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디 임팩트 9권 23화
‘숀의 증조부가 남긴 탐험 일지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까?’
숀은 탐험 일지를 통해 스톤을 찾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탐험 일지를 확인하지 못한 도현으로서는 막연하기만 했다. 그래도 이왕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했으니 성과가 있었으면 했다.
‘시합이 끝나고 숀을 따라가 보면 알겠지.’
도현은 차창을 통해 육중한 건물을 응시했다. 런던 근교의 공장에 꾸며진 로마 격투장이 바로 저곳이었다.
인근에는 수많은 고급차들이 서 있었다. 로마 격투장에서 싸움을 보며 거액의 베팅을 하는 관중들의 차였다.
드르르륵.
밴의 옆문을 열며 조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자네의 상대가 바뀌었어. 로키라는 자로…….”
“문제가 있는 상대입니까?”
로마 격투장에 어떤 선수들이 활약하는지 알지 못하는 도현이지만 조지의 어두운 표정만으로도 로키라는 인물이 강한 상대라는 걸 짐작했다.
“로마 격투장에서 손꼽히는 강자네. 더럽게 이기는 것으로도 유명한 자지. 특히 상대의 살점을 입으로 물어뜯는 혐오스러운 짓으로 악명이 높아.”
조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복면을 쓴 도현의 두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내 부하들을 단번에 제압할 정도로 강한 친구라는 건 인정하겠는데, 상대는 노련하고 싸움을 유리하게 끌어 갈 줄 아는 자야. 맷집도 좋아서 웬만한 타격에는 끄덕도 하지 않고. 내가 로키에게 베팅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그자를 잘 알고 있지.”
“대전 경력이 없는 내가 그런 베테랑과 시합을 한다는 게 이상하군요.”
도현은 상식선에서 물었다. 어느 한쪽이 너무 치우치면 경기가 재미없기 때문에 시합을 주관하는 로마 격투장 관계자들도 무작정 경기를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조금 욕심을 부렸지.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강자들이 싸우는 아우구스투스 급에 도전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말이야. 베팅 금액도 크고, 돌아오는 게 많거든. 그런데 그자하고 시합이 정해질 줄은 몰랐어.”
“바뀌었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된 겁니까?”
도현은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는 조지를 보며 물었다.
“자네의 원래 상대는 이번에 새로 아우구스투스 급으로 도전을 한 자인데, 조금 전에 대기실에서 싸움이 나 시합에 출전을 못하게 됐어. 그의 빈자리에 로키가 들어온 거지. 자연스럽게 자네가 그의 상대가 된 거야.”
“그렇군요.”
“포기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말을 해, 내가 관리인에게 벌금을 물면 되는 거니까. 경기는 다음 주에 또 열리니까, 그때 다시 도전하지.”
“괜찮습니다. 이대로 가죠.”
“자넬 걱정해서가 아니야. 내가 베팅할 돈이 걱정되는 거지.”
조지가 뿜어낸 담배 연기가 넓은 실내의 밴 안에 자욱하게 퍼져 갔다.
“불안한 상대보다는 안전한 상대가 좋아.”
“하지만 그만큼 얻는 배당은 적어지겠죠.”
“자신 있나?”
“그저 이 불편한 복장을 빨리 벗어 던지고 싶을 뿐입니다.”
복면 사이로 드러난 도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음.”
조지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로마 격투장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조지가 나간다고 하는군. 베팅 접수받아도 될 거야.”
조지가 전화를 끊자 도현이 물었다.
“내 이름이 조지가 된 겁니까?”
“싫은가?”
피식 웃은 조지는 차 문을 열었다.
“같이 들어가서 다른 경기가 어떤지 구경이라도 하겠나?”
그의 제안에 도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 있겠습니다. 시합 시간이 되면 들어가도록 하죠.”
경기가 많은지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도현의 차례는 다가오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어져서 약간 지루해질 무렵, 머리에 붕대를 감은 숀이 밴의 옆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숀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조지의 부하를 힐끔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도현에게 말했다.
“조지 삼촌이 당신에게 베팅을 많이 했어. 지면 곤란해질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이기도록 노력해 봐야죠.”
도현의 담담한 어조에 숀은 미안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을 끌어들여서 미안해.”
“그 얘기는 그만하죠. 이미 여기까지 일이 진행됐고, 난 당신이 스톤을 찾겠다는 말만 기억할 뿐이니까요.”
“걱정 마. 스톤을 찾아내서 당신에게 도움받은 답례를 꼭 할 테니까.”
말하는 모습이 가식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들어가죠.”
운전석에 있던 조지의 부하가 조지의 전화를 받고 뒤를 돌아봤다.
“그만 들어가지. 들어와서 경기를 준비하라는군.”
도현은 차에서 내려 조지의 부하, 숀과 함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기실 근처에서 기다리던 조지는 도현이 들어오자 말했다.
“날 실망시키지 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 그는 로마 격투장 스태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도현을 보낸 후, 숀을 노려봤다.
“만약 저놈이 지면 넌 내 손에 죽는 거다. 알았어!”
숀은 긴장된 표정으로 벽에 부착된 모니터를 확인했다.
다음 경기 예고로 ‘로키 대 조지’라는 큼지막한 글씨 밑으로 베팅이 종료됐다는 글과 함께 배당률이 표시됐다.
조지라는 가명을 사용하게 된 도현이 승리했을 경우, 그 배당률은 다섯 배 가까이 됐다. 그만큼 낯선 조지라는 인물보다는 검증된 로키에게 사람들이 많이 베팅을 했다는 뜻이다.
“따라와.”
조지는 숀을 데리고 곧 경기가 시작될 무대로 향했다.
체급도 약물 테스트도 없었다. 그저 체급에 상관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단순하면서도 피를 말리는 경기였다.
도현은 전기 충격기와 곤봉을 옆구리에 찬 장신의 격투장 스태프들을 따라 케이지 방향으로 걸어갔다.
“와아아아! 끝장내!”
간이 스탠드에 꽉 들어찬 수백 명의 관중들이 도현의 경기에 앞서 펼쳐지고 있는 시합을 보며 괴성을 질러 댔다.
“안 돼! 일어나!”
“잘했어! 맞받아쳐!”
돈을 건 관중들의 응원과 열기는 대단해서 공장 안이 후끈할 정도였다.
‘광신도들 같군.’
팔각형 케이지 안에서 싸우는 파이터들의 모습은 처절했다. 바닥은 그들의 복면에서 흘러내린 피로 홍건했다.
맨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치면 복면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피 묻은 주먹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가격하면 주먹의 모양대로 핏자국이 문신처럼 새겨졌다.
“후우, 후우, 후우.”
마우스피스는 둘 다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고, 격렬한 숨소리를 뱉어 내며 케이지 안의 두 사내는 미친 듯이 서로의 몸을 괴롭혔다.
시합은 쉬는 시간 없이 이길 때까지 지속됐기 때문에 둘은 이미 상당히 지쳐 보였다.
키 큰 사내가 찢어진 입술로 숨을 토해 낼 때 기회를 보던 작은 키의 사내가 송곳 같은 주먹을 날렸다.
고개가 홱 돌아간 키 큰 사내가 힘없이 뒤로 휘청거렸고, 작은 사내는 공중으로 부웅 떠올라 플라잉 니킥으로 상대의 안면을 올려 쳤다.
질퍽한 소리와 함께 복면에 흡수되어 흐르던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쿠웅 소리와 함께 키 큰 사내가 넘어지자 작은 사내가 발로 얼굴을 걷어찼다.
키 큰 사내의 입안에서 핏물과 함께 부러진 이가 튀어나왔다.
심판을 보던 남자는 부러진 이를 주워 케이지 밖으로 버렸고, 공교롭게도 그 이는 다음 경기를 위해 대기 중이던 도현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잠시 부러진 이를 내려다보던 도현은 다시 시선을 케이지 안으로 돌렸다.
작은 키의 사내가 넘어진 사내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가격하고 있었다.
키 큰 사내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비틀며 반항을 하려 했지만, 작은 사내는 그의 몸에 올라타 체중으로 그의 상체를 내리누르며 더욱 악착같이 얼굴을 때렸다.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 키 큰 사내의 두 다리가 작은 사내의 턱 밑으로 불쑥 교차해 들어왔다.
“으핫!”
커다란 기합 소리와 함께 키 큰 사내는 작은 사내를 케이지 바닥 쪽으로 내동댕이쳤다.
목이 뒤로 꺾인 채 뒤로 날아간 작은 사내는 서둘러 일어나다가 뒤쫓아 온 키 큰 사내의 하이킥에 옆으로 튕겨졌다.
케이지에 부딪힌 작은 사내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 전에 키 큰 사내가 달려와 다시 한 번 강력한 하이킥을 날렸다.
눈이 풀린 작은 사내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기절한 것이다. 하지만 키 큰 사내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와작.
무릎으로 넘어진 사내의 안면을 가격한 그는 뒤로 몸을 굴려 작은 사내의 발목을 잡은 뒤 투포환을 던지듯 케이지에 힘껏 집어 던졌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는지 기절한 작은 사내의 몸은 공중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볼링공처럼 바닥을 쓸며 날아가다 케이지 하단 부위에 부딪혔다.
심판이 키 큰 사내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겼다!”
키 큰 사내에게 돈을 건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기뻐하는 반면 진 쪽은 들것에 실려 나오는 작은 사내에게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우!”
기절을 해서 야유를 보내도 들을 수 없겠지만, 그들은 패자가 경기장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야유를 멈추지 않았다.
‘패자에 대한 동정은 전혀 없는 곳이군. 죽든 살든.’
도현은 케이지를 사랑하는 장철호를 떠올리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장철호가 그리워하고 인정하는 격투 무대는 이런 저급함이 묻어나는 곳이 아니었다. 패자에게도 따뜻한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이런 곳에서 경기를 했다고 하면, 철호 형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도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조지와 숀, 그리고 조지의 부하들이 앉아서 그를 긴장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힘내라, 조지!”
숀의 외침에 조지와 조지의 부하들이 숀을 노려보다가 그들도 곧 도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도현은 쓴웃음을 흘리며 스태프가 건네준 마우스피스를 받았다. 필요 없었지만 주는 걸 받지 않기도 뭐했다.
‘저 사람이 로키인가?’
가슴에 털이 수북한 거구의 복면인이 느긋한 걸음걸이로 도현의 반대편에 해당하는 케이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도현과 시선이 마주치자 입을 벌려 무언가를 물어뜯는 시늉을 했다.
살점을 물어뜯는 고약한 자라는 조지의 말이 떠오른 도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장내는 금방 정리가 되었고, 오늘의 마지막 경기라며 로키와 조지를 아나운서가 소개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로키의 이름을 연호했다.
“로키! 로키! 로키!”
“이번엔 어디를 물어뜯을 거냐! 로키!”
“이기기만 해!”
배당률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사람들 대부분은 로키에게 걸었고, 소수만이 도현에게 걸었다.
“이번엔 확실하겠지?”
“이변은 없을 거야. 상대가 로키잖아. 아우구스투스 급에서도 베스트에 속하는 사람인데, 저런 신인이 이길 확률이 얼마나 있겠어.”
“그래도 가끔 괴물 신인이 나타나잖아.”
“혹시 조지에게 걸었냐?”
“아니, 로키, 흐흐흐. 로키! 로키!”
도현은 계단을 통해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서 들리는 로키의 응원 소리가 더욱 거세졌고, 그 가운데 자신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숀은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있었다.
“엉덩이는 씻고 왔나?”
케이지 가운데 선 거구의 로키가 혀로 입술 주위를 핥으며 음산하게 웃었다.
“맛없으면 네 가운데를 맛볼 거야.”
“…….”
도현은 대꾸 없이 심판의 지시에 마우스피스를 입에 끼고 뒤로 물러났다.
심판은 두 사람이 케이지 끝과 끝에 자리를 잡자 시합 개시를 선언했다.
“내게 이따위 것은 필요 없지.”
로키는 마우스피스를 케이지 밖으로 던져 버리고는 도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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