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디 임팩트 10권 20화
“하여간 요란하다니까요, 짐브리오는.”
로나는 아치형으로 된 두꺼운 나무 문을 뒤로 힘껏 잡아당기고 문 앞을 쳐다봤다. 뜻밖의 인물이 짐브리오 옆에 서 있었다.
“도현!”
놀란 로나를 향해 도현이 미소를 보였다.
“잘 있었어요, 로나.”
“아까 당신 얘기를 했는데…….”
로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말하다가 앞으로 나가 도현을 안으며 반갑게 말했다.
“아무튼 잘 왔어요. 보고 싶었어요.”
도현은 금발을 길게 기른 로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다가 홍영의 얼굴이 떠올라 슬며시 그녀의 몸을 밀어냈다.
“다시 보니 반갑군.”
도현의 목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다가온 어베인이 담담히 말했다.
“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몸은 괜찮습니까?”
“조금 불편한 정도네. 들어오게.”
“이 얘는 누구예요?”
로나가 도현 옆에 서 있는 리타를 보며 물었다.
“애 아니거든!”
리타가 로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도현이 다크캐슬을 떠나 이곳으로 오면서 사귄 동료래. 소녀처럼 보이지만 나이는 도현보다 많고.”
짐브리오의 말에 어베인과 로나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리타를 쳐다봤다.
“그런데 조심해. 아주 성질 더러운 흑마법사야.”
짐브리오의 설명에 발끈하려는 리타를 서둘러 진정시킨 도현은 집 안으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어베인이 브링틱 성에 마련한 집은 천장이 높고 규모가 있는 2층 집이었다. 주방도 넓고 식탁도 커서 다섯 명이 둘러앉았는데도 식탁 공간이 넉넉하게 남을 정도였다. 고대 도시 발굴이 길게 갈 것을 내다본 어베인이 지내기 편한, 쓸 만한 집을 구한 것이다.
“얼음탑 마법사들을 결국 죽였군.”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장. 골목에서 포위당해서요. 한 놈을 죽이나 세 놈을 죽이나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
짐브리오는 바늘에 실을 꿰어 가슴 상처를 스스로 꿰매고 있었다. 아플 텐데도 그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얼음탑이 마법사 조직입니까?”
고대 도시에서 나온 청동 술잔을 살피던 도현이 물었다.
“그렇다네. 100여 년 전에 한 마법사가 탑을 세우고 그 안에서 몇몇 마법사를 키우며 시작되었지. 현재는 소속된 마법사의 수도 많은 데다 지금 얼음탑주는 대륙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 대마법사이기 때문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어베인은 상처를 꿰맨 자리에 약을 바르는 짐브리오를 보면서 설명했다.
“꺼리시는 이유가 있었군요. 그럼 제가 지난번에 손을 본 그 마법사는 어디 소속입니까?”
도현은 과거 숲에서 폭주해 없앤 마법사에 관해 물었다.
“그자는 그저 마법으로 돈을 버는 자일 뿐이네. 커딜과 이안이 보낸 추적자들 중에 얼음탑 소속은 오늘 짐브리오 손에 죽은 자들이 전부지.”
“그들의 죽음을 얼음탑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거예요.”
로나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어베인과 짐브리오가 그동안 추적대를 피해 온 건 마법사 조직인 얼음탑과 될 수 있으면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 없지. 주위를 더 신경 쓰며 다닐 수밖에.”
“말씀을 들어 보면 얼음탑은 명성 있는 마법사 조직인데, 왜 커딜과 이안의 일에 개입을 했을까요? 돈을 받고 단순히 움직이는 그런 조직은 아닌 것 같은데요.”
도현은 짐브리오가 따라 주는 술을 청동 술잔으로 받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나중에 물어보세, 영주 커딜과 이안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말이야.”
어베인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맞소, 대장.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얼음탑주에게 큰일을 당하기 전에 먼저 커딜과 이안 놈을 죽입시다. 주민들을 학살하고 약탈을 일삼는 병사들을 우리가 독살해서 죽인 게 큰 죄라면, 그 두 영주 놈들이 수만 명, 수십만 명을 죽인 죄는 어떻게 갚을 건지 따져 보자고요.”
“영주를 죽이는 게 쉽겠어요?”
로나는 술을 홀짝이는 리타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도현이가 있잖아.”
짐브리오는 옆에 앉은 도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주어 말했다.
“나중에 우리 함께 가서 그 두 녀석을 손보자. 네가 도와주면 가능해. 같이할 거지?”
리타를 제외한 어베인, 짐브리오, 로나가 일제히 도현의 입을 주시했다.
‘안 한다고 하면 당장 쫓겨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도현은 입안에 있는 술을 꿀꺽 삼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알겠습니다. 함께하죠.”
도현의 대답에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다시 만난 걸 기념하며, 건배!”
리타는 소외되기 싫었는지 팔을 쭉 뻗어 다른 사람들처럼 술잔을 부딪쳤다.
“이제 자네 얘기를 들어 볼까? 다크캐슬에서 어떻게 여길 올 생각을 했나?”
“몬스터 재료 상점에서 이곳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더군요. 발굴되는 고대 도시에서 이계의 수정이 발견될 수도 있는 문제고요. 강한 몬스터가 발굴지에서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도현의 대답을 듣고 있던 짐브리오가 목소리를 낮추며 한껏 분위기를 잡았다.
“험, 거 말이지 씨드가 이 고대 도시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어. 그걸 찾으면 우리 모두 나눠 먹자고. 몬스터 잡으면서 마나 키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생길 테니까. 자네, 복수할 사람이 있다면서, 스므차보다 강한. 아마 씨드가 큰 도움이 될 거야.”
“씨드가 고대 도시에 있습니까?”
“수만 명이 묻혀 있는 병사들의 무덤 주위를 조사하다가 발견된 곳이 매몰된 고대 도시야. 전설에 따르면 고대의 병사들이 씨드를 두고 싸웠다니까,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 고대 도시가 씨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측되는 상황이지.”
“희망 사항이니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고요.”
로나가 도현에게 웃으며 말했다.
“기대하지 않아요. 고대 도시에 씨드가 있다면 그 당시 사람들이 복용하고 말지 왜 놔두고 있었겠습니까? 싸움에 빌미가 될 때까지요.”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하던 도현은 짐브리오가 노려보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 제가 이상한 말을 했나요?”
“이 자식이! 씨드 보고 고대 도시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몇인데, 그 바람을 짓뭉개는 발언을 하다니, 죽고 싶냐!”
짐브리오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도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 알겠습니다. 존재할 수도 있죠.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씨드는 저기에 있어! 그러니 우리가 반드시 찾아서 먹자! 알겠지!”
“찾으면 나도 주는 거야?”
술에 반쯤 풀린 눈으로 리타가 물었다.
“넌 좀 빠져!”
“왜?”
“네가 무슨 권리로 씨드를 탐내는 건데?”
“도와주면 되잖아.”
“퍽이나 네 힘이 필요하겠다.”
짐브리오가 콧방귀를 뀌었다.
“리타는 저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비골이라는 전사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도현이 리타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는 말을 넌지시 했다.
“뭐야?”
깜짝 놀란 짐브리오가 리타의 빈 술잔에 술을 콸콸 부어 주었다.
“너 정말 그런 걸 소환할 수 있어?”
“응.”
술기운이 오른 리타가 딸꾹질을 하며 대답했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어서 술 더 마셔.”
짐브리오의 돌변한 행동에 도현은 작게 웃다가 어베인을 응시했다.
그는 담담히 술을 마시고는 있지만 몸이 아직 정상이 아닌지 때때로 고통을 참느라 이마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곤 했다.
“발굴 현장에서 어떻게 몬스터가 출몰하는 겁니까?”
도현의 물음에 어베인은 기침을 한 번 한 후 대답했다.
“지금까지 경우를 보면 크게 두 가지 형태네. 땅속에 매몰된 도시 유적을 발굴할 때 흙과 돌무더기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경우. 다른 하나는 발굴된 도시 유적의 지하 시설에서 출현하는 경우네.”
“이해할 수가 없군요. 고대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몬스터들이 땅속 도시와 함께 지하에 있었던 걸까요?”
“아직 제대로 밝혀진 건 없네. 아마 모든 발굴이 완료되면 그때서야 진실이 드러나겠지.”
“몬스터가 아주 강하다면서요.”
“자네 슈빅타이런을 상대해 봤나?”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크캐슬에서요.”
“이겼나?”
리타와 술을 주고받던 짐브리오와 로나는 도현의 대답이 궁금했는지 시선을 집중했다.
“쉽진 않았지만 싸워서 져 본 적은 없습니다.”
“오, 역시 대단해, 슈빅타이런을 이기다니!”
짐브리오가 끼어들며 도현을 치켜세웠다.
“그럼 슈빅타이런을 죽이고 그놈의 힘도 흡수했겠군?”
도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슈빅타이런을 몇 마리나 잡았어요?”
로나가 호기심에 물었다.
“여러 마리 잡았어요.”
슈빅타이런 6미터 급과 8미터 급을 합해 백여 마리 정도 잡았지만 도현은 적은 표현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로나는 놀라워했다.
“발굴 중인 고대 도시에서 출몰하는 녀석들은 슈빅타이런 보다 강하네.”
“그렇습니까?”
도현이 눈을 빛내며 술을 한 모금 했다.
“내가 세상을 떠돌며 여러 몬스터들을 경험해 봤지만, 이제까지 본 몬스터들 중에서 최강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놈들은 발굴 현장에 출몰하면 주변을 잠시 동안 쑥대밭으로 만든 뒤, 고대 도시 지역을 벗어나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네.”
“특이한 행동이군요. 어디로 사라지는 겁니까?”
“짐브리오, 지도 좀 가져오게.”
어베인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대장, 침대에서 좀 쉬시오. 나머지 이야기들은 나와 로나가 도현에게 해 주면 되니까.”
“괜찮네.”
“고집은.”
짐브리오는 방으로 가서 발굴 중인 고대 도시와 그 일대가 그려진 지도를 가지고 왔다.
이 커다란 지도는 어베인 일행이 몇 달에 걸쳐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발로 뛰며 작성한 것으로, 누가 어느 위치에서 고대 도시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지도 자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정말 많은 세력들이 들어와 있구나.’
도현은 수십 개로 쪼개진 경계선들을 보며 약간 놀랐다. 수십 개의 세력들이 저 경계선 안의 공간에서 각자 발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빈 몇몇 공간들은 아직 브링틱 원로들이 팔지 않은 땅이었다.
도현이 지도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을 때, 어베인이 한 곳을 짚었다.
“바로 이곳이네.”
도현이 보니 고대 도시 뒤편으로 강이 흐르는데, 그 너머 북서쪽 숲이었다.
“방향이 이쪽이라는 것이지, 녀석들이 이 숲에 있다는 뜻은 아닐세.”
어베인은 신중한 얼굴로 손가락을 북서쪽 숲에서 위로 계속 움직였다. 결국 그의 손은 지도를 벗어나 로나의 술잔 가까이까지 뻗어 갔다.
“아주 멀리 간 것 같아.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곳으로.”
“아무도 모르는 겁니까?”
“끝까지 쫓아가 본 사람이 없어. 나도 중간에 한 마리를 쫓다가 녀석이 눈치채는 바람에 싸움을 하다 부상을 입었네.”
도현은 지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문을 열었다.
“혹시 지금까지 대략 몇 마리나 나왔는지 알고 계십니까?”
“스무 마리 정도 될 거예요. 매일 나오는 건 아니고 어쩌다 나오는 몬스터들이니까요.”
로나가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많은 수는 아니었다.
“기회를 봐서 제가 한번 추적해 보겠습니다. 상황이 되면 녀석들을 잡아 힘도 흡수하고요.”
“쉽게 볼 일이 아닐세.”
어베인이 리타가 내미는 술잔에 잔을 부딪쳐 주고는 말했다.
“뭔가 고대 도시와 이 몬스터들 간에 큰 고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나 싶어. 가게 되면 그 점을 확실히 밝혀내야 하네.”
“알겠습니다.”
도현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자, 몬스터 얘기는 일단 뒤로 미뤄 둡시다. 그보다 급한 일이 하나 있으니까.”
짐브리오가 트림을 하며 식탁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켰다.
“대장, 실은 말입니다, 몇몇 영주 세력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심상치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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