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디 임팩트 11권 7화
“얼음탑에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그렇습니다, 카샨 님.”
성에 도착한 카샨에게 성문 수비대장이 보고를 했다.
“누구라 하던가?”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카샨 님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생김새는?”
수비대장은 도현과 짐브리오의 변장한 외모를 설명했다.
‘탑주는 아닌데…… 누구지?’
얼음탑주가 예고 없이 성에 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랫사람들에게 각별히 신경 쓰라며 주의를 주긴 했다. 행여나 그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서 사달이 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데, 수비대장의 설명만으로는 얼음탑의 누가 왔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분명한 건 탑주는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카샨 님의 집에 모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카샨은 성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말을 몰았다.
얼마 후 아름답게 꾸며진 3층짜리 저택에 도착한 그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찾아왔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외출?”
“예. 성내를 구경한다고 하면서 나갔습니다.”
“음.”
카샨은 뒤집어쓴 모자를 벗으며 정원을 바라봤다. 누구인지 몰라도 돌아다니기 참 좋아하는 자들 같았다.
“사람을 풀어서 그들을 찾아라. 내가 왔다고 전해.”
“예!”
카샨은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가다가 흠칫하며 몸을 돌렸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는 3층으로 뛰어올라 가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응시했다.
성내에서도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그의 집은 전망대 역할을 해도 좋을 만큼 성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던 그는 종소리의 근원이 멀리 감옥이 있는 방향이라는 걸 깨달았다.
“재밌군. 그 계집애 말대로 그 녀석이라도 찾아온 건가?”
카샨은 젖은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허공에는 그가 만든 얼음 계단이 땅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법으로 만든 얼음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무사히 내려온 그는 느긋하게 감옥으로 향했다.
성안에 존재하는 수천 명의 병력과 전투 몬스터들을 뚫고 그들이 성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을지나 모르겠군.”
벽돌로 만들어진 감옥은 5층 높이의 원형 탑 모양이었다. 지상은 일반 죄인들을 수감하는 곳이었고, 지하는 중죄인을 위한 곳이다.
평소에는 전투 몬스터들과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감옥 입구를 오늘은 도현이 완전히 장악했다.
5미터 급 전투 몬스터 두 마리를 죽여 그 사체를 바리케이드처럼 세운 도현은 사체를 넘어 공격해 오는 크샤코 가문의 병사들을 보이는 족족 베어 넘겼다.
“크아악!”
“윽!”
도현의 귀신같은 칼 솜씨에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죽은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검상을 입고 기어서 후퇴를 했다.
“죽어라!”
몬스터 사체를 넘어 병사 세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지만 도현은 그들의 공격을 피한 다음 아래로 길게 검을 그었다.
병사들의 다리에서 폭죽이 터지듯 피 분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죽기 싫으면 넘어가.”
도현의 차가운 한마디에 병사들은 다리의 고통을 참으며 엉금엉금 기어서 전투 현장을 빠져나갔다.
주변은 죽은 자들과 부상자들이 흘린 피와 내리는 빗물이 섞여 피의 강이 흐르는 것 같았다.
도현이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감옥 입구 일대는 병사들의 시신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도현은 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뿌리며 뒤를 힐끔 쳐다봤다. 감옥 내부로 들어간 짐브리오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도현은 인근 건물 위에서 쏘는 화살을 검으로 쳐 내며 앞을 바라봤다.
적들이 또다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도현은 입술을 꾹 다물고 적이 흘린 창 한 자루를 집어 들어 길게 좌우로 휘둘렀다.
몬스터 사체를 넘어 공격하던 십여 명의 병사들이 가슴에 큰 충격을 받고 일제히 뒤로 와르르르 넘어갔다.
철갑으로 중무장을 했지만 도현이 휘두른 창은 방어구 너머 그들의 가슴에 강한 타격을 준 것이다.
입으로 피를 토한 병사들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은 서둘러 부상자들을 뒤로 빼냈고, 그사이에 또 다른 병사들이 도현을 계속 공격했다.
들고 있던 창으로 대여섯 명을 멀리 날려 버린 도현은 옆을 바라봤다.
지원을 위해 투입된 전투 몬스터들이 에워싼 병사들을 뚫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열 마리도 넘었지만, 감옥 앞 주변은 그렇게 넓지 않아서 동시에 합공할 수 있는 전투 몬스터 수는 두 마리가 최대였다.
이미 그 점을 간파하고 있는 도현은 전투 몬스터가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앞서 그의 손에 죽은 전투 몬스터는 거대한 도끼를 인간처럼 잘 사용했다. 오랜 훈련이 빚어낸 성과였겠지만 쌍둥이 폭포에서 싸운 슈빅타이런에 비하면 전투 능력이 한 수 처졌다.
녀석을 죽이고 흡수한 기운은 슈빅타이런의 4분지 1 정도 됐다.
‘네 마리를 잡으면 6미터 급 슈빅타이런의 기운과 엇비슷하겠어.’
사실 도현은 오랜만에 맛보는 몬스터의 기운에 살짝 고무된 상태였다. 크샤코 가문의 성안에 존재하는 전투 몬스터들을 모두 없애고 그 힘을 흡수한다면 그가 가진 단전의 내공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료들의 안위가 우선이지. 역할에 충실하자.’
치미는 욕심을 잠재우며 도현은 짐브리오가 어서 동료들을 데리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덤비는 녀석들을 놔둘 필요는 없겠지.’
거대한 몸을 가진 하이드로우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오자 땅이 들썩일 만큼 진동을 했다.
쿠쿠쿵. 쿵쿵쿵.
캬아아아!
괴성을 지른 하이드로우가 그들의 무기인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5미터라는 신체적 조건에서 뿜어내는 막대한 힘이 도끼에 실리자 그 기세는 산이라도 부숴 버릴 것처럼 강맹했다.
‘피하면 도끼는 감옥에 부딪친다.’
몬스터가 소지하고 있는 거대한 도끼는 그 날의 크기만 해도 2미터가 넘어 보였다.
벽돌로 지어진 감옥 입구는 저 도끼질 한 방에 박살이 날 수도 있다.
‘입구가 무너져서는 곤란하지.’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요히 서 있던 도현의 손에서 강한 빛이 폭사되었다.
내공이 실려 검기가 이글거리는 도현의 검이었다.
쩌어엉. 쩌어엉.
눈 깜짝할 사이에 서른여덟 번의 검이 펼쳐졌다.
위세 좋았던 하이드로우의 도끼가 힘을 잃으며 뒤로 튕겨 나갔고, 뒤이어 좌우에서 공격하던 하이드로우의 몸에서 풍선 터지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잠시 후 풍선 터지는 소리가 들렸던 몬스터의 몸 곳곳에서 피가 콸콸콸 쏟아졌다.
질 좋은 철갑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도현의 위력적인 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뒤로 비실거리던 몬스터들은 큰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극쾌의 검술을 발휘한 도현은 밀려들어 오는 하이드로우의 힘을 차분히 받아들였다.
순식간에 전투 몬스터 두 마리를 죽인 도현의 능력에 크샤코 가문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감옥에 침입자가 있다는 소식을 전파받고 달려온 병사들로, 앞서 도현이 감옥 입구를 지키는 전투 몬스터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직접 보니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혼자다! 무엇이 두렵나! 우리에겐 아직 전투 몬스터가 많다! 용맹스러운 병사들도 부지기수다!”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크샤코 가문의 고위 장수가 주눅이 든 병사들 앞에서 외쳤다.
“크샤코 가문에 들어온 적이 멋대로 날뛰게 내버려 둘 것인가!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주변을 포위한 병사들이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몬스터를 계속 투입해!”
장수의 지시에 전투 몬스터들이 다시 투입됐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기를 꺾어 놓지 않으면 싸움이 어려워진다.’
도현은 본능적으로 전투의 흐름을 읽어 내고 있었다. 여기에서만큼은 자신이 흐름을 지배해야 한다.
그래야 짐브리오가 동료들을 데리고 나왔을 시, 적들의 추적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
‘그나저나 너무 늦어.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안에 들어간 짐브리오가 소식이 없자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현은 허리를 숙여 창을 집어 들었다.
“난 동료만 데리고 가면 된다! 그래서 손에 사정을 두어 왔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이걸 보고 결정하도록 해!”
도현은 손에 든 창에 막대한 내공을 실어 번개처럼 집어 던졌다.
푸른 기운에 휩싸인 창이 어둠을 헤치며 날아가 그대로 달려오는 하이드로우의 목을 관통했다.
크르르륵.
입에서 괴상한 소리를 낸 하이드로우는 달려오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굴렀다.
“피해라!”
감옥 입구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는 거대 몬스터를 피해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콰콰쾅쾅.
건물을 부수며 처박힌 하이드로우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여긴 창이 널려 있군!”
도현은 바닥에 널려 있는 적의 창을 수거해 연속해서 창을 집어 던졌다.
유성처럼 밝게 빛나며 날아간 창들은 도현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전투 몬스터들의 목과 가슴에 어김없이 꽂혔다.
감옥 전투 지원을 위해 가까운 몬스터 보관소에서 출동한 하이드로우 열 마리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현의 손에 허무하게 모두 죽어 버렸다.
이때만큼은 병사들을 지휘하던 크샤코 가문의 고위 장수도 안색이 창백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드로우 한 마리를 전투 몬스터로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재화가 필요한지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한 사람을 상대하는 데 가문에서 아끼는 전투 몬스터가 열 마리나 죽었다.
엄청난 전력 손실이었다. 현장 책임자로 병사들을 지휘한 그의 목이 간당간당하게 생겼다.
“내가 원하는 건 동료와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막는다면 끝까지 싸운다! 단, 날 죽이려면 당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거야! 감당할 수 있겠나!”
도현이 외치는 소리가 감옥 앞 공터 일대에 쩌렁쩌렁 울렸다.
감정이 상하는 말이었지만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무위를 볼 때 거짓이 아닐 거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크샤코 가문의 장수는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보다 고위직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오고 있을 것이다.
그때 전투 몬스터 스무 마리가 주변에 도착해 명령을 기다렸다.
“어떻게 할까요?”
부하의 물음에 장수는 얼굴에 흐르는 빗물과 땀을 손으로 훔쳤다. 왜 그보다 높은 자들이 아직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지 생각할수록 괴로웠다.
“일단…… 포위만 한 채 기다린다.”
“예!”
도현은 공격이 중단되자 들고 있던 검을 거두고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지금쯤 나오면 좋을 텐데.’
저들의 전투 의지가 약해진 지금이 도망가기 적격일 때였다. 그런 그의 바람이 통했는지 감옥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짐브리오였다.
“미안하다, 늦어서. 내부 구조가 복잡해서 시간이 걸렸어. 감방 안을 지키는 간수 놈들의 저항도 심했고.”
굳은 표정으로 말을 한 짐브리오는 양어깨에 한 명씩 걸쳐 멘 로나와 어베인을 보여 줬다.
“고문을 심하게 받았어. 목숨이 위태로워.”
도현은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는 로나와 어베인의 모습에 가슴이 시려 왔다.
“로나…….”
아름답던 그녀의 손은 엉망으로 변해 있었는데, 새끼손가락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빨리 나가서 치료를 해야 돼. 위험한 상태야.”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도현은 짐브리오 뒤에 서 있는 낯선 노인을 쳐다봤다.
말랐지만 근골이 단단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는 정신을 잃은 리타를 안고 있었다.
“감방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야. 리타를 데리고 나올 사람이 필요해서 내가 풀어 줬지. 대장과 로나는 내가 책임지고 이 노인은 리타를, 그리고 넌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거다. 할 수 있겠냐?”
말을 하는 짐브리오의 눈은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도현은 그동안 걸치고 있던 잿빛 로브를 벗어 반으로 잘라 한쪽은 리타와 죄수로 있던 노인의 몸을 단단히 묶었고, 나머지 반은 짐브리오와 어베인, 로나의 몸이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조여 맸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도현의 물음에 죄수 노인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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