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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42화 (242/575)

[242] 디 임팩트 10권 17화

카아아아아!

비골이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며 현란한 도끼술로 도현의 전신을 난도질하려 했지만 도현은 검으로 치밀한 검막을 만들어 방어했다.

도현이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검을 몸 주위로 휘두르는지 때마침 내리는 소나기조차도 비골의 도끼처럼 콩 볶는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갔다.

냉정한 눈빛으로 물샐틈없이 방어하던 도현의 눈빛이 어느 순간 칼날처럼 빛났다. 비골이 다른 공격을 하기 위해 살짝 뒤로 몸을 뺀 순간 검막을 풀어 버린 그가 쫓아가 서른여덟 번의 찌르기를 벼락같이 사용한 것이다.

서른일곱 번의 찌르기는 막혔다. 그러나 단 하나, 마지막 서른여덟 번째 찌르기는 비골의 도끼를 타고 넘어가 그의 왼쪽 갈비뼈 부위를 뚫고 들어갔다.

그 순간, 숲이 고요해졌다. 검에 찔린 비골은 움직임을 멈췄고 도현은 검을 뻗은 자세로 서 있었다.

‘끝났나?’

도현은 비골의 붉은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눈빛이 다시 붉어진 비골이 괴성을 지르며 공격하려 했고 도현은 자세를 낮추며 그를 상대하려 했다.

“어!”

도현은 비골이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휘두르던 검을 회수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혹시 은신술이라도 사용하나 싶어서였다.

“끝났어.”

리타가 다가오며 말했다.

“끝나다니?”

“내가 비골을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은 여기까지야.”

다소 지친 음색으로 얘기하던 리타가 창백한 얼굴로 땅에 주저앉았다.

“괜찮아?”

도현이 걱정스레 물었다.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길게 유지하느라 힘이 많이 들었어.”

“미안해. 나는 한번 소환하면 계속 가는 줄 알았어.”

도현은 새로운 장소에 모닥불을 다시 피우고 리타가 편하게 쉬도록 해 주었다.

“어때? 멋지지?”

리타의 말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멋졌어.”

“이제 나랑 당분간 같이 다니는 거야, 약속대로.”

리타가 멋대로 한 약속이었지만 도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같이 다니자, 당분간. 대신 내 말을 우선적으로 따라 줬으면 좋겠어. 그게 마음에 안 들 때는…… 떠나면 되고.”

“응.”

“리타, 비골은 내일 또 소환할 수 있는 건가?”

도현이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꿈도 꾸지 마. 그거 한번 소환하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데. 하지만 내게 잘해 주면 며칠에 한 번씩은 소환해 주지.”

야무지게 말한 리타는 피곤하고 졸린지 모닥불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자야 되겠어.”

리타는 곧 잠이 들었고 도현은 비골과 싸우며 입은 자잘한 부상의 쓰라림에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가 길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리타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같이 다녀야 될 입장인데.’

비골과 통쾌한 실전을 벌인 도현은 평소에 상대가 없어 사용하지 못했던 여러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비골은 강했고 인간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임기응변조차 뛰어났다. 실제로 뛰어난 고수와 싸우는 기분이 들었다.

도현은 자고 있는 리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좌정을 한 그는 깊은 명상 속에 다가오는 새벽을 맞이했다.

“업어 줘.”

거대한 늪지대 앞에서 리타가 길을 가지 않고 멈춰 섰다.

“난 키가 작아서 빠지면 금방 수렁 속에 사라질 거야.”

“안전한 길로 가니까, 그냥 따라와.”

도현의 말에도 리타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안 업어 주면 비골 소환은 없어.”

“적당히 해. 비골과 싸우는 게 좋긴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난 괜찮으니까.”

“어제 무리해서 비골 소환 시간을 길게 유지하느라 몸이 힘들어서 그래.”

도현은 리타를 돌아봤다. 등에 가방을 메고 가죽 상의에 긴 장화를 신었다. 그런데 안색이 실제로 좋지 않았다. 그녀 말대로 어제 숲에서 비골을 길게 부린 게 무리였던 모양이다.

“업혀.”

도현이 등을 보이자 리타는 밝은 얼굴로 업혔다.

“빨리 달릴 테니까 꽉 잡아.”

“응.”

도현은 길게 뻗은 거대한 늪지대 속으로 신법을 발휘해 들어갔다. 매의 눈으로 안전한 곳만 밟으며 달려가는 그의 몸은 바람과 같아서 업혀 있는 리타의 보라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길게 휘날렸다.

늪지대를 거의 벗어날 때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 살려 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살려 주세요!”

도현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완전히 멈춰 선 그는 잠시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늠한 뒤 그쪽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냥 가.”

“비명 소리가 나잖아.”

“그러다 죽겠지.”

“너 말이야, 이 말은 안 하려고 했지만 해야겠다. 널 따라갔다가 죽은 용병 여섯 명,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은 없어?”

“무슨 상관이야, 나 없었어도 그들은 어차피 모엘의 손에 죽었을 텐데. 내가 그들을 점찍은 게 아니야, 모엘이 오두막집에 있는 그들을 보고 내게 시킨 거지.”

도현은 더 말을 하려다가 관뒀다. 사실 그 역시 수상한 소녀를 따라가는 용병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험한 세상을 돌아다니는 용병들이 스스로 선택한, 그들의 길이었다.

“그래, 나도 잘한 거 없지. 그런 세상이다.”

“그런데 왜 비명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계속 걸어가는 거야?”

“이미 거의 다 왔으니까.”

도현은 수풀을 헤치며 앞을 봤다. 가슴 높이까지 빠진 사내가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도현을 보고 그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리타, 잠시만 내려 봐.”

“알았어.”

리타가 등에서 내려오자 도현은 늪 근처에 서 있는 나무의 굵은 가지를 칼로 잘라 냈다. 사내가 빠진 늪은 작아서 2미터 정도 되는 나뭇가지만 내밀어도 사내의 손에 충분히 닿을 정도였다.

“잡으세요.”

“고, 고맙소.”

사내는 서둘러 도현이 내민 나무 끝을 잡았다.

도현이 힘을 주자 늪에 가라앉던 사내의 몸이 서서히 끌려 나오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왜 그러십니까?”

도현은 나무를 당기던 힘을 멈추었다. 혹시 늪에 가라앉아 있는 그의 하체에 뭔가 걸린 건가 싶어서였다.

“내 가방이 이쯤 어딘가에 있을 거요.”

사내는 한 손으로는 도현이 내민 나무 끝을 잡고 다른 한손은 늪에 넣어 자신의 가방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목숨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가방이 중요합니까?”

보다 못한 도현이 물었다.

“금화가 들어 있는 가방이오. 내 찾으면 사례하리다.”

사내는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이 나타나자 목숨이 안전하다고 판단을 내렸는지 가방에 대한 욕심을 풀지 않았다.

“당신이 늪 속에 잠수해서 찾지 않는 한 가방을 되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만 포기하고 올라오세요.”

“그거 없으면 난 빈털터리요.”

사내는 돈 욕심이 강해 보였다.

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그럼 손을 놓을 테니 마음대로 하시죠.”

자신의 처지도 잊고 욕심만 내세우는 사람에게 도현은 마음을 길게 쓰고 싶지 않았다.

도현이 나무를 놓자 사내의 몸이 스르륵 가라앉으려 했다. 기겁을 한 사내가 급히 외쳤다.

“알았소! 끌어내 주시오! 좀 전은 내가 잘못했소!”

사내의 애원에도 도현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2미터가 조금 넘는 나무는 점점 도현의 발밑에서 멀어져 갔고 사내는 어느새 아까보다도 더 깊이 빠져들었다.

“제발!”

공포에 질린 사내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때서야 도현이 늪으로 끌려 들어가는 나무의 끝을 잡았다.

“다음부턴 도와줄 사람이 오면 바로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겁니다. 허튼 생각 말고.”

냉정하게 말한 도현이 나무를 당겨 늪에 빠진 사내를 끌어내려 할 때였다. 도현이 서 있는 반대편 수풀에서 건장한 중년인이 등장했다.

그는 들고 있는 활에 시위를 건 후 말했다.

“그를 구하지 않아도 되오.”

“누구십니까?”

“그놈을 잡으려고 온 사람이오.”

도현은 늪에 빠진 사람을 봤다. 그는 활을 든 중년인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있었다.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중년인의 활은 늪에 빠진 사람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그놈은 내 여동생 가족을 죽이고 집을 파괴한 놈이오. 브링틱에서 카비엘료 영주의 땅으로 도망치는 중이었지.”

중년인은 활을 겨눈 상태에서도 서두르는 모습 없이 차분한 눈빛으로 설명했다.

“브링틱인입니까?”

“그렇소. 내 여동생 복수를 해야겠으니, 그 나무를 놓고 물러나시오.”

“카모시프,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미 늦었다.”

브링틱에서 명궁으로 소문난 카모시프는 차분한 겉모습과 달리 속에서는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전투 몬스터가 제멋대로 움직인 겁니다!”

“핑계대지 마. 술에 취해 전투 몬스터를 조종한 너를 목격한 사람이 많아. 넌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활시위가 끊어질 듯 팽팽해졌고 카모시프의 눈에서는 차가운 살기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이봐, 좀 도와줘!”

늪에 빠진 남자가 도현을 애타게 쳐다봤다. 하지만 도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둘 사이의 은원은 둘이 풀도록 해.”

도현이 나무에서 손을 떼는 순간, 카모시프의 화살이 날아가 늪 속 남자의 눈을 관통했다.

“크아아악!”

“오른쪽 눈은 내 여동생의 영혼이 주는 선물이고.”

휘이이익 퍽!

“왼쪽 눈은 내 조카의 영혼이 주는 선물이다.”

양쪽 눈에 화살이 박힌 남자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다 서서히 늪 안으로 사라져 갔다.

잔인한 최후를 선사한 카모시프는 활을 등에 메고 뒤돌아섰다. 여동생의 복수를 했지만 그의 얼굴엔 씁쓸함만이 가득했다.

그는 늪가에 서 있는 도현과 리타에게 다가갔다.

“고맙소, 상황을 이해해 줘서.”

“아닙니다. 가족분의 일은 애도를 표합니다.”

도현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용병이시오?”

“네.”

“난 브링틱에 사는 카모시프요. 만나서 반갑소.”

“도현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리타고요.”

“브링틱으로 가는 길이면 내가 길 안내를 해 드리겠소.”

카모시프가 몸을 돌리자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리타와 함께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한동안 말없이 걷던 카모시프는 늪지대가 끝나고 작은 숲과 강이 나오자 그때서야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동생 생각에 내가 너무 분위기를 잡은 것 같소. 저쪽에서 잠시 쉬었다 갑시다.”

강변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수통에 물을 채우며 휴식을 취했다.

“당신도 고대 도시 때문에 브링틱을 찾아온 거요?”

카모시프가 물었다.

“그런 셈이죠.”

도현은 얕은 강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리타를 보며 대꾸했다.

“땅속에 있는 고대 도시가 많은 사람들을 불러오는군. 마시겠소?”

카모시프가 타원형의 술통을 꺼내 내밀었다.

“쓰군요.”

술을 사내답게 여러 모금 마신 도현이 술통을 돌려줬다.

“여동생이 만든 술이오. 솜씨가 없어서 내가 구박을 여러 번 했는데, 이제 이 술도 다시는 못 마시게 됐소.”

카모시프는 고개를 젖혀 술을 물 마시듯 들이켰다.

도현은 선선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작은 돌을 집어 던졌다. 긴 장화를 벗어 물고기를 잡으려고 강물을 내려다보던 리타의 옆에 돌이 첨벙하며 떨어졌다.

물고기가 도망치자 리타가 고갤 돌려 도현에게 소리쳤다.

“꺼져!”

그녀는 다시 장화로 고기 잡는 데 집중했다.

“여동생은 아닌 것 같고, 누구요?”

“동료입니다.”

“함께 다니기 너무 어리지 않소?”

“보기보다 나이가 좀 들었습니다.”

웃으며 대꾸한 도현은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늪에서 죽은 그 사람이 전투 몬스터를 움직였다고 하던데요. 전투 몬스터가 뭡니까?”

브링틱인들이 몬스터와 같이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그곳의 자세한 실정은 도현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외지 사람이니 모를 수도 있겠지.”

카모시프는 술을 한 모금 더 했다.

“브링틱에서는 오래전부터 약초를 이용한 특수한 비법으로 일부 몬스터들을 순한 동물처럼 만들어 갖가지 일에 이용해 왔소. 농사일도 하고 강둑을 쌓거나 집을 지을 때도 힘이 센 몬스터들은 훌륭한 일꾼으로서 활약을 해 왔지.”

“대단하군요, 몬스터들을 일꾼으로 이용하다니요.”

“오래전 브링틱인들이 현명한 사람들이었던 건 분명한 것 같소. 비록 그것 때문에 대륙의 다른 사람들이 브링틱인을 야만인 취급하기도 하지만 말이오. 뭐, 아무튼 그런 일꾼용 몬스터들이 있는 반면 병사 대신 전쟁이나 몬스터 토벌에 동원되는 몬스터들도 있소. 그게 바로 전투 몬스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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