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225화 (225/575)

[225] 디 임팩트 9권 25화

‘그 건축물은 어떤 건축물이었을까? 정말 사막에 파묻힌 고대 도시의 흔적이었을까? 스톤의 문양이 그 건축물 벽면에 그려져 있었다면, 평범한 건축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도현은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생각에서 깨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객실 문 밖에는 자다 일어난 숀이 호텔 가운 차림으로 서 있었다.

“잠을 안 잔 것 같은데, 한숨도 안 자고 탐험 일지를 읽은 건가?”

“들어와요.”

도현을 따라 객실 안으로 들어선 숀은 테이블 위에 놓인 증조부의 탐험 일지를 내려다보며 하품을 길게 했다. 몇 시간 자지 않아서인지 그는 아직 피곤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다 읽어 봤나?”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던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얘기하기 쉽겠군. 난 증조부가 목격한 사막의 지하 건축물을 찾아 나설 거야.”

“이유는요? 나 때문입니까?”

도현이 컵에 물을 한 잔 따라 잠이 아직 덜 깨 보이는 숀에게 내밀었다. 숀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물을 받아 마신 후 의자를 빼서 테이블 앞에 앉았다.

“꼭 당신 때문은 아니야. 나는 증조부가 목격한 건축물이 고대 도시의 흔적이라고 믿어. 사막의 모래 밑에 잠든 고대 도시에는 많은 보물들이 있지 않겠어?”

숀은 테이블에 있는 증조부의 탐험 일지를 천천히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내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이 책의 내용을 믿지도 않으시고 관심이 없으셨지만 나는 달라. 어차피 빚지고 막판까지 몰린 인생, 여기에 목숨을 걸어 봐야지.”

물을 마시며 숀의 얘기를 듣던 도현은 느린 동작으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탐험 일지만으로는 당신의 증조부가 목격한 지하 건축물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아쉽지만 모래폭풍을 만난 장소를 언급하지 않았으니까요.”

“하하하! 남는 게 시간이야. 가서 사막의 유목민이 되어 증조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지 뭐.”

숀은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런던에서 날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까?”

“지금 하는 이야기. 당신이 찾는 스톤에 새겨진 문양이 증조부가 남긴 기록과 일치하는 게 우연으로 치부할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당신에게 약간의 돈을 투자금으로 받고 싶었어. 어제 일을 봐서 알겠지만 난 조지 삼촌에게 큰 빚을 지고 있고, 생활도 그리 풍족한 편이 아니거든. 도박에 돈을 날린 내 잘못이긴 하지만 말이야.”

씁쓸하게 웃으며 길게 뻗은 코를 만진 그는 도현을 쳐다봤다.

“내게 얼마라도 투자를 좀 해 줄 수 있겠어? 지하 건축물을 찾아내면 제일 먼저 미스터 백을 위해 스톤의 존재 유무를 확인해 볼게. 물론, 보물이 나오면 일부를 당신 몫으로 주고.”

도현은 한동안 대답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헨리의 탐험 일지만 응시했다.

그가 남긴 몇몇 탐험 동선을 통해 그가 모래폭풍을 만났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선정한 후, 탐사를 해 볼 수는 있었다.

그래도 넓은 사막 지역이었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은 아니어도 탐사의 어려움은 충분히 느껴졌다.

“사막을 경험해 봤습니까?”

“아직.”

숀이 헛기침을 하며 도현의 시선을 피했다.

“사막에서 평생 살아가는 이들도 사막을 편하게 느끼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그런데 당신이 사막에서 오래 버틸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만으로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 낼 수 없습니다. 지하 건축물을 찾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증조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도현의 냉정한 지적에 숀은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포기할 수가 없어, 지금 난 사막보다 더 험악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도박, 술, 여자. 이 모든 것들 속에서 내가 자유로워지려면, 끊임없이 자연 속에서 매를 맞으며 내 자신을 탈바꿈하는 길밖에는 없어. 사막에 나를 가둬 둘 거야. 그리고 그 고통을 버티게 해 주는 건 증조부가 목격했다는 사막의 지하 건축물이고.”

“…….”

“미스터 백이 투자를 안 해 줘도 난 어떡하든 돈을 구해 이집트로 갈 거야. 약속대로 스톤도 찾아 주고.”

숀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을 더 자야겠어. 오후에 다시 올게. 조지 삼촌 집에 가야 하니까, 지금부터라도 잠을 좀 자 둬.”

도현이 다 읽은 탐험 일지를 손에 든 숀은 객실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뒤를 따라온 도현에게 물었다.

“스톤은 왜 구하는 거지?”

“취미로.”

“진짜 목적을 묻는 거야. 스톤 때문에 날 도와준 거잖아. 대체 왜 스톤이 필요한 거야?”

“취미로.”

도현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객실 현관문을 열어 주자 숀은 어깨를 으쓱했다.

“알았어, 더 묻지 않지. 오후에 보자고.”

숀을 보낸 도현은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를 커튼으로 가린 뒤 침상에 몸을 뉘였다.

객실 조명등도 다 꺼 버린 그는 여러 가지 일들로 복잡해진 머릿속의 생각들을 한데 모아 자물쇠로 잠근 뒤, 곧 잠이 들었다.

조지의 집은 빅토리아풍의 3층 석조 건물로, 집안일을 맡아서 해 주는 나이 든 남자 집사와 두 명의 가정부들이 있었다.

숀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선 도현은 흰 머리가 가득한 남자 집사가 옷을 받아 주자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이쪽으로.”

집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간 도현은 부하들과 함께 포켓볼을 치고 있는 조지를 발견했다.

조지는 막 공을 치려다 도현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큐를 놓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다가왔다.

“오, 우리의 조지가 왔군.”

도현의 몸을 가볍게 터치하며 인사를 한 조지는 몸을 돌려 한창 게임이 진행 중이던 포켓볼 테이블 위의 공들을 손으로 이리 저리 밀어 버렸다.

“손님이 왔으니 게임은 이것으로 끝낸다.”

게임에서 이기고 있던 조지의 부하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손에 든 큐를 놓았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식탁에는 고풍스러운 촛대의 촛불이 조용한 가운데 식사를 하는 세 명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저녁 식탁에는 조지와 도현 그리고 숀 세 명만이 앉아 있었다.

“음식 맛은 괜찮나? 가정부가 훌륭하긴 하지만 요리 솜씨가 조금 부족해 보여서 일류 요리사를 초빙해 만든 음식들인데.”

도현은 종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요리들로 가득한 식탁을 둘러보았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썩 훌륭하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어떤 건 입맛에도 맞지 않았다. 그래도 준비한 사람의 성의가 있으니 그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다.

“좋습니다.”

도현의 대답에 조지는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 숀이 정신없이 음식을 먹는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숀, 넌 원래 이 자리에 낄 자격이 없지만, 미스터 백의 얼굴을 보고 앉힌 거다. 알겠냐?”

“고맙습니다, 조지 삼촌.”

숀은 나이프로 썬 고기를 입에 넣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미스터 백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지? 싸움 실력을 보면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조지가 조용히 물었다.

“작은 검술 도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검술? 전문 분야가 그쪽인데도 불구하고 맨손 격투 실력이 그리 뛰어나다니, 놀라운 일이야. 그럼 검을 들면 훨씬 더 대단해지겠군.”

도현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 쪽에 검사들이 싸우는 지하 검투장이 있는데, 그쪽에서도 충분히 실력이 통하겠군.”

조지의 은근한 말에 도현은 천으로 입가를 닦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요. 제 검술 실력은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그런가?”

조지는 배가 부른지 더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포도주만 입에 대다가 다시 물었다.

“어제 보니 스톤 때문에 숀과 얽힌 것 같은데, 특별한 거라도 되나?”

“개인적으로 독특한 문양이 마음에 들어서 수집하고 있는 스톤입니다. 그 소재에 대해 알려 주겠다고 해서 영국까지 왔던 거고요. 그 후에 일은 어제 보신 바와 같습니다.”

“숀, 미스터 백과 스톤의 일은 잘 해결된 거지?”

조지가 숀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 어떡하든 스톤을 찾아서 미스터 백에게 줄 겁니다.”

“사내는 도움을 받았으면 갚아야지. 만약 약속을 안 지키면 넌 내가 혼내 줄 거다. 알겠냐?”

조지의 경고에 숀은 포도주를 비우고 큰 소리로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더 이상 빚에 쪼들려 도망 다니는 나약한 숀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지금 내게 반항하는 거냐?”

조지의 눈빛이 차가워지자 숀이 움찔했다.

“오해 마세요. 그냥 다짐을 하는 겁니다, 새로운 각오로 살겠다는.”

“식사 끝났냐?”

“네.”

“그럼 나가 있어.”

조지의 지시에 숀은 술을 한 잔 더 따라 마신 후 만찬실 문을 열고 나갔다.

쿠웅.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나 곧바로 문이 열렸다.

식사를 마친 도현은 술을 조금 마시며 새로 들어온 사내를 응시했다. 조지의 부하였고 그의 손에는 작은 사각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도현의 발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방을 나갔다.

“뭡니까?”

도현의 물음에 조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네 몫이네. 5만 파운드야. 자네 덕분에 적지 않은 돈을 벌어서 주는 거야.”

“조금 뜻밖이군요. 안 줘도 되는 돈이지 않습니까?”

“의무가 딸린 돈은 아니고, 그건 내 선물이네. 기쁜 마음으로 받아 줬으면 하네.”

도현은 다리 옆에 세워진 돈 가방을 내려다봤다. 얼마를 벌었기에 5만 파운드를 선뜻 주는지 궁금해졌다.

“베팅을 얼마나 한 겁니까?”

“10만 파운드.”

조지가 파이프 담배를 꺼내며 대답했다. 10만 파운드면 한화로 1억 7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배당률이 5배 정도 됐으니 그는 상당한 돈을 번 셈이었다.

“꽤 많은 금액을 배팅했군요. 내가 지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내가 런던에서 나름의 자리를 잡고 살아남은 건 중요한 시기마다 높은 확률로 이익이 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네.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타고난 직감이 좋다고도 볼 수 있겠지. 아무튼 뭐라고 하든 난 운이 좋은 편에 속해. 자네의 경우를 봐도 그렇지 않나?”

웃으며 말을 한 조지는 편안한 얼굴로 파이프 담배의 연기를 빨아들이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한국에는 언제 돌아가나?”

“곧 돌아갈 예정입니다.”

“영국에 오면 들르게. 어제처럼 로마 격투장에서 서로 재미도 보고 말이야.”

“로마 격투장 얘기는 서로 안 하는 걸로 하지 않았습니까?”

“미안하네. 아쉬워서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야.”

조지는 파이프 담배를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에 다른 약속이 있어서 이만 즐거운 시간을 마쳐야겠네.”

“훌륭한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현이 인사를 하고 식탁을 돌아 문 쪽으로 가는데 조지가 문 앞에서 말했다.

“아, 그 스톤 말이야. 혹시 사진이라도 가지고 있나?”

“그건 왜?”

“자네가 수집하는 스톤을 나도 찾아보겠네.”

조지는 도현과 이대로 헤어지는 게 아닌 꾸준한 만남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 매개체로 도현이 수집하고 있다는 스톤을 이용하면 좋을 성싶었다.

도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집에 컴퓨터가 있겠죠?”

“물론이지. 따라오게.”

조지는 서재로 도현을 데리고 갔다. 서재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이용해 도현은 온라인상에 올려놓은 스톤의 이미지를 불러와 노트북과 연결된 컬러 프린터로 출력을 했다.

“이겁니다.”

도현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뽑혀 나온 출력물을 내밀자 조지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상태에서 지그시 내려다봤다.

볼링공처럼 매끈하게 생긴 돌 표면에 약간은 기하학적으로 생긴 선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독특하긴 하군.”

혼잣말을 하던 조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잠깐만, 이게 자네가 찾는 거라고?”

“네, 그렇습니다.”

도현은 조지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혹시나 싶어서 급히 물었다.

“이 스톤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한동안 말이 없던 조지의 고개가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봤네.”

“그곳이 어딥니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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