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디 임팩트 10권 8화
“스승님, 우스트랄 숲이 모여 있는 곳은 저들이 가는 방향이 아닙니까?”
에드는 사냥할 장소에 관해 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집을 나섰었다. 그 때문에 지금 그들이 가고 있는 쪽이 우스트랄 숲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네 말이 맞다. 우스트랄은 저들이 가는 방향으로 가야 쉽게 만날 수 있지.”
“그런데 왜 이곳으로 오신 겁니까?”
도현은 언덕 위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몸을 세웠다.
“저기 오른쪽의 강이 보이지?”
에드의 시선이 도현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작년, 나는 칼라치가 주축이 된 구역장들의 추격을 받으며 저 강을 건넜다. 그리고 이 언덕 뒤에 보이는 높은 산을 넘었지. 지금은 사라졌지만, 쌓인 눈과 뼈를 얼릴 것 같은 바람이 몹시 나를 힘들게 했던 순간이었다.”
“그러셨군요.”
에드는 사투를 벌였던 도현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펼치는 듯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산을 넘어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파쵸마 숲이 나온다. 나를 추적하던 자들은 그곳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 특히 칼라치는 거의 모든 부하들을 다 잃었다. 파쵸마는 신장이 크고 등에 기다란 칼날 같은 손이 달려 있어서 상대하다 보면 마치 인간 두 명이 무기를 들고 덤비는 것처럼 느껴지지.”
“무서운 몬스터군요.”
“그래, 앞으로 네가 상대해야 할 몬스터들은 그런 종류인 거다. 우스트랄 같은 둔한 녀석들이 아니라.”
“제가요?”
깜짝 놀란 에드에게 도현이 웃으며 물었다.
“겁이 나는 거냐?”
“아, 아닙니다. 겁은요. 전 자신 있습니다.”
“실전은 너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상대를 벨 때의 그 감각이 너를 어떻게 자극할지, 네 피를 얼마나 흥분 시킬지 미리 경험해 봐야 해. 비록 인간이 아닌 몬스터지만 말이야.”
도현은 고향으로 가려는 에드에게 실전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미리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지금이 에드와 만나는 마지막 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나를 움직일 수 있다고 했지?”
도현은 내공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지 않았다. 이쪽 사람들이 마나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사용하는 게 에드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나를 발에 집중해서 언덕 위로 뛰어올라 가 봐.”
도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드의 몸이 경사진 언덕 위로 빠르게 움직였다.
발밑에 있는 풀과 돌 들을 밀어내며 무식하게 언덕 위로 뛰어오르는 에드의 곁에 도현이 따라붙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마치 유령처럼 에드와 보조를 맞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여유로웠다. 반면, 에드는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을 흡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땅과 싸우지 마. 땅은 네 적이 아니야, 널 도와 빠르게 달리게 해 주는 것이지. 때리는 게 아니라 밀어내는 거야. 부드럽게.”
에드는 도현의 조언을 따라 땅을 강하게 때리는 자신의 힘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발바닥에서 전달되는 통증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대단해요, 스승님!”
기뻐서 외치는 그의 머리를 도현이 달리면서 쥐어박았다.
“달리는 데 집중해.”
“죄, 죄송합니다.”
어느덧 언덕을 넘어 그들은 산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눈이 사라진 산은 녹색 초목이 왕성하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사사사사삭. 다다다닥닥.
도현의 경쾌한 발소리와 아직은 둔탁한 에드의 발소리가 묘하게 대비됐다.
“모든 건 네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네 신체에 마나를 필요한 만큼 정확히 보내고 적절히 유지하며 조정하는 것은 네 검술 능력과도 직결된다. 그러니 달리면서 마나를 어떻게 세밀히 조절하고 유지할 것인지 뼛속 깊이 터득해야 돼.”
“알겠습니다, 스승님!”
에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에 자기 발의 모습이 그려졌다. 근육과 뼈, 신경 들로 이뤄진 그곳에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마나가 주입되는 순간, 발바닥의 근육들이 움츠러들었다 강하게 팽창하며 평상시 보일 수 없는 강인한 힘을 외부로 발산해 냈다.
파앙.
에드의 몸이 앞으로 쭉 밀고 나갔다. 발소리도 요란하지 않았고, 자세도 한결 안정이 되어 있었다.
‘에드 이 녀석 대단한데?’
짧은 시간 동안 에드는 도현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루어 버렸다. 도현은 지금 나름대로 신법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님, 이해했어요! 신체에 마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요!”
“전방에 흰 털 무크람이 나타났다. 파쵸마보다 2단계는 낮은 녀석이야. 잡아 봐.”
“예!”
신이 난 에드는 2미터가 조금 넘어 보이는 침팬지를 닮은 흰 털 무크람을 향해 검을 빼 자신감 있게 휘둘렀다.
그러자 무크람이 나뭇가지를 잡고 허공으로 휙 피하더니 놀란 눈으로 밑을 스쳐 지나가는 에드의 등을 걷어찼다.
상체의 모든 뼈들이 일시에 들썩거리는 충격을 받은 에드는 저만치 처박혔다.
캬아아아!
흉성이 폭발한 무크람은 에드를 향해 달려들다가 도현이 날린 장풍에 허리가 부러져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
죽은 무크람을 지나친 도현이 에드의 머리맡에 섰다.
“무크람은 반사 신경이 뛰어난 녀석이야. 흥분해서 날뛰는 네 검 정도에 맞아 줄 상대가 아니지.”
“죄송합니다, 스승님.”
바닥에 처박힌 에드가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게 무크람에게 차인 충격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실전에서 살아남는 게 실력이다. 내게 배운 검술, 마나 모두 다 쓸모없어지는 거야, 네가 저 몬스터에게 죽는 순간부터.”
냉정한 도현의 지적에 에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몸이 아팠지만 도현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 쓰라렸다.
“에드.”
“네, 스승님.”
“저기 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상대할 수 있겠어?”
수풀 속에서 무크람이 이쪽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을 움켜쥔 에드가 무크람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려 하자 도현이 뒤에서 그의 팔을 붙잡고 차분히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냉정해지면 네 기량을 다 발휘할 수 있다. 잊지 마.”
“예!”
모닥불을 쬐는 에드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가죽 갑옷은 뜯겼고 머리엔 흐르다 만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손등에도 제법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스승님, 조금 전에 보셨죠? 제 검에 당황한 무크람이 도망치는 모습을요.”
에드는 무크람과 일곱 번을 싸웠고, 그중 두 번을 혼자 힘으로 감당해 냈다.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에드가 차츰 몬스터와 싸우며 효과적으로 검을 사용하는 방법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멧돼지 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은 도현은 고기를 크게 잘라서 에드에게 건넸다.
“수고했다. 내일 하루 무크람 위주로 실전을 더 쌓고 모레는 파쵸마 숲으로 가자.”
“예!”
무크람과 목숨을 걸고 긴장 속에 전투를 벌인 에드는 배가 고팠는지 고기를 빠르게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을 담담히 지켜보던 도현도 고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
“스승님, 그런데 아까 어디를 다녀오신 겁니까?”
“아까라니?”
“북문 앞에서요. 아버지 대신 저와 함께 가신다고 하시고서는 어딘가 다녀오셨잖아요.”
“궁금하냐?”
도현이 웃으며 묻자 에드가 기름기 묻은 손을 옷에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안에 다녀왔다. 그 안에 집이 있거든.”
“스므차 성주의 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도현은 리샤와 쿠린에게 며칠 집을 비울 것 같다고 얘기해 주기 위해 성에 다녀왔었다.
“대단하십니다. 성 밖 사람들은 성안에서 살 수 없다고 들었는데요. 높은 사람들이 허락하기 전에는요.”
“어쩌다 보니 집이 생겼어.”
“성안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에드가 호기심 짙은 눈빛으로 물었다.
“며칠 뒤면 다크캐슬을 떠날 텐데, 그게 궁금하냐?”
에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생각해 보니까 흥미가 팍 줄어들었어요.”
도현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들었다.
“자, 고기 배불리 먹었으면 이제 나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겠지?”
“예? 스승님과요?”
먹던 고기를 손에서 떨어트리며 에드가 울상을 지었다.
파쵸마는 무리 지어 다니는 몬스터다. 한 마리도 벅찬데 서너 마리를 에드가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에드의 고민을 도현이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 도현이 파쵸마들 속에 뛰어들어 한 마리만을 남겨 두고 모두 없애 버린 것이다.
도현은 몸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기운을 차를 마시듯 음미하다가 몸을 돌렸다.
“한 마리는 네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면 이길 수 있어.”
“스승님, 정말 멋지십니다!”
눈부시게 움직이던 도현의 검 궤적을 생각하며 에드는 온 몸에 마나를 퍼트렸다. 온몸 세포의 감각들이 활짝 열리며 평상시 보일 수 없는 몸놀림으로 파쵸마를 상대해 갔다.
파쵸마 숲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에 해당하는 곳은 절벽 중간에 있는 동굴이다.
이 동굴은 칼라치 무리를 파쵸마 숲에서 끝장낸 뒤 도현이 몸을 추스르며 수련에 정진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때의 흔적이 동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먼지 쌓인 식기와 여러 자루의 검과 창, 도끼 등이 굴러다녔다.
“스승님, 이 무기들은 뭡니까?”
잠자리에 든 에드가 반쯤 감긴 눈동자로 물었다. 그는 며칠간 이동과 싸움을 반복해서 무척 피곤했다.
“죽은 칼라치의 부하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 필요하면 사용하려고 했는데, 공격하는 자들이 없었다.”
도현은 팔베개를 하고서 대답했다.
“스승님, 전 돈도 안 내고 너무 많은 걸 배우는 것 같습니다.”
“알긴 아는구나.”
도현이 피식 웃었다.
“죄송합니다. 제 마음은 스승님을 모시며 살고 싶은데요, 가족이 절 필요로 합니다.”
“가족을 지키라고 검술을 알려 준 거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만 자. 내일은 두 마리랑 싸워야 되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왜 제게 이렇게 잘해 주십니까?”
도현은 잠시 말이 없다가 조용히 대꾸했다.
“이곳에서 얻은 첫 번째 제자니까.”
“첫 번째 제자요?”
에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제가 어디에 있건 호검술을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에드는 그 말을 끝으로 잠이 들어 버렸다.
6일 만에 다크캐슬로 돌아온 도현은 너덜너덜해진 가죽 갑옷에 부러진 검을 찬 에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다. 끝까지 잘 버텨 준 네가 자랑스럽다.”
“뭘요.”
에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스승님, 재료를 어디다 팔죠? 아버지께 가지고 갈까요?”
에드의 가방에는 도현이 벗긴 우스트랄 등가죽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내가 거래하는 상점이 있으니까.”
그들은 어둑어둑해진 노스리어 거리를 걷다가 말론이 운영하는 몬스터 재료 상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상점 안엔 먼저 와 있는 몬스터 사냥꾼 여럿이 말론과 우스트랄 등가죽을 두고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사람 몇이 동원돼 잡은 건데 가격을 낮춰 부르는 거요? 작년과 다르잖소?”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말론은 나무 탁자 위에 놓인 우스트랄 등가죽을 가리켰다.
“최근에 브링틱 주변에서 우스트랄이 발견돼 그쪽에서도 등가죽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우스트랄의 희소성이 많이 낮아졌어요.”
“그 소리는 나도 들었소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상급 우스트랄 등가죽 한 개가 금화 스무 개에서 열여섯 개로 폭락한단 말이오? 등가죽 손상 없이 한 마리 잡으려면 여러 사람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데.”
“잘 알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금화 열여섯 개 이상은 우리도 남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매입할 수가 없어요. 다른 상점도 가 보시면 나와 같은 말을 할 겁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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