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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259화 (259/575)

[259] 디 임팩트 11권 9화

도현은 용감하게 위험을 헤쳐 나온 톨리핀을 돌아봤다. 리타를 안고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저자만 아니었다면 상황이 훨씬 좋았을 텐데.’

도현의 시선이 저 뒤로 향했다.

그가 기습적으로 날린 장풍에 피를 토하고 바닥에 처박혔던 마법사가 불사신처럼 일어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음 화살 한 방과 장풍을 교환했지만 어느 것이 남는 장사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술 없이 죽기에는 너무 아쉬운 밤이로군.”

짐브리오가 탄식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대장, 여기까진가 보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오. 도현이라도 살려 보냅시다. 그래야 우리 복수를 시원하게 해 줄 수 있지 않겠소? 로나, 정말 넌 단명할 운명인가 보다. 벗어날 수 없나 봐. 용서해라.”

짐브리오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죽은 사람처럼 축 처져 있는 어베인과 로나를 내려다보며 덤덤히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긴. 우리 놔두고 가라는 말이지. 우리가 아니면 널 막을 자들이 없을 거 아니야. 가라. 나중에 복수나 시원하게 해 줘.”

“나는 그럼 어쩌란 말인가?”

죄수 노인 톨리핀이 조용히 입을 뗐다.

“미안하오. 재주껏 도망치시오.”

짐브리오가 미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모두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결코 나쁜 상황이 아닙니다.”

도현은 다가오는 적들을 보며 힘주어 말했다.

“냉정히 판단을 해.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짐브리오가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들어 보십시오. 저기 말이 있습니다.”

도현이 기마병을 가리켰다.

“저 말을 빼앗아 타고 이곳을 벗어나는 겁니다. 말을 몰 힘은 다들 남아 있을 거 아닙니까?”

“음.”

짐브리오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철갑 기마병들을 둘러봤다. 좌우로 전투 몬스터들도 보였다.

“이렇게 쉽게 포기할 겁니까? 날 위한다면 끝까지 사내답게 노력하다가 죽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짐브리오.”

“자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포기는 누가 포기를 해? 알았어, 네 뜻이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한번 해 보자. 그런데 저 뒤에 마법사 녀석은 괜찮을까?”

“아마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겁니다. 얼음 화살보다 더 큰 타격을 그에게 주었거든요.”

짐브리오는 카샨이 피를 토하고 땅에 처박혔던 것을 보지 못했지만 도현의 말을 믿었다.

“다행이다. 거머리 같은 마법사 새끼, 대체 뭐 하는 새끼인지는 몰라도 나중에 빚을 꼭 받아 내겠어.”

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짐브리오는 도현의 옆에 섰다. 그리고 담담히 말했다.

“살자.”

도현은 살자라는 짐브리오의 말을 입안으로 몇 번 되새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압박을 하듯 천천히 다가오던 적들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달빛 아래 늘어선 기마병들의 위용은 대단했다. 전투 몬스터의 존재감이 사라질 정도였다.

“날 내려 줘.”

갑자기 들리는 리타의 목소리에 싸움을 준비하던 짐브리오와 도현이 깜짝 놀라 돌아봤다.

톨리핀의 품에서 리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움직일 수 있어?”

도현이 정신을 차린 리타에게 물었다.

“응. 이것 좀 풀어 줘.”

곁에 서 있던 짐브리오가 주머니에서 손가락만 한 꼬챙이를 꺼내더니 마법 수갑의 열쇠 구멍에 넣어 몇 번 움직였다.

철컥 소리를 내며 수갑이 풀리자 리타는 곧장 비골을 소환하는 음산한 주문을 외웠다.

은빛 망토를 휘날리는 3미터 크기의 양손 도끼 전사 비골이 그들 앞에 등장했다.

“이 녀석이 비골인가?”

흑마법으로 소환된 존재를 처음 목격한 짐브리오는 적들이 달려오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비골의 위아래를 살폈다.

“리타, 말을 빼앗아서 도망칠 거야. 비골을 이용해서 일행을 보호해.”

“응.”

비골이 한 손 거들어 준다면 도현도 한결 부담 없이 싸울 수 있다.

두두두두두.

들판을 가득 메우고 달려오던 수백 필의 말들이 그대로 돌진해 왔다.

붉은 광채가 나는 눈빛으로 적들을 노려보던 비골이 자세를 낮추더니 양손 도끼를 길게 좌우로 휘저었다.

다리가 잘린 말들이 울부짖으며 앞으로 집단으로 고꾸라졌다. 적의 기선을 제압한 비골이 은빛 망토를 휘날리며 기마병 사이에 난입해 거센 피바람을 일으켰다.

적이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도현은 기마병을 끌어내리고 말을 구해 왔다.

순식간에 말을 차지하게 된 짐브리오와 톨리핀, 리타는 뒤를 돌아봤다.

폭발적인 무위를 보이는 도현과 비골이 수백의 기마병을 막아 내고 있었다.

“짐브리오! 먼저 가십시오! 그래야 편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조심해!”

짐브리오는 톨리핀과 리타에게 손짓을 하며 동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지금은 도망가는 게 도현을 돕는 것이었다.

뒤에서 사람의 비명 소리와 전투 몬스터가 죽으며 흘리는 포효 소리가 길게 메아리쳐 왔다.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비골은 이미 사라졌고, 동료들을 쫓으려는 적들은 어김없이 그의 손에 당해 들판에서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온몸이 전투 몬스터와 말 그리고 기마병이 흘린 피로 흠뻑 젖은 상태다.

푸욱.

말 위에서 찌른 기마병의 창이 기어코 도현의 등을 파고들었다.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려는 고통에 찬 소리를 입안으로 도로 삼킨 도현은, 표정 없는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그의 등에 창을 찔러 넣은 기마병이 비명을 지르며 말 등에서 굴러떨어졌다.

몸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다면 큰 부상이었을 텐데, 다행히 창날 일부만 그의 등 근육을 파고들었다.

도현은 그의 피를 머금은 창을 들어 바람처럼 뛰어갔다.

그의 장풍에 당해 지금껏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마법사가 말을 타고 짐브리오 일행을 뒤늦게 쫓으려 하고 있었다.

‘병사 백 명보다 저자가 더 위험하다. 반드시 막아야 돼.’

마법사의 몸이 정상이 아닌 게 보였다. 말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부상의 고통을 참고 있는 게 명백했다.

도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창에 내공을 실어 힘껏 집어 던졌다. 기회가 왔을 때 마법사의 생명을 끊어 놓을 생각이었다.

‘빌어먹을. 내공이 잘 모이지 않아.’

마법사의 얼음 화살을 맞은 이후 몸속을 파고드는 한기를 내공으로 억지로 막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한기가 기의 흐름을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은 창은 마법사가 아닌 말의 엉덩이에 적중되었다.

히히히힝!

말이 옆으로 쓰러졌고, 카샨은 무거운 말에 다리가 끼는 처지가 되었다.

죽이지는 못했지만 저 몸으로는 더 이상 동료들을 추격하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 내린 도현은 숨을 몰아쉬다가 덤벼드는 기마병들을 다시 상대했다.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는다. 팔이 무겁게 느껴져.’

한기가 서서히 신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때 성이 있는 방향에서 수백 필의 말과 수십 마리의 전투 몬스터가 추가로 나타났다.

‘피하자. 이 몸으로는 더 이상 저들을 상대할 수 없어.’

악착같이 달려드는 기마병들을 상대하던 도현은 그중 한 명의 팔을 잡아 밑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번개같이 말안장에 올라탔다.

“히얏!”

도현은 동료들이 도망간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말을 몰아갔다. 기마병들이 긴 꼬리를 만들며 그를 추격했지만 도현은 그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숲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크샤코 가문의 장남 카심은 말에서 내려 들판을 걸어 다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겨 왔다.

도현과 그의 부하들의 싸움이 벌어진 현장이었다.

들판에는 싸움 실력이 출중한 철갑 기마병들의 시체들과 전투 몬스터 하이드로우 사체들이 뒤엉켜 있었다.

팔에 붕대를 감은 철갑 기마대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그에게 도현과의 전투 상황을 보고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믿기지 않았다.

성안을 제집처럼 헤집고 돌아다니더니 결국엔 최후의 저지선인 철갑 기마병과 전투 몬스터들까지 상대하고 도망가 버렸다. 그것도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기가 막히는군.”

카심은 화가 나다 못해 이제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카샨이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왔다.

상의에 피가 많이 묻은 게, 동생도 그자에게 당한 것 같았다.

“몸은 괜찮냐?”

“며칠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얼음탑주 후보로 오를 만큼 마법이 뛰어난 카샨은 도현을 잡지 못한 게 당혹스럽고 믿기지 않았다.

“전투 몬스터가 마흔 마리 정도 죽었다. 병사들의 피해도 적지 않고.”

“면목 없습니다.”

이 모든 게 자신이 잡아 온 자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어서 카샨은 형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체 감옥에 들어와서 죄수들을 구해 간 자가 누구냐?”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대범한 자다. 강한 자고.”

브링틱 성에서 거주하는 원로인 아버지를 대신해 가문을 이끌고 있는 카심은 오늘 일을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그동안 다른 두 가문을 밀어내고 브링틱을 단독으로 지배해야 한다며 부친에게 누누이 주장해 왔는데, 집안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질책이나 들을 상황이었다.

“돌아가자.”

카심이 말에 올라타 성으로 향했다. 뒤에 남은 카샨은 도현이 말을 타고 사라진 방향을 무거운 얼굴로 노려봤다.

마법으로 상대할 수 없는 자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변화

숲 속 바위 뒤에 기대앉은 도현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카샨의 얼음 화살을 맞은 후유증으로 인해 몸이 완전히 마비됐다.

일반인이었다면 카샨의 얼음 화살을 맞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도현이었기에 들판에서 싸움까지 하며 버틸 수 있었다.

‘무사하겠지.’

도현은 마비 증상이 풀리기를 기다리며 먼저 도주한 동료들을 생각했다.

적들을 들판에 최대한 잡아 두고 자신이 미끼가 되어 시선을 끌어 줬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정도 시간이었다면 도망가기 충분했을 것이다.

‘치료를 잘 받아야 될 텐데.’

어베인과 로나의 만신창이가 된 몸을 떠올린 도현은 마음이 착잡했다. 짐브리오는 그들이 치료를 제대로 못 받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했다.

매를 맞아 형편없이 부어오른 로나의 얼굴과 사라진 새끼손가락을 생각하던 도현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봤다.

몇 분간 지속된 마비 증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따라가 보자.’

몸이 정상이 된 도현은 짐브리오를 찾아 몸을 날렸다.

등에 창도 맞고 팔다리에 자잘한 상처도 있었지만 아직 체력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내공은 오히려 줄지 않고 감옥에서 싸우기 전보다 늘어난 상태다.

수십 마리의 전투 몬스터를 잡은 결과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내공이 늘었어.’

도현은 수많은 횃불을 밝히며 들판의 전투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크샤코 가문의 병력을 멀찍이서 바라봤다.

도현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 주변의 경계는 허술했다.

은밀히 그 지역을 통과한 도현은 짐브리오가 말을 몰고 달아난 방향을 따라 쾌속하게 이동을 했다.

말을 타지 않았지만 바다처럼 넓은 내공의 힘을 받아 신법을 발휘한 그의 빠르기는 그야말로 말을 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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