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디 임팩트 10권 7화
“여보,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좋지만, 위험하지 않겠어요?”
“영주가 바뀌었다고 했잖아. 새로운 영주가 대사면령을 내렸다고.”
루드는 아내를 설득해 다크캐슬을 떠나 고향으로 가려고 했다.
“새로운 영주가 또 가혹하게 대하고 강제로 전쟁에 동원하면요?”
“내가 듣기론 인자한 분이래. 전쟁도 싫어하고. 돌아가면 경작도 하며 조용히 살 수 있을 거야.”
앤은 신중한 얼굴로 그들 가족의 안위를 걱정했다.
“들리는 소문을 과연 믿어도 될지 모르겠어요.”
“앤, 아이들을 생각해야지. 우리 때문에 험악한 이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을 말이야. 검술 실력이 높아진 에드는 고향에서 인정받고 높은 위치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토밀은 똑똑해서 공부를 하면 관리도 될 수 있고. 그런데 여기서는 불가능해.”
“사람을 죽이고 탈영한 당신을 정말 사면해 줄까요?”
“사면해 줄 거야. 날 믿어!”
이틀 전부터 이 일로 깊이 고민하던 앤은 입술을 깨물고 벌떡 일어났다.
“좋아요, 당신 고향으로 돌아가요! 그렇잖아도 몬스터 사냥을 가는 당신이 늘 불안했어요. 아이들의 미래도 있고.”
“고마워, 여보.”
루드는 어렵게 승낙을 한 아내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곳에서 아내를 만난 행운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이 어두운 도시의 그림자 속에 가둬 둘 수는 없었다.
“아빠, 우리 다크캐슬을 떠나는 거야? 만세!”
형과 함께 공터에서 검을 수련하고 돌아온 토밀이 부모의 대화를 들었는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에드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아버지, 배는요? 선착장에서 상선을 타고 나가려면 돈이 상당히 들 텐데요.”
“에드.”
루드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넌 검술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아비도 네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로. 몬스터 사냥꾼들 중에서도 너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어, 그들이 실전 경험은 더 풍부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에드, 겨울이 지났고 눈이 녹았다. 몬스터 사냥을 할 수 있는 시기야. 이번엔 너와 나, 단둘이서 사냥을 떠난다.”
“여보!”
깜짝 놀란 앤이 소리를 치다가 루드의 손짓에 말을 멈췄다.
“내가 길을 잘 알고 있으니, 조심하면 돼. 우스트랄 두 마리만 잡아도 우리 가족은 이곳을 떠날 수 있다. 할 수 있겠냐?”
흰머리가 늘어 가는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던 에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아버지!”
“좋아, 그럼 짐을 챙겨.”
손상 없는 우스트랄 등가죽이 금화 스무 개 정도 한다. 몬스터 사냥꾼들과 짐꾼 없이 아들과 단둘이 사냥을 하면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눈빛으로 아들과 짐을 챙긴 그는 어젯밤 블리잭에게 빌린 몬스터 사냥용 단궁과 독화살을 아들에게 건넸다.
“경험상 여러 발은 필요 없다. 제대로 된 한 방이면 몬스터가 힘을 많이 잃어.”
팔 힘이 좋은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리다. 토밀, 얌전히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형도 없으니까. 알았어?”
“아빠, 저도 가면 안 돼요? 짐꾼 할 수 있어요.”
“토밀, 지금은 장난칠 때가 아니다.”
루드의 엄한 시선에 토밀은 걱정 깊은 얼굴로 서 있는 엄마의 손을 붙잡았다.
“조심하세요, 아빠.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형 검술 실력은 놀라울 정도니까요. 스승님이 이상한 호흡법을 가르쳐 줘서 마나도 생겼다고요.”
“너, 비밀이랬지!”
에드가 동생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집안의 사람은 다 들은 후였다.
“마나라니? 에드, 그게 무슨 말이냐?”
루드가 놀라며 물었다.
“저어, 그게요, 아버지. 실은 스승님이 비밀로 하라고 하셔서요. 말씀 못 드렸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그가 마나 수련법까지 전수해 줬다고?”
“예.”
에드는 석 달 전 도현이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호심공을 전수받았다. 도현의 허락 없이는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 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에드는 밤낮없이 호심공을 수련했고, 지금은 단전에 적지 않은 내공이 생긴 상태였다.
용주나 홍영보다 훨씬 빨리 호심공을 통해 축기를 이룬 에드의 자질은 범상치 않았다. 에드는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면 도현이 알려 준 호흡법을 통해 축기를 이뤘고, 호검술을 수련하면서도 호심공을 떼어 놓지 않았다.
“내 아들이 마나를 가졌다고?”
루드는 에드의 양 볼을 거친 손바닥으로 양쪽에서 덥석 감쌌다.
“이 녀석! 넌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돼! 여기서 썩을 수 없어!”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에드는 쑥스러웠다.
“이게 다 스승님 덕분이에요. 그분이 없었으면 어떻게 검을 배웠겠어요.”
“난 그에게 잘해 준 게 없는데, 받은 게 너무 많아.”
루드는 도현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가방을 어깨에 멨다.
“그만 가자.”
“아버지, 스승님을 한번은 더 보고 싶어요. 돈이 준비돼도 말이에요. 그럴 수 있을까요?”
“음, 대사면령은 기한이 정해져 있어. 되도록 우리는 서둘러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요…….”
아까 에드의 얼굴이 어두웠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석 달 넘게 도현을 만나지 못했지만 다크캐슬 어딘가에 그가 있을 것만 같았다.
“에드야, 기회는 많지 않아. 토밀도 생각해야지.”
아버지의 말에 에드는 토밀을 돌아봤다. 아버지가 없었을 때 자신이 지켜 주지 않았다면 토밀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힘없는 자에게 다크캐슬은 안전하지 않다.
“가요, 아버지.”
허리에 검을 차고 손에 활을 든 에드는 집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걱정 말고 기다려. 별일 없을 거야.”
루드가 에드를 데리고 집을 나선 지 얼마 뒤, 도현이 루드의 집에 도착했다.
“스승님!”
토밀이 도현을 향해 달려갔다.
“어리광을 피우기에는 네가 너무 큰 듯한데?”
도현은 담담히 웃으며 토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안녕하셨습니까?”
도현의 인사에 앤은 눈물을 흘리며 허리를 숙였다.
“고마워요. 아들에게 너무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왜 이러십니까?”
앤은 뚱뚱했지만 여자치고는 체구가 크고 힘도 장사였다. 그리고 말투도 사내다워서 도현에게 굽실거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도현이 인간 도살자라는 악명을 얻은 뒤에도 눈치는 봤지만 공손한 어투로 말을 걸어 주지는 않았다. 그런 앤이 눈물을 보이고 웃어른을 대하듯 행동하니 도현은 놀라고 기이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토밀, 어머님이 왜 저러시는 거니?”
“스승님, 용서해 주세요. 형이 마나를 가졌다고 말해 버렸어요. 형은 말 안 했는데, 제 잘못이에요.”
“아.”
도현은 그제야 어떻게 된 건지 이해했다.
‘호심공을 통해 축기에 성공했나 보군.’
이계의 사람에게도 호심공이 적용될지 어떨지 그도 알지 못했다. 다만, 에드가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하고 예의를 잊지 않아서 도현은 기쁜 마음으로 동공인 호심공을 전수해 준 것이다.
‘단전에 내공이 얼마나 쌓였을까?’
에드의 성취가 궁금해 도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형은 어디 있니?”
“아빠하고 몬스터 사냥을 갔어요.”
“몬스터 사냥?”
도현은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서 앤을 쳐다봤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동안 루드는 에드를 데리고 몬스터 사냥에 가지 않았잖습니까?”
“그게 말이에요.”
앤은 다크캐슬을 떠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단둘이 몬스터 사냥을 갔다고 설명했다.
“음, 그렇군요.”
도현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별일 없을 겁니다. 토밀, 형하고 아버지가 언제 나갔지?”
“얼마 안 됐어요.”
“그래? 나중에 보자꾸나.”
도현은 앤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에드, 몬스터용 독화살로 우스트랄의 힘을 약화시켜도 녀석의 힘은 굉장하다. 잘못 접근하면 녀석의 긴 꼬리에 허리가 부러질 수도 있고, 날카로운 이빨에 팔다리가 절단될 수도 있어. 절대 방심하지 말고 내가 녀석의 시선을 끌 때, 반대편에서 놈의 목숨을 신속하게 끊어라.”
“알겠어요, 아버지.”
에드는 여러 차례 사냥의 방식을 강조하는 아버지를 보며 그가 속으로 불안해한다는 것을 느꼈다. 집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몬스터 지역으로 통하는 도시 북문이 가까워질수록 아버지는 말이 많아졌다.
“아버지, 짐꾼으로 간 스승님은 어땠어요?”
에드는 아버지의 긴장감을 풀어 주기 위해서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겁 없는 짐꾼이라고 생각했지. 그는 초대형 우스트랄이 나타나 나무를 부러트리고 사람들을 곤경에 빠트리고 있을 때도 침착하게 내게 이것저것 물어볼 정도였다. 그때부터 난 그가 범상치 않은 사람일 거라고 예상은 했단다. 그래서 내 기술을 전수해 주려고 했지. 함께 일하자고 말이야.”
“몬스터 가죽 벗기는 기술 말이죠?”
“이 녀석이, 내 기술을 하잖게 여기는 거냐? 나 같은 몬스터 해체자들이 없으면 몬스터 사냥꾼들도 돈을 못 벌어.”
“당연하죠, 아버지. 전 아버지를 존경한다고요.”
“나중에 봐라. 내가 우스트랄의 등가죽을 어떻게 벗기는 지.”
“여러 마리 잡아요. 그래야 고향 가는 길에 힘이 나지 않겠어요?”
루드는 웃고 있는 열여덟 살 장남 에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들아, 돈이 급히 필요하지 않았다면 난 너를 데리고 이런 위험한 시도를 하지 않았을 거야. 네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말이다. 넌 여전히 내게는 어리게 보이는 아이니까.”
“아버지…….”
“미안하구나.”
감정 섞인 아버지의 말에 에드는 가슴이 먹먹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니에요, 아버지. 어서 가요.”
눈가를 한번 비빈 에드는 앞장서서 북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시 북문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이 많았다. 벌목장과 채석장으로 가는 사람, 농장으로 가는 사람, 광산으로 가는 사람 그리고 루드와 에드처럼 몬스터 사냥을 가는 사람 등.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에드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스승님!”
북문 근처에 서 있는 도현을 향해 에드가 기쁜 얼굴로 달려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연락이 없으셔서 궁금했습니다.”
도현은 몇 달 사이에 부쩍 어른으로 자란 듯한 에드의 눈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몬스터 사냥을 간다고?”
“예, 아버지와 함께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도현은 대답 대신 뒤늦게 달려온 루드를 봤다. 그는 아들을 위해 여러 가지를 전수해 준 도현에게 깊은 고마움을 담아 눈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길 위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요란한 인사는 생략했지만, 루드의 말 없는 행동 속에서 도현은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도현은 에드와 루드를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부인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크캐슬을 떠나신다고요.”
“하하, 그렇게 됐소.”
루드는 영주가 바뀌고 대사면령도 떨어져서 고향에 가도 된다고 설명을 했다.
“잘됐군요. 불안한 이곳보다는 아무래도 고향이 낫겠지요.”
“고향에 가면 아이들에게 고향에서만 나는 맛있는 과일을 맛보게 해 줄 생각이오. 아주 맛있거든.”
“저도 침이 고이네요.”
작게 웃은 도현은 루드의 옆에 서 있는 에드를 보며 말했다.
“루드, 미안하지만 몬스터 사냥은 저와 에드에게 맡겨 주셔야겠습니다.”
에드와 도시를 벗어난 도현은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언덕을 반쯤 올라온 에드는 뒤를 돌아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멀리 성과 도시가 보였다.
“이곳은 처음이지?”
도현이 언덕 위의 바위에 앉으며 물었다.
“네, 북문에서 벌목장까지는 가 본 적이 있지만, 그 너머는 처음이에요.”
에드는 다크캐슬을 바라보던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한 무리의 몬스터 사냥꾼들이 길게 늘어진 모습으로 그들이 가는 방향과는 거의 반대되는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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