검선문과도 악연, 기예잡술서를 두고 자신과 싸우기도 한 악연, 김탁훈의 일로 엮여진 또 다른 악연.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네놈 아비로부터 이어진 악연의 끈을 이 몸이 잘라 주마.”

주성하는 료쿄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사저, 한국으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취영산에 진입한 주성하와 료쿄는 등산복을 입고 얼굴은 마스크로 가린 차림이었다.

헐렁한 배낭에는 세로로 길쭉한 뭔가가 삐져나와 있었다. 천으로 감싸인 검 자루였다.

료쿄가 한국으로 건너오는 동안 주성하가 구해 놓은 검으로, 평소 사용하던 료쿄의 보검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쓸 만했다.

그들은 취영산을 뒤진 끝에, 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황토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저곳인가 봅니다.”

주성하와 료쿄는 멀찍이서 집을 감시했지만 도현은 보이지 않았다. 나이 든 노부부만 가끔 마당을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녀석은 근처에서 수련을 하고 있나 봅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료쿄는 주변을 길게 둘러보다가 집 뒤편의 더 깊은 산속을 응시했다.

“주변을 살펴보자.”

신법을 발휘해 눈 쌓인 산길을 빠르게 타고 이동하던 그들은 얼마 뒤 무성한 나무로 가려진 폭포를 발견했다.

폭포는 작았지만 며칠 전 내린 눈과 어우러져 단아하면서도 고고한 느낌을 뿜어냈고, 그 앞 평평한 바위 위에는 도복 차림의 사내 한 명이 단정히 앉아 떨어지는 폭포수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저기 있군요. 저자가 바로 백도현입니다, 구사저.”

주성하는 말을 하면서 왠지 떨떠름했다.

‘뭐야 저 자식.’

집중을 하지 않았다면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도현을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자연과 동화된 듯한 도현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이다. 멀쩡히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나설까?”

료쿄의 질문에 주성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먼저 저 녀석을 상대해 보겠습니다.”

주성하는 배낭을 내려놓고 검을 빼 들었다. 솔직히 료쿄의 손을 빌려 손쉽게 도현을 없애고 싶었지만, 그리되면 자신이 너무 기개가 없어 보일 듯했다.

홍콩에서 도현과 만만치 않은 싸움을 벌였던 그는 료쿄에게 시작하겠다는 눈빛을 보낸 뒤, 숨어 있던 곳에서 소리 없이 나와 등을 보이고 있는 도현에게 은밀히 접근했다.

검술은 사형제들에 비해 많이 부족해도 신법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눈을 밟으면서도 소리가 나지 않았고,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기습으로 기선을 제압하자. 어쩌면 내가 녀석을 이길 수도 있어, 구사저의 도움 없이.’

거리를 좁힌 주성하는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도현을 향해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빠른 검을 선보였다.

칼집에서 검이 뽑힌다 싶더니 어느새 도현의 목덜미를 베고 있었다.

그 순간 차가운 검광이 도현의 몸 쪽에서 폭발하듯 튀어 나와 뒤에서 날아오는 주성하의 검을 막아 냈다.

챙에엥.

폭포 주변으로 맑은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엄청난 힘이다!’

도현의 강한 검에 형편없이 밀린 주성하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허공에서 회전을 하며 간신히 땅에 두 발로 착지한 주성하는 검을 잡은 오른손이 욱신거렸다.

‘기혈이 들끓고 있어. 어떻게 이럴 수가!’

도현의 일 검도 제대로 막지 못한 그는 너무 놀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뒤를 보지도 않고 검만 휘둘러 주성하의 검을 막은 도현은 천천히 바위 위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그 눈빛이 너무나 차가워 주성하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도현은 주성하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일부분 가렸지만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었다.

‘누구였더라?’

사실 그는 무의식 상태에서 검을 휘둘렀다. 폭포를 보며 무아의 상태에서 빠져 있었는데, 외부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에 몸이 저절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주성하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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