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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56화 (256/575)

[256] 디 임팩트 11권 6화

하늘에선 연신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비를 뚫고 말 두 필이 언덕 위에 멈춰 섰다.

“비가 엄청 오는군.”

짐브리오는 입을 벌려 빗물을 받아 마셨다. 마치 빗물로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처럼 그는 몇 번이고 빗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이쪽 지역의 빗물 맛은 상당히 좋군.”

“빗물 맛이 느껴집니까?”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던 도현이 물었다.

“당연하지. 지역마다 빗물 맛이 다 다르다고.”

도현은 호기심에 빗물을 받아 마셔 봤다.

“모르겠는데요.”

“험, 그걸 아무나 느끼나? 나 정도는 돼야 느끼지.”

도현은 아무래도 그의 장난에 속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짐브리오는 어베인과 로나의 일로 초조하고 복잡한 마음을 애써 이렇게 가벼운 장난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크샤코 가문의 성은 어디 있습니까?”

언덕 위에 올라가면 성이 보인다고 했는데 비가 심해 흐릿한 윤곽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비 때문에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저 길 끝에 크샤코 가문의 성이 있어. 멀지 않아.”

짐브리오가 손끝으로 언덕 아래 길을 가리켰다.

“거의 다 왔으니까, 옷을 갈아입자.”

도현과 짐브리오는 말고삐를 옆으로 당겨 가까운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잿빛 로브를 뒤집어썼다. 용병 시장에서 구한 옷으로, 언뜻 보면 얼음탑 소속의 마법사들이 입고 다니는 로브처럼 보였다.

로브에 달린 모자를 써서 얼굴의 반을 가린 도현은 짐브리오를 돌아봤다.

잿빛 로브를 입은 채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는 짐브리오의 몸에서 어딘지 음산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어때, 마법사처럼 보여?”

“네, 그렇긴 한데…… 이 방법을 꼭 써야 할지 의문입니다.”

도현은 밤에 몰래 들어가 조사를 하려고 했지만, 짐브리오는 생각이 달랐다.

“위험해도 이 방법이 효과적이야. 얼음탑 마법사들이 크샤코 가문의 성내에 있다면 우리는 성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서 바로 그놈들에게 갈 수가 있다고.”

얼음탑 마법사로 위장해 마치 동료들을 찾아온 행세를 하자는 짐브리오의 주장에 도현은 그 대담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우리가 몸조심하며 다닐 때가 아니다. 위험해도 시간을 아끼고 빠른 방향으로 가자.”

도현은 짐브리오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신속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제 금화 쉰 개짜리 약을 써 볼까?”

짐브리오는 품에서 꺼낸 약을 얼굴 이곳저곳에 발랐다. 그러자 얼굴 곳곳에 늙은 사람처럼 검버섯이 생겼다. 주름도 여러 개 잡혔다. 약통에 끼여 있던 작은 손거울로 얼굴을 살펴보던 그는 피식 웃었다.

“비싸도 이름값을 하네. 이 정도면 날 평소에 알던 사람도 얼굴만으로는 난지 알아보기 힘들 거야. 너도 해 줄게.”

짐브리오는 도현의 얼굴에도 약을 발랐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며 금세 노인처럼 변했다.

특수한 비법으로 제조된 변장약은 도둑들 사이에 거래되는 물품으로 하루 정도 효과가 있었다.

완벽한 변장으로 상대방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지만, 두세 번 사용하면 없어지는 적은 양이 무려 금화 쉰 개나 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 못 하는 고가의 물품이었다.

짐브리오는 도현이 가지고 있던 루비를 하나 팔아서 용병 시장에서 로브를 구입할 때 약도 하나 구입한 것이다.

“비가 오는데 괜찮을까요?”

“물에 젖어도 상관없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도현과 짐브리오는 남은 약을 손등과 목 주변에도 바른 다음 숲을 나왔다. 말은 숲에 남겨 둔 상태였다.

그들의 허리에는 위장용으로 단 지팡이가 하나씩 덜렁거렸다.

“짐브리오, 대장과는 언제부터 함께 다닌 겁니까?”

비를 맞으며 길을 걷던 도현이 문득 물었다.

“한 8년 정도 됐지. 지하 유적의 벽을 더듬으며 비밀 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밀 공간에서 툭 튀어나오더라고. 나보다 한발 먼저 와 있었던 거지. 아무튼 그때 인연이 되어서 지금에까지 이른 거야.”

“로나는요?”

“로나?”

짐브리오는 구덩이에 고인 흙탕물을 피해 옆으로 돌아가며 답했다.

“로나도 8년 정도 됐지. 왜냐하면 로나는 대장과 함께 다니고 있었으니까. 내가 합류하면서 자연히 지금의 모습이 된 거야.”

“그렇군요.”

“걱정이다. 씨드를 찾지 못하면 로나는 얼마 살지 못할 텐데.”

“꼭 씨드가 있어야 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것에라도 운을 걸어 보는 거야. 씨드는 신비로운 물질이니까. 젠장,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지. 당장 그들의 생사도 모르는데.”

도현과 짐브리오 사이에 대화가 점차 적어졌고, 비는 하염없이 그들의 몸을 적셨다.

‘저긴가?’

빗속에 서 있는 웅장한 성이 도현의 시야에 서서히 들어왔다.

“거의 다 왔다. 지금부터 몸에 힘을 좀 빼고 걷자.”

어깨를 일부러 조금 처지게 만든 도현은 고개도 반쯤 숙여서 걸었다.

가까이 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일부러 만들며 걷던 도현과 짐브리오는 성문 앞에 멈춰 섰다.

성문 좌우로 십여 마리의 전투 몬스터들이 비를 맞으며 도열해 있었는데, 그 위압감이 대단했다.

‘처음 보는 전투 몬스터인데.’

도현은 5미터 급 하이드로우를 빠르게 둘러보다가 곁눈으로 짐브리오를 살폈다.

“왜 기침을 자꾸 하십니까?”

도현이 작게 속삭였다.

“돌아갈까?”

“예?”

“생각해 보니까 크샤코 가문의 성에 있을 전투 몬스터들을 계산하지 못했어. 여기가 가문의 본성이면 전투 몬스터가 얼마나 존재할지 모르는데 말이야.”

“늦었습니다. 이미 병사들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도현이 황당한 표정을 감추며 짐브리오를 쳐다봤다.

“험, 그냥 해 본 소리야. 난 너만 믿는다. 가자.”

성문 앞에서 잠시 시간을 지체한 사이 뒤에서 온 마차 여러 대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얼떨결에 따라 들어가려는 그들 앞에 전투 몬스터의 얼굴이 쓱 다가왔다.

녀석이 흉측한 얼굴을 비틀며 입을 벌리자 톱니바퀴 같은 이빨이 수없이 나타났다.

성문으로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죽이겠다는 경고였다.

지켜보던 병사가 전투 몬스터를 움직여 도현과 짐브리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신분을 밝혀라!”

“크크크, 이 늙은이 말인가?”

음산하게 웃은 짐브리오는 반쯤 숙인 고개를 쳐들며 병사들을 둘러봤다.

“난 얼음탑에서 온 사람이라네. 여기에 내 동료가 있다고 해서 왔지.”

“얼음탑?”

병사들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20년 만에 복귀한 가문의 차남 카샨이 얼음탑의 마법사가 되어 돌아왔다는 소문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명령을 받은 게 있었다. 얼음탑에서 중요한 손님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예를 다해서 모시라는 명령이었다.

카샨은 얼음탑주를 두고 한 말이었지만, 이들이 알 리 만무했다.

성문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수비대장은 얼음탑에서 사람이 왔다는 병사의 보고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나이 지긋한 노인 두 명이 잿빛 로브를 입고 서 있는 모습이 아주 차가웠다.

복장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얼음탑 마법사가 분명해 보였다.

카샨이 말한 손님이 이들일 거라고 착각을 한 수비대장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하는 그의 행동에 도현과 짐브리오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얼음탑에서 오셨다고요?”

“그렇소.”

“카샨 님을 찾아오신 겁니까?”

짐브리오는 카샨이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안에 있는가?”

“원로님을 뵈러 브링틱 성에 가셨습니다. 안에 들어가셔서 기다리시지요.”

“허엄, 그럼 부탁드리겠소.”

“이분들을 카샨 님의 저택으로 모셔라.”

“예!”

도현과 짐브리오는 병사의 안내를 받으며 전투 몬스터가 도열해 있는 성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길은 넓었고 눈에 보이는 건 병사와 건물 들뿐이었다.

“저 건물들은 다 뭔가?”

일절 장식이 없는 목조건물들이 격자 형태의 길을 따라 수없이 존재했다.

“몬스터 보관소입니다.”

“몬스터 보관소?”

“예. 조금 전 성문 앞에서 보신 전투 몬스터들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카샨의 저택으로 안내를 하던 병사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했다. 외부 사람에게 성의 내부 시설에 대해 설명을 해 주면 안 됐지만, 수비대장도 굽실거리는 얼음탑 사람들에게 말을 아낄 수는 없었다.

‘굉장하구나. 저 많은 건물들이 다 전투 몬스터 보관소라고?’

비행기 격납고처럼 수없이 늘어서 있는 몬스터 보관소의 위용에 도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카샨과 원로는 어떤 사이지?”

“카샨 님은 원로님의 둘째 아드님이십니다.”

병사는 얼음탑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왔다는 게 좀 이상했는지 힐끔 쳐다보다가 도현의 차가운 시선에 놀라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카샨이…… 잡아 온 자들이 여기에 있나?”

도현은 혹시나 하고 찔러보았다.

“누굴 말씀하시는지…….”

“노인 한 명과 여자 둘. 여자 중엔 소녀도 한 명 있지.”

짐브리오가 옆에서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모르는가?”

“예? 죄, 죄송합니다. 전 성문을 지켜서 말입니다.”

말을 더듬거리던 병사는 마침 눈에 보이는 감옥 수비병에게 달려갔다. 그러곤 다시 재빨리 돌아왔다.

“하아, 하아, 마법사님, 알아 왔습니다. 좀 전에 말씀하신 자들은 지금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합니다.”

“그래?”

도현과 짐브리오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자네 아주 우리들에게 잘 대해 주는군. 우리가 궁금해하는 걸 일부러 물어서 알아 오고 말이야.”

“헤헤, 아닙니다, 마법사님.”

“받게.”

짐브리오는 금화 몇 개를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줬다.

“우린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들이네. 자네의 친절함이 우릴 감동시키는군. 그래서 주는 걸세.”

“감사합니다!”

병사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브링틱은 처음이고 크샤코 가문도 처음이네. 많은 게 궁금해.”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그래그래. 아, 근데 말이야. 지하 감옥은 어디에 있나?”

전투 몬스터

긴 회랑이 연결된 사각형 모양의 3층 저택은 중심부가 빈 구조였다. 빈 곳은 정원으로 꾸며져서 나무와 꽃 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다.

카샨의 저택 3층 방에서 슬며시 나온 도현과 짐브리오는 회랑 통로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원에 비가 쏟아지며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근처에는 경비를 서는 병사 몇도 보였다.

“크샤코 가문의 차남이 얼음탑 마법사일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성문 병사의 안내를 받아 카샨의 저택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그들은 회랑을 따라 걷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디 가십니까?”

카샨의 집 경비를 서던 병사의 우두머리가 물었다.

“성내 좀 구경할까 해서.”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됐네. 길 잃어버릴 아이도 아니고. 가세.”

짐브리오가 헛기침을 하며 도현과 함께 저택을 벗어나 넓은 길로 나섰다.

“봤지? 녀석들로 변장해서 들어오니까 일이 술술 잘 풀리잖아.”

거드름을 피우는 짐브리오의 행동에 도현은 웃음을 안으로 삼켰다.

“다행입니다. 그들의 생사가 확인돼서요.”

“그럼. 죽지 않고 갇혀 있는 게 어디야.”

성문 병사에게 금화 몇 개를 주고 지하 감옥의 위치를 파악해 둔 그들은 최단시간 내에 빠져나갈 수 있는 안전로를 확보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길을 익혀 뒀다.

성을 나갔다는 카샨이 언제 복귀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조금 급해진 상태였다.

날이 점차 지며 어둠이 사방에 깔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입구에 5미터 급 전투 몬스터 하이드로우 두 마리가 거대한 도끼를 손에 든 채 경비를 서고 있었다.

“정지!”

감옥 경비병들이 크게 소리쳤다.

“짐브리오, 입구가 막히면 안에서 나올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입구는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부탁한다.”

짐브리오가 병사들을 향해 비수를 날리는 순간, 도현이 전투 몬스터를 향해 돌진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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