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디 임팩트 10권 2화
섬나라인 영국의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 인버네스까지 비행기로 이동을 한 도현과 조지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한참을 또 움직였다.
“친구분이 생각보다 멀리 사시는군요.”
택시 안에서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던 도현이 말했다. 섬의 남쪽에 해당하는 런던과 마크가 살고 있다는 곳은 거의 극과 극이었다. 마치 서울과 제주도처럼.
“마크는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이네. 그의 할아버지 대에 런던 지역으로 이사를 했지만 말이야.”
“표정이 안 좋습니다.”
“거의 10년 만에 그를 만나려니 약간 긴장이 되는군.”
도현은 옆에 앉은 조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같이 가서 괜히 미운털 박히는 게 아닐까? 차라리 혼자 가는 게 나을지도…….’
부하들 없이 홀로 다니는 조지는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였다.
“자네가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도현이 살짝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광활해 보이는 들판을 지나쳐 온 택시는 어느덧 산악 지역에 이르렀고, 호수를 지나 작은 마을 앞에 멈춰 섰다.
“여기가 레이로스입니다.”
턱수염이 멋있게 난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한 도현은 먼저 내린 조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조지는 한적한 마을 옆으로 난 숲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크의 집은 숲 뒤편에 있네.”
“스톤 이야기는 누가 꺼내는 게 좋겠습니까?”
“말했지만 그는 스톤을 신비로운 물건으로 보고 소중히 여기고 있네. 섣불리 얘기를 꺼내서 될 일이 아니지. 일단 내가 분위기를 잡아 줄 테니, 다음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짧은 숲길이 끝난 곳에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집 한 채가 보였다.
“날 얼마나 반겨 줄지 모르겠군.”
조지가 무거운 눈빛으로 문을 두드렸다.
“마크, 안에 있나?”
여러 번 문을 두드려도 집 안에서 반응이 없자 조지는 창가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봤다.
“외출을 한 모양이군. 기다려야겠어.”
조지가 품에서 연초가 채워진 파이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할 때, 숲에서 활을 든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숲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쏘기를 연습하고 돌아온 마크였다.
그는 조지를 발견하자마자 화살집에서 재빨리 화살을 꺼내 활시위를 당겼다.
“조지, 죽고 싶어서 왔냐!”
멀리서 활시위를 당기는 마크의 모습에 조지는 웃으며 외쳤다.
“이보게 마크,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있었나?”
“당장 꺼져! 안 그러면 내 화살에 죽을 줄 알아!”
60이 다 된, 배가 나온 마크였지만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심상치 않습니다. 잠시 피하시죠.”
도현의 경고에 조지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미소를 지었다.
“허풍이네. 저 정도 거리에서는 나를 못 맞혀.”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 사람이 활을 쏘면 분명히 당신에게 그 화살이 정확히 날아올 겁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는 쏘지 않을 거야. 내가 싫어도 그렇게까지 하겠나? 우린 친구 사이인데.”
도현을 안심시킨 조지는 오히려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마크, 그만. 우리 화해하세! 10년 만에 만난 친구를 이렇게 대하긴가?”
“흥!”
콧방귀를 뀐 마크가 힘껏 당겨진 활시위를 놓았다.
머리 위로 화살이 스치고 지나가자 조지의 안색이 굳어졌다.
“운 좋게 빗나갔지만, 이젠 정말 널 맞힐 거다!”
마크가 화살집에서 다시 화살을 꺼내자 조지가 뒷걸음질 쳤다.
“마크, 미쳤나! 정말 날 맞히려 한 거야!”
“가만히 서 있어, 심장에 구멍을 내 줄 테니까! 며칠 전에도 스칼린이 찾아와 울다 갔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서 너와 결혼을 못 했다고! 스트레스 때문에 아주 미쳐 버리겠어!”
피이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다시 날아온 화살이 조지의 옷을 찢으며 뒤에 박혔다.
“자네, 정말! 30년 전 일이야!”
“죽어라, 조지!”
뚱뚱한 마크가 달려오며 활을 쏘자 놀란 조지가 허둥대며 왼편에 있는 숲으로 뛰어갔다.
“마크, 네 여동생 인생을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닥쳐!”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앞으로 몸을 구른 조지는 나무가 무성한 숲 속으로 몸을 감췄고, 그 뒤를 마크가 기세등등하게 쫓아갔다.
집 앞에 홀로 남은 도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지와 마크의 관계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스톤 이야기를 꺼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
바닥에 박힌 화살을 잠시 바라보던 도현은 가볍게 땅을 박찼다.
숲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그는 조지를 쫓고 있는 마크를 발견했다. 마크는 가쁜 숨을 토하면서도 활쏘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직 화살이 열 개도 더 남았다! 그중 한 발은 조지 네놈 몸에 박힐 거야!”
“화살이 떨어지면 그땐 내 주먹에 죽을 줄 알아!”
“주먹으로도 넌 내 상대가 안 돼!”
마크가 소리치며 커다란 나무 뒤를 돌아 바위에서 뛰어내린 순간, 바위 밑에 몸을 숨기고 있던 조지가 벌떡 일어나 마크의 허리를 껴안고 바닥으로 뒹굴었다.
“넌 선을 넘었어!”
화가 난 조지는 바닥에 엎어진 마크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고 숲에서 주운 몽둥이로 그의 등을 내리쳤다.
하지만 마크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구부리자, 조지는 마음이 약해져 몽둥이질을 멈췄다. 그 순간 기회를 엿보던 마크가 옆에 떨어진 활을 집어 들어 세차게 휘둘렀다.
정강이를 얻어맞은 조지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는 틈에 마크는 잽싸게 움직여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하아, 하아, 조지, 내가 말했지? 화살 하나는 네 녀석 몸에 박힐 거라고.”
“끄응.”
조지는 신음 소리를 내며 바로 앞에서 활을 겨눈 마크를 노려봤다.
“빌어먹을 친구 같으니.”
손에 든 몽둥이를 버리고 조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자네 여동생 일은 나도 가슴 아프지만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자네도 알지 않나, 내가 런던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
활을 겨눈 마크의 팔이 조금 흔들렸다.
“마크, 나라고 마음 편하게 살았겠나? 나 역시 괴로웠어. 하지만 그녀와 난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변명하지 마. 애초에 내 여동생을 소개시켜 달라고 말한 건 너였어! 책임을 졌어야지!”
활시위가 팽팽해지자 근처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도현의 눈빛이 깊어졌다. 둘 사이의 일이 어찌 됐든 자신의 눈앞에서 조지가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마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결국 내가 개입해야 하나?’
도현은 손안에 기를 모아 장풍을 날릴 준비를 했다. 목표는 마크가 손에 든 활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자네 여동생 일로 날 괴롭혀야겠나?”
“괴롭혀? 괴로운 건 나야!”
마크가 눈을 부릅뜨며 활시위를 강하게 당겼다. 더욱 팽팽해진 활시위에 조지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진짜 쏘려는 건 아니겠지? 그 거리에서 쏘면 정말 위험해.”
“맞혀 봐, 내가 어쩔지.”
“자네 정말!”
조지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 차올랐다.
“나와 같이 온 사내가 누군지 아나?”
조지의 물음에 마크는 집 앞에 있던 도현을 떠올렸다.
“궁금하지 않아.”
“유명한 도둑이야. 지금쯤 자네 집에 있는 스톤을 훔쳐서 멀리 달아나고 있을걸.”
“뭐?”
깜짝 놀란 마크가 집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조지가 달려들어 마크와 뒤엉켰다.
활을 손에서 놓친 마크는 조지와 주먹다짐을 했고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썩지 않은 낙엽과 빗물을 온몸에 묻히며 싸우는 그들 앞에 유령처럼 한 사람이 나타나 그들을 떼어 놨다. 보다 못한 도현이 나선 것이다.
“그만하십시오.”
도현은 가볍게 마크와 조지를 뒤로 밀었지만 그 힘이 워낙 커서 그들은 정신없이 뒤로 밀려나야만 했다.
“조지, 거짓말을 했구나!”
조지가 도현이 스톤을 훔쳐서 달아났다고 말했지만 눈앞에 그가 나타나자 마크가 안심하며 외쳤다.
“젠장, 네 미친 짓거리를 막으려고 한 말이었어.”
조지는 턱을 어루만지며 인상을 썼다.
“당신 누구지?”
마크가 비를 맞으며 다가왔다.
“인사가 늦었군요. 백도현이라고 합니다.”
“조지의 부하 같지는 않고. 여기는 왜 왔나?”
도현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톤을 살 수 있도록 다리를 놔 주겠다고 한 조지가 오히려 마크와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 스톤을 사러 왔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우르르 쿵쿵.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더욱 거세지자 옆에서 지켜보던 조지가 나섰다.
“온몸이 비에 젖었어. 춥군. 이보게 마크, 내게 화를 풀 만큼 풀었으면 그만 따뜻한 자네 집으로 가세. 정말 내가 여기서 이대로 돌아가길 원하는 건가?”
“물론이지.”
“마크!”
“활 솜씨를 더욱 키워야겠어. 그래야 다음엔 단번에 맞히지.”
흙탕물처럼 변한 바닥에서 활과 화살집을 챙긴 마크는 비를 맞으며 집 방향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이봐 마크,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나! 스칼린의 남편에게 찾아가서 스칼린을 왕비처럼 모시라고 위협이라도 해야겠나! 스칼린은 이미 그녀의 삶을 선택한 거라고! 마크!”
“백도현이라고 했나?”
마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따라오게. 차 한잔하지.”
“감사합니다.”
도현이 마크를 따라가려 하자 조지가 뒤에서 도현의 소매를 붙잡았다.
“미스터 백, 나를 두고 혼자 가려고?”
“주인이 저만 찾는데 그럼 어떡하겠습니까? 스톤을 사야 하는데 주인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잖습니까.”
“음, 그것도 그렇군. 가 보게.”
홀로 남은 조지는 한숨을 내쉬며 나무에 등을 기댔다.
런던에서는 냉정한 조직의 보스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친구를 찾아온 나이 든 사내일 뿐이었다.
“10년 만에 왔는데, 이런 취급을 받다니. 다시는 오지 않겠어.”
조지가 마을을 향해 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마크가 당신도 데리고 오라는군요.”
도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정말인가?”
“네.”
“친구 사이를 끊으려 했는데, 한번 봐줘야겠군.”
“근데 고민입니다. 두 분 사이가 이래서야 어떻게 스톤을 사겠다는 말을 꺼내겠습니까?”
“훔치게.”
“네?”
“가지.”
조지가 앞서가자 도현은 황당한 얼굴로 서 있다가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비에 젖은 겉옷을 벽난로 주변 의자에 걸쳐 놓은 도현과 조지는 마크가 내온 커피를 마시며 벽난로에서 나오는 열기에 몸을 녹였다.
“10년 동안 안 왔으면 평생 오지 말 것이지 갑자기 왜 찾아온 건가?”
마크가 벽난로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미안하네. 진작 찾아왔어야 하지만, 자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
“자넨 겁쟁이야.”
“그럴지도 모르지.”
둘 사이에 대화가 끊겼고, 도현은 원두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벽난로의 불길을 응시했다.
끊어진 대화를 다시 엮은 건 조지였다.
“더 늦기 전에 자네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네. 예전처럼 밤새워 술도 마시고 자네의 형편없는 골프 실력도 놀려 주고 싶었지.”
“골프에서 손 놓은 지 오래야. 대신 저것들을 취미로 삼았지.”
마크의 집 내부에는 활과 검, 방패 등 각종 무기들이 장식품처럼 걸려 있었다. 대부분 중세 시대의 무기들을 모방해 제작한 모방품이었지만, 어떤 건 진품 같기도 했다.
“그래서 자네 집이 대장간처럼 보였군.”
농담을 한 조지는 슬쩍 옆에 앉아 있는 도현을 쳐다봤다.
“내가 10년 만에 자넬 찾아올 용기가 생기도록 자극을 한 사람이 바로 이 친구네.”
마크의 시선이 도현에게 향했다.
“무슨 뜻이야?”
“먼저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하게. 저기 있는 기사의 검에 죽고 싶지 않으니까.”
벽난로 옆에 세워진 중세 갑옷 기사 모형의 손에는 날이 선 검이 거꾸로 들려 있었다.
“알았으니까 말해 보게.”
마크의 대답을 듣고도 잠시 뜸을 들인 조지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야. 미스터 백은 자네가 포클랜드에서 가지고 온 스톤을 구입하려고 왔어.”
“스톤을?”
표정이 굳어진 마크의 시선이 조지를 지나 그 옆에 서 있는 도현에게 향했다.
“내 스톤을 왜?”
“미스터 백은 자네가 가지고 있는 스톤과 같은 것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군. 그래서 데리고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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