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디 임팩트 10권 22화
도현과 짐브리오는 암거래 상인의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뭘 사고 싶다는 건가?”
“색이 안 들어간 투명한 수정 구슬. 요만한.”
짐브리오는 엄지손톱만 한 크기를 표시했다.
“어쩌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옆에서 도현이 귓속말을 하자, 짐브리오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했다.
“뭐 아무튼 크기는 상관없고, 고대 도시에서 나온 투명한 수정 구슬이 있소?”
“별일이군, 그런 걸 다 찾다니. 미안하지만 아직 그런 물품은 들어오지 않았네.”
“여기 금화 쉰 개요.”
짐브리오가 돈을 꺼내 암거래 상인의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나오면 내가 사겠소. 다른 상인들에게도 좀 알아봐 주시오.”
“이건 내게 주는 수고비인가?”
암거래 상인이 금화를 챙기며 물었다.
“수고비는 더 줄 수도 있소. 아무튼 신경 좀 써 주시오. 가지.”
짐브리오는 할 말 다 했다는 듯 서둘러 일어나려 했다.
“아, 잠깐.”
암거래 상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며칠 전에 내게 팔지 않았던 고대의 지팡이 말이야. 그걸 내가 사고 싶은데.”
“얼마에 말이오?”
“자네가 말한 대로 금화 9백 개를 쳐주지.”
“왜 마음이 바뀐 거요? 지난번엔 금화 5백 개를 얘기하더니.”
“20년 넘게 알고 지내 온 사이인데, 그 정도는 해 줘야겠다 싶어서.”
짐브리오는 어제 브링틱 성의 상인에게 판 고대의 지팡이를 떠올리며 말했다.
“내가 말한 투명한 수정 구슬을 확보해 놓으면, 그때 팔겠소.”
“미리 팔면 좋겠는데.”
암거래 상인이 미간을 좁혔다.
“바쁘니까, 나중에 봅시다.”
도현과 함께 방을 나가는 짐브리오에게 암거래 상인이 소리쳤다.
“설마 다른 녀석에게 판 건 아니겠지!”
“내가 그럴 사람이오?”
암거래 상인의 집 밖으로 나온 짐브리오는 용병 술집이 밀집된 지역으로 향하며 말했다.
“이계의 수정이 나올 수 있으니까 한번 기다려 보자고.”
“고맙습니다.”
“고맙긴. 네가 갑자기 흥분해서 폭주하면 옆에 있는 나도 위험할 거 같아서 그러는 거야. 너, 미치면 안 된다.”
“그게 제 마음대로 됩니까?”
“뭐야? 이 자식이! 너 미치면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조심해.”
도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근데 고대의 지팡이는 어제 팔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팔았지.”
“암거래 상인에게 나중에 뭐라고 말하려고요.”
“사는 게 다 그래. 서로 속고 속이고. 그 음흉한 노인네는 뭐 나 속인 적이 없는 줄 아나? 걱정 마. 괜찮으니까.”
그들은 길 양옆으로 늘어선 용병 술집 들 중 한 곳을 선택해 들어갔다. 목조로 엉성하게 지어진 술집은 대단히 넓어서 백여 명도 넘는 인원을 수용할 정도였다. 그 안은 일거리를 찾는 용병들로 시끌벅적했다.
“이곳엔 이런 용병 술집이 열 개가 넘어. 발굴 현장에 들어와 있는 수십 개의 세력들이 용병들을 일꾼으로 고용하거나 경비병으로 삼기 위해 엄청난 인력을 끌어다 쓰고 있거든.”
“땅 사고 수백 명의 용병을 고용하려면 그 비용이 정말 만만치 않겠군요.”
“그렇지. 발굴해서 씨드는 고사하고 고대의 물건 중 돈이 될 만한 게 안 나오면 아주 큰 손해를 보는 거라고.”
말을 하던 짐브리오는 술집 사람에게 걸어가서 뭔가를 얘기하고 돌아왔다.
“아직 베일 가문에서 용병을 모집하지 않는 것 같아.”
“다른 술집으로 가 볼까요?”
“순서만 다를 뿐이지 결국엔 이 술집도 모집인이 들르게 되어 있어, 한두 명 뽑을 게 아닌 이상은.”
짐브리오는 벽 쪽에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술이나 마시면서 기다려 보자고.”
둘은 베일 가문의 용병 모집인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짐브리오가 떠드는 쪽이었고 도현은 그의 얘기를 재밌게 듣는 쪽이었다.
“내가 원래 암살자 집안 출신이거든.”
“암살자요?”
“조용히 찾아가 온갖 방법으로 상대방을 암살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집안이었지. 그런데 내가 태어날 무렵 집안이 몰락했어. 집안의 암살자들은 거의 다 죽고.”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왕을 죽였거든.”
“예?”
도현이 놀라자 짐브리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지? 우리 할아버지와 그 형제들이 아주 독했나 봐. 10년을 부려 먹고 왕이 약속한 땅을 주지 않자, 치밀한 계획 아래 왕을 결국 죽인 거지.”
도현은 짐브리오가 거구답지 않게 움직임이 민첩하고 은밀했던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어쩐지 보통 도둑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암살자나 도둑이나 비슷해. 몰래 들어갔다가 몰래 나오는 거.”
술을 쭈욱 들이켠 그는 도현을 깊은 눈빛으로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넌 대체 정체가 뭐냐?”
“정체라뇨.”
“너 우리 세계 사람 아니지? 이계 사람이지?”
도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을 짐브리오가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짐브리오.”
“자식이 놀라긴. 농담한 거 가지고, 흐흐흐.”
짐브리오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뭐가 그리 웃긴지 계속 웃어 댔다.
“몬스터 죽여서 마나 흡수를 하는 게 신기해서 하는 말이었어.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
“제가 놀랐습니까?”
멋쩍은 표정을 지은 도현은 웃고 있는 짐브리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이들에게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놀라는 정도가 아니겠지?’
도현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용병 모집인이 들어왔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베일 가문에서 용병을 모집한다!”
수천 년은 온갖 자연변화가 일어나기 충분할 만큼 긴 시간이다. 훌륭했을 고대 도시는 땅속에 묻혀 버렸고 그 위는 나무와 넝쿨이 뒤덮었다.
브링틱 원로들에게 땅을 산 영주 세력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고대 도시 위를 덮고 있는 나무를 베어 방벽을 세우는 것이었다.
커다란 나무들은 그들이 구입한 땅 위에 얼마든지 존재했고 발굴을 위해서도 어차피 제거해야 했기에 방벽을 만드는 일은 신속하고도 제일 먼저 이뤄지는 작업이었다.
경계선을 이루는 방벽이 도현의 시선이 미치는 곳마다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벌집처럼 쪼개진 고대 도시는 마차 세 대가 동시에 다닐 만한 길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세력들이 각각의 방벽으로 경계선을 이루고 그 안에서 발굴을 하고 있었다.
‘각 세력이 만들어 놓은 나무 방벽 간의 간격은 대략 10여 미터가 채 안 된다. 방벽 위에서 보초를 서면 반대편 보초의 표정까지 다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
도현은 자신이 밟고 가는 길이 고대 도시에 들어와 있는 모든 세력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단한 규모지?”
옆에서 걷는 짐브리오가 주변을 의식하며 매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지도에서 느낀 것보다 실제로 보니 더욱 그러네요.”
베일 가문의 용병 모집인들에 의해 모집된 용병 수백 명과 함께 고대 도시에 도착한 도현은 벌써 2시간째 방벽 사이를 걷고 있었지만 아직 베일 가문의 땅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고대 도시가 넓다는 뜻이었다.
한참을 더 걸은 그들은 해가 많이 기운 오후가 되어서야 사자 깃발이 장엄하게 휘날리는 베일 가문의 땅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라!”
방벽 위에서 병사가 크게 고함을 지르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육중한 방벽 문을 열었다.
용병들 사이에 끼어 베일 가문의 땅으로 들어간 도현은 사방을 둘러봤다. 입구와 멀지 않은 곳에 수십여 개의 목조건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입구 방향이 아닌 내부의 중심부터 발굴이 이뤄지는 건가?’
수백 명의 용병들은 목조건물 앞 넓은 공터에서 멈춰 섰다.
그곳에서 용병들의 실력에 따른 분류가 다시 시작됐다. 도현과 짐브리오는 실력이 제일 낮은 하급 용병으로 분류됐다.
“특급 용병은 없고, 일급 용병이 33명, 중급 용병이 여87명, 하급 용병이 281명. 총 401명의 용병들이 모집됐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반돌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급 용병과 중급 용병은 세 개 용병단 단장들에게 보내 지휘를 받도록 하고, 하급 용병들은 오늘 밤부터 전원 방벽 경비에 투입시키도록.”
“예!”
부관이 물러가자 반돌로는 몸을 돌려 그의 집무실 한쪽에 서 있는 이디언에게 다가갔다.
“상황이 좋지 않은가 보군요.”
이디언은 손에 든 술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늘 어려움은 있어 왔지.”
담담히 말한 반돌로는 부관이 들어오기 전에 따라 놓은 자신의 술잔을 반쯤 비웠다.
“그래, 여긴 무슨 일로 왔나?”
“고대 도시가 발견됐다고 해서 왔어요. 고대의 지식은 마법 성장에 도움이 되니까요. 그러다 소문을 듣게 됐죠. 베일 가문의 땅을 노리고 싸움이 벌어질 거라는 소문요.”
술잔을 내려다보며 느리게 말하던 여마법사 이디언은 고개를 들어 반돌로를 봤다.
“반돌로 경, 적을 막는 데 저도 힘을 보태겠어요.”
“자네가?”
반돌로는 이디언의 말이 의외였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자넨 베일 가문의 사람이 더 이상 아니지 않나? 왜 이 싸움에 끼어들려 하는가?”
“그냥 돕겠다는 게 아니에요. 대가를 원해요.”
“대가라. 뭘 원하나?”
“땅을 살 돈이 필요해요.”
“땅이라니, 어디를 말하는 건가?”
“고대 도시로 추정되는 지역 중 아직 팔리지 않은 땅이 남아 있더군요. 작게나마 그 땅을 사서 발굴해 보고 싶어요.”
이디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반돌로는 벗겨진 앞이마를 쓸어 올리며 껄껄 웃어 댔다.
“이보게 이디언, 고대 도시 땅값이 얼마나 고가인지 아는가? 땅을 작게 구입해도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해.”
“알아요.”
“이디언, 자네가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나도 인정한다네. 하지만 자넨 결코 그 정도 대가를 받을 수 없어. 실망이군,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감히 내게 와서 말하다니.”
웃음기를 지운 반돌로의 눈가에 찬 기운이 어렸다.
“돌아가. 자네 같은 마법사 한 명이 있고 없고는 대세에 큰 지장이 없어.”
“반돌로 경, 제 마법 능력은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런 요구를 하는 게 아니에요. 다크캐슬의 주인 스므차 성주를 아시겠지요?”
“스므차?”
수십 년 전 대륙을 뒤흔들었던 절대 강자의 이름에 반돌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의 친위대장 호드리오스도 알고 계실 겁니다.”
“모를 리가 없지.”
반돌로는 그가 젊을 적에 들었던 호드리오스의 이야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스므차의 친위대장으로 활약하며 수많은 강자들을 창 하나로 휩쓸어 버린 사내.
이미 수십 년 전 위명을 쌓은 인물이다.
“다크캐슬에 몇 달 전 큰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때 호드리오스가 죽었어요.”
“호드리오스가 죽었다고?”
“네. 스므차 쪽에서 비밀로 하고 있지만, 사실이에요. 바로 그를 실력으로 죽인 사람이 지금 저와 함께 있으니까요.”
반돌로는 놀라워했다.
“호드리오스를 죽인 사람이 자네 동료란 말이지…….”
나이가 많아 전성기 때의 몸 상태가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호드리오스의 명성은 절대 가벼운 게 아니었다.
“그 정도 강자가 돕겠다는 거예요. 그만하면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봐요.”
“흠.”
반돌로는 술잔을 비우고는 천천히 집무실 안을 거닐었다. 무슨 수를 쓰든 이 땅을 지켜 내야만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호드리오스를 죽인 강자가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된다.
“사실, 뤼호른 가문 쪽으로 가서 힘을 빌려주고 돈을 받을 수도 있지만, 옛정을 생각해서 베일 가문에 먼저 온 거예요.”
“뤼호른은 안 돼!”
“시간이 많지 않아요. 결정해 주세요, 반돌로 경.”
“원하는 금액을 정확히 말해 보게.”
“금화 2만 개.”
“좋네, 보상을 약속하지. 단, 그만한 활약을 보여 줘야 해. 대공께 그 돈을 달라고 말할 명분이 필요하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나?”
“감사합니다, 반돌로 경.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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