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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34화 (234/575)

[234] 디 임팩트 10권 9화

사냥꾼들은 잠시 의논을 하더니 상급 우스트랄 등가죽은 금화 열여섯 개, 손상이 약간 있는 중급은 금화 열세 개를 받고 팔았다.

사람이 다치며 어렵게 구한 우스트랄 등가죽 두 장을 도합 금화 스물아홉 개에 판 사냥꾼들의 얼굴은 무거웠다.

금화 스물아홉 개는 큰돈이지만 이 돈을 열 명이 넘는 사냥꾼들이 나눠 가지면 크게 남는 게 없었다.

도현은 어두운 얼굴로 상점을 나가는 사냥꾼 무리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론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이군요.”

상점 주인 말론은 도현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전쟁으로 몬스터 재료가 손실돼 곤경에 처했을 때 도현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도현이 겨울 몬스터 사냥을 통해 재료를 제공해 줌으로써 말론은 다른 상인과 맺은 납품 약속을 제때에 지킬 수 있었다. 비록 평상시보다 비싸게 매입하긴 했지만, 상인으로서 자신의 명성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는 게 중요했다.

“오늘은 그때처럼 비싸게 매입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말론의 웃음기 섞인 말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에드가 메고 있는 가방에서 등가죽 다섯 개를 꺼냈다.

“뒤에서 들었습니다. 브링틱에서 우스트랄 등가죽이 나온다고요?”

“빌어먹을 상황이지만 맞습니다.”

말론은 부리고 있는 점원과 함께 도현이 가지고 온 등가죽의 질을 살피며 말을 계속했다.

“우스트랄 등가죽은 다크캐슬 특산품이나 다름없어서 매우 고가에 거래됐는데, 브링틱 상인들이 우스트랄 등가죽을 파는 바람에 노스리어에 있는 우리 상인들도 손해를 보고 있지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겁니까?”

“브링틱 인근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는데, 그곳을 브링틱 사람들이 개척했다고 합니다. 우스트랄은 새로 개척한 땅에서 발견됐고요. 상당히 넓은 지역에 많이 분포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모두 상급이니 개당 금화 열여섯 개로 계산해서, 금화 여든 개군요.”

평상시라면 금화 1백 개인데, 스무 개나 줄어들었다.

“파시겠습니까?”

“계산해 주십시오.”

말론은 점원을 시켜 금화를 가져오게 한 다음, 기다리는 도현에게 달콤한 향이 나는 딱딱한 과자를 건넸다.

“겉에 꿀을 발라 구운 것인데, 먹을 만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도현은 에드와 함께 과자를 먹다가 헤어진 어베인 일행을 떠올렸다.

‘브링틱이라면 씨드를 찾아 그들이 간 곳인데…… 어떻게 됐을까?’

헤어질 당시 그들은 떠도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다. 씨드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던 왕들의 병사 수만 명이 얼음산이 터지며 흘러나온 냉기에 모두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병사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 브링틱 주변에서 발견됐고, 그들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씨드를 찾아 떠난 것이다.

“스승님, 등가죽 가격이 이렇게 많이 떨어졌다고 하면 아버지도 놀라시겠어요.”

“그러시겠지.”

“이거 맛있네요.”

과자를 우물거리던 에드가 과자 하나를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있는 동생이 먹으면 좋아할 것 같았다.

점원이 상점 안쪽에서 돈을 가지고 오자 말론은 도현이 보는 앞에서 금화를 센 뒤 튼튼한 가죽 주머니에 담아 탁자 위에 올려놨다.

“다 됐습니다. 여기 금화 여든 개입니다.”

도현은 돈을 챙기며 물었다.

“말론, 혹시 브링틱의 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다른 소식요?”

“브링틱에 간 친구들이 있어서 그쪽이 조용한지 어떤지 궁금해서요.”

“브링틱은 요즘 대륙 전체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 중 한 곳인데…….”

말론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무슨 일로 시끄럽다는 겁니까?”

“브링틱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대인들의 도시가 발견됐다더군요.”

“고대인들의 도시요?”

도현의 눈이 반짝였다.

“네, 땅속에 파묻혀 있는데, 그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어서 왕국의 대도시도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합니다. 고대인들의 도시는 이곳 다크캐슬밖에 남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곳에 덜컥 그런 고대인들의 거대한 도시가 발견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물론, 다크캐슬처럼 지상으로 드러난 고대 도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고대 도시 발굴이 이뤄지고 있겠군요.”

“바로 그 점 때문에 대륙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 중 한 곳이라고 말한 겁니다. 브링틱을 지배하는 세 개의 가문이 그 넓은 지역을 조금씩 돈을 받고 팔고 있거든요.”

“팔고 있다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대 도시 발굴을 하다 보면 지하에서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들이 뛰쳐나올 때가 있답니다. 주변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브링틱의 사람들은 발굴을 중지했죠. 그러곤 발굴을 하겠다는 영주나 왕국의 사람들에게 큰돈을 받고 고대 도시가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조금씩 팔아넘기고 있는 거죠.”

도현은 강한 흥미가 생겼다.

‘고대 도시라…….’

현존하는 고대인의 도시는 다크캐슬이 유일했다. 그런데 새로운 곳이 나타났다. 그것도 다크캐슬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인 것 같았다.

‘어쩌면 그곳에 고대인들이 폭주를 다스릴 때 사용했다는 이계의 수정이 존재할지도 몰라.’

고대 도시 발굴 현장에서 뛰쳐나온다는 몬스터도 특이했다.

“지하의 고대 도시 유적에서 고대의 마법이나 지식, 무구, 골동품, 보석 장신구, 예술품 등을 얻을 수도 있죠. 하여간 신비로운 힘과 돈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대상인들도 용병을 구해 브링틱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싸움도 엄청 일어나고. 아무튼 지금 그곳은 난장판이랍니다.”

“몇 달 전 듣기론, 브링틱 주변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하던데요. 그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 당신도 그 이야기를 들었군요. 그게 시작이었던 겁니다. 전설의 씨드가 그 일대에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람들이 조사하다가 그런 거대한 규모의 고대 도시 유적을 발견한 거니까.”

“씨드를 발견한 사람은 없는 거군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이미 발견했을지.”

도현은 말론에게 미소를 보였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궁금한 게 어느 정도 해소됐군요.”

“뭘 이 정도 정보 가지고, 하하하.”

말론의 상점을 나온 도현은 루드의 집으로 가는 도중 대장간에 들러 에드의 새 갑옷과 검을 사 주었다.

“스승님, 브링틱으로 가실 겁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도현이 골목길에 들어서며 물었다.

“상점에서 나오시면서부터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습니다.”

“내가?”

“예,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발견하고 활시위를 놓기 직전의 모습 같이요.”

“적절한 비유다. 네 말대로 난, 브링틱에서 발견된 고대 도시에 관심이 생겼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돈을 아주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도현의 대답에 에드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니라는 걸 저도 압니다. 돈 욕심이 있었다면 스승님은 제게 관심을 두지 않으셨겠지요.”

“네가 뭘 알아. 난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도현은 웃으며 에드와 함께 루드의 집으로 향했다.

쿠린과 리샤는 2층 창문을 열고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빛이 쏟아지는 골목길은 조용했다.

“오늘도 주인님은 안 오시나 보다.”

쿠린의 말에 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며칠 있다 오겠다는 애매한 말만 남겨 두고 떠난 도현을 그녀들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어딜 가신 걸까?”

“분명 중요한 일일 거야.”

리샤의 대답에 쿠린이 불안한 눈빛으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내일 어쩌지? 신전으로 가야 하는 걸까?”

“아니, 우리는 안 갈 거야.”

“하지만 디엘르 님의 말씀을 어기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바보야, 우리는 대저택 사람이 아니야! 주인님의 사람이라고!”

리샤의 고함 소리에 쿠린이 움찔했다.

“왜 그래…… 나도 그건 알지만 주인님이 없잖아. 내일 신전에 가지 않으면 디엘르 님이 병사들을 보내 우리를 거꾸로 매달고 채찍질을 할지도 모른다고.”

어제 시장 광장에서 우연히 디엘르와 마주친 그녀들은 청천벽력 같은 지시를 들었다. 대사제 휴고스와 잠시 대화를 주고받은 디엘르가 신전의 시녀로 들어가 평생 봉사하라는 지시를 그녀들에게 내린 것이다.

“숨어 있자.”

“뭐? 어디에?”

“어디든.”

리샤는 결심이 선 듯 몸을 돌려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주인님이 그러셨어, 살기 위해선 뭐든 해 보라고.”

리샤는 도현이 대저택에서 해 준 말을 쿠린에게 크게 소리쳐 이야기해 주었다.

“어디로 숨어? 결국엔 찾아낼 거라고.”

쿠린이 짐을 싸는 리샤의 팔을 붙잡았다.

“숨을 데가 없으면 다크캐슬을 떠나면 돼.”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가능하겠어?”

리샤가 목에 건 황금 목걸이를 흔들어 보였다.

“이걸 팔면 상당한 돈을 받을 수 있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본토로 가자.”

“이건 도망이잖아! 주인님이 우리를 풀어 준 것도 아닌데.”

겁이 난 쿠린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지 마. 그냥 내일 신전에 가자.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우리를 찾아오시겠지.”

“그땐 이미 늦어. 신전의 시녀가 되면 디엘르는 결코 우릴 놓아주지 않을 거야. 너도 알잖아, 일곱 신에 맹목적인 그녀를.”

리샤는 겁에 질린 쿠린의 양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쿠린, 난 다크캐슬에서 죽기 싫어. 여기는 슬픔밖에 없어. 엄마, 아빠의 죽음 그리고 대저택에서 숨죽이는 불안한 생활. 나는 죽더라도 이곳을 벗어나 죽을 거야. 같이 가자, 쿠린.”

“나, 난.”

망설이는 쿠린을 향해 리샤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네가 가지 않으면 난 갈 수가 없어. 우린 친구고 가족이잖아.”

눈물을 글썽이는 리샤의 모습에 쿠린은 흘러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 함께 가.”

“고마워, 쿠린!”

서로 부둥켜안고 한동안 울던 그녀들은 눈물을 훔치고는 재빨리 짐 가방을 챙겼다.

“지금 성을 나가야 돼. 목걸이를 팔고 노스리어에 있는 여관에서 잠을 잔 뒤, 새벽 일찍 일어나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야 해.”

“어떤 배를 타지?”

쿠린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리샤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어떤 배든, 다크캐슬을 떠나는 배면 돼. 나머지는 도착해서 생각해 보자.”

리샤는 주방을 힐끔 쳐다봤다. 도현을 기다리며 쿠린이 한 음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쿠린, 우리 편지를 써 놓고 가자.”

“그래.”

그녀들은 도현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써서 도현의 방 침대 위에 올려놨다. 편지라도 남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래 모시고 싶었는데.’

돌아서는 리샤의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도현은 루드 가족과 헤어져 늦은 밤 집에 도착했다.

고향을 향해 떠날 루드 가족과 미리 이별주를 마시는 건 아쉬우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렇게 또 한 번 이별을 하는구나.’

다크캐슬에서 도현의 정착을 도와준 루드 가족은 그에게는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이계에 내 족적은 하나 남기고 가는 건가?’

도현은 자신의 제자인 에드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계와 자신의 관계를 깊게 생각해 봤다. 자신이 지구에 있을 때 이계는 시간이 멈추는 것 같지만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소멸.

그의 생도 언젠가 끝을 볼 것이다. 그것은 조 박사의 실험으로 생긴 차원의 진입과 이동을 다시 무로 되돌릴 것 같았다.

그런 추론은 그가 이계에 적응이 될수록 불현듯 느끼게 되는 그런 일종의 직감과 같은 것이었다.

지구에서 그의 생이 다하는 순간, 이계는 다시 그들만의 시간을 가지고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슬픈데?’

도현은 루드가 마련한 독한 술에 서서히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술이 강한 그도 싸구려 술이 주는 그 독함을 언제까지고 견딜 수는 없었다.

‘응? 문이 열려 있네?’

문을 두드리던 도현은 자신의 손에 힘없이 뒤로 밀리는 문을 보고는 의아한 눈빛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거실엔 꺼지지 않은 촛불들 여러 개가 촛대에서 타오르고 있었고 집 안은 고요한 정적이 무겁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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