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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19화 (219/575)

[219] 디 임팩트 9권 19화

최태진의 의뢰를 받고 자신이 공격하려 했던 사실까지 밝혀지면 도현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수많은 목격자가 있는 일식집에서 도현이 설마 자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일은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해 보자! 이렇게 당할 수는 없어!’

두려움을 극복하고 칼을 뽑기 위해 정장 바지 밑단에 손을 집어넣던 그는 호태식의 또 다른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백 관장, 괜찮은 사람이에요.

‘괜찮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이 연속해서 그의 귓가에 환청처럼 들려왔다.

‘젠장.’

서지철은 칼을 꺼내려던 생각을 바꿔 양손을 술상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백관장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작년에 의뢰를 받고 관장님을 피습하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몇 개월 정도 고생시키라는 주문이었죠. 같이 사는 여자 친구분은 건들지 말라는 요구에 기회를 보는 게 어렵기도 했고, 자꾸 도장을 비우는 관장님의 행동 때문에 골치 좀 썩이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서지철은 사내다운 목소리로 지나간 일을 하나둘 털어놨다.

“그 와중에 도장을 조사하려고 들어갔다가 관장님께 걸려서 된통 혼이 났고요. 기억하시는 게 그때 그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해결사라는 제 직업의식과 자존심이 겹쳐져 의뢰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관장님을 노렸던 거죠. 그러다 결국 교통사고까지 났고, 더 이상 관장님 의뢰를 유지할 만한 정신력과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활을 하는 가운데 새로운 의뢰를 받은 게 하필 또 관장님 뒷조사였습니다. 말도 못하게 고통스럽고 고민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을 맡지 않으면 난, 해결사라는 직업을 영원히 포기해야 될 처지였으니까요.”

서지철은 씁쓸하게 웃으며 술을 따라 마셨다.

“미안하다, 백 관장. 이제 죽일 테면 죽여라. 해결사 인생에 이 정도 결말은 예상했으니까.”

존칭을 생략하고 서지철은 평대를 했다. 당당하게 끝을 내고 싶었다.

“자아, 그 젓가락을 빼서 이 심장에 찔러 넣어!”

도현은 가만히 서지철의 두 눈을 들여다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에 박힌 젓가락을 힘 하나들이지 않고 뽑은 도현은 술상으로 돌아와 제자리에 앉았다.

“용병은 돈을 받고 일을 하지. 선악의 구분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고 의뢰인의 입장에서 돈을 받은 만큼 실력을 발휘 한다.”

도현은 이계에서 용병으로 잠깐 활약했던 때를 생각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르틴과 파먼은 그때 사막에서 무사히 벗어났겠지?’

활을 잘 쏘던 과묵한 청년 우르틴과 평생 용병으로 굴러다녔다는 백발의 노인 파먼.

도현은 강렬했던 그들과의 사막 여정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받은 의뢰가 있습니까?”

“없다.”

“잘됐군요. 당신이 했던 일은 이대로 묻어 두겠습니다.”

도현의 담담한 말에 서지철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를…… 용서해 주겠다고?”

“내가 당신을 보자고 한 이유는 사실 당신의 능력을 높이 사서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고 철저히 조사하고, 취영산까지 쫓아와 뒷조사를 마무리한 당신의 행동. 일을 맡기면 안심이 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또 다른 의뢰로 날 노렸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지만.”

도현은 적도 이용하면 자신의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주성하와 협력 관계를 맺었는데, 돈을 받고 움직이는 해결사를 고용 못 할 이유는 없었다.

“의뢰를 하겠습니다.”

도현의 말에 서지철은 어안이 벙벙했다.

“의뢰를…… 내게 의뢰를 한다고?”

“그렇습니다. 맡은 일이 현재 없다면 내 의뢰를 받아 주세요. 물론 비용은 반값입니다. 내가 당신의 일을 눈감아 줬으니, 그 정도는 해 주겠지요?”

도현이 말을 하며 서지철의 술잔에 술을 따라 줬다.

뜻밖의 제안에 갈증이 난 서지철은 그 술을 단숨에 마셨다.

“역시 백 관장은 그릇이 다릅니다. 범상치 않은 사람인 줄은 내가 진작 알았죠. 어떤 의뢰입니까? 내가 반값에 해 드리죠!”

서지철은 기분이 좋아서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호검술 도장 주변을 감시해 주세요.”

“예? 다른 곳이 아니라 관장님 도장을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 도장요. 해결사로 일을 해 오셨으면 수상한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은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됩니다.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수상한 자들이 도장 주변을 얼씬거리는지 멀리서 살펴봐 주세요.”

“기한은요?”

“일단 3개월로 계약을 하고, 차후 연장을 할지는 끝나는 시점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죠.”

서지철은 뭔가를 곰곰이 따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제 날카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면 성실하게 의뢰에 임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실 몸값이 좀 비쌉니다. 아무리 반값에 하더라도 3개월이나 되는 장기 계약을 하시면 관장님도 부담이 될 겁니다.”

“얼마나 되는데 그렇습니까?”

“제가 관장님 뒷조사를 하는 데 얼마를 받았는지 아십니까? 5천만 원입니다. 그중 중개를 해 준 사무실에 20퍼센트 떼 주고 4천만 원이 제 몫이죠.”

“상당하군요.”

도현이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 주성하에게 뒷조사 자료를 받긴 했지만 의뢰금이 얼만지는 묻지 않았었다.

“흥신소 애들이라면 수백만 원이면 족하겠지만, 저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프로 해결사입니다. 에이전시도 엄연히 있고요.”

서지철은 긴장된 마음이 풀려서인지 말도 술술 잘 나왔다.

“물론, 그 금액이 다 수익은 아닙니다. 여러 자료들을 구할 때마다 다 돈이 들어가니까요. 이번에 백 관장님 뒷조사하는 데도 비용이 1천5백 정도 들었습니다. 그러니 실질 제 수입은 2천5백 정도지요.”

“그렇군요.”

“일의 종류에 따라 가격 폭이 상당히 심한데, 에이전시를 거치지 않았으니까 그 할인율까지 감안해서 반값에 해 드리면…….”

“반값에 하면 얼마입니까?”

은근한 압박이 섞인 도현의 시선에 서지철은 원래 말하려던 금액을 대폭 깎아서 말했다.

“3개월에 3천만 원만 받지요.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가격 할인입니다. 나올 수 없는 금액이지만, 여러 조건을 따진 제 마음이 섞인 금액이지요.”

“2천만 원.”

“예?”

“술값은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피곤해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아, 아니, 백 관장님! 아무리 그래도 제 프라이드가 있는데 3개월에 2천만 원은.”

“안 됩니까?”

“……됩니다.”

서지철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잘해 보죠.”

“백 관장님.”

문을 열던 도현이 뒤를 돌아봤다. 가까이 다가온 서지철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원래 이런 건 알려 드리면 직업윤리에 크게 벗어나는 건데 알려 드리죠. 작년에 백 관장님을 손봐 달라고 했던 사람은 최태진인데, 그 사람 뒤에는 대형 유통 회사인 서림의 대표 김성국의 아들 김탁훈이 존재했습니다. 그 사람이 진짜 의뢰인입니다. 홍영 씨가 그 회사에 근무를 한 적이 있지요?”

도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김탁훈은 여러모로 내 눈에 걸리는군요.”

사실 도현은 아까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김탁훈이라고 예상을 했었다.

“낮에 도장으로 찾아오십시오. 그때 다시 얘기하죠.”

“예, 그럼 살펴 가십시오.”

서지철은 이제는 의뢰인이 된 도현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영국

“어? 도현아, 일찍 왔네? 하루 이틀 더 있다 올 줄 알았는데.”

출근을 한 용주는 도현과 홍영이 앉아 있는 관장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검선문의 제자들이 취영산에 왔었어.”

“뭐? 그놈들이?”

도현은 깜짝 놀라는 용주에게 어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그들이 정말 우리 편이 되어 줄까? 검선문에 돌아가서 엉뚱한 소리라도 해 대면 골치 아파지는데.”

용주가 걱정 깊은 시선으로 말했다.

“허튼짓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사형제들끼리 반목하고 있고, 태선군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져 있으니까. 게다가 나를 상대하는 것보다 친구로 삼는 게 이익이라는 걸 그들도 인식하고 있어.”

“하긴, 수백 년 전 고수인 담기량의 보물을 자기들끼리 몰래 찾으려고 하는 걸 보면, 태선군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 자들은 아니지. 역시 콩가루 문파야, 검선문은. 근데 담기량의 은거지는 언제 찾을 거래?”

“지도가 옛날 거라서 찾는 게 쉽지 않은가 봐. 의심되는 몇몇 장소를 선택해서 이제 막 찾고 있는 것 같아.”

“그들이 보물을 나눌까?”

“두고 봐야지. 그런데 담기량의 은거지를 확실히 찾는다는 보장은 없어. 찾는다 해도 수백 년이 흐른 지금 무엇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지도 달라고 해, 우리가 찾자.”

용주의 눈에 욕심이 어렸다.

“넌 지금 그쪽에 신경 쓸 때가 아니야. 호심공과 호검술에 더욱 정진해.”

도현은 주성하가 했던 제안을 떠올렸다.

-백 형, 중국으로 건너와서 구사저와 함께 담기량의 은거지를 함께 찾아보는 게 어떻소? 나는 섭 사형 때문에 자유롭지 못해서 말이오.

도현은 할 일이 있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었다.

‘찾는 게 쉬웠다면 벌써 주성하가 차지했겠지. 그 일에 집중했다 소득이 없다면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될 거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에 무작정 달라붙을 수 없었다. 담기량의 보물이 허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그래도 한 번쯤은 주성하와 료쿄가 어디를 찾고 있는지 직접 가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급할 건 없었다. 영국을 다녀온 후 적당한 시기에 중국에 가 보면 된다.

“이 자식을 어떻게 손봐 주지?”

홍영이 타 준 차를 마시던 용주가 인상을 살짝 썼다.

“누구?”

“김탁훈이 말이야. 껌 딱지 같은 새끼가 감히 어디서.”

용주는 말을 하다가 조용히 앉아 있는 홍영이 의식됐는지 말끝을 흐렸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도현 씨가 위험에 빠질 뻔했어요.”

“홍영 씨 잘못이 아니죠, 그 자식이 문제지. 안 그래, 도현아?”

“맞아, 홍영 씨 문제가 아니지.”

도현은 홍영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얘기했잖아요. 김탁훈이 저러는 건 홍영 씨 잘못이 아니라고요. 다시는 그런 생각 말아요.”

홍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식 혼내 줘야지?”

용주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하는 말에 도현은 깊은 눈빛으로 답했다.

“기다려 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중이야.”

갈색 선글라스를 낀 서지철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호검술 도장 건물 앞에 섰다.

‘백 관장이 내 의뢰인이 될 줄이야.’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서 있던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품 안에 넣은 후 지하 도장으로 내려갔다.

안에는 도현뿐만 아니라 그가 잘 아는 용주, 홍영까지 함께 모여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참 아름다운 여자야.’

도현이 의뢰인이 되자 그 주변 인물들도 다르게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서지철입니다. 서 팀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반가워요, 서 팀장님. 홍영이에요.”

홍영이 먼저 인사를 했고 뒤이어 용주가 고개를 까딱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현의 뒷조사를 했고 그 전에는 피습을 하려고 쫓아다녔다는 그였기 때문에 솔직히 용주는 도현이 이런 사람을 고용했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조용주예요. 내가 누군지 알죠?”

“네? 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서지철은 조용주와 악수를 나누다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나름 강철 같은 손아귀 힘을 자랑하는 그였지만 용주의 손아귀 힘이 대단해서 손이 너무 아팠다.

‘이 자식이!’

서지철도 자존심이 있어서 먼저 손을 풀지 않고 버텼지만 갈수록 고통만 커졌다.

“손이 크시네요.”

용주는 씩 웃으며 악수를 풀었다. 서지철은 약이 올랐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용주야, 앞으로 우리를 위해 주변을 살펴 주실 분이니까, 잘 지내도록 해.”

“그럼 잘 지내야지. 안 그렇습니까, 서 팀장님?”

용주가 쳐다보자 서지철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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