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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21화 (221/575)

[221] 디 임팩트 9권 21화

4월 초의 런던 날씨는 바람이 차고 추워서 길가에는 머플러와 장갑을 낀 이들도 많았다.

정장 차림의 도현은 위에 코트를 걸치고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사람이 붐비는 코벤트 가든 인근의 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아시아계 여성 두 명을 지나쳐 골목길 중간에 위치한 작은 카페 앞에 도착한 도현은 숀이 보낸 카페의 주소와 이름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실내에는 작은 탁자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흰 벽에는 전원풍의 사진과 흑백으로 된 배우 사진들이 전시장처럼 꾸며져 있어서 감성을 자극했다.

도현은 안으로 천천히 들어서며 탁자를 차지하고 있는 몇 몇 사람을 빠르게 훑어봤다.

실내 안쪽에는 차에 파이를 곁들여 먹는 노인이 한 명 앉아 있었고, 출입문 옆 창가 쪽에는 갈색과 연한 금발의 젊은 여성 두 명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오진 않았겠지?’

오후 5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1시간 정도 앞서 도착한 도현은 젊은 바리스타가 내려 준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며 고서점 거리인 세실코트에서 구입한 ‘동양 무술’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어 내려갔다.

저자는 1920년대 홍콩에 파견된 영국군 군인으로 이후 인도를 거쳐 본국으로 귀국한 군 출신 작가였다.

그는 동양의 독특한 무술에 관심이 깊었는지 그가 보고 느낀 동양의 무술에 대해 서술해 놨다. 때로는 그 자신이 배운 무술도 그림을 곁들여 설명해 놔서 읽는 독자도 따라 할 수 있게 했다.

책은 나름 인기가 있었는지 1960년대 초반까지 개정판을 거듭해 출판했는데, 지금 도현이 보고 있는 책이 바로 그 개정판이었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책을 읽던 도현은 카페 출입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자 책에서 시선을 떼고 들어오는 사람을 응시했다.

젊은 남녀 커플이었다.

시선을 내린 도현은 다시 책을 읽었다. 시간이 흐르며 안에 있던 사람도 나가고 새로운 손님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만나기로 약속한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도현은 읽고 있던 책을 테이블 한쪽에 밀어내고 출입문을 주시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기대를 하며 숀을 기다리던 도현은 안경 낀 중년 남성이 들어와 누군가를 찾는 듯 실내를 두리번거리자 숀일까 싶어 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중년 남성은 도현을 지나쳐 그 뒤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걸어갔다.

“아버지, 늦어서 죄송해요.”

“괜찮다. 그런데 저 사람 아냐? 네게 손을 흔든 것 같은데.”

“모르겠는데요.”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과 노인이 나누는 대화 소리에 도현은 민망함을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한 잔 더 구입한 그는 제자리로 돌아와 숀을 기다렸다. 여러 사람들이 오갔지만 숀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도현은 벽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오후 6시가 넘었다. 약속된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났지만 숀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현은 참을성 있게 카페를 오가는 사람을 관찰했다. 혹시 그가 놓친 사람 중에 숀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봤지만 모두들 상대방이 있었고, 그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장난이었나?’

해가 져 골목길은 조명이 들어왔고 시간은 깊어 갔다. 도현은 먹음직스러운 조각 케이크를 사서 당분으로 천천히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였다.

오다가 교통사고라도 나서 충분히 늦어질 수도 있는 법이다.

‘맛있네. 하나 더 먹자.’

숀을 기다리며 단맛에 폭 빠진 도현은 조각 케이크를 두 개나 더 먹었고, 벽시계는 어느새 오후 9시를 가리켰다.

‘차 세 잔에 조각 케이크 세 개라……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군.’

5시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9시가 되도록 보이지 않자 도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아쉽네, 수련까지 중단하고 왔는데.’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왔기에 실망감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스톤을 구매하는 가격을 이제 슬슬 올려야 하나?’

탁자 위에 놓아둔 책자를 손에 들고 막 일어서려던 도현은 검정 재킷 차림의 사내가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눈을 빛냈다. 사내가 들어오면서부터 좁은 카페 안을 쓰윽 둘러봤기 때문이다.

키가 크고 건장한 사내는 도현과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걸어와 탁자 앞에 섰다.

“혹시 숀을 찾아오신 분입니까?”

사내의 질문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숀이 보냈습니다.”

“당신을 보냈다고요?”

“예, 따라오시죠.”

도현은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겨 찾아온 의문의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났지만 따라가지 않기도 애매했다.

카페를 나서자 사내의 일행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도현의 뒤에 바짝 붙었다.

‘뭐지 이자들은?’

도현이 뒤를 돌아보자 카페 밖에서 도현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남성 두 명이 슬며시 품 안의 총을 보여 줬다. 무언의 협박에 도현은 황당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가자.”

안에서 도현을 데리고 나온 사내가 노려보자 도현은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도현이 도망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는지 세 명의 사내들은 앞뒤에서 그를 압박하며 그들의 차가 대기 중인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납치되는 건가?’

도현은 차에 타기 전 이들을 처리해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계속 따라갈지 고민이 됐다.

“숀은?”

도현의 질문에 세 명 중 한 명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어서 타기나 해!”

사내가 총구를 도현의 옆구리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좋아, 따라가 주지.’

굳은 표정의 도현이 검정색 밴에 올랐다.

밴은 템스 강을 가로지는 워털루 브리지를 지나 런던 남부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다 수목에 둘러싸인 작은 저택 앞에 멈춰 섰다.

“내려.”

도현은 사내들을 따라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나무가 외부의 시선을 차단했고, 어둠 속 2층 저택은 조용하면서도 어딘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집 관리를 제대로 안 했는지 2층 창문은 깨져서 덜렁거렸고, 현관문 좌우로 달려 있는 조명등은 오른쪽 한 개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그 조명등도 뭐가 잘못된 건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도현은 흡사 폐가와 같은 모습의 집 안으로 사내들과 함께 들어섰다.

“데려왔습니다.”

도현을 데리고 온 세 명의 사내들은 의자에 앉아 그림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는 50대 남성에게 보고했다.

“거기 앉혀.”

고급 슈트를 입은 50대 남성은 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거실 중간에 위치한 의자를 가리켰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빈 공간에 들어맞는 퍼즐 조각을 찾는 일인 것처럼 보였다.

“앉아.”

등을 살짝 떠밀어 도현을 의자에 앉게 한 사내들은 그 뒤에 늘어서서 50대 남성의 지시를 기다렸다.

“당신이 숀입니까?”

“내가 숀이냐고?”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들을 뒤적이던 조지가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자 도현의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사내들도 덩달아 따라서 웃었다.

“재밌군. 내가 숀 같아 보이나? 응?”

조각 하나를 그림판에 끼워 맞춘 조지는 집 안에 들어온 도현을 처음으로 쳐다봤다.

“숀과 사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왔지?”

“사업이라니, 처음 듣는 얘기군요.”

“시치미 떼지 마.”

조지는 다시 고개를 숙여 얼마 남지 않은 그림 퍼즐의 조각을 마저 맞춰 나갔다.

“난 단지 숀을 만나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숀은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강하게 부정하는 도현의 태도에 조지는 손에 든 퍼즐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도현을 쏘아봤다.

“숀은 너와 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그와는 본 적도 없고 오늘 처음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 사이에 사업이라니, 웃기지 않습니까?”

도현은 숀이란 사람이 한 거짓말에 놀라면서도 차분함을 유지했다.

한동안 말없이 도현을 노려보던 조지는 손에 든 퍼즐 조각을 그림판에 맞췄다.

“사업이 아니라면 숀은 왜 만나려고 왔나?”

“그가 탐험가인 자신의 증조부 얘기를 해 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증조부의 얘기? 고작 그런 얘기나 들으려고 한국에서 건너왔다고?”

도현은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전부터 영국 관광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겸사겸사해서 온 겁니다.”

“숀은 네가 자신의 사업에 20만 파운드를 투자할 거라고 했다. 가서 숀을 데리고 와.”

조지의 지시에 세 명의 사내 중 한 명이 2층으로 올라가 손목이 묶인 30대 중반의 남성을 데리고 내려왔다.

‘저 사람이 숀인가?’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통해 내려온 숀은 먼지와 흙이 많이 묻긴 했지만 정장을 입고 있었고, 깔끔한 외모에 지적으로 보이는 분위기를 풍겼다. 다만, 누구한테 얻어맞았는지 입술 한쪽에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도현과 시선이 마주친 숀은 활짝 웃어 보였다.

“반갑다. 내가 숀이야. 갑자기 상황이 이래서 당황스러울 텐데, 걱정할 것 없어. 이 사람들, 그리 나쁜 이들은 아니니까.”

도현을 보자마자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던 그는 조지의 부하가 복부를 후려치자 윽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거실이 조용해지자 퍼즐을 맞추던 조지가 입을 열었다.

“숀, 어떻게 된 거냐? 네 말과 다르잖아. 이자는 사업 얘기는 전혀 모르던데.”

“낯선 사람들이 물어보니까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조지의 부하에게 복부를 얻어맞은 숀이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섰다.

“내가 보기엔 겁먹은 것 같지 않은데.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여.”

조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도현을 보며 말했다.

“이봐, 괜찮으니까 사실대로 말해. 우리 같이 사업을 하기로 했잖아. 네가 20만 파운드를 투자하기로 했고.”

절실한 몸짓으로 숀이 의자에 앉아 있는 도현에게 다가갔다.

“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찾아온 사람을 바보로 만들면 안 됩니다.”

“한마디만 해 주면 돼. 함께 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도현에게 바짝 다가선 숀이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잠시 숀의 그런 얼굴을 바라보던 도현은 고개를 돌려 퍼즐을 맞추고 있는 조지에게 말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니 그만 가 보겠습니다. 양측 사이에 일은 알아서 하십시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숀이 보낸 이메일의 내용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을 이용해 먹기 위한.

은근히 화가 난 도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 물건을 돌려줘야겠어.”

도현은 조지의 부하들에게 차 안에서 빼앗긴 자신의 지갑과 휴대폰, 책을 요구했다.

조지의 부하들이 어떻게 하냐는 눈빛으로 조지를 쳐다볼 때 숀이 도현에게 매달렸다.

“이메일로 맺어진 우리 사이가 아닌가? 한 번만 도와줘.”

“아니, 당신 일은 당신이 해결해. 내 물건 안 돌려줄 겁니까?”

“다 됐군.”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그림을 완성한 조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 한가운데 서 있는 도현에게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그가 몇 시간에 걸쳐 완성시킨 눈 내리는 겨울 풍경 그림이 들려 있었다.

“아름답지 않나?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혼란스러운 것들도 이처럼 정리가 되고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지. 받게, 선물이야. 이걸 받고 오늘 여기서 본 일들은 싹 잊어버리게. 떠벌리고 다니면 이 그림을 회수하러 거친 사내들이 찾아갈 거야.”

도현은 별말 없이 조지가 내민 겨울 풍경 그림 퍼즐을 받았다.

“이 사람 물건 가져다줘.”

“예!”

조지의 부하들 중 한 명이 밴 안에 있는 도현의 물건들을 가지고 오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조지는 불안한 눈빛으로 서 있는 숀을 돌아봤다.

“숀, 왜 이렇게 나를 실망시키는 거냐. 감히 내게 거짓말을 해?”

“죄송합니다. 시간을 주시면 틀림없이 돈을 갚겠습니다.”

“또 도망 다니려고?”

60을 바라보는 조지의 나이는 적은 게 아니라서 그의 얼굴 곳곳은 깊은 주름이 배어 있었다. 그 주름들이 조지가 인상을 쓰자 더욱 깊어졌다.

“내 돈을 가져다 쓰면서 두려움이 없었나 보지? 도박판에서 내 돈을 펑펑 쓰며 즐길 때는 전혀 뒷일은 걱정이 없었던 거야.”

“아, 아닙니다.”

“닥쳐!”

조지가 숀의 뺨을 후려칠 듯 손을 올렸다.

“더 이상 너를 못 믿겠다. 오늘 밤 너는 로마 격투장에 참가한다. 몸으로라도 빚을 때워.”

“예에? 아니, 전문 파이터도 아닌 제가 어떻게 그곳에 참가합니까! 저보고 죽거나 병신이 되란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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