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226화 (226/575)

[226] 디 임팩트 10권 1화

포클랜드

“그곳은…….”

스톤을 어디서 봤느냐는 도현의 질문에 조지는 말을 흐리고는 파이프 담배만 피워 댔다. 이마에 주름이 깊어지고 때때로 숨을 길게 토해 내는 모습이, 큰 고민에 맞닥트린 사람처럼 보여서 도현은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디서 스톤을 본 걸까? 정말 보긴 한 걸까?’

스톤의 모습이 담긴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조지의 옆모습을 보며 도현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있을 때, 조지가 몸을 틀어 도현을 봤다.

“이 스톤 말고 따로 찾는 스톤은 없나?”

“네?”

“그게 말이야, 이 스톤은 정말 곤란한 사람이 가지고 있어서 말이지.”

조지가 편치 않은 얼굴로 말하며 한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서재 책상에 내려놨다.

‘위험한 인물인가?’

말하기 꺼리는 조지의 태도였지만 도현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었다. 조지가 어려워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떠올려 보던 도현은 혹시 거대 조직의 보스나 힘 있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지.’

차원 이동을 가능케 하는 스톤은 그에게나 조 박사에게나 귀중한 보물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조지에게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

“어떤 사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부탁드립니다. 스톤의 소재지를 알고 계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자네 말이 묘하군. 이깟 스톤 하나 구하는 데 목숨이라도 바칠 기세야.”

“그렇게 들렸습니까?”

도현은 작게 웃으며 조지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사람마다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저마다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남들이 보기엔 가치가 없어도요.”

“그래, 그렇겠지, 숀 그 녀석을 도와준 자네의 행동을 보면 말이야.”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알려 주십시오.”

도현은 조지가 준 5만 파운드 돈 가방을 내밀었다.

“이것은 돌려 드리죠, 제가 영국에 온 목적은 스톤이었으니까요.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스톤을 가지고 가고 싶습니다.”

“이보게 미스터 백, 선물은 함부로 돌려주는 게 아니야.”

돈 가방을 받지 않고 뒤돌아선 조지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넓은 서재 안을 천천히 걸어 다니다 도현에게 소리치듯 크게 말했다.

“좋아! 스톤을 찾는 걸 도와주겠다고 말했으니 그 약속은 지키도록 하지! 스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려 주겠네. 단, 스톤을 얻게 되면 내가 자네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잊지 말게.”

조지는 굳은 표정으로 서재를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 돌아온 그의 손에는 낡은 사진이 한 장 들려 있었다.

“이 사진을 보게.”

도현은 조지가 준 사진을 살펴봤다. 사진 속에는 군복 차림의 사내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그 중에는 낯이 익은 사람도 있었다. 바로 조지였다.

“군인이었습니까?”

“젊었을 때 몇 년간 군에 몸을 담았지. 그땐 체력도 좋았고 사격술도 남달랐어.”

“그렇군요. 그런데 왜 이 사진을 보라고 한 겁니까?”

“그곳이 어디인 줄 아나?”

도현은 사진을 다시 한 번 보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포클랜드 제도의 포트 스탠리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네. 1982년, 나와 마크는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제도를 두고 벌어진 짧은 전쟁에 참전했었지. 참고로 마크는 내 옆에 서 있는 배 나온 녀석이네. 바로 스톤을 소유하고 있는 녀석이지.”

도현은 조지의 설명에 살짝 놀라며 사진 속 마크를 응시했다.

“당시 마크와 나는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포트 스탠리 주변을 수색하다가 낙오된 적이 있었네. 한밤중에 벌어진 일인데,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지. 마크 녀석은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낄낄대며 웃더군.”

조지는 파이프 담배를 내려놓고 서재 장식장 위에 놓인 스카치위스키를 유리잔에 따랐다.

도현에게 반쯤 담긴 스카치위스키를 권하고 자신도 한 모금 한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하던 말을 이었다.

“당시 전황은 우리 쪽이 유리했고 포클랜드 제도를 지키는 아르헨티나 장군이 만 명이 넘는 부하들과 항복을 했지만, 항복하지 않은 잔존 병력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우리 둘은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네.”

도현은 스카치위스키를 마시며 옛 생각에 빠진 눈빛으로 과거 이야기를 풀어 놓는 조지를 묵묵히 바라봤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둡고 강풍은 점점 심해져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졌지. 나와 마크는 부대원을 이끄는 장교를 쓸모없는 녀석이라고 욕하며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부대원을 찾다가 언덕 능선 밑으로 굴렀네. 죽을 맛이었지. 아무튼 그러던 중 우연히 작은 동굴 하나를 발견했어. 강풍이 잦아들 때까지만이라도 그곳에서 숨을 돌리려 했지. 발목이 삔 나를 마크가 부축해 들어갔는데, 동굴은 깊지 않아서 겨우 몇 걸음 걷자 금방 끝이 나더군. 그곳에서 스톤을 발견했네.”

기다리던 얘기가 나오자 도현의 눈이 빛났다.

“동굴에서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동굴의 막다른 부분이 무너져 있었는데, 그 뒤로 작은 방 같은 게 존재했네. 마크는 혹시 오래전 해적들이 남극과 가까운 이 섬까지 내려와 보물을 숨긴 게 아니냐며 흥분하더군. 난 발이 삐어 움직이기 곤란했기에 마크만 무너진 동굴의 벽을 타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지.”

“해적이 남긴 보물을 발견했습니까?”

도현의 농담에 조지가 빙그레 웃더니 술잔에 입을 가져갔다.

“발견했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겠지.”

“동굴 안쪽의 방에서 발견된 게 스톤이군요.”

“스톤만 있었던 건 아니야. 죽은 자도 있더군.”

조지는 들고 있던 술잔의 술을 비웠다.

“자네 서 있는 해골을 본 적이 있나? 뼈만 남은 인간이 자네가 찾고 있는 스톤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어, 마치 신성한 물건처럼 말이야.”

도현은 조지의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그 모습을 그려 봤다.

‘누구였을까? 어떻게 그런 곳에서 스톤을 들고…….’

조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술잔을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이걸 보게. 내 팔의 근육과 하체의 단단함이 술잔을 받쳐 들게 해 주지. 하지만 동굴 안의 해골은 말 그대로 죽은 인간이야, 앙상한 뼈만 남은. 그런 인간이 내 머리 크기의 반만 한 무거운 스톤을 든 채 버티고 서 있었던 걸세. 상상이 가나?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해골이 버팀목 없이 서 있는 것 자체도 이상한 일인데, 거기에다 뼈만 남은 손으로 스톤을 들고 있다니.”

조지는 당시 일을 회상하며 많이 흥분했다.

“더 이상한 일은 마크가 해골의 손에서 스톤을 조심스럽게 빼내는 순간, 해골이 먼지처럼 사라졌다는 거네. 흔적도 없이.”

도현은 스톤이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충분히 벌어졌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조지만큼 놀랍다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불가사의하군요.”

“그렇지, 불가사의한 일이야. 문제는 그런 점 때문에 마크는 그 스톤에 신비로운 힘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는 거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도현의 물음에 조지가 낮게 웃었다.

“글쎄, 난 모르겠네. 내 물건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주술적인 힘은 난 믿지 않아.”

조지는 술잔을 탁자에 내려놨다.

“마크는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한 기념품이라면서 본국으로 돌아갈 때 어떡하든 챙겨 가자고 하더군. 나는 귀찮아서 알아서 하라고 했지.”

오래전 이야기를 마친 조지는 도현의 앞에 섰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마크가 포클랜드 제도에서 얻은 그 스톤을 애지중지하며 보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일세. 자네가 구입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해.”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군요. 그래도 만나 봐야죠. 다리를 놔 주시겠습니까?”

“마크는 날 싫어해.”

“네? 전우 사이가 아닙니까?”

“전우지,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조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연초가 아직 많이 남은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담배 연기를 몇 번 빨아들인 다음 대답했다.

“마크 여동생이 날 좋아했지만 내가 그녀를 거부했네. 거친 일을 하려는 내게 그녀는 부담스러운 존재였으니까. 실망한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결혼 생활이 평탄지 않았어. 그녀는 마크에게 때때로 찾아와 힘든 결혼 생활을 토로했고, 마크는 여동생과 결혼하지 않은 나를 두고두고 원망했네.”

“그게 왜 당신 탓입니까?”

“마크는 나를 믿었으니까.”

조지는 짧게 말을 끊은 후 벽시계를 확인했다.

“내일 오전에 자네가 있는 호텔로 찾아가겠네. 마크에게 데려다 주지.”

“불편하시면 주소만 알려 주십시오. 혼자 찾아가 보겠습니다.”

“아니야, 같이 가는 게 좋겠어. 생각해 보니까 자네 혼자보다는 내가 함께 가는 게 그래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조지는 마크와의 관계가 껄끄러웠지만 이번 일이 잘 처리 되면 도현과 자신의 관계가 친구 사이로 가까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젊고 힘이 넘쳐. 그동안 봐 온 자들과는 어딘지 달라도 많이 다른 사내야.’

개인사까지 밝힐 만큼, 조지는 왠지 도현을 가까이 두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도현은 조지의 호의를 거부하지 않았다.

“스톤의 크기가 얼굴의 반 정도 됐다고요?”

서재 문을 열던 도현이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아마 그랬을 거네. 한데 왜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현은 제법 두상이 큰 조지를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저 얼굴의 반이면 스톤의 크기가 상당하다는 건데, 그럼 에너지의 양도 꽤 되겠어.’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 보면 스톤의 크기와 그가 이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비례했다.

속으로 미소를 짓던 도현은 그러나 곧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앞서가는 조지의 등을 응시했다.

마크에게 스톤을 구하더라도 그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속에서 갈등이 심했다. 조 박사와 한 약속대로라면 이번에 구하는 스톤은 조 박사의 몫이었다.

‘정말 마크가 가지고 있는 게 내가 찾는 스톤이라면, 그 크기로 보아 앞선 스톤보다 그 에너지가 몇 배는 될 거야.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 수도 있고, 집으로 오가는 게이트를 몇 번이나 열어도 부담감이 없을 정도일 거야. 정말…… 탐이 난다.’

이계에서 강렬한 경험과 성장을 이뤄 왔던 도현은 때때로 잠을 잘 때면 이계의 생활들이 불현듯 떠올라 그립기도 했다.

검을 휘두르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계의 공간은 어떤 의미로는 그의 피에 섞인 호전적인 성격을 마음껏 배출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처음엔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싸우면 싸울수록 힘이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피를 찾는 게 아닌, 전투 그 자체로 쾌감을 얻는 사내.

‘혼돈의 마나 때문이 아니야, 그게 나였던 거지.’

조금은 굳어진 표정으로 조지의 뒤를 따라가던 도현은 집 밖에 대기 중인 차량 앞에 섰다.

운전석에는 조지의 부하가 있었고 뒷좌석에는 숀이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럼 내일 보세.”

“예.”

도현이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차에 올라타자 차는 그가 묵고 있는 호텔을 향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지 삼촌이 왜 내일 보자고 한 거야?”

숀이 물었다.

“같이 갈 데가 있어서요.”

“어딜?”

숀은 궁금해서 물었지만 도현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말해 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나?”

투덜거리던 숀의 시선이 도현이 들고 탄 가방에 쏠렸다.

무슨 가방인지 궁금했지만, 숀은 왠지 주눅이 들어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현이 상념에 찬 얼굴로 차창 밖을 바라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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