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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31화 (231/575)

[231] 디 임팩트 10권 6화

“용주야, 뒤돌아서.”

“왜?”

“얼른.”

용주가 뒤돌아서자 도현과 홍영이 기다렸다는 듯 불꽃같은 키스를 나눴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긴 키스에 도현이나 홍영 둘 다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서로의 대담함이 어색했는지 시선도 마주치지 못했다.

“실컷 즐겨 놓고는 뭐 하는 짓들이야? 애들도 아니고 참.”

도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서 팀장에게는 수련 다녀온다고 말해 놨어. 일 있으면 네게 가장 먼저 연락할 거야. 서 팀장과 싸우지 말고 잘 지내, 어쨌든 지금은 우리 사람이니까. 그리고 주성하도 네게 연락을 할 거야. 그 사람에게도 내가 수련을 간다고 해 놨으니까.”

“알았으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

용주는 이제 익숙해진 상황이라 손짓을 했다.

도현은 여전히 얼굴이 붉어져 있는 홍영과 시선을 교환한 뒤 황금색으로 물든 타투에 손을 가져갔다.

붉은 광채의 타원형 게이트가 생성됐고 도현은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귀향

게이트를 통해 이계로 넘어온 도현은 주방에서 여전히 재잘거리며 식사를 하고 있는 소녀들, 리샤와 쿠린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돌아왔다. 결국 이렇게 또다시 보는구나.’

부성주 나담이 마련해 준 집에서 하루를 채 보내기도 전에 이계를 떠나야만 했던 도현은 자신에게 또다시 주어진 이계의 시간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계에서 넉 달을 보내도 지구에서는 한 달가량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을 길게 이용할 수 있다.

검 수련도, 몬스터를 잡아 내공을 더욱 상승시키는 것도, 그의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버는 것도, 피를 흘리는 싸움도 이계에서는 가능하다.

검과 마법의 시대.

도현은 이계라는 불안전한 공간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계의 사람들, 몬스터와 싸우며 자신의 뜨거운 피를 식힐 수가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를 이계에 깊숙이 몰입시키곤 했다.

“죄송해요, 주인님. 저희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죠?”

주방 식탁에서 웃고 떠들며 즐겁게 저녁을 먹던 리샤와 쿠린은 도현이 주방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자 그가 화가 난 줄 알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본 게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저녁마저 먹어.”

도현은 부드럽게 말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좌정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있을 때 저녁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친 리샤와 쿠린이 방문 앞에서 말했다.

“주인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눈을 뜬 도현은 문을 열고 나갔다.

“저희들은 어느 방을 사용할까요?”

“글쎄, 아무 방이나 사용해, 난 상관없으니까.”

“정말 그래도 돼요?”

“되고말고.”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럼, 저희들은 2층에 창문이 있는 방을 함께 사용하겠습니다.”

리샤와 쿠린은 스므차의 대저택에서 챙겨 온 작은 짐 가방을 2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네 말대로 주인님은 착하신 것 같아. 사제 행세를 하며 도둑질을 하려 했지만 말이야.”

2층 창문 방에서 짐을 풀던 주근깨 소녀 쿠린이 작게 말했다.

“그분은 평범한 도둑이 아니야. 얼마나 강하냐면, 성 밖의 구역장들과 싸워서 수백 명을 죽이고 인간 도살자라는 무시무시한 악명까지 얻은 분이셔. 오죽했으면 부성주님이 우리 주인님을 친위대장으로 삼으려 했겠어?”

“지난번에 한 말 농담이 아니었어? 정말이었던 거야?”

대저택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요리를 배운 주근깨 소녀 쿠린은 도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말투로 말하는 리샤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물었다. 예전에 리샤가 말해 주기는 했지만 쿠린은 믿지 않았었다. 부성주가 도둑을 친위대장으로 삼으려 한다는 게 이상해서였다.

“내가 직접 들었다니까. 부성주님이 감옥에 갇힌 주인님을 만났을 때 음식을 넣어 주며 하셨던 말이야. 그때 주인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니?”

“뭐라 하셨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리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도현의 흉내를 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곳은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성주님. 이러는 거야.”

“대단해. 감옥에 갇혀 있으면 나는 얼른 그렇게 하겠다고 했을 텐데.”

쿠린은 놀라워했다.

“우리는 주인님에게 잘해야 돼. 그분이 아니었으면 우린 지금 대저택 작은 방에서 다른 여러 아이들과 함께 우울한 밤을 보내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야.”

“알았어.”

“음식 좀 잘하고. 솔직히 난 네가 한 요리가 맛없었는데 주인님이 맛있다고 하셨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불안했거든.”

“주인님은 진짜 맛있어 하시던데…….”

쿠린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실은 맛있었어.”

“놀랬잖아!”

쿠린이 리샤를 침대에 밀치며 간지러움을 태웠다.

장난을 치며 깔깔대던 둘은 헝클어진 머리로 침대에 머리를 맞대고 누웠다. 낮에 부성주의 지시를 받고 대저택을 나온 게 그녀들은 아직 믿기지가 않았다. 영원히 그곳에서 일곱 신을 믿는 얼음처럼 차가운 디엘르의 눈치를 보며 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을 벗어났다.

“리샤.”

“응?”

“주인님이 떠나면 우린 어떡하지? 아까 그러셨잖아, 여기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고.”

“그땐…… 우리끼리 살아야지. 주인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실 거야.”

“우리끼리 여기서 살 수 있을까?”

“다크캐슬을 떠날 거야.”

“뭐?”

쿠린이 깜짝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본토도 살기 어렵다고 들었어, 전쟁도 많고.”

“답답한 이곳보다는 그래도 낫겠지.”

리샤는 창가로 다가가 밖을 보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도망자로 다크캐슬에 와서 돌아가셨지만, 난 넓은 세상으로 나갈 거야. 죽더라도 그곳에서 죽을 거고.”

“리샤…….”

“쿠린, 주인님이 우릴 자유롭게 해 주시면, 그때 다크캐슬을 떠나자. 새처럼 세상을 구경하며 사는 거야.”

“하지만 우린 약해. 길 가다 강도 한 명만 만나도 큰일 날걸.”

“주인님이 있잖아.”

리샤는 창문에서 몸을 돌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쿠린을 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님에게 검을 배우는 거야. 주인님은 강한 분이니까, 조금만 검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도 강도 몇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아침을 먹던 도현은 리샤가 자신의 눈치를 자꾸 보자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내게 할 말이 있니?”

“아, 아니에요.”

도현에게 검을 배우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던 리샤는 당황한 얼굴로 답했다.

“그래?”

도현은 리샤와 쿠린의 얼굴을 둘러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주방을 나가 방으로 들어가자 쿠린이 막힌 숨을 토해 냈다.

“긴장돼 죽을 뻔했어. 리샤, 아무래도 주인님께 검을 가르쳐 달라는 말은 꺼내지 않는 게 좋겠어. 우릴 버릇없다고 죽일 수도 있다고.”

“그럴 분이 아니셔.”

“주인님이 착한 분인 것 같기는 하지만, 네 말대로 인간 도살자라는 악명도 얻은 분이시잖아. 얼마나 냉정한 분이시겠니? 난 두려워, 주인님을 자극할까 봐.”

쿠린의 걱정에 리샤도 마음이 흔들렸다.

“알았어, 더 생각해 보자.”

말이 없어진 리샤와 쿠린이 주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 도현이 방에서 나왔다.

“오늘 뭘 할 거지?”

리샤와 쿠린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어제 못다 한 집 안 청소를 마저 하려고요.”

“이 정도면 깨끗한 거 아닌가?”

도현이 집 안을 가볍게 둘러봤다.

“아니에요, 더 깨끗해야 해요. 대저택의 청소 상태와 비교하면 아직 멀었거든요.”

“여긴 대저택이 아니잖아. 적당히 하고 쉬어.”

“주인님, 어디 가세요?”

집 밖으로 나가는 도현에게 리샤가 물었다.

“성 밖에. 늦을지도 모르니까 신경 쓰지 말고 때 되면 식사해.”

집을 나선 도현은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하는 리샤와 쿠린에게 손짓을 하고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저 애들을 어떻게 하지?”

도현은 나담이 마련해 준 성내의 집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본토로 갔다는 스므차 성주를 한동안 기다렸다가 오지 않으면, 그는 다시 북쪽 몬스터 지역으로 들어가 수련을 할 계획이었다.

도현이 막대한 내공을 갖게 해 준 슈빅타이런이 집단 서식하던 지하의 쌍둥이 폭포 지역은 화산 폭발로 사라졌지만, 아직 북쪽 깊은 곳이 남아 있었다.

사실 거기에 어떤 몬스터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태선군은 당연히 넘어야 할 대상이고, 내 최종 목표는 혼돈의 마나가 일으키는 폭주의 가능성을 꺾어 버리는 극강의 경지. 극강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내공의 힘이 필요할는지 모른다. 내공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주저할 상황이 아니지.’

태선군에 비해 검술의 깊이가 떨어진다는 걸 확인한 도현은 그 간격을 줄이고자 했지만, 이계에 온 이상 내공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무허의 검을 단 한 번에 막아 내고 반격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그의 내공 덕택이었다.

그는 검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검이 성장하면 내공이 아쉬울 때가 언젠가 올 수도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이계에서 내공을 키우는 걸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그는 몬스터와 계속 싸워야만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런데 식솔이 생겨 버렸다.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리샤와 쿠린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리샤가 본토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필요한 가구라든가 물품이 있다면 사 줄 생각으로 어제 2층 그녀들의 방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때 리샤와 쿠린이 나누는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됐다.

당연히 아침에도 리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모른 척했을 뿐.

‘집을 주고 여기서 살라고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리샤는 다크캐슬을 벗어나고 싶어 해. 쿠린도 동조하는 것 같고. 그들에겐 저 집이 아무 의미도 없는 거지. 다크캐슬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억눌려 살아온 그녀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골목을 빠져나온 도현은 넓은 길을 걷다가 망치 소리가 나는 대장간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서는 근육질 사내 두 명이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보는 사람을 아찔하게 만드는 커다란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시오?”

대장간 주인의 말에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수고하십시오.”

성을 나온 도현은 루드의 집으로 향했다. 윌벤슨이 일으킨 전쟁이 끝나고 루드의 집을 들른 게 가장 최근이었으니 꽤 오랜만인 셈이다.

‘루드는 몬스터 사냥꾼들과 일을 나갔을까?’

몬스터 가죽을 절묘한 솜씨로 벗기는 몬스터 해체자 루드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온 이상, 돈을 벌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일 것 같았다.

‘여전하군. 거리의 시체를 모아 태우고 있어.’

간밤에 살해되거나 병들어 죽은 거리의 사람들을 모아 태우는 성 밖 다크캐슬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전쟁으로 대부분 죽거나 도망간 구역장들 대신 스므차 일가의 지시를 받는 꼭두각시 구역장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수많은 도망자와 정착한 거주민 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헬구스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이다.

스므차 일가는 방관 대신 꼭두각시 구역장들을 통해 직접 통치를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구역장들끼리의 잦은 다툼은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비록 거리에서는 여전히 강도와 살인이 밥 먹듯 벌어지고 있었지만.

“돈 내놔!”

앞서가던 사람이 돌연 강도로 돌변해 도현의 목에 단검을 겨눴다. 며칠을 굶었는지 볼이 쏙 들어가 있었다.

“이거 가지고 가. 아니면 내 손에 죽든가.”

도현의 손에 들린 은화 두 개를 보고 갈등을 하던 강도는 주위를 살피며 서둘러 칼을 더 깊이 댔다.

“술과 계집을 즐겨야겠어! 다 내놔!”

그 순간 도현의 주먹이 날아갔다. ‘퍼억’ 소리와 함께 단검을 땅바닥에 흘린 사내가 뒤로 쭉 날아가다 골목 벽에 부딪혔다.

굶은 모습이 불쌍해 은화를 주려 했는데, 사내가 욕심을 너무 부렸다.

쓰러진 사내를 내려다보던 도현은 그를 지나쳐 가던 길을 계속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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